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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성의 풋볼리즘
① 축구 감독 연봉 200억 원 시대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축구 판의 부자하면 거의 다가 선수들이었다. 직접 부딪쳐 싸우고 화려한 기술을 선보이며 위대한 성취를 가능케 해주는 선수들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자 대가였다.
그런데 요즘 축구는 좀 다르다. 현장의 선수가 대우 받는 건 같고 당연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들의 주가도 무섭게 치고 오르고 있다. 바로 감독들이다.
경기 시작하면 뛰고 싸우는 건 선수들인데 감독이 뭐 얼마나 할 일이 많은가란 시선도 있었다. 예전 축구가 상대적으로 선수 개개인의 능력에 힘을 집중한 탓에 감독의 존재감이 적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감독 한 명 잘못 바뀌면 팀이 망가지는 건 한 순간이다. 반대로 감독을 잘 데려오면 팀이 대박을 치기도 한다. 가까이, 요즘 지켜본 일이다. 실제로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수 십 억 원이던 톱클래스 축구 감독들의 연봉이 최근엔 200억 원대까지 치솟았다. 다음 시즌 맨체스터 시티의 지휘봉을 잡는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연봉은 1600만 파운드(268억 원)로 알려져 있다.
축구가 복잡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상대적으로 선수 개인이 잘하면 되던 축구가 1970년대 토털풋볼을 거치면서 전체의 문제로 이동했고 전술과 전략의 거듭된 진보로 보다 복잡해졌다. 축구의 중심이 개인에서 전체, 조직의 문제로 확대되면서 이를 통제할 리더십이 필요했고 자연스레 감독의 역할과 존재감이 커졌다. 그 대가의 상승이 바로 감독 연봉의 폭등이다. 축구 시장이 커지면서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조차 어려운 부를 손에 쥔 슈퍼스타들이 많아졌다고 하는 것도 이들을 통제하고 조정할 감독의 역할과 비중을 확대시켰다.
② 반 년 만에 팀을 바꾼 게겐 프레싱
감독 잘못 데려와서 고민이 이만저만 아닌 팀이 있는가하면 감독 잘 데려와서 분위기며 팀 전력에 컬러까지 완전히 일신하면서 가파른 상승 흐름을 타는 팀이 있다. 이처럼 희비가 갈리는 것도 그만큼 감독의 존재감이 커졌다는 걸 알려주는 일이다. 요즘 축구에서 후자의 대표적 경우를 꼽자면 리버풀이다. 감독 잘 데려와 팀을 긍정적으로 바꾼 성공적인 케이스다.
리버풀은 시즌 초반만 해도 어려움이 컸다. 결국 지난해 10월 성적 부진의 책임으로 브랜던 로저스 감독을 해임하고 위르겐 클롭 감독을 전격적으로 영입했다. 분데스리가에서는 열풍을 일으킨 클롭 감독이지만 독일 무대를 떠나서는 지도 경험이 없는 데다 예전 펠릭스 마가트(풀럼) 이외에는 흔치 않았던 프리미어리그의 독일 출신 지도자라는 점에서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클롭 감독은 그 특유의 강렬한 몸짓만큼이나 거침없는 질주를 이어가면서 자신을 향한 우려를 완전히 날려 버렸다.
클롭 감독은 리버풀에 부임하면서 “4년 이내 리그 우승”이란 목표를 밝혔다. 시간을 두고 지켜봐 달라는 부탁이기도 했다. 시즌 중 팀을 맡은 데다 ‘게겐 프레싱’으로 불리는 너무나 개성이 뚜렷한 축구를 구사하는 탓에 리버풀을 자신이 원하는 팀으로 바꾸어 놓기 위해선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단 뜻에서의 이야기였다. 이와 같은 시간의 필요, 시간과의 싸움은 여전히 유효한 문제의식이지만 클롭 감독은 안필드 부임 7개월도 되지 않아 강렬한 변화를 이끌어냄과 동시에 만만치 않은 성과를 이끌어 냈다. 프리미어리그에선 5위 맨유와 승점 5점 뒤진 8위에 올라 있으며 리그컵 준우승에 이어 지난 새벽 리버풀의 15년 만의 유로파리그 결승 진출을 이끌어냈다. 시즌 초반 흔들렸던 팀 분위기를 완전히 뒤집으며 성공 시대의 문을 열었다.
리버풀은 5월19일 새벽 3시45분 스페인의 세비야와 올 시즌 유로파리그 우승을 놓고 다툰다. 리버풀이 이기면 2001년 이후 15년 만의 우승이며 세비야가 승리하면 대회 사상 첫 3년 연속 우승이 된다.
③ 5km~20km의 의미
구체적 성과도 성과지만 짧은 시간 내 완전히 다른 팀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리버풀을 뒤바뀌어 놓은 게 더 대단하고 평가받을 일이다. 로저스 감독 시절 점유에 초점(공격적 점유가 통한 시즌도 있었지만 지난 시즌부터 파괴력이 떨어지면서 지루하기까지 한)을 맞추고 있던 팀 컬러를 ▲강력한 전방 압박과 ▲끊어낸 공의 민첩한 슈팅 포지션 이동 ▲쇼트 카운터에 의한 빠른 마무리라는 특유의 게겐 프레싱으로 급속히 탈바꿈 시킨 클롭 감독이다. 전체 라인을 전방으로 끌어 올리고 압박하는 전술로 라인 간 간격을 좁게 유지하고 실제 상대의 공을 끊어내기 위해선 상당량의 운동량을 필요로 하지만 클롭 감독은 짧은 시간 내 이 같은 변화를 가능케 했다. 팀 컬러를 바뀌는 큰 폭의 변화라 하더라도 시즌 전 충분히 준비하면서 차근차근 만들어 갔다면 몰라도 시즌 도중 급하게 팀을 맡아 이 같은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리버풀 선수들의 운동량이 늘어난 것은 구체적 수치를 통해 알 수 있는 일이다. 로저스 감독이 마지막으로 리버풀을 이끌었던 지난해 10월4일 에버튼전의 리버풀 선수들 총 이동거리는 102.6km였다. 클롭 감독이 이끈 리버풀의 최근 프리미어리그 경기 스완지전의 총 이동거리는 107.7km다. 후보급 선수들을 다수 포진시켰음에도 로저스 감독 시절보다 운동량이 많았다. 스완지전 바로 전 리그 경기였던 주전 선수들이 나선 뉴캐슬전의 경우는 117.1 km를 뛴 리버풀 선수들이었다. 로저스 감독 시절보다 적게는 5km, 많게는 20km까지도 더 뛴 클롭 감독의 리버풀이다.
④ 많이 뛰는 게 초점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뛴 거리만 가지고 클롭 감독의 축구를 설명하는 건 충분치가 않다. 클롭 감독 게겐 프레싱의 핵심은 실제 상대 소유의 공을 끊어내 슈팅으로 연결하는데 있다. 상대의 패스 방향이나 형태를 흩뜨려 놓거나 공격 전환을 지연시키는 또 다른 전방 압박과는 차이가 있다. 때문에 클롭 감독의 축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이 뛰는 것’이 아닌 ‘공을 끊어내는 것’에 포커스를 맞춰 바라봐야 한다.
클롭 감독도 “내가 처음 리버풀에 왔을 때 우리 선수들은 120km까지 달리곤 했다. 그렇게 뛰고도 이기지 못했다. 문제는 왜 뛰는가의 답이 빠져 있기 때문이었다. 카운터 프레싱의 이유는 가능한 상대 공을 빨리 뺏어 공격하는데 있다. 그러지 못하면 뛰기만 하다가 힘만 빠져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따라서 클롭 감독 축구의 핵심은 공을 잘라내는 것에 있다. 상대가 소유한 공을 얼마만큼 빠르게 또 높은 위치에서 끊어내서 단시간 내에 슈팅으로 연결하느냐가 클롭 감독 축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지난 새벽 유로파리그 4강 2차전 비야레알전은 클롭 감독 축구의 백미였다. 리버풀 선수들은 많이 뛰는 것을 뛰어 넘어 계속해서 비야레알 선수들의 공을 끊어내면서 경기를 완벽하게 지배했다. 리버풀 선수들이 비야레알전에서 성공시킨 인터셉트는 모두 17개나 됐다. 5분당 한 번꼴로 상대 공을 끊어냈다. 점유율은 57% 대 43%로 차이가 크지 않았지만 슈팅 숫자가 4배 차이인 24개 대 6개로 벌어진 것도 이와 같은 인터셉트의 위력이었다. 리버풀 선수들은 계속해서 비야레알 선수들의 공을 끊어내 슈팅으로 연결했다.
한 경기 17개의 인터셉트는 로저스 감독 시절과 확연히 대비되는 수치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로저스 감독의 지휘 마지막 경기 에버튼전 리버풀 선수들의 인터셉트 숫자는 8개였다. 지난 새벽 경기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⑤ 감독은 모티베이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선수들이,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은 선수 구성에도 이와 같은 큰 전술과 흐름의 차이를 보이는 건 고개가 갸웃해지는 일이다. 시즌 중반 감독이 바뀌었기 때문에 로저스 감독 시기와 클롭 감독 시기의 선수 구성 차이는 크지 않다. 선수는 같은데 팀과 경기 내용은 완전히 달라졌으니 궁금한 일이다.
앞서 언급처럼 전술이 달라진 것인데 또 더 나아가 궁금한 건 어떻게 이처럼 빠르게 선수들이 새로운 축구를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내느냐다. 요즘 리버풀의 축구를 보면 다른 것을 떠나 경기에 임하는 집중력, 승부근성 등 멘탈 영역이 확연히 강렬해진 것을 알 수 있다. 강렬해진 리버풀 선수들의 멘탈은 새로운 전술의 수용과 경기에 나서는 열정적 승부근성을 동시에 크게 끌어올렸다. 선수들이 만들어가는 전술의 시작은 그렇게 멘탈이다. 받아들일 마음이 없는 선수들에겐 그 어떤 천하의 비책도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지난 새벽 비야레알전이 확연히 달라진 리버풀 선수들의 멘탈을 확인할 수 있는 경기기도 했다. 유로파리그 우승과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진출권 획득이라는 분명한 동기부여가 있다고 하더라도 경기에 집중하는 선수들의 전투력과 동기 부여 측면에서 확실히 리버풀 선수들이 비야레알 선수들에 앞섰다. 리버풀 선수들은 하나같이 몸을 던졌고 90분 동안 쉴 새 없이 달렸다. 후반 중반 체력이 방전되는 오버워크 모습이 보이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강한 멘탈로 이겨내면서 우위를 지켜낸 리버풀이었다.
리버풀 선수들의 멘탈이 이처럼 강하게 유지되는 건 비단 지난 새벽 경기뿐만이 아니었다. 클롭 감독이 안필드로 부임하면서 계속해서 이어진 흐름이다. 사실 클롭 감독은 게겐 프레싱으로 전술 혁명가로 알려져 있지만 선수들의 멘탈을 관리하고 승부욕을 폭발시키는 동기 부유에 있어서도 전문가로 불리는 인물이다. 마인츠의 승격을 이끌고 도르트문트의 분데스리가 돌풍을 이끄는 과정에서 중소 팀과 무명의 선수들에 쌓인 패배의식을 걷어내고 무대 전면의 주인공으로 나서게 한 경험에서 쌓인 능력이다.
선수들의 멘탈은 승리에 대한 강한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승리하기 위해 팀 전술의 강렬한 흡입으로 이어지는데 이와 같은 심리와 사이클을 너무나 잘 활용한 클롭 감독이었다. 클롭 감독이 분데스리가 시절 넬손 발데스의 부활과 케빈 그로스크로이츠, 누리 샤힌, 스벤 벤더, 마리오 괴체 등 젊은 선수들을 정상급 선수들로 키워냈던 것에서도 지켜본 일이기도 하다. 클롭 감독 이름 앞에 모티베이터라 수식어가 따라붙곤 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나의 팀은 모든 경기에서 한계까지 싸워야 한다.”
클롭 감독이 리버풀에 부임하면서 꺼냈던 일성 중 하나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리버풀은 달라지고 있다. 한계까지 싸우며 또 무섭게 싸우고 있다. 유로파리그 결승전의 최종 결과를 떠나 클롭 감독의 리버풀이 올 시즌 확실한 터닝 포인트를 손에 쥐었단 평가의 근거이자 배경이다. 클롭 감독의 등장과 활약은 리버풀만이 아닌, 현대축구에서 감독이 팀의 운명을 얼마만큼 좌우할 수 있는지도 잘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도 시사 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정말이지 감독이 중요하다. 감독, 잘 뽑아야 한다. 클롭 감독을 지켜보면서 다시 생각하는 일이다.
기사제공 축구전문가 박문성
첫댓글 선수시절에도 감독님따라 팀 분위기가 확연히 차이나는거를 많이 느꼈어요^^
리더의 중요성 또 느끼네요~
예
저는 김성근 감독님과 클롭 감독의 팬 입니다.
경기를 자주 보고
팔로우를 합니다.
보고 배우고 있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