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번째 갈공을 끝맞쳤다. 사실 갈공 끝난진 일주일도 넘었지만 계속해서 후기를 미루다가는 2학년때처럼 결국 후기를 안쓸까봐 시간 남을때 빨리 쓴다. 여러분들도 꼭 후기를 쓰기 바란다. 나중에 갈공카페에 올라왔던 글이랑 내가 썻던 글 읽는게 그렇게 재밌다. 1학년때 글을 열심히 썼었는데, 지금 하나하나 읽어보니 추억도 돋고 정말 재밌다. 2학년때 왜이렇게 대충썼는지... 돌아가면 2학년 김은철한테 갈공후기는 꼭쓰라고 말하고싶다. 이 아저씨 볼게 없다;; 몇몇사람이 지금이라도 2학년갈공 후기를 쓰라고 압박하는데,,, 기억이 나야 쓰지;; 차라리 군복무 후기를 써달라고 하면 생각해보겠다.
지금 풍운위 친구들과, 19학번 집행국 들이 코로나상황에서 정말 힘들엇던것은 물론안다. 그런데 코로나는 내가 비상대책위원회를 하던 때에 시작되었다. 다들 내가 꽹과리 치는 사람으로만 알지 이전에 뭐했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을것이다. 나는 2020년도에 계수민, 김도형, 노채린, 신하경과 함께 비상대책위원회를 하였다. 우당탕탕 집행국 선거가 터지고 생각치도 못했던 비대위 상쇠가 되어서 신년굿을 하고 겨울전수를 준비하는데, 갑자기 어떤 바이러스가 대한민국에 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직도 기억하는데 비대위가 우정관에 모여 겨울전수를 갈지말지 고민하던때가 대한민국에 31번째 확진자가 나왔을때 이다. 그당시 31번째 확진자는 뭐하다 걸렸는지까지 다나오면서 대한민국을 뒤집을 정도로 뉴스에 나왔었다. 그렇게 난리가났는데 어떻게 전수를 갈 수 있겠나.. 바로 전수관에 전수를 가지 않는다고 통보하였다. 지금생각해보면 우리동네에 31명 나와도 무덤덤할텐데.... 사람이란게 어쩔수 없다. 누가 미래를 알겠는가. 우리는 그렇게 전수를 취소하고 늘어나는 확진자와 점점 강해지는 거리두기때문에 연이어 활동들을 계획했다 취소했다를 반복하면서 금방 다시 할 수 있겠지란 생각을 가지며 말그대로 '숨참기'에 들어섰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대게 2주씩 연장됐엇다. 한번 2주가 연장되면 우리는 그 거리두기가 끝나는 날에 맞춰 활동을 다시 수정했다. 암울하지만 이 시점부터라도 활동을 시작하면 이것까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을 가졌었다. 하지만 거리두기는 좀처럼 끝나지 않았고 우리또한 무뎌지고 지쳤었다.
이런 힘든 상황에도 고맙게도 집행국을 하겠다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에게 마지막으로 사물놀이 조교를 해주었다. 거리두기 5인제한이라 방을 빌렸는데도 조교포함 네명이라는 인원이 사물놀이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악기가 하나 빠지고 내가 들어가서 4명이서 연습을 한다던지 악기끼리 연습하고 이후에 맞춰보는 식으로 겨우 연습을 하였다. 비록 이 친구들이 공연하는 모습을 못보고 입대를 했지만 나중에 영상으로 보니까 정말 잘해서 괜히 마음이 뭉클했다.
비대위로써 정말 20학번 친구를 한번을 못보고 2월에 군입대를 하였다. 지금생각해보면 정말 20친구들을 한번을 못볼 상황이였을까. 우리가 20을 더 챙겨줬으면 지금 활동을 하고있었을까라는 생각이든다. 하지만 지금 다 잊혀저서 그렇지 그당시에는 최선을 다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꽤나 풍연을 걱정한다. 내손에 풍연이 망하는일은 절대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 항상 있었다. 내 1,2학년때 기억이 너무 행복했기 때문일까. 이 집단이 계속되었으면 좋겠고, 그 행복을 내 후배들에게 그대로 전달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미련만 잔뜩 남긴채 군입대를 했다. 못 해결한 짐을 19학번들에게 쥐어준다는 것에 미안함도 컸다.
나는 활동을 할적에는 풍물관련 영상을 매우 많이 봤었다. 하지만 군대에서는 그런 영상들을 거의 보지 않았고, 악기에 대한 생각을 하지않았다. 그러다 너울이 없어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풍연에 사람이 별로 없다는 소식들을 어렴풋이 들으면서 정말 이대로 망하나라는 걱정이 조금씩 들었었다. 전역할때쯤 되어서 슬슬 이번에는 갈공은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솔찍히 이때쯤이면 조교도 구하고, 갈공에대해 얘기가 나올법한데...?라는 시기에 아무 소식도 없어서 정말 큰일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뭐라도 해야하나?라는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 내가 집행국도 아니고 뭐도 아닌데 뭘할 수 있겠나 싶었다. 이제 내 일이 아닌데 신경끌까라는 생각도 솔직히 많이 들었었다. 그래도 갈공이 어떻게 될지는 궁금해서 풍짱이라는 사람(21학번 권도은씨) 에게 먼저 카톡을 했다. 의외로 갈공을 한다고 했었다. 그런데 갈공을 하는데 조교를 아직 안 구했다는게 말이되나 싶었다. 들어보니 2학년들이 조교를 한다고 해서 '아...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선배조교들을 연결해주고 싶었었다.
우당탕탕 갈공이 시작했다고 느꼈지만 인원도 생각보다 많았고 조교들도 좋은 사람들로 모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현아누나가 장구 조교를 한다고 처음들었을 때는 마치 어벤져스가 어셈블하는 것처럼 가슴이 웅장해졌었다. 그런데 개강을 앞두고 내가 코로나에 걸려버렸었다. 그래서 희주랑 선균이에게 쇠판을 부탁했다. 솔직히 조교야 대타 구하면 된다지만 내 수업 자리선정은?..... 군대에서 걸리고 싶어도 안걸리던 코로나가 제대하자마자 걸리니까 억울했다. 암튼 격리가 끝나고 쇠판친구들을 만났다. 솔직히 다른 조교들도 공감하겠지만 주 2,3일 정도로 가볍게 악기반하듯이 참여하려고 했다. 그런데 하다보니 애들이 잘해가기도 하고, 공연도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나도 들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물론 정말 힘들때도 있었지만(사실 힘든건 거의 뒤풀이였던듯...?) 내가 1,2학년때 느꼈던 감정들을 다시 느끼고 있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우리는 풍물이라는 것을 꽤 열심히한다. 나또한 정말 열심히했다. 난 특히 악기를 정말 열심히 쳤다. 왜 닉네임이 꽹과리 김은철일까. 난 쇠를 정말 열심히 쳤다. 문뜩 나는 전공이 물리인데 물리를 이렇게 열심히했었나 라는 생각이 들정도였다.(이정도면 학점도 인정해줘요ㅠㅠ) 무엇이 그렇게 중요해서 이렇게 열심히했을까, 때로는 잘 안되서 정말 스트레스 받기도 했었다. 그렇다고 내가 했었던것에 후회하지는 않는다. 이것을 열심히 하면서 난 정말 잘하게 되었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다들 풍연에 들어오는 이유는 다를것이다. 누군가는 악기가 치고 싶어서 들어왔을 수 도 있고, 누군가는 술먹을 사람이 필요해서, 연애가 하고 싶어서 등 여러 이유가 있다. 다들 풍물에 전공자가 아니니 각자의 목표에 맞게 재밌게 활동했으면 좋겠다. 서로에 생각이 안맞아 싸운 사람들을 몇 본적이 있다. 정말 열심히하고 싶은 사람과 그닥 관심이 없는 사람이 싸우는 때가 많았던것 같다. 나야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해서 항상 열심히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재밌자고 하는 일에 서로에게 안좋은 감정을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다만 서로를 이해하는 노력은 했으면 좋겠다. 꽤 진심으로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것을 존중하고 피해를 주면 안된다.
금요일에 갈공이 끝나고 뒷풀이에서 현아누나가 일요일에 임실에서 하는 사선제대회에 사람이 필요하다고 부탁하였다. 현생조절이 필요한 시간이라 원래는 안할 생각이였으나 현아누나가 필요하다고 하면 어떡하겠나 수락했다. 토요일에 낮잠을자고 서울전수관으로 가려고 했는데 솔직히 괜히 간다고 했다고 후회가 조금 들었다. 그래도 서울전수관에 한번쯤은 가보고 싶기도 했고, 전수관 사람들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토요일에 약속된 시간에 40분정도 늦게가서 이미 다 연습하는 중에 들어가면 어떡하나 걱정했었다. 그런데 전수관 문을 열었는데 5명정도 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서강풍연3명... 연습하는 자리인줄 알았는데 적당히 맥주를 마시다가 손풀이겸 악기를 치고 다시 앉아서 문어삼합을 먹었다. 생각보다 홍어를 안먹어본 사람이 많아서 놀랐다. 일요일에 임실에가서 사선제대회에서 굿을했다. 나는 징치배로 뛰었다. 나는 2학년 경연대회때 징치배로 뛰었었다. 2학년 경연대회때 서강풍연은 대상을 탔기 때문에 나도 한 징친다고 자부했었다. 그런데 판이 끝나고 나왔는데 상장구분(94학번쯤 되심)이 너가 제일 안웃었다고 뭐라고 하셨다. 그 티도 안나는 징 뭐이리 박자에 신경쓰냐고 웃기라도 웃지라는 말을 하셨다. 나는 멋쩍은듯 그냥 웃었지만 사실 뒤통수 맞은듯 충격이였다. 판굿에서 중요한건 뭘까? 솔직히 기닥이나 그당을 잘한다고해서 관객들이 알아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잘 웃으면 관객도 잘한다고 생각하고 즐긴다. 웃는게 악기치는것만큼 중요하다. 서강굿이 지금껏 서강굿이라고 불린 이유는 이런게 아닐까 싶다. 선배들이 계속해서 웃으라고 말하지만 솔찍히 본인들도 잘 안웃는다. 나부터가 애들한테 웃으라고 하지만 쇠치다보면 정색하고 있다. 이번에 보니 예은이가 정말 잘 웃더라. 판에서는 악기는 좀 못쳐도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어보자. 억지로 웃다보면 재밌었지고 재밌어지면 웃게된다.
갈공하는 한달동안 정말 재밌었다. 풍연이거 꽤 재밌으니 다들 잘 즐겼으면 좋겠다.. 여러분 수고했고 고마웠어요~~
첫댓글 고생했어 은철아,,,,,,,, 눈물이 좀 나네,,,,
고생했어 도형~~우리 정말 고생했다!!
은철이형 우리 엠티때 재밌게 놀자~~~
좋아
군복무 후기 써 그리고 예은이 장구판이야~
먼저 써주먼 쓸게~
@꽹과리 김은철 난 쓰고 있자너
와아 내 이름이 후기에 등장하다니 영광입니당
질 수 없으니 나도 좀 더 빵긋걸이 되어보겠어~
둘다 정말 잘웃어~ 나보다 훨씬 잘웃더라~
이제 군 복무 후기 써주세요
다사다난한 2020년과 2021년과 2022년 이었다~~
기억에서 지울라구요~
와아 댓글을 안 남길 수 없는 후기… 전판 연습 때 꼼꼼한 피드백 감사했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잘 따라와줘서 고마워요~ 고생했어요!
전설의 31번째 확진자…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 ㅋㅋ 지금 풍운위도 고생했지만 바쁠텐데도 형과 다른 분들이 조교를 맡아줘서 갈공이 성공적으로, 재밌게 마무리 되었던 것 같아! 진짜 고마워~! 남은 일정도 즐겁게 마무리 해봐용~ 아 그리고 쇠 판 열리면 커몬커몬 ㅋㅋㅋ
우형이가 있어서 나도 더 재밌게 할수 있었어~쇠는 차츰 알려줄게!
그때 생각하니 참 슬프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2.10.02 13:32
코로나 격리후에 여진누나한테 부탁받아서 우리 쇠쳐주던게 생각나는구만... 쇠조교인줄도 몰랐고 그냥 도와주러오신 선배인줄 알았는데 ㅋㅋㅋㅋ 그땐 근엄해보였는데... 지금은... 귀여웡...ㅎ
코로나때 그래도 선배들이 잘 남겨줘서 지금 갈공까지 한거야~~ 그 마음들 꼭 이어갈게!
너네들이 잘해줘서 갈공 한거지~~
나 이거 보고 내년 집행국 하기로 결심했어 진짜야
아 집행국은 무리고.. 풍연에 계속 남아있을거야 그건 진짜야
그래~여진아 천천히 생각해봐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항상 응원할게!!!
뭐야 결심 지켜
응원해~
오…
@소고 조교 오성진 나 첫 댓글달고 8분동안 진지하게 고민했다 후…
@앵매기 18 계수민 아직 응원하지마ㅠㅠㅠ
@연 21 조여진
@연 21 조여진 집행국할 결심…
ㅋㅋ
@새날 19 배성재 와….
꽹과리 김은철님 ㅜㅜㅜ…
한 달 동안 가르쳐주셔서 감사해요…
바쁜데도 조교로서 맨날 와주고 ㅜㅜㅜ 과외 이슈랑 갈공조교랑 동시에 하는 거 정말 힘들었을텐데 그걸 해낸 쇠 조교님 최고…..
이번 후기제목도 글이랑 너무 잘어울리네요…
연습 같이 할때마다 느꼈지만 서강풍연에 애정을 갖고 풍연을 아끼는 것 같은 조교님 덕분에 갈공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네요 -!
다들 잘따라와줘서 애정을 갖고 할 수 있었어~ 나뿐아니라 다들 바빴을텐데 열심히 해줘서 나도 열정가지고 할 수 있던거 같아!
사선제 얘기 제 19년도랑 복붙이라서 너무 공감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