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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평 문학춘하추동 제13호(2026. 봄호)
삶의 화두를 긍정적으로 풀어낸 기량과 기지(機智)
김 석 철(한국시조협회 고문)
문학은 언어를 예술적 표현의 제재로 삼아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여, 인간과 사회를 진실되게 묘사하는 예술이다. 문학은 언어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표현하고, 때로는 현실에 개입하는 예술적·철학적 행위이기도 하다. 요약하면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넓은 의미의 문학은 언어(음성, 문자)로 된 모든 글을 지칭하지만, 좁은 의미로는 작가가 인간의 가치 있는 체험을 상상력으로 재구성하여 언어로 표현하는 예술의 한 갈래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은 독자에게 미적 쾌감을 제공하는 심미적 기능이 있고, 삶의 가치와 세계의 본질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제공하는 교훈적 기능과 독자의 심리적 정화를 시켜주는 카타르시스 기능이 있다.
우리는 문인으로서 언어를 매개로 인간의 삶과 사회를 미적으로 형상화하며, 언어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고 인간 경험을 드러내는 예술가이다. 예술로서의 문학은 단순히 창작하고 감상하는 일을 넘어, 그 시대의 세계관과 인간을 비추는 창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고정관념을 탈피하여 영혼을 자유롭게 하거나 인간 영혼의 표현으로 여겨지기도 하며, 세상을 다르게 보게 하는 활동으로 정의되기도 한다.
우리는 이제 노벨문학상 수상자도 배출하였으니 문학의 세계화에 한발 다가섰다. 글로벌 시대를 맞이하여 문학의 발전과 세계화에 보다 열성적으로 박차를 가해야 한다.
그러면 이번엔 『문학춘하추동』 2025년 겨울호(제12호)에 발표된 시조(동시조⸳동시 포함)와 시부문의 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필자는 이십여 년 전부터 간간이 계간평을 써오면서 각 분야별로 주요 착안점과 나름대로 그 기준을 세워 작품을 음미하고 감상하게 되었다. 우선 ‘시조’ 부문에서는 대략 30여 가지를 반영하게 되는데, 예를 들면 제목, 주제, 제재와 소재, 성격(경향), 어조와 정서, 구성, 구와 장, 수의 짜임, 리듬과 율격, 내용과 형식, 표현의 기교, 시어, 개성, 언어의 조탁, 이미지의 형상화, 함축과 내포, 문장부호, 맞춤법, 시제와 어법, 연결성, 통일성, 완결성, 낯설게 하기, 고정관념 탈피, 교훈성, 입체적 묘사, 긴장감, 반전의 효과, 메시지, 감동, 시대성, 예술성, 문학성, 현대성 등이다. 언뜻 중복감도 있지만 나름대로 기준을 두고 있다.
그러면 먼저 ‘시조 창작의 멋’란에서 공감되는 작품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내 시조 <달에게>가 달나라에 착륙했다
발사 후 45일 동안 비행 끝의 쾌거다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이런 날이 올 줄을.
한글 나이 579년 시조 나이 700여 년
한글로 쓴 우리시조 8편이 달로 갔다
우주선 블루 고스트가 큰일을 해낸 거다.
기후 변화 위기는 유령처럼 다가오고
중병이 든 지구는 불치의 환자가 됐다
살기를 찾아야 한다 달나라로 가보자.
- 구충회, 「시조, 달나라에 도착한 날」 전문
구충회 시조시인은 한국시조협회 등에서 활동하며 우리 전통 시조의 현대화와 세계화에 앞장서 온 분으로 달 착륙 성공 소식을 접하고 그 감격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조에서 인지할 수 있듯이, 구 시인의 시조 「달에게」를 포함한 한국시조협회 시조시인들의 시조 8편이 '블루 고스트(Blue Ghost)' 착륙선을 타고 달 표면에 안착했다는 사실은 단순히 개인의 영광을 넘어, 우리 말과 글의 정신이 담긴 시조가 지구를 넘어 우주로 확장된 역사적인 사건이며, 이는 한글로 된 문학 작품이 달 표면에 안착한 역사상 최초의 사례라고도 한다.
수록된 세 편 중에서 고른 이 「시조, 달나라에 도착한 날」은 인류의 문화유산을 달에 보존하는 역사적인 프로젝트의 결실을 보여주고 있으며, 기후 위기와 환경 오염으로 병든 지구의 현실을 고발함과 동시에, 달을 향해 인류의 새로운 희망과 살길을 묻는 간절한 마음을 시조에 담고 있다.
첫수엔 시인의 시조가 달나라에 착륙한 날의 감격이 나타나 있고, 둘째 수에선,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깊은 자부심이 느껴진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우주적인 것이 된 순간이다. 셋째 수의 '기후 변화'와 '병든 지구'에 대한 통찰은, 이 우주 비행이 단순히 착륙을 넘어, 인류의 생존과 대안을 찾으려는 새로움에 대한 간절한 시도임을 일깨워준다.
특히 '유령(Ghost)'처럼 다가오는 위기와 그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달로 향한 '블루 고스트(Blue Ghost)'호의 이름이 절묘하게 대비되면서 시적 긴장감을 더해주기도 한다. 700년을 이어온 시조의 3장 6구 형식이 이제 달의 고요 속에서 영원히 숨 쉬게 되었다. 지구에서는 기후 위기로 마음이 무겁지만, 달에 닿은 시조가 인류에게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로 되돌아오길 진심으로 기원해본다.
어차피 주어진 삶 힘든 날들 등에 업고
우왕좌왕 방황하며 속 빈 꿈 젖어 살던
얄팍한 시류(時流)의 편승(便乘) 부끄러운 후회만이
앞서는 세월 앞에 지친 심신 주체조차
무거운 짐 부리듯 괴로운 욕망 내려놓고
법정(法頂)의 맑은 가난을 되뇌어 음미한다
인생길 보람 찾아 마음을 다잡으며
애써 그린 자화상 서글픈 연민만이
덜 끝낸 삶의 나이테 황혼의 빛 채색(彩色)한다.
- 김정래, 「삶의 나이테를 그리며」 전문
이 작품은 인생의 고단한 여정을 성찰하며, 세속적 욕망을 내려놓고 내면의 맑음을 추구하는 과정을 담아낸 시조다. 방황과 후회의 어두운 정조에서 출발해, 법정 스님의 ‘맑은 가난’을 떠올리며 내적 평화를 찾으려는 의지가 드러난다. 마지막에는 황혼의 빛으로 삶을 채색하는 서글픈 연민과 성찰이 잘 나타나 있다.
첫수의 “우왕좌왕 방황하며 속 빈 꿈 젖어 살던”에서는 젊은 날의 허망한 꿈과 시류에 휩쓸린 삶을 예리하게 드러낸다. 둘째 수의 “무거운 짐 부리듯 괴로운 욕망 내려놓고”에서는 불교적 색채가 느껴지며, 법정 스님의 사상과 연결하여 내면의 정화를 표현하고 있다. 셋째 수의 종장 “덜 끝낸 삶의 나이테 황혼의 빛 채색한다”에서는 인생의 마무리를 예술적 행위에 비유하여, 미완의 삶을 황혼의 빛으로 아름답게 마감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 시조의 미학적 특징을 살펴보면 ‘젊은 날의 방황과 황혼의 성찰’이 대비되어 있고, ‘짐’, ‘맑은 가난’, ‘나이테’, ‘황혼의 빛’ 등은 삶의 무게와 깨달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운율면에서 전통 시조의 형식을 따르면서도 현대적 어휘(시류, 편승, 자화상)를 사용해 고전과 현대의 긴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시조에서는 율격 위에 리듬을 얹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 시조는 삶의 허무와 후회에서 출발해, 욕망을 내려놓고 내적 평화를 찾으며, 황혼의 빛으로 삶을 마감하려는 성찰적 태도를 잘 담아내고 있다. 특히 다소 무겁고 어두운 정조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마지막 수의 결미에 “채색(彩色)한다.”는 표현을 통해 희망적이고 예술적인 마무리를 시도한 점이 절묘하게 느껴진다.
산안개 걷히는 자드락길 올라가면
한살림 차려놓은 내 키만 한 망초 꽃밭
팔월 말 적막한 선산 매미울음 가득하고
세월 앉은 봉분 앞에 마음을 다잡고서
나직이 불러보는 아버지, 아버지
쌓여온 봇물 같은 그리움 눈시울을 적시네
영혼의 외올실로 베 짜듯 지은 시집
술잔 대신 펼쳐놓고 감사기도 드린 후에
되돌림 발자국마다 아침 햇살 차오른다
- 김태옥, 「헌시」 전문
이 작품은 현대적 감수성을 담아낸 추모 시조다. 돌아가신 아버지 산소에 시집을 들고 찾아가 헌정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시조 형식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각 장이 독립된 장면을 구성하는 서사적 구조를 보인다.
첫수는 선산으로 향하는 여정이다. "산안개 걷히는"의 풍경은 망자의 세계로 들어서는 신성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한살림 차려놓은 내 키만 한 망초"는 인간이 떠난 자리를 자연이 채우는 생명력을 보여준다. "팔월 말 적막한 선산 매미울음"은 한여름의 절정과 생의 허무를 동시에 암시한다. 둘째 수는 이 시조의 정서적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세월 앉은 봉분"이라는 표현이 독특한데, 시간의 무게를 물리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나직이 불러보는 아버지, 아버지"의 반복은 절절한 그리움을, "쌓여온 봇물 같은 그리움"은 억눌렀던 감정의 분출을 잘 드러낸다. 특히 셋째 수가 이 작품을 특별하게 만든다. "영혼의 외올실로 베 짜듯 지은 시집"은 시 창작의 고통과 정성을 전통적 길쌈 이미지로 형상화한 탁월한 비유이다. "술잔 대신 펼쳐놓고"는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주며, "되돌림 발자국마다 아침 햇살 차오른다"는 애도 후의 위안과 일상 삶으로의 복귀를 상징하고 있다.
이 시조는 첫수의 "산안개 걷히는 자드락길"부터 끝수의 "아침 햇살 차오른다"까지 시간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전통 시조의 틀 안에서 현대적 추모의 정서를 자연스럽게 담아내고 있다. 특히 ‘망초’, ‘매미’, ‘봉분’ 같은 구체적 소재들이 추상적 그리움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며, 마지막 ‘햇살’ 이미지는 슬픔을 넘어선 생명력과 긍정으로 나아가는 여운을 남긴다. 문학인이 자신의 작품으로 조상을 기리는 독특한 성묘 방식도 참신한 생각이다.
바람은 속삭이고 잎새는 새겨듣는다
나무는 제 옷 벗어 고요 속에 누이고
예 저기
운명적 이별
순리처럼 따른다
빛바랜 허물 위에 햇살이 숨 고른다
게으른 오후 들녘 그림자만 길어지고
가을은
말없이 스러져
바람 속에 잠든다
소멸은 끝이 아닌 빈자리의 새 이름
침묵은 말보다 먼저 존재를 다져놓고
이 마음
비운 자리에
생의 깊이를 채운다
- 노재연, 「가을 단상」 전문
이 「가을 단상」은 가을이라는 계절적 배경을 통해 소멸과 존재, 비움과 채움이라는 깊은 철학적 사유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3장 6구의 전통 시조 형식을 현대적으로 변주하여, 각 수마다 '바람-나무-운명', '햇살-그림자-바람', '소멸-침묵-생'이라는 순환적 이미지를 절묘하게 배치하고 있다. 특히 각 수 종장의 표기 방식에선 감각적 여백을 만들고 있는 점이 독특하다.
첫수의 "바람은 속삭이고 잎새는 새겨듣는다"는 자연의 언어를 섬세하게 포착하였다. '속삭임'과 '새겨듣기'라는 대응은 단순한 관찰을 넘어 교감의 차원을 보여준다. 또 "나무는 제 옷 벗어 고요 속에 누이고"에서 낙엽을 '옷 벗기'로 표현한 것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숙연한 느낌을 자아낸다. 둘째 수의 "빛바랜 허물 위에 햇살이 숨 고른다"는 쇠락과 생명력이 공존하는 역설적 이미지이다. 가을 오후의 나른함과 시간의 흐름을 "그림자만 길어지고"로 형상화한 것도 기발하다. 따라서 이 작품의 백미는 마지막 수이다. "소멸은 끝이 아닌 빈자리의 새 이름"이라는 통찰은 불교의 공(空) 사상이나 노장사상의 무위자연을 연상시키면서도, 시인 고유의 언어로 소화되어 있다. "침묵은 말보다 먼저 존재를 다져놓고"는 존재론적 성찰을 담은 명구가 아닌가.
가을 풍경을 통해 삶과 죽음, 비움과 채움의 순환을 사유한 원숙한 작품으로 시조의 율격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감각과 철학적 깊이를 담아낸 수작으로 평가된다.
허공에 귀를 묻고 쪽문에 눈을 박고
고독 벽 허물어 줄 말벗이 그리운데
진종일
허튼 바람만
제집인 양 오간다네
서산에 홀로 앉은 황혼 집 문 틈새로
불청객 하얀 달님 무작정 찾아들어
밤마다
빈방 켜켜이
침묵 담을 쌓는다네
기쁨은 한철이고 고독은 영원한 것
이제는 꽃길마저 버거운 세 발 인생
인연 등(燈)
밝혀 놓고도
어둡다네, 독거노인
- 박무성, 「시린 독백」 전문
이 작품은 현대시조의 형식을 빌려 독거노인의 고독을 절절하게 그려낸 수작이다. “시린 독백”이라는 제목부터 화자의 내면에 스며든 차가운 고독감을 암시한다. 전통 시조 형식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각 수의 종장에 배치한 첫 소절("진종일", "밤마다", "인연 등(燈)")은 역시 현대적 변주이다. 이는 마치 한숨처럼, 혹은 말을 잇지 못하는 침묵의 공백처럼 읽히며 고독의 무게를 시각적으로도 형상화한다.
첫수는 극도로 고립된 상황을 묘사한다. "허공에 귀를 묻고 쪽문에 눈을 박고"라는 표현에서 소통의 부재가 신체적 감각의 왜곡으로까지 이어짐을 보여준다. 이어서 "허튼 바람"만이 제집인 양 드나드는 모습은 사람은 오지 않고 무심한 자연만이 함께한다는 쓸쓸함을 강조한다.
둘째 수에선 밤의 풍경으로 전환된다. "불청객 하얀 달님"이라는 역설적 표현이 독특하다. 전통적으로 위안의 상징인 달마저 불청객으로 느껴질 만큼 화자의 고독이 깊다. "빈방 켜켜이/ 침묵 담을 쌓는다"라는 표현은 시간이 지날수록 고독이 축적되어 더욱 견고해지는 모습을 시각화하고 있다.
셋째 수는 통찰과 체념이 어우러진 결론이다. "기쁨은 한철이고 고독은 영원한 것"이라는 인생에 대한 깨달음, "꽃길마저 버거운 세 발 인생"이라는 노년의 현실적 고통이 담겨 있다. 마지막 "인연 등(燈)/ 밝혀 놓고도/ 어둡다네, 독거노인"은 가장 강렬한 역설이다. 인연이라는 등불이 있어도 여전히 어둡다는 것은, 물리적 존재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영혼의 공허함을 의미한다.
이 작품의 백미는 감각의 전도와 역설의 활용이다. ‘귀를 묻고 눈을 박는다’라는 비정상적 표현, 달을 불청객이라 부르는 것, 등불 아래에서도 어둡다는 진술 등 모든 것이 정상적 감각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고독의 깊이를 드러낸다.
아울러 고독을 단순히 부정적으로만 그리지 않고 "영원한 것"이라는 존재론적 차원으로 승화시킨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개인적 한탄을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적 조건에 대한 성찰로 나아간다. 현대 한국 사회의 독거노인 문제를 시조 형식으로 담아내면서도 보편적 인간 조건에 대한 사유까지 이끌어낸 수작이라 평가할 수 있겠다.
걷다가 하 힘들어 벤치에 잠시 앉았다
말없이 따라오다 슬며시 곁에 앉은 그
아뿔사,
왜 몰랐을까?
그도 힘들다는 걸…
- 박희옥, 「그림자」 전문
시조 「그림자」는 짧지만 여운이 깊은 작품이다. 이 시조의 가장 큰 미덕은 ‘깨달음의 순간’을 일상적 장면 속에 담아낸 점이다.
“걷다가 하 힘들어 벤치에 잠시 앉았다”라는 초장은 육체적 피로를, 동시에 인생 여정의 무게를 은유한다. 그때 “말없이 따라오다 슬며시 곁에 앉은 그”는 곧 그림자로 드러나며, 늘 함께 있었으되 한 번도 의식하지 않았던 존재가 된다. 특히 종장의 첫 소절의 짧은 감탄, “아뿔사,”는 이 작품의 정서적 핵심이라고 느껴진다. 이 한 단어가 화자의 마음을 단번에 꺾어 놓으며, 뒤이어 나오는 반문 “왜 몰랐을까?/ 그도 힘들다는 걸…”에서 자기 성찰과 연민의 확장이 완성됨을 알 수 있다. 자기 자신만의 고단함에 갇혀 있었던 화자가, 늘 묵묵히 따라온 ‘그림자’의 고됨을 알아차리는 순간은, 곧 타인에 대한 이해이자 자기 삶을 되돌아보는 노년의 통찰로 읽힌다.
그림자는 단순한 자연 현상을 넘어 시적 의미의 확장으로 자신의 또 다른 자아, 함께 늙어온 시간, 혹은 말없이 곁을 지켜온 사람(배우자, 동반자, 삶 그 자체)으로도 해석될 수 있어 독자의 경험과 인식에 따라 그 의미가 넓게 열림을 인지할 수 있다. 말수를 줄이고 설명을 아낀 구성 덕분에, 오히려 침묵의 울림이 강하다.
이 시조는 과장 없이 담담하고, 간결한 언어로 깊은 깨달음을 전하며, 힘들어 멈춰 섰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그것을 이만큼 절제된 언어로 담아낸 가편이라 평가하고 싶다.
하루 해 노을 짓다 볼수록 장관이다
오늘도 무탈함에 한없는 감사 기도
내일의
설렘 속에서
쉼을 얻는 우리네.
- 이성범, 「무탈함의 감사」 전문
함께 수록된 단시조 네 편 중에서 선정한 이 「무탈함의 감사」 는 연륜에서 우러난 담담한 기도가 잔잔하게 전해지는 작품이다. 이 시조는 ‘무탈함’이라는 평범하지만 가장 귀한 삶의 상태를 중심 정서로 삼고 있다.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 해가 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느끼는 경외감이 곧 감사의 기도로 이어지는 흐름이 자연스럽다.
초장의 “하루 해 노을 짓다 볼수록 장관이다”에서는 하루의 일을 마치고 맞이한 석양을 ‘장관’이라 표현한 점은, 삶의 성취가 암시되고 있다. 중장의 “오늘도 무탈함에 한없는 감사 기도”는 이 작품의 핵심 구절로, 꾸밈없는 언어가 오히려 진정성을 강화하고 있다. 긍정적 삶의 태도와 생활신조가 또렷이 반영되고 있다고 느껴진다. 종장, “내일의/ 설렘 속에서/ 쉼을 얻는 우리네.”에서는 시조의 전통적 여운을 현대적으로 변주하고 있다. ‘설렘’과 ‘쉼’이라는 대비적 이미지가 잘 어우러져, 오늘의 감사가 내일의 희망으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를 이룬다.
이 시조는 큰 사건 없이 흘러간 하루를 축복으로 인식하는 성숙한 시선이 돋보이고 있다. 특히 노년의 시선에서만 가능한 ‘담담한 감사와 절제된 기도성(祈禱性)’이 작품의 품격을 높인다. 종장의 자유로운 3행 배열 역시 ‘쉼’이라는 어의와 잘 어울리고 있다. ‘아무 일 없었음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 이 한 줄로 이 시조의 미덕을 요약할 수 있겠다. 참으로 잔잔하고 맛이 깊은 시조다.
주식도 곤두박질 바닥 치면 올라가고
제아무리 큰 건물도 바닥 딛고 서 있느니
밑바닥 겸손한 처신이
성공 향한 비결이네.
- 정순량, 「밑바닥」 전문
이 작품은 제목으로 설정한 "밑바닥"이라는 단어를 중심축으로 삼아, 삶과 성공의 본질을 은유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전통 시조의 3장 형식을 따르되 종장만을 구별 배행하고 있는 단시조 네 편 중에서 고른 작품으로 각 장의 의미는 명확히 분리되어 있다. "바닥 치면 올라가고” “바닥 딛고 서 있느니” “밑바닥 겸손한 처신이"라는 반복적 구조가 주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주식의 '바닥'과 건물의 '바닥'을 대비시켜, 현실적 사례와 상징적 의미를 동시에 담아낸 점이 돌올하다. 밑바닥은 실패나 좌절의 상징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는 출발점이자 겸손의 토대임을 강조한다. 단순히 "성공"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한 태도가 성공의 비결이라는 교훈성의 윤리적 메시지를 담고 있음을 인지할 수 있다. 주식이라는 소재를 끌어와 현대인의 삶과 연결한 점이 전통 시조의 형식과 현대적 소재의 결합으로 신선하다. "밑바닥"이라는 단어가 시 전체를 관통하며 일관성을 유지한다.
독자에게 쉽게 읽히면서도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으며, 현대적 소재와 전통 형식의 조화가 돋보인다. 이 시조는 밑바닥을 긍정적 출발점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현대적 소재와 전통적 형식을 결합해 "밑바닥"을 단순한 실패가 아닌 겸손과 도약의 자리로 승화시킨 점에서 가치가 있다.
북 남풍 회오리에 허리를 삐끗했다
살을 에는 칼바람이 가슴을 후벼 팔 때
온몸은 통나무처럼 빳빳이 굳어가고
팔다리 뼛속까지 쏙쏙 쏙 아려오고
근력도 감각마저 위아래 따로 놀아
한 지붕 두 살림 속에 가난 드는 신뢰감
불놀이 비행 놀이 재미 붙인 상반신이
불낼까 떨어질까 이웃들 애가 탄다
또다시 풀어졌어도, 다시 오는 반신마비.
- 정진상, 「척추 손상 -한반도 」 전문
이 시조는 한반도 분단 상황을 '척수 손상'이라는 의학적 은유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세 수로 구성된 연시조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정치적 주제를 신체의 마비 증상에 빗대어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각 수마다 분단의 다른 측면을 다루고 있는데, 첫수는 분단의 원인과 고통, 둘째 수는 남북 간 단절과 불신, 셋째 수는 긴장 고조와 반복되는 위기를 그리고 있다.
첫수에서 "북 남풍 회오리"는 냉전 이데올로기의 충돌을, "허리를 삐끗했다"는 표현은 38선/ 휴전선으로 인한 단절을 절묘하게 포착했다. 이어서 "통나무처럼 빳빳이 굳어가고"는 경직된 남북관계를, 둘째 수의 "한 지붕 두 살림"은 같은 민족이면서도 이질화된 현실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셋째 수의 "불놀이 비행 놀이"는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재미 붙인 상반신"은 도발을 반복하는 북한 정권을 비판적으로 묘사한다. "이웃들 애가 탄다"는 주변국들의 우려를 표현하며, 마지막 수의 "또다시 풀어졌어도, 다시 오는 반신마비."는 남북관계의 악순환을 절망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척수 손상이라는 일관된 은유를 통해 분단의 고통, 불통, 위기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했으며, 의학 용어와 일상어를 자연스럽게 융합하여 현대시조로서의 묘미를 잘 살리고 있다. 기지와 위트를 동반하며 시대성을 반영한 시의적절(時宜適切)한 수작이다.
이 세상 어디 메로 인연을 찾아가나
휘이익 바람 따라 달력이 달려가면
어느새
나도 밀려와
가을 끝을 서성이네
단풍 비 젖은 가슴 빨갛게 물이 들고
갈바람 무르익어 내 마음 유혹하면
은발이
성성해져도
흔들리며 설렌다오
거저 받은 은혜인데 가버리면 슬프겠네
청단 홍단 오곡백과 마음 다해 사랑해요
가을아
나의 늙음도
고운 빛에 헹궈다오
- 정현숙, 「가을 연가」 전문
이 작품은 가을이라는 계절을 풍경 묘사에 그치지 않고, 인생의 성숙과 노년의 감정까지 아우르는 서정적 노래로 풀어낸 점이 돋보이고 있다. 전통 시조의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감각과 개인적 정서를 잘 담아낸 작품이다.
각 수가 계절의 흐름과 감정의 변화를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첫수의 "어느새/ 나도 밀려와/ 가을 끝을 서성이네"와 같은 종장의 짧은 3행 배치는 시조의 리듬을 현대적으로 변주한 느낌이다. ‘바람, 단풍, 은발, 오곡백과’ 등 계절적 상징이 반복되면서도 매번 다른 정서를 불러일으켜, 시적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가을은 단순히 자연의 계절이 아니라, 인생의 황혼기를 은유하는 장치로 쓰이고 있다. 젊은 날의 설렘이 은발이 성성해진 노년에도 여전히 살아 있음을 표현하며, 삶의 끝자락에서도 계절의 아름다움과 사랑을 느끼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을 드러낸다.
특히 마지막 수의 "거저 받은 은혜인데 가버리면 슬프겠네"라는 초장은 인생과 자연을 은혜로 받아들이는 겸허한 태도를 보여주는 철학적 울림이다. 계절과 인생을 겹쳐서 노래한 점이 깊은 느낌을 주고 있다. 특히 종장 "가을아/ 나의 늙음도/ 고운 빛에 헹궈다오"에서는 기도문처럼 간절하면서도 아름다운 마무리로, 독자에게 여운을 남긴다.
이 시조는 가을을 통해 인생의 황혼을 노래한 작품으로, 계절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내적 성숙을 겹쳐 표현한 점에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이 시조는 "가을"을 그저 풍경이 아니라 삶의 은혜와 노년의 설렘을 동시에 담아낸 ‘연가’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담아 논 옛사랑도 빗물에 씻겨 가고
배고픈 흰나비들 새끼줄 꼬아 모여
기다린 종로 삼거리 가슴 아픈 비가 온다
하루가 동이 트면 빈 얼굴 모여들어
가시가 박힌 손목 흔들며 반겨 본다
노을 진 길거리에는 무정하게 비가 온다
- 조영두, 「종로 삼거리」 전문
이 작품은 도시의 기억과 상실, 그리고 인간 군상의 고단한 삶을 비 오는 풍경 속에 겹쳐 놓은 시조다. “종로 삼거리”라는 구체적 공간을 중심으로, 옛사랑의 소멸과 거리의 삶이 교차하며 개인적 상처가 사회적 풍경으로 확장되고 있다. 빗물은 씻김이자 망각이며, 동시에 냉정한 현실의 은유로 작용한다.
첫수의 “담아 논 옛사랑도 빗물에 씻겨 가고”에서는 감정을 ‘담아 논’ 것으로 표현한 점이 기발하다. 애써 보존해 온 기억이 비에 씻겨 나가듯 사라지는 허무가 첫 행에서 단번에 제시되고 있다. 중장 “배고픈 흰나비들 새끼줄 꼬아 모여”에서 ‘흰나비’는 연약한 존재이자 떠도는 삶의 상징으로 읽힌다. ‘배고픈’이라는 형용사는 생존의 문제를 선명하게 드러내며, ‘새끼줄을 꼬아 모인다’는 표현은 연대와 처절함을 동시에 품고 있다. 종장 “기다린 종로 삼거리 가슴 아픈 비가 온다”에서 ‘종로 삼거리’는 만남과 이별, 역사와 현실이 겹치는 공간이다. ‘기다린’이라는 말속에 희망과 체념이 함께 깃들어 있고, 비는 감정을 눌러 버리는 냉혹한 현실로 다가온다.
둘째 수의 초장 “하루가 동이 트면 빈 얼굴 모여들어”에서는 하루의 시작이 희망이 아닌 ‘빈 얼굴’로 묘사되어, 삶의 반복성과 공허함이 강조되고 있다. 중장의 “가시가 박힌 손목 흔들며 반겨 본다”는 이 작품의 핵심 이미지이다. 삶의 상처 입은 손목으로 서로를 반기는 모습에서 인간적 연민과 슬픈 존엄이 강하게 느껴진다. 종장의 “노을 진 길거리에는 무정하게 비가 온다”에서는 노을의 따뜻함마저 비가 덮어버리며, 세상의 무심함이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처음의 비와 끝의 비가 호응을 이루며 구조적으로도 안정을 이룬다.
이 시조의 미덕은 도시적 공간을 활용한 상징성, 비의 반복을 통한 정서적 통일감, 사회적 시선과 서정의 균형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이 시조는 옛사랑의 상실에서 출발해, 거리의 삶과 인간 연민으로 확장되어 읽을수록 깊이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늦가을 찬이슬에 상글대는 꽃잎처럼
내면에 덕을 쌓고 정도(正道)를 순행(順行)하면
언젠가 열어지리라
가지런한 세상이
베일에 싸인 마음 정신력이 관통하고
욕망의 전개도를 선별해서 체득하면
이 세상 다 하는 그날
정토 길은 열리리라
- 최규협, 「정토(淨土)길」 전문
시조 「정토(淨土)길」은 구도(求道)의 자세와 내면의 수양을 서정적인 비유로 풀어낸 가편(佳篇)이다. 전통적인 시조의 형식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정토'라는 불교적 이상향에 도달하기 위한 실천적 의지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형상화한 점이 두드러진다.
첫수에서는 초장의 '늦가을 찬이슬에 상글대는 꽃잎'이라는 표현도 매우 뛰어나다. 시련(찬이슬)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상글대는) 꽃의 이미지는, 고난 속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수행자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잘 구현하고 있다. '내면의 덕'과 '정도(正道)의 순행(順行)'을 통해 얻어지는 결과가 단순히 개인의 해탈에 그치지 않고 '가지런한 세상'으로 확장되는 지점에서 공익적이고 숭고한 가치가 느껴진다.
둘째 수에서는 '전개도'라는 단어의 사용이 신선하다. 욕망을 추상적인 상태로 두지 않고, 입체를 펼쳐놓듯 낱낱이 파악하여(전개도) 필요한 것만 골라 체득하겠다는 태도에서 지성적인 절제미가 돋보인다. “베일에 싸인 마음”을 “정신력이 관통”한다는 대목은 자기 성찰의 치열함을 보여준다.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본질에 다가가려는 능동적인 태도가 잘 드러나 있다.
시조의 핵심인 종장 처리에서 '가지런한 세상이', '정토 길은 열리리라'와 같이 주제 의식을 명확히 던지며 마무리하여 여운과 확신을 동시에 준다. 전체적으로 네 소절의 율격이 매끄럽게 흐르고 있어 낭독했을 때의 운율성도 훌륭하다.
이 작품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작가의 깊은 사유를 꽃잎의 부드러움과 정신력의 날카로움이라는 대조적인 이미지를 통해 성공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특히 '정토'라는 종교적 색채를 보편적인 '올바른 삶의 태도'로 승화시킨 점이 이 시조의 가장 큰 미덕이다. 맑은 이슬 같은 서정성 위에 곧은 대나무 같은 수행의 의지를 얹어낸 정갈한 시조다.
못다 한 어제 일을 오늘 다시 시작한다
같은 시간 같은 일 당겨 감는 현장 끝에
지평선 붉은 노을이 장미꽃 빛 피운다
공평한 이십사시 신이 주신 노동의 시간
산맥 같은 근육질로 내려찍는 괭이 날에
숨 가쁜 삶의 *어게인 구구만 층 주름살
- 한병윤, 「삶, 어게인(again)」 전문
이 시조는 노동과 삶의 반복성을 주제로 삼고 있다. "못다 한 어제 일을 오늘 다시 시작한다"라는 첫수에서는 인간의 삶이 매일 이어지는 노동의 연속임을 보여주며, 둘째 수의 "숨 가쁜 삶의 어게인"이라는 표현은 그 반복 속에서 느껴지는 고단함과 동시에 다시 살아내야 하는 의지를 담고 있다. 하루의 끝을 장미꽃 빛으로 형상화하여, 노동의 고단함 속에서도 아름다움과 위로를 발견하는 시적 감각이 돋보인다.
둘째 수에서 “산맥 같은 근육질, 괭이 날”은 노동자의 육체적 힘과 도구를 산맥에 비유하여 웅장하면서도 거친 노동의 현장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종장의 결미 “구구만 층 주름살”은 삶의 반복과 고단함이 얼굴에 새겨진 흔적으로 표현되어, 노동의 무게가 개인의 생애 전체를 관통함을 상징한다. 전통 시조의 형식을 따르면서도 "어게인(again)"이라는 외래어를 삽입하여 현대적 감각을 부여했다. 이는 삶의 보편적 반복성을 강조하면서도, 현대의 언어 감각을 반영한 실험적 시도로 볼 수 있다. 또 "공평한 이십사시"라는 구에서는 시간의 보편성과 신성성을 드러내며, 노동을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신이 부여한 삶의 본질적 과정으로 격상시킨다.
이 작품은 삶의 반복과 노동의 고단함을 주제로 하면서도, 그 속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과 의미를 시적으로 형상화한 시조다. 전통적 형식과 현대적 언어가 결합되어 독특한 울림을 주며, 특히 "노을"과 "장미꽃 빛"의 대비는 노동의 고단함 속에서도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인간적 시선을 잘 보여준다.
노을이
숨은 하늘
별빛이 가득하고
휘영청
달빛 아래
부엉이 슬피 울면
서러워
별들의 눈물
단풍잎이 젖는다
고요히
흐르는 별
밤하늘 반짝임에
풀벌레
임을 불러
서럽게 울 때쯤에
달빛이
보낸 그리움
스며드는 내 가슴.
- 현광락, 「가을밤」 전문
시조 「가을밤」은 가을 밤하늘의 정경을 촘촘한 이미지로 엮어, 자연의 소리와 빛을 인간의 그리움으로 수렴시키는 서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연시조의 표기 방식이 특이하다. 한결같이 각 장을 독립시켜 전구는 소절별, 후구는 구별 배행을 취하고 있는 점이다. 리듬과 의미, 이미지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의도로 읽혀진다.
먼저 첫수 초장의 “노을이/ 숨은 하늘/ 별빛이 가득하고”는 낮과 밤의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을 포착해, 시 전체를 감싸는 고요한 무대를 마련하는 느낌이다. 특히 노을이 “숨는다”라는 의인화는 가을밤의 차분한 숨결을 잘 살려 준다. 이어지는 중장 “휘영청/ 달빛 아래/ 부엉이 슬피 울면”에서는 시각(달빛)과 청각(부엉이 울음)이 교차하며 쓸쓸함이 본격적으로 증폭된다. 부엉이는 예로부터 외로움과 밤의 상징인데, ‘슬피’라는 부사가 감정을 과도하지 않게 눌러 담아 절제미를 보여준다. 종장의 “별들의 눈물/ 단풍잎이 젖는다”는 이 시조의 핵심 이미지라 할 만하다. 하늘의 감정이 땅의 풍경으로 옮겨와 단풍잎에 스며드는 장면은, 자연 전체가 하나의 감정 공동체처럼 호흡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둘째 수에서는 풀벌레, 별, 달빛이 차례로 등장하며 그리움의 결을 세밀하게 쌓아 간다. 특히 중장 “풀벌레/ 임을 불러/ 서럽게 울 때쯤에”에서 자연의 울음은 곧 화자의 내면을 대변하는 소리로 전환되고, 종장의 “달빛이/ 보낸 그리움/ 스며드는 내 가슴.”에서는 모든 이미지가 화자의 가슴으로 수렴되며 조용한 여운 속에 마무리되고 있다.
종합적으로 이 작품은 가을밤의 정서에 잘 어울리는 이미지 선택, 빛과 소리의 조화로운 배치, 즉 ‘자연 → 감정 → 화자의 내면’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매우 안정적이다. 화자 특유의 슬픔 속에서도 담담한 시선이 잘 살아 있으며, 과장 없이 깊은 그리움을 전하는 원숙한 시조라 할 수 있다.
다음은 ‘동시조와 동시’란에서 동시조 한 편만을 골라 보았다.
동산서 서산까지
단숨에 놓은 다리
번개표 오색다리
신기한 토목공사
여우비
때리고 난 뒤
부지런한 아이 몫
- 심성보, 「무지개」 전문
이 동시조는 무지개를 어린이의 순수한 시선으로 포착한 작품이다. 동시조의 간결함과 경쾌함을 잘 살리고 있는 이 작품은 특히 각 장이 짧은 호흡으로 끊어지면서 어린이의 발랄한 어조를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초장에서 무지개를 "동산서 서산까지/ 단숨에 놓은 다리"로 표현한 것이 매우 효과적이라고 느껴진다. '단숨에'라는 부사가 무지개가 순식간에 나타나는 현상을 생동감 있게 포착했고, 하늘에 걸린 무지개를 다리로 비유한 발상이 어린이의 상상력을 잘 보여준다.
중장의 "번개표 오색다리"는 특히 빛나는 발상이다. '번개표'라는 상표 이미지는 빠르고 강렬한 것의 상징인데, 이를 무지개의 신속한 출현과 연결시킨 것이 기발하다. 또 "신기한 토목공사"라는 표현은 어린이가 무지개를 바라보는 경이로운 시선을 유머러스하게 담아냈다고 본다.
종장에서 "여우비/ 때리고 난 뒤/ 부지런한 아이 몫"이라는 마무리도 빼어난다. '여우비'라는 토속적 표현으로 무지개가 뜨는 기상 조건을 자연스럽게 묘사하면서, 무지개를 "부지런한 아이 몫"이라고 한 것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빨리 나가서 봐야만 볼 수 있는 무지개의 순간성, 그리고 그런 자연의 선물을 놓치지 않는 민첩하고 순수한 아이들만이 누릴 수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전통적 시조 형식에 현대 어린이의 감각을 성공적으로 결합했으며, 무지개라는 흔한 소재를 신선한 시선으로 형상화했다. 밝은 지혜, 맑은 시심이 빛난다. 경쾌한 리듬감과 구체적인 이미지, 그리고 따뜻한 정서가 조화를 이룬 완성도 높은 동시조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시부문에 대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시에 대한 논의는 평생을 연구하고 노력해도 끝이 안 보일 정도의 깊고 넓은 문학이요 예술이다. 욕심을 비우고 차분한 마음으로 재미를 들일 수밖에 없다. 시는 우리의 삶에서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되는 영양가가 많은 정신적 양식이다.
우선 ‘좋은 시를 쓰는 방법’은 무엇인가,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기본적인 원칙과 연습이 필요하다. 대부분 이미 주지하고 있는 바이긴 하지만, 필자가 후진들에게 늘 가르치고 있는 내용을 간략히 약술해 보기로 한다.
첫째, 많은 시를 읽어야 한다. 다양한 시인의 작품을 읽으면서 다양한 스타일과 표현 방식을 경험하고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시상이나 표현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감각에 집중하기이다. 추상적인 개념보다 구체적인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며, 예를 들어, "슬픔"이라는 단어 대신 슬픔을 나타낼 수 있는 구체적인 장면이나 사물을 묘사해보며, 감각(오감)을 활용하여 읽는 사람이 시의 장면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이미지화하기이다.
셋째, 주제와 감정의 연결이다. 시는 감정을 담는 그릇이므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뤄보아야 한다. 질문을 던지거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여 독자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넷째, 리듬과 언어의 음악성을 갖춰야 한다. 시는 언어와 리듬이 중요하다 단어(시어) 선택과 배열(행과 연)을 통해 음악적인 흐름을 만들어야 하고, 반복, 운율, 간결한 문장을 활용하여 읽는 맛을 살려야 한다.
다섯째, 형식 실험을 많이 해보아야 한다. 자유시, 정형시(시조, 소네트 등), 산문시 등 다양한 형식을 실험해보면서 자신에게 맞는 시의 구조와 형식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한 과정이다.
여섯째, 짧고 간결하게 써야 한다. 시는 본질적으로 응축된 언어의 문학이며 예술이다. 불필요한 단어를 줄이고, 간결하고도 함축적으로 핵심적인 이미지와 감정을 전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일곱째, 일상에서 영감 찾기를 체질화해야 한다. 특별한 주제나 소재를 찾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평범한 일상에서 새롭게 느껴지는 순간을 기록해보며 일기나 메모를 통해 소재를 축적하는 습관을 들이면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여덟째, 개성을 잘 살려야 한다. 다른 시인의 영향을 받는 것은 좋지만, 결국에는 자신만의 독특한 목소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경험, 생각, 언어 스타일을 통해 고유한 색깔의 작품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아홉째, 다듬는 작업을 꼭 해야 한다. 초안(초고)을 쓴 뒤에는 반드시 수정 작업(퇴고)을 거치야 한다. 불필요한 표현을 삭제하고 미흡한 부분을 보완하고 수정, 더 강한 이미지를 추가하며 시를 다듬는 과정에서 완성도가 높아지게 한다.
마지막으로,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자신의 작품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아보기도 중요하다. 다른 사람이나 독자가 느끼는 감정과 메시지가 자신이 의도한 것과 얼마나 맞는지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 시 동인 활동에 참여하거나 시 합평회나 시 첨삭 학습 방법 등 허심탄회한 토론과 의견 교환을 거치는 것이 더없이 중요하다.
다음은 ‘시 창작의 기쁨’란에서 공감되는 작품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육십여 년 만에
날 좋은 날
고르고 골라서 정한
초등학교 동기 모임에 나갔다,
할배 한 명 두 명 세 명 네 명
세월〜 없이〜 기어든다
할매도 한 분 두 분 세 분
나까지 모두 여덟 노인
아무도 누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했다.
모두들
세상이 변했다고 하는데
오늘 보니
사람들이 폭삭 다 변했다
새삼스럽게 통성명을 했다
보고 또 보고 다시 봐도 모르겠다
단 하나 암호가 풀리는 코드는
학창시절 이야기
어쩌면 그때 그 순진한 마음 그대로다
사람들이 하나도 안 변했다.
- 강성효, 「무구(無垢한) 사람들」 전문
이 시는 60여 년 만의 초등학교 동창회를 소재로, 시간의 역설적 본질을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무구(無垢)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은, 나이를 넘어선 인간 존재의 순수성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좋은 제목 설정이다.
이 시는 크게 네 단계 구조와 전개의 구성이다. 첫째, 육십여 년 만의 초등학교 동기 모임 참석. 둘째, 오랜만의 만남과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낯선 순간. 셋째, 외양의 변화에 대한 놀라움. 넷째,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깨달음. 이 구성은 독자를 표면에서 심층으로 자연스럽게 안내하고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이 시에서 재미있는 표현을 살펴보면, 2연에서 "할배 한 명 두 명 세 명 네 명"이라고 하나씩 세어가는 표현은 단순해 보이지만, 노년의 느린 시간성과 한 사람 한 사람을 찬찬히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담고 있다. 구어체적 리듬의 반복적 나열이 마치 동요나 구호처럼 리듬감을 주며, 모임의 소박한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다. 이어서 "세월〜 없이〜 기어든다"의 늘어진 표현은, 세월의 무게를 음성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정경이다. 또, 3연의 "사람들이 폭삭 다 변했다"와 4연의 "사람들이 하나도 안 변했다."라는 정반대의 진술이 공존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이 시의 핵심이다. 외양은 완전히 변했지만, "그때 그 순진한 마음"은 그대로라는 새로운 발견, 암호를 푸는 열쇠가 "학창시절 이야기"라는 설정은 매우 효과적인 수법이다.
이 시는 향수나 슬픔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세월 속에서도 지켜진 인간 본질에 대한 따뜻한 발견과 안도가 숨어 있다. "날 좋은 날/ 고르고 골라서"라는 첫 연에서의 소박한 기대감이, 마지막 연에서 깨달음으로 아름답게 결실을 맺고 있다. 노년의 시각에서 쓰였지만 결코 무겁지 않고, 구어체를 사용하면서도 깊은 철학적 통찰을 담은 보기 드문 가편이다.
팽이는 쉬지 않고 돌아야 한다
돌기를 그치면
그 생도 끝나기 때문이다
세월은 시간을 등에 업고
세월의 허리춤 갈고리에는
행복 건강 성취 성공 같은
긍정의 채찍과
불행 질병 고통 실패 같은
부정의 채찍이 걸려 있는데
그중 하나를 잡고
팽이를 돌리기 시작한다
팽이는
어떤 채찍으로 맞든지
그것을 숙명으로 받으며
대항 없이 돌아야 하는 존재
나는 지금
자족이라 쓰여 있는
채찍을 맞으며 돌고 있는 중이다
- 고정현, 「팽이 인생」 전문
제목 「팽이 인생」은 시 전체의 은유를 정확히 포괄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림 없이 유지되는 점이 돋보인다. 이 시는 삶의 본질을 하찮은 사물에 빗대어 깊이 사유한 철학시로 읽힌다.
1연의 “팽이는 쉬지 않고 돌아야 한다/ 돌기를 그치면/ 그 생도 끝나기 때문이다”라는, 이 도입부는 삶의 냉정한 진실을 단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멈춤은 소멸’이라는 인식은 노년의 성찰에서만 나올 수 있는 통찰로, 독자를 단번에 사유의 중심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2연에서 세월을 ‘채찍을 든 존재’로 형상화한 점도 매우 탁월하다. 긍정의 채찍과 부정의 채찍을 병치함으로써 삶의 명암을 균형 있게 바라보는 시선이 드러난다. 어느 채찍을 잡든 “팽이를 돌리기 시작한다”는 표현은 선악·성공·실패를 초월한 삶의 강제성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특히 3연에서 “어떤 채찍으로 맞든지/ 그것을 숙명으로 받으며”라는 구절은
저항 없는 체념이 아니라 담담한 수용으로 읽힌다.
마지막 연에서 이 시는 한 단계 더 원만 성숙해지고 있다. “나는 지금/ 자족이라 쓰여 있는/ 채찍을 맞으며 돌고 있는 중이다” 이 시는 단순한 인생 비유를 넘어 삶에 대한 현재진행형의 고백이 된다. ‘성공’이나 ‘행복’이 아니라 ‘자족’을 선택한 점에서 화자가 긍정적으로 살며, 현실에 만족하는 태도가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다.
이 시의 미덕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팽이’라는 상징이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일관된 중심 은유로 작용하고 있는 점과 설명하지 않고 과잉 없는 언어로 보여주는 절제된 문장, 그리고 체념도 아니고 허무도 아닌 자족하는 노년의 철학적 품격이다. 결국 「팽이 인생」은 ‘잘 살아온 한 인간이 지금도 성실히 돌고 있음을 고백하는 시’이다. 돌아야만 하는 운명을 알면서도, 그 회전을 ‘자족’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이 시는 조용하지만 강하고도 묵직한 울림을 남기는 작품이다.
하늘 뜻 맺은 인연
해묵은 동목 아래
손 모아 정성껏
빌어도 봤을 게고
송기죽, 쑥개떡에
애면글면 버텨온 삶
슬픈 독백
목마른 그리움을
한없이 미워도 했으리라
사랑과 용서는
아픔을 동반한다며
큰 소리로 울지 못해
침묵하는 나목이 되어
병색 짙은 기침을
북풍한설에 뿌린
농군 한 짐도 안 되는 둥근 윤회를
아부지의 자리에 앉힌다.
- 권영호, 「아부지의 자리」 전문
이 작품은 아버지의 삶과 그 자리를 기리는 동시에, 그 자리에 앉은 화자의 내면적 고백을 담고 있다. 전반적으로 전통적 정서와 현대적 감각이 교차하며, 아버지의 고단한 생애와 그 자리를 이어받는 화자의 심정을 서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본다.
2연에서 “송기죽, 쑥개떡” 같은 반복적 병렬 구조는 삶의 고단함을 강조함과 동시에, 소박한 음식으로 버텨온 가난과 인내를 상징하며 아버지의 삶의 무게를 짐작하게 한다. 이어서 "한없이 미워도 했으리라"라는 구절은 단순한 존경을 넘어,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느낀 복잡한 감정을 드러낸다. 이는 그리움과 원망이 교차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3연의 “사랑과 용서는/ 아픔을 동반한다”라는 깨달음은 가족 관계의 본질을 깊이 성찰하게 하며, 이는 사랑과 용서의 역설이기도 하다. 이어서 ‘큰 소리로 울지 못하고 침묵하는 나목’은 화자의 내면을 상징하는 것으로 인지된다. “농군 한 짐도 안 되는 둥근 윤회”에서는 아버지의 노동과 희생을 상징하면서도, 그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운 화자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느껴진다.
이 시는 3단 구성의 세 부분으로 나뉘어, ‘인연과 기도 → 삶의 고단함과 그리움 → 사랑과 용서, 아버지의 자리’로 이어지고 있다. 이 작품은 한 가정의 가장을 다룬 이야기를 넘어, 세대 간의 단절과 화해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아버지라는 존재가 가족 안에서 차지하는 자리는 경제적·물리적 역할을 넘어, 정서적 기억과 상징적 무게로 이어진다. 세대 간의 의식 차이라고 할까. 자녀에게는 때로는 무겁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아버지의 자리가, 아버지 자신에게는 삶의 책임과 존재 이유로 자리한다. 이 작품은 이 간극을 섬세하게 드러내며, 독자로 하여금 각자의 경험을 투영하게 만들어 준다.
결국 시 「아부지의 자리」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남긴 흔적과 그 자리를 어떻게 기억하고 이어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는 과거를 회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와 미래의 가족 관계를 성찰하게 만드는 묵직한 울림을 주고 있다.
꿈은
이상을 향한 날개
그 꿈을 향해서 날아가라
날다 보면, 험준한 산맥이 가로막혀
허덕이고, 오르고
오르다 보면
희망이란 빗줄기가 나를 반겨준다
가라
가 보아라
그 빛에 안기거라
아픈 기억도,
상처로 얼룩진 상흔의 흔적이
안식의 처소가 되어 반겨주리라.
- 김강회, 「웃음꽃이 피어나는 길」 전문
이 시는 꿈을 향한 여정과 그 과정에서의 시련, 그리고 궁극적인 희망을 노래하는 작품이다. 이 시의 구조는 4연 구성으로 기(起)-승(承)-전(轉)-결(結)의 흐름으로 되어 있다. 첫째, 꿈을 향한 비상의 선언(1연), 둘째, 시련과 극복의 과정(2연), 셋째, 전환과 위로(3연), 넷째, 치유의 도달(4연), 이러한 교과서적인 짜임은 고난 끝의 희망이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게 된다.
이미지와 상징을 살펴보면 "날개", "산맥", "빗줄기", "빛" 등 자연적 이미지들이 추상적 감정을 구체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희망이란 빗줄기"는 참신한 표현으로, 희망이 위에서 내려와 우리를 적시는 은총 같은 것임을 암시한다. "웃음꽃"이라는 제목의 조어(造語)도 긍정적 정서를 강화하고 있다. 상징의 이미지화가 선명하게 그려진다. 이 시의 어조와 메시지도 분명하다. "날아가라", "가라", "안기거라" 등 명령형 어미의 반복은 독자를 격려하고 독려하는 강한 어조를 형성한다. 마지막 연에서 "아픈 기억"과 "상흔"이 오히려 "안식의 처소"가 된다는 역설은 이 시의 핵심 통찰이다. 상처 자체가 치유의 공간으로 전환되는 이 깨달음은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밝은 지혜, 맑은 시심이 빛난다. 전체적으로 진솔한 위로와 격려가 담긴, 따뜻한 감성의 작품이다.
바람 따라 떨어지는 낙엽은
소리 없이 길가에 모여들어 쌓이는데,
바람 따라 흘러온 고단한 세월 탓보다
쌓아둔 소중함으로 충분하다
길가에 피어 있는
작은 꽃 작은 돌 하나까지
삶의 의미를 담아서
10월의 바람결에
내 소중한 사람과 진정한 사랑으로 쌓아둔다.
- 김상근, 「10월의 연가」 전문
「10월의 연가」는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통해 삶의 성찰과 사랑의 결실을 차분하게 노래한 아름다운 작품이다. 보통 낙엽이 쌓이는 모습은 '상실'이나 '쓸쓸함'으로 묘사되기 쉽다. 하지만 이 시에서는 낙엽이 쌓이는 행위를 '소중함'을 쌓는 긍정적인 행위로 치환하고 있다. 세월의 고단함을 탓하기보다 그 안에서 발견한 소중함에 집중하는 태도가 독자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비움과 채움의 미학이랄까, 이는 긍정적 사고 방식의 소산이리라.
이 시에서 '바람'은 두 가지 역할을 한다. 즉 '바람'의 이중적 의미이기도 하다. 하나는 ‘세월의 바람’으로 낙엽을 떨어뜨리고 고단한 삶을 흘려보내는 물리적 시간의 흐름이다. 또 하나는 ‘매개체로서의 바람’이다. 소중한 사람과 사랑을 실어 나르는 정서적 통로. 즉 바람을 수동적으로 맞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바람결에 '진정한 사랑'을 담아두겠다는 표현에서 시적 화자의 의지적인 사랑이 돋보인다.
특히 3연의 "길가에 피어 있는/ 작은 꽃 작은 돌 하나까지"라는 이 구절이 시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거창한 성공이나 화려한 풍경이 아니라, 길가에 핀 작은 풀꽃이나 소박한 일상에서 의미를 찾는 겸손한 시선이 10월이라는 계절의 겸허함과 잘 어우러진다.
전체적으로 문장이 매끄럽고, '낙엽이 쌓이는 풍경'과 '사랑이 쌓이는 마음'을 시각적으로 연결한 점이 매우 독특하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허무함에 빠지기 쉬운 마음을 '충분하다'는 자기 긍정의 문장으로 다독여주는, 아주 따뜻한 휴식 같은 가편이다.
특히 마지막 연의 결미에서 '진정한 사랑으로 쌓아둔다.'는 표현은 마치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처럼 단단하고 믿음직스러운 느낌을 준다.
사랑이 무엇이기에
이리 속 타나
독한 마음에
통신을 일절 끊어 봐도
한사코
불 속을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오로지
그를 향한 그리움!
한 잎 단풍으로 피 붉다
- 박고은, 「사랑이 뭐길래」 전문
시 「사랑이 뭐길래」는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을 '타는 마음'과 '불나방', 그리고 '단풍'이라는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절절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시의 가장 큰 매력은 대비(Contrast)에 있다. 화자는 사랑으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통신마저 끊으며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이는 역설적으로 상대가 내 삶의 모든 구석에 침투해 있음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그 고립은 '불나방'처럼 뜨거운 그리움 앞에 무력화된다. 파멸(불속)을 알면서도 뛰어들 수밖에 없는 사랑의 맹목성과 불가항력적인 속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마지막 행인 "한 잎 단풍으로 피 붉다"는 이 시의 백미라고 본다. 처음의 '속 타는' 마음(보이지 않는 열기)이 마지막에 '피 붉은 단풍'(눈에 보이는 결과물)으로 전이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피'와 '붉다'의 색채 대비는 그리움이 단순한 기다림을 넘어 생살이 찢기는 듯한 통증을 동반하고 있음을 함축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문장이 길게 늘어지지 않고 단어 중심으로 툭툭 던져지는 호흡이 화자의 조급하고 간절한 심정을 잘 반영하고 있다. 특히 '한사코', '오로지' 같은 부사들을 독립적인 행으로 배치하여 독자가 그 감정의 무게를 충분히 음미하게 하는 여백의 미가 있다.
전체적으로 비움(절연)하려 할수록 더 붉게 차오르는 사랑의 역설을 짧지으면서도 강렬한 언어로 포착해낸 보기 드문 작품이다. "사랑이 뭐길래”라는 다소 통속적일 수 있는 제목을, 마지막 "단풍"과 "피"라는 시각적 선명함으로 깊이 있게 잘 갈무리했다. 억누를수록 붉게 터져 나오는 그리움의 낙인(烙印) 같은 작품이다.
스쳤던
모든 인연이
하나같이
그리움
네 손을
토닥여 가며
호들갑을
떨지만
찾아온
그리움 모두
또렷 또렷
정겹다
이제는
그들과 함께
시절여행
하련다
- 안효만, 「노년의 앨범」 전문
이 시는 노년의 회상과 그리움을 주제로, 인생의 인연들을 앨범처럼 펼쳐 보며 정겹게 되새기는 정서를 담고 있다. 특히 간결하고도 함축적인 행과 여백이 많아, 마치 오래된 사진첩을 한 장씩 넘기는 듯한 호흡을 느끼게 하는 매력이 있다.
1연의 “스쳤던/ 모든 인연이/ 하나같이/ 그리움”에서는 지나온 삶의 모든 관계가 결국 그리움으로 귀결된다는 깨달음을 보여준다. 2연의 “네 손을/ 토닥여 가며/ 호들갑을 떨지만” 같은 구어적 표현도 일상적이고 구수한 어감을 주어, 시가 지나치게 무겁지 않고 따뜻하게 다가온다. 3연에서는 단순히 그리움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또렷 또렷/ 정겹다”라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돋보인다.
마지막 연의 “시절여행/ 하련다”라는 표현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며, 노년의 삶을 단순한 회상이 아닌 새로운 여정으로 확장하는 시인의 기량이 부럽기도 하다. 특히 표현에 있어서 짧은 행과 반복적인 어휘(“그리움”, “또렷 또렷”)는 시적 리듬을 형성하며, 독자가 여운을 길게 느끼도록 해준다.
이 시는 노년의 고독보다는 노년의 풍요를 강조한다. 인연과 그리움이 쓸쓸함이 아니라 정겨움으로 변환되는 과정이 핵심이다. 독자는 이 시를 읽으며 자신의 삶의 앨범을 떠올리게 되고, 지나온 인연들을 다시금 따뜻하게 품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풀쩍풀쩍 뛰고
휙, 옷 벗어 던지면서
일어나게 해놓고
-아휴, 먼지 좀 봐!
어떻게 내 탓을 할 수 있어요?
이 방에서 나가 줘요!
나도 생각 좀 해야겠어요
- 우남희, 「먼지」 전문
이 시는 일상의 사소한 대상인 ‘먼지’에 화자를 부여한 의인화 시로, 짧은 행과 대화체를 통해 인간의 태도와 책임 전가를 날카롭게 희화(戲畫)하고 있다. 가벼우면서도 재치 있어 보이며, 그 속에는 생각할 거리가 분명히 숨어 있다.
먼저 1연 도입부의 “풀쩍풀쩍 뛰고/ 휙, 옷 벗어 던지면서/ 일어나게 해놓고”는 사람의 분주한 몸짓을 의성·의태어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행동들이 곧 ‘먼지를 일으키는 원인’임을 독자는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된다. 이어지는 2연은 한 행이다. “-아휴, 먼지 좀 봐!”는 일상에서 너무나 흔한 말이지만, 이 시 안에서는 책임을 외부로 돌리는 순간을 정확히 포착한 핵심 행이다. 감탄사와 구어체가 현실감을 높이며, 이어지는 다음 행의 반전을 준비한다.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후반부의 역전된 시점이다. 역시 한 행의 3연 “어떻게 내 탓을 할 수 있어요?”와 4연의 “이 방에서 나가 줘요!/ 나도 생각 좀 해야겠어요”이다.
여기서 ‘먼지’는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억울함을 호소하는 존재, 더 나아가 생각하는 주체가 된다. 이 의인화는 유머를 띠면서도, 인간의 자기중심적 태도와 무의식적 행동을 은근히 꼬집고 있다. 특히 마지막 행의 “나도 생각 좀 해야겠어요”는 짧지만 여운이 깊어, 독자에게 질문을 남긴다. 생각해야 할 쪽은 과연 누구인가라는 물음이다.
전체적으로 이 시는 군더더기 없는 언어, 일상어의 효과적인 활용, 짧은 대화체 속에 담긴 기지(機智)와 성찰 등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화자 특유의 가볍게 웃게 하면서도 마음을 건드리는 시선이 잘 살아 있으며, 소품처럼 보이지만 그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조용히 미소 짓게 하다가, 마지막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긍정적인 시다.
마음 졸이지 말고 허심탄회하게
순간의 감정에 얽매이지 말고
순리대로 흐르는 물처럼 언제나 흘러라
기대지 말고 마음 내키는 대로
미련일랑 갖지 말고 즐겨라
세월이 가는데 어쩌랴
주저함 없이 고요히 흘러라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있는 그대로
언제나 변함없이 마음을 접고
오늘은 오늘로써 내일을 기다리며
순수한 기다림으로
내가 있기에 오늘이 있고
오늘이 있기에 내가 있다는
고맙고 참한 마음으로
찬란한 태양을 바라보듯 언제나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참한 인생
- 지한주, 「오늘을 즐겨라」 전문
이 시는 삶의 태도와 마음가짐을 담담하면서도 따뜻하게 풀어낸 잠언적인 작품이다. 전반적으로 현재를 긍정적으로 살아가려는 의지와 순리에 맡기는 겸허한 자세가 잘 드러난다. 시 전체가 "오늘을 즐겨라"라는 제목에 충실하다. 집착하지 말고, 얽매이지 말고, 기대지 말고라는 반복적 부정어 사용을 통해 집착과 불안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가자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각 연마다 명령형 어조가 주를 이루어 독자에게 직접적인 울림을 준다. "흘러라", "즐겨라" 같은 반복적 종결어미가 리듬을 형성하며, 시의 주제를 더욱 힘있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순리대로 흐르는 물", "찬란한 태양" 같은 자연 이미지가 삶의 태도를 상징한다. ‘물’은 흐름과 순응, ‘태양’은 긍정과 활력을 상징하며, 시의 핵심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적 비유는 독자에게 편안함과 설득력을 더해준다.
미학적으로 볼 때 시적 언어가 화려하지 않고 담백하다. 마지막 연에서는 "내가 있기에 오늘이 있고/ 오늘이 있기에 내가 있다"라는 상호적 관계를 통해 존재의 의미와 감사를 표현하고 있다.
이 시는 삶의 태도에 대한 잠언시로서, 독자에게 현재를 긍정하고 집착을 내려놓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교훈적 메시지를 전한다. 문학적 기교보다는 담백한 교훈성과 따뜻한 울림이 중심이 되는 작품이라고 느껴진다.
이상으로 2025 겨울호(제12호)에 발표된 시조와 동시조, 시부문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우리 시인이나 시조시인들은 이제 종래의 인식을 뛰어넘어 이미지 창조의 바탕을 굳건히 하고서, 보다 차원 높은 상상력으로 창작에 임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매사에 시인의 눈, 시인의 마음이어야 한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만 보아서는 좋은 작품이 탄생 되지 않는다. 이번에는 대부분의 문인들이 삶의 화두를 긍정적으로 풀어내고 있는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어 그 기량과 기지(機智)에 공감하면서 즐거움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거론하고 싶은 작품들이 더 있었지만 지면 관계상 이만 줄일 수밖에 없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