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초등학교 선배이신 박범신 선배(1959년 졸업)의 고향 얘기네, 아마 다들 읽었겠지만 혹시 안읽었다면 읽어보시게. 고향생각 물씬 나게 썼네.
기차의 추억
글 / 소설가 박범신/출처 / KTX magazine 2012. 4월
10년쯤 전에 쓴 자전소설 <더러운 책상>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열여섯 살이 되기 전까지 그가 걸었던 길은 대부분 들길이다. 들길이란 연속성이 구획해 놓은 어떤 기하학 공간이다. 두 칸짜리 초가를 나와 고산을 돌아 나가면 미로처럼 맺어지고 갈라지는 들길과 만난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살았던 두화마을에서 그가 졸업한 황북초등학교까진 그물망 같은 수킬로미터의 들길이 깔려 있다."
그리고 이어 신작로다.
"두희마을에서 강경읍까지 장장 20리 '신작로' 둑길은 광활한 성동벌판을 하나로 통합하는 아름다운 카리스마를 갖는다. 강경장날이 오면, 오가는 장꾼들과 달구지 행렬이 하옇게 띠를 이룬다. 왁자지껄하고 파릇파릇하고 울근불근하다."
산적로를 지나고 나면 마침내 길은 기찻길로 이어진다.
"이제 그 앞에 철길이 놓여 있다…. 그는 새벽 6시 45분 강경역을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서 고등학교가 있는 이리로 떠나고, 이리에서 오후 5시 반에 출발하는 통학기차를 타고서 강경으로 돌아온다…. 그것은, 열여섯 살이 될 때까지 그가 걸었던 들길과는 전혀 다른 길이다…. '나는 평생 기차를 타고 다녔구나.' 그는 아버지의 말을 기억한다. '젊을 땐 왜 그리 멀리멀리 떠나고만 싶었던지'라고 말할 때의 아버지 눈은 아물아물 아지랑이에 잠겨 있다. 그는 그러나 고개를 젓는다. 떠나고 싶어 기차를 탔다는 건 아버지의 상투적인 착각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파죽지세로 나아가는 기차의 직진 안에 들면 안과 밖의 경계가 더 철옹성이 된다는 것을 아버지는 모르고 있다."
나는 지난 인생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그것이다.
좁은 들길에서 신작로로, 신작로에서 기찻길 혹은 하이웨이로, 이윽고 하늘길로 나아갔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대로 근대화의 길이었다. 나와 같은 세대가 걸어온 인생이 다 그러했다. 거칠 것 없이 내달리는 기차가 들어오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들의 삶이 우물 속 같은 골방으로부터 세상 끝으로 달려 나간 셈이었다.
기차가 세상이 넓다는 것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강경중학교에 들어가 한두 달은 연무에서 강경까지 기차로 다녔고, 고등학교에 들어간 다음엔 강경에서 익산까지 2년이 넘도록 기차 통학을 했다. 그 시절엔 학생들이 타야 하는 '통학기차'가 따로 정해져 있었는데, 그것은 화물차에 나무 벤치 몇 개를 고정시켜 놓은 아주 조악한 것이었다. 창도 아주 작았으며, 그나마 위로 어색하게 붙어 있어 앉은자리에선 창밖의 풍경도 볼 수 없었다. 달리는 감옥 같았다. 기차 안은 늘 어두컴컴했고, 높이 달린 창 너머는 밝고 추상적이었다. 기차 안으로 상징되는 어두운 자의식과 기차 밖의 밝은 추상 사이에 내 10대가 놓여 있었다. 더구나 그 시절 내가 살던 집은 강경읍 채산동, 기찻길 옆에 있었다. 기차가 지나가면 언제나 내 방의 낡은 창이 다르르르 떨리는 소리와 함께 낮은 비명을 내지르곤 했다. 아버지가 그랬듯이, 나도 불 밝은 밤기차를 타고 더 멀리, 세상 끝까지, 매일 밤 얼마나 떠나고 싶었던지. 오늘은 강경역 근처를 배회하다가 돌아왔다.
역사는 새로 지었고, 맨드라미가 붉게 피어 있던 철길은 울타리로 가로막혀 있었다. 그 울타리를 건너 내가 옛날에 걸어 다니던 기찻길을 걷고도 싶었다. 채산동 집에서 나와 장공장 외벽을 따라 걷다 보면 건널목이 나오고, 건널목에서부터 강경역까지는 쭉 뻗은 그 철길. 여름엔 맨드라미가 피고 가을엔 늘 코스모스가 물결치던 길이었다.
그것은 무엇엔가 갇혀 있다고 생각했던 10대의 내겐 멀고 먼 새 세상으로 나가는 출구 같았으며 꿈 혹은 그리움의 한 표상 같았다. 엎드려 철로 위에 귀를 대고 먼 데서 다가오는 기차 소리를 들어 본 적도 많았다. 기차 소리가 들리면 매양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역사 앞 광장에서 한참이나 서 있었다.
먼 곳에 대한 그리움에 목말라 어깨를 잔뜩 숙이고 기찻길 위를 걷는 고등학생인 내가 보이는 듯했다. 옛날의 그 통학기차 소리가 행여 들릴까, 햇빛 속에서 귀를 기울이는 시늉도 해보았다. 그 통학기차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먼 곳에 대한 그리움에 목말라 어깨를 잔뜩 숙이고 걸었던 철길 위의 나와 반백인 지금의 나 사이엔 반세기나 되는 시간의 벽이 가로막혀 있었다. 역사 너머에선 급진적인 KTX 열차가 역사를 무너뜨릴 듯한 놀라운 속력으로 멈추지도 않고 그냥 내달리는 중이었다. 흐르는 것은 기차가 아니라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더러운 책상>에 썼듯이 "흐르는 것은 기차가 아니라 시간이며, 시간은 언제나 먼 시간에서 와 먼 시간으로 흘러갔고" 그 재빠른 유속(流速)에 나의 '통학기차'도 함께 흘러갔다고 느꼈다. 내 젊은 날처럼.
아, 시간보다 더 빠른 기차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