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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 :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지은이 : 헬렌 켈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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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정보>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은 헬렌 켈러가 대학 2학년 때 쓰기 시작한 「내가 살아온 이야기(The story of my life)」와 50대의 헬렌이 눈이 뜨여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기적적인 상황을 가정한 에세이 「사흘만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을 하나로 묶은 책이다. 이 책은 국내에 처음으로 전문이 소개되는 것이다. 평생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그녀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것들에서 아름답고 소중한 가치를 찾아낸다. 단지 앞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글이다.
어려서 열병을 앓고 난 후 시력과 청력을 잃은 뒤 가정교사 앤 설리번을 만나 장애를 극복하고, 평생 장애인을 위한 사업에 헌신한 헬렌의 삶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영화나 요약본, 아동용 동화를 통해서 그 내용을 접했을 뿐이다. 헬렌이 직접 쓴 「내가 살아온 이야기(The story of my life)」에는 사라진 감각 대신 촉각과 후각, 상상력으로 세상을 살아간 그녀의 삶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번역자들이 헬렌이 쓴 한 문장, 한 단어라도 빼놓지 않으려고 노력한 『사흘만 볼 수 있다면』에는 고통스런 운명을 극복하고 긍정적으로 살아간 그녀의 인간과 자연, 세상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작가소개>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를 이겨낸 미국의 사회사업가, 작가다. 1880년 6월 27일 미국 앨라배마 주의 터스컴비아에 있는 비교적 풍족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19개월 만에 열병을 앓고 난 후 시력과 모두 청력을 잃었다. 일곱 살 때인 1987년 가정교사 앤 설리번을 만나, 사물에 이름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것을 통해 헬렌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되었다. 설리반 역시 10살 때 남동생과 함께 고아원에 보내어져 학대와 고통 속에 성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불결하고 빈약한 환경에서 남동생을 떠나보내야만 했다. 또한 그녀는 눈병에 걸려 실명 직전까지 간 적이 있었다. 설리반은 겨우 20살이었지만헬렌 켈러의 고통을 이해해줄 수 있는 인내심과 신앙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설리반이 없었더라면 아마 위대한 사회사업가 헬렌 켈러는 존재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삼중 장앵를 가지고 있었던 헬렌은 난폭하고 거칠었으나 장애의 고통을 잘 이해해주는 훌륭한 스승 설리반 덕분에 그녀는 지적으로 큰 성장을 거둘 수 있었다. 그 해 7월부터 점자 공부를 시작한 헬렌 켈러는 1890년에는 보스턴의 농아 학교 플러 선생님으로부터 발성법을 배워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1899년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장애를 딛고 하버드 부속 래드클리프 대학에 입학하였고 마침내 1904년 일반인도 입학하기 어렵다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바로 그 해 센트 힐 박람회에서 '헬렌 켈러의 날'이 제정되어 헬렌은 처음으로 강연을 하였다. 그 후 그녀는 처음으로 전세계의 장애인들을 위한 활동을 펼치게 되었으며 사람들에게 큰 희망과 복음을 심어 주었다. 그녀는 미국 본토가 아닌 해외에서도 강연 여행에 나섰으며 생전에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다(1937년). 1942년에는 제 2차 세계대전의 부상병 구제 운동을 전개하였다. 1952년에는 프랑스의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수상하였고 1964년에는 미국의 최고 훈장인 자유의 메달을 수여받았다. 그녀는 풍부하고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뛰어난 문필가이기도 했다. 968년 88세를 일기로 코네티컷에 있는 자택에서 영면했다.
그녀의 저서로는 『신앙의 권유』, 『나의 종교』, 『암흑 속에서 벗어나』, 『나의 생애』, 『사흘만 볼 수 있다면』 등이 있다.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은 헬렌 켈러가 22세에 쓴 아름다운 자서전 『내가 살아온 이야기』와 50대에 이른 그녀가 자신의 눈이 뜨여 3일간 세상을 볼 수 있게 되는 상황을 가정하고 쓴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을 완역한 책이다. 53세에 쓴 수필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은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20세기 최고의 수필'로 선정한 작품이기도 하다. 시력과 청력 대신 풍부하고 예민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던 헬렌 켈러의 작품은 정밀하고 섬세한 묘사가 특징적이다.
<책속으로> 나를 슬프게 했던 문장들
p23
내가 만약 대학 총장이라면 '눈을 사용하는 법'이란 강의를 필수 과정으로 개설했을 겁니다. 사람들이 아무 생각없이 지나치는 것들을 진정으로 볼 수 있다면 삶이 얼마나 즐거울지를 알게 해주는 강의가 되겠지요. 말하자면, 나태하게 잠들어 있는 기능을 일깨우는 겁니다.
pp23-39
내가 만일 단 사흘만이라도 앞을 볼 수 있다면, 가장 보고 싶은 게 무엇인지 나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내가 상상의 나래를 펴는 동안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사흘만 볼 수 있다면 내 눈을 어떻게 써야 할까?? 셋째 날이 저물고 어둠이 닥쳐올 때, 이제 다시는 자신을 위한 태양이 떠오르지 않으리라는 것을 여러분은 압니다. 자, 이제 그 사흘을 어떻게 보내시렵니까? 여러분의 눈길을 어디에 머물게 하고 싶습니까?
첫째 날에는 친절과 겸손과 우정으로 내 삶을 가치 있게 해준 사람들을 보고 싶습니다. 먼저, 어린 시절 내게 다가와 바깥 세상을 활짝 열어 보여주신 사랑하는 앤 설리번 메이시 선생님의 얼굴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싶습니다.
.....
내가 가까운 친구들을 그나마 잘 아는 이유는 그들이 여러 달 여러 해를 나와 함께 보내면서 자신의 모든 면을 속속들이 드러내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다지 가깝지 않은 친구들에 대해서는 아는 게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손을 맞잡았을 때의 감촉, 말하는 입술에 손가락을 대었을 때의 느낌, 내 손바닥에 와닿는 촉감을 통해서 얻은 것들입니다.
표정의 미묘한 변화, 근육의 떨림, 손의 흔들림 같은 걸 보고 사람의 본성을 재빨리 파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한편 볼 수 있다고 해서 과연 친구나 지인의 내면을 들여다본다고 할 수 있을까요? 눈이 보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저 얼굴 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않습니까?
......
첫째 날은 아주 바쁠 것 같습니다. 나는 사랑하는 친구들을 불러모아 그들의 얼굴을 오래오래 들여다보며 그들 내면에 깃든 아름다움의 외적인 증거를 가슴에 새길겁니다. 또한 아기 얼굴 위에 오래도록 시선을 둔 채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갈등을 아직 알지 못하는 순진 무구한 아름다움 도 놓치지 않으렵니다.
그리고 내 충직하고 믿음직한 개 두 마리의 눈도 들여다 보렵니다. 스코티 종 다키는 용감하고 빈틈없는 친구요. 건장하고 유순한 그레이트에인 종 헬가는 따뜻하고 부드럽고 재미있는 친구여서 내게 많은 위안을 준답니다.
그토록 바쁜 첫째 날에, 내 작고 아담한 집도 돌아보고 싶습니다. 내가 밟고 있는 양탄자의 따뜻한 색깔, 벽에 걸린 그림들, 집안을 아기자기하게 꾸미고 있을 친밀감 넘치는 장식물들도 보고 싶네요. 내 눈은 내가 읽은 점자책들 위에 경건하게 머물 것입니다. 그것들은 눈이 보이는 사람들이 읽는 인쇄된 책보다 훨씬 더 흥미로울 겁니다. 기나긴 밤과도 같았던 내 인생에서 누군가 읽어준 책과 내가 읽은 책은 인간의 삶과 영혼의 깊고 어두운 길을 밝혀주는 빛나는 등대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날 오후, 나는 오래도록 숲을 산책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렵니다.
......
첫째 날 밤, 나는 하루 동안의 기억들로 머릿속이 가득차서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을 겁니다.
앞을 볼 수 있게 된 둘째 날, 나는 새벽같이 일어나 밤이 낮으로 바뀌는 그 전율어린 기적을 바라보겠습니다. 태양이 잠든 대지를 깨우는 경건한 빛의 장관은 얼마나 경이로울까요.
나는 이날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세상의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는 일에 바치고 싶습니다. 인간의 진화 과정이라는 시대의 만화경으 들여다보고 싶은 바람이랄까요. 그 많은 것을 어떻게 하루만에 보느냐? 박물관을 찾을 생각입니다.
......
다음 행선지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입니다. 자연사박물관이 이 세계의 물질적인 측면을 보여준다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인간 영혼의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측면을 보여줍니다.
......
이런 이유로 해서, 나는 예술을 통해 인간의 영혼을 탐색하는 일에 둘째 날을 바치고 싶습니다. 손으로 만져보고 알던 것들을 나는 이제 눈으로 봅니다.
......
둘째 날 저녁은 연극이나 영화를 보며 지내고 싶습니다. 지금도 나는 온갖 연극을 보러 다니지만,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는 친구가 손바닥에 써줘야만 알 수 있답니다.
... ...
나는 내 손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의 율동미박에는 즐길 수가 없습니다. 마눗바닥을 울리는 진동을 통해 리듬의 즐거움을 조금 알고 있긴 하지만, 안나 파블로바의 우아한 발레 동작은 그저 어렴풋하게 상상이나 해볼 뿐입니다. 율동적인 움직임이야말로 상상하건대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광경 중 하나일 겁니다.
......
하여 둘째 날 밤에는 희곡작품 속의 위대한 인물들이 내 눈에서 잠을 걷어내겠지요.
다음날 아침, 나는 새로운 기쁨을 발견하고 싶은 마음에 들떠 또다시 새벽을 맞이할 겁니다. 나는 앞을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겐 매일매일 밝아오는 새벽이 영원히 반복되는 아름다움의 게시일 거라고 확신합니다.
이 날은 내가 볼 수 있는 세째 날이자 마지막 날이군요. 비록 상상으로 만들어낸 기적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후회나 아쉬움 따위로 낭비할 시간이 내겐 없답니다. 봐야 할 것이 너무나 많거든요. 첫날은 친구들과 가까운 동물들에게 바쳤습니다. 둘째 날은 자연의 역사를 공부하느라고 보냈습니다. 오늘은 현실세계에서 사람들이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구경하며 보낼까 합니다. 그러자면 뉴욕만큼 활동이 왕성하고 수많은 상황이 연일 벌어지는 곳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뉴욕을 행선지로 정하겠습니다.
......
광명이 주어진 셋째 날이 이제 끝나갑니다. 남은 몇 시간 동안 진지하게 추구해야 할 것들이 아직 많습니다. 하지만 이 마지막 날 저녁에 나는 아주 신나는 코미디 공연이 한창인 극장으로 달려가야만 할 것 같군요. 그래서 인간의 정신 속에 깃들어 있는 희극적인 요소를 감상하고 싶습니다.
......
나는 장님이기 때문에, 앞이 잘 보이는 사람들에게 한가지 힌트- 시각이란 선물을 받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가장 잘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드릴 수 있답니다. 내일 갑자기 장님이 될 사람처럼 여러분의 눈을 사용하십시오. 다른 감각기관에도 똑같은 방법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내일 귀가 안 들리게 될 사람처럼 음악 소리와 새의 지저귐과 오케스트라의 강렬한 연주를 들어보십시오. 내일이면 촉각이 모두 마비될 사람처럼 그렇게 만지고 싶은 것들을 만지십시오. 내일이면 후각도 미각도 잃을 사람처럼 꽃 향기를 맡고, 맛있는 음식을 음미해보십시오. 모든 감각을 최대한 활용하세요. 자연이 제공한 여러 가지 접촉방법을 통해 세상이 당신에게 주는 모든 즐거움과 아름다움에 영광을 돌리세요. 그렇지만 단언하건대 모든 감각 중에서도 시각이야말로 가장 즐거운 축복입니다.
(출처: 팡세 너를 만나다)
헬렌켈러의 생애와 업적!
* 생애
그녀는 1880년 6월 27일 앨라배마 북서쪽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 투스쿰비아에서,
정상적인 아이로 태어났다.
두 살 무렵 까지 다른 아기들처럼 별 탈없이 자랐다.
두 번째 부인인 어머니인 케이트 아담스 켈러는 남편인 켈러 대위보다 스무살이나
적었다.
아버지는 멤피스 출신의 사라 로서와 결혼해서 아들 둘이 있었지만, 사라는 1877년
서른 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어머니는 자기 이름을 따서 '헬렌(빛을 뜻함) 에버레트'라고 지으려고 했으나,
아버지가 아기가 세례를 받는 날 목사에게 아기를 '헬렌 아담스'라 부를
것이라고 말해 버렸다.
1882년 2월 헬렌이 태어난지 19개월 되었을 때 위와
뇌에 심각한 울혈이 생겨났다.
그 때 의사들은 헬렌의 병을 '뇌척수막염'이라고 진단했지만 정말 뇌척수막염을
앓았던 것인지는 아직까지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그로 인해 헬렌은 눈이 멀고, 귀가 먹고 말을 못하게 되었다.
그 당시 디킨스의 [미국 방명목]에서 하우이 박사가 시각, 청각 장애를 겪고 있는
로라 브리지먼을 가르친 이야기를 듣고 케이트는 희망을 가졌다.
1887년 3월 3일 애니 설리번이라는 가정교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애너그노스 학교를 갓 졸업한 스무살밖에 안되는 선생님이었지만,
그녀도 트라코마 눈병을 앓은 탓에 반쯤 시력을 잃은 상태였다.
헬렌의 집에 도착하고 곧 글자 공부가 시작되었다.
애니는 로라가 옷을 지어 입혀 준 인형을 헬렌에게 주고 헬렌의 손바닥에 '인형'이라는 글씨를 써 주었다.
이것이 헬렌에게 가르쳐 주려 했던 첫 낱말이었다.
하지만 헬렌은 온갖 반항을 다했다.
애니가 가르쳐 주려했던 두 번째 낱말은 '케이크'였다.
헬렌은 뭔가 손짓을 따라했지만 그 뜻을 이해하지는 못한 것 같았다.
헬렌을 고분고분하게 만든 방법은 매가 아니었다.
애니는 그 보다 훨씬 더 효과가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것은 아이에게 글자를 써주지 않는 것이었다.
무언가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숨어있던 지성으로 깨닫기 시작했다.
애니는 이 무렵부터 헬렌을 쉽게 교육시킬 수 있었다.
헬렌이 난폭한 행동을 할 때마다 애니는 손의 움직임을 딱 멈추고 아이가 바른 행동을 보
일 때까지 아무 반응을 하지 않았다.
아이가 잘못할 때마다 아이를 어둡고 고요하면서도 무척이나 외로운 무덤 속으로
돌려 보낸 것이다.
퍼킨스 학교장 마이클 애너그노스와 전화기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덕분에
헬렌켈러는 고결한 시각, 청각장애인 천재라는 사회적 인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미 헬렌은 열살 때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는데, 미국과 유럽 사람
들은 헬렌이 받은 교육에 대해서 알고 싶어했다.
라이트-허머슨 학교에서 유일한 시각, 청각장애 학생이었던 헬렌은 청각
장애만 있는 다른 학생들과 전혀 어울릴 수 없었다.
헬렌은 지리, 프랑스어, 독일어, 수학을 배웠는데, 수학은 따분하게
만 느껴지고 적성에 전혀 맞지 않았다.
이 즈음 헬렌은 타자를 배워서 특별 자판이 달린 타자기 몇 종류를 다룰 수 있었다
.헬렌은 다른 사람처럼 말하지 못하는 데에 적지 않게 상심했다.
그러나 언어장애가 그녀를 사람들로부터 고립시키지는 못했다.
헬렌과 애니는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는데,
작가 마크 트웨인, 소설가 윌리엄 딘 하웰스, 편집자 리처드 와트슨 길더,
석유왕 존 록펠러와 핸리 로저스, 연극배우 헨리 어빙 경 등 많았다.
열여섯이 되어서야 비로로 보고 들을 수 있는 또래 친구들과 함께 지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학교에는 수화를 할 줄 아는 교사와 학생이 거의 없었다.
1900년 가을 래드클리프 대학에 입학했다.
이는 장애가 있는 사람이 고등교육 기관에 입학한 첫 번째 사례였다.
같은 과 친구 가운데 수화를 하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고, 스승들 가운데 그녀와
직접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명에 불과 했다.
1904년 6월 28일 스물네 살에 래드클리프 대학의 전과정을 수료하고,
특히 영문학이 우수하였다
헬렌은 사회주의에 깊이 빠져들었다.
이러한 사실은 그녀의 가족들을 비롯해서 세월이 흐른 뒤에도 단지
그녀를 기적을 일으킨 장애인 여성으로 남겨두려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헬렌이 열정적인 사회주의자인 존 메이시와 가깝게 지냈고, 그녀를 존의 꼭두각시
라고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
헬렌과 존에게는 신념을 같이하는 사람
이 많았다.
1912년 거의 1백만에 가까운 미국 사람들이 사회주의자 대통령 후보였던 유진 빅터
뎁스에게 표를 던졌고 천명이 넘는 미국 사회주의자들이 공무원으로 일했다.
헬렌은 매사추세츠 사회주의 당원이었다.
당시에 여성과 아동의 법정 노동 시간을 줄인 매사추세츠 법률이 제정되자 미국
방모회사는 그 보복으로 여성과 아동의 임금을 삭감했다.
일터에서 길거리로 뛰쳐나온 2만 5천명의 노동자들은 세계산업노동자동맹에
호소했다.
헬렌은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개입하는데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녀가 평화주의자여서가 아니라, 전쟁이란 거의 제국주의적이며, 인류에 대한
범죄로서 전체 노동 계급에게 고통을 주고, 희생과 가난을 낳고 그것을 보상받을
길이 아무데도 없기 때문이었다.
이 시기에 헬렌의 으뜸가는 사명은 시각장애인 복지운동이었지만, 여성 참정권을
옹호하고 아동의 노동을 반대하는데 주력하였다.
헬렌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보다 남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자신들이
가진 진짜 장애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1910년 보스턴 음악학교의 성악교사인 찰스 화이트에게서 목소리 수업을
받았다.
그리고 헬렌은 두 눈을 없애고 유리눈을 새로 끼웠다.
겉모습을 눈에 뛸 만큼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다.
그때부터 헬렌은 사진을 찍을 때마다 더 이상 고개를 옆으로 돌리지 않았다.
1916년 헬렌과 페이건은 잠시 사랑에 빠졌다.
페이건은 가끔 헬렌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하지만 헬렌은 어머니에게조차 두 사람의 관계를 숨겨야만 했다.
헬렌은 어머니의 반대로 두 사람의 약혼은 공개적으로 부인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남의 눈을 피해가며 계속 만났으나 함께 도망가는 길 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계획은 실패하게 되었다.
사랑과 결혼에 대한 꿈은 조각나 버리고, 헬렌은 어쩔수 없이 수도승 같은 삶을
이어야 했다.
어머니와 애니가 자기들 판단에 따라 자기들의 특권으로 헬렌의 사랑에 마침표를
찍어주었다.
1918년 헬렌은 헐리우드에서 '해방(Deliverance)'이라는 영화를 찍었다.
이 때 헬렌과 애니는 돈에 쪼들렸다.
애니의 건강이 좋지 않은 탓에 순회 강연을 다니지 못했고, 전쟁을 치르는 동안
많은 단체들이 강연을 취소해 버린 것이다.
영화는 헬렌의 명성을 독차지하려는 사람들의 권력 투쟁, 사회주의자 비서와
이루지 못한 사랑, 선생님과의 복잡한 관계는 제외하고 기적을 이룬 장애만을
다루었으나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다.
후에 1955년에 '운명을 이긴 사람들'을 찍어 장편 기록영화부문에서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1929년 애니 선생님은 백내장이 심해져서 오른쪽 눈을 없앴다.
1934년에는 거의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1936년 10월 20일 애니 설리번은 헬렌의 곁에서 손을 감싸쥐
고 있을 때 숨을 거두었다.
사람들은 헬렌과 애니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아니라 하나라고 믿고 있었다.
1931년 4월에 헬렌은 미국 뉴욕에서 세계 32개국의 대표들이 참석한
제1회 세계 시각장애인 회의에 참가하여, 표준점자를 호소한 덕에 브라유 점자가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세계 표준으로 받아들여졌다.
또한 미국 의회에서 헬렌이 한 첫 연설의 결과로 프랫-스무
츠 법안이 입법화되어 의회 도서관의 지휘에 따라 전국적으로 시각장애인 도서관 체제가 생겨났다.
1932년에는 글래스고 대학에서 명예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후에 1955년 6월 75세에 하버드 대학으로부터 명예학위를 받았다.
여성 최초로 하버드대학에서 명예학위를 받은 것이다.
애니가 없는 헬렌은 폴리 톰슨과 넬라 브래디 헤니가 함께 하였다.
폴리 톰슨은 애니가 죽을 때까지 22년 간을 그들과 함께 살며 비서일을 비롯해
잡다한 일을 했었고,이후에 애니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 넬라는 애니 설리번의 전기를 펴내 인기를 끌었고, 나중에 저술 대리인이 되었다.
1940년 헬렌은 공산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는 미국 구조선 활동에 참여했다.
이 단체는 프랑스의 강제수용소에 있는 스페인 공화주의자들을 해당시키는 운동을
하고 있었다.
FBI에 의하면, 의회반미활동위원회를 해체하라는 탄원서에 서명했다고 하고,
유명한 여성 공산주의자들에게 격려인사나 생일 축하 인사를 보내곤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헬렌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그랬던 것처럼, 제2차세계대
전 후에도 전쟁터에서 눈이 먼 부상병들을 돕는 일에 발벗고 나섰다.
6개월 동안 70여 곳의 육군 해군 병원을 찾아가서 부상당한 군인들을 만났다.
1946년 헬렌은 미국 시각장애인 협회의 자매단체인 외국인시각장애인 협회에서
주관한 첫 번째 세계여행을 시작했다.
그후루 11년 동안 장애인을 우해 5개 대륙의 36개국읠 방문했다.
그녀가 찾아갔던 나라에는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학교가 세워졌다.
1948년 일본에 머무르고 있을 때 폴리의 건강이 악화되었다.
일본 의사는 가벼운 발작이라고 진단했지만, 나머지 여행(한국, 중국, 인도)을 취소했다.
1960년 3월 66세로 폴리 톰슨이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46년 동안 헬렌을 위해 일했다.
삶의 막바지에서 헬렌은 미국 시각장애인 협회의 일을 거의 하지 않았고,
많은 시간을 식구들과 함께 보냈다.
1964년 헬렌은 린던 존스 대통령이 주는 자유 메달을 받은 30인 중 한사람이었다.
자유 메달은 미국의 최고 시민상이었다.
1년 뒤에는 뉴욕 세계 박람회에서 여성 명예의 전당에 선정된 20명의 여성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7년 동안 헬렌은 휠체어와 침대에 갇혀 병을 앓았고, 1968년 6월 1일 토요일 낮
아칸리지에서 숨을 거두었다.
* 업적
1. 육체적 투쟁 : 자신에게 닥친 3중 장애의 극복
헬렌 켈러가 3중 장애를 극복하고 사회인으로 성장한 것 자체가
많은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헬렌 켈러를 3중고의 성녀라고도 합니다.
2. 사회적 투쟁1 : 장애인에 대한 당시의 편견과 오해와 맞섬
장애인은 공부를 할 수 없다.
장애인은 대학에 갈 수 없다. 따위의 편견을 무참히 깨버린 장본인이 바로 헬렌켈러 입니다.
3. 사회적 투쟁2 :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도 맞섬
헬렌 켈러는 여성에게도 참정권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는 미국, 영국 등 민주주의의 선진국 반열에 올라 있는 국가들도
여성에게는 참정권을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 영국은 1919년, 미국은 1920년에서야 여성에게도 참정권을 부여하였습니다.
4. 사회적 투쟁3 :
사회적 약자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정치활동 모색과 참여
헬렌 켈러는 성인이 된 후에도 사회적 약자.
즉 어린이, 여성, 노약자, 장애인을 위한 캠페인을 적극 펼쳤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헬렌 켈러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 명언
고개 숙이지 마십시오.
세상을 똑바로 정면으로 바라보십시오.
고통의 뒷맛이 없으면 진정한 쾌락은 거의 없다.
교육의 최고의 성과는 관용이다.
나는 나의 역경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한다.
왜냐하면 나는 역경 때문에 나 자신, 나의
일, 그리고 나의 하나님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는 눈과 귀와 혀를 빼앗겼지만, 내 영혼을 잃지 않았기에,
그 모든 것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종종 성인(成人)들이 단 며칠간만이라도 맹인과 귀머거리가 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맹인이 되면 시력의 중요성을 알게 될 것이고,
또 귀머거리가 되면 소리의 중요성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낙천(樂天)은 사람을 성공으로 이끄는 신앙이다.
말을 고귀하게 만드는 것은 사상이다.
장애인이라도 노력하면 된다.
선조들 중에서 노예를 가지지 아니한 왕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 선조들 중에서 왕을 가지지 아니한 노예도 하나도 없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는다.
단지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다.
세상이 비록 고통으로 가득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는 힘도 가득합니다.
신은 용기있는 자를 결코 버리지 않는다. -
아름다움은 내부의 생명으로부터 나오는 빛이다. -
여러분이 정말 불행할 때, 세상에는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이 타인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한, 삶은 헛되지 않습니다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때, 우리의 삶에, 아니 타인의 삶에 어떤 기적이
일어나는지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글의 출처: 4060 중년의 행복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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