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진교리 제4강 <그리스도인의 사명>
윤행도 가롤로 주임신부 (월영동성당). 2026.05.10. 남성동성당
“찬미 예수님! 오늘 이렇게 견진교리 강의를 마무리하는 자리에 함께하게 되어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임해원 안토니오 주임신부님께서 저에게 강의를 맡겨 주신 것은 단순한 부탁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성령의 은총을 나누라는 소명이라 생각합니다. 그 뜻을 깊이 묵상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렇기에 이 시간을 결코 대충 준비할 수 없었습니다. 견진성사는 신앙의 성숙과 성령의 특별한 은총을 받는 중요한 순간이기에, 오늘 강의가 여러분의 신앙 여정에 작은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머리 보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은 쓰면 되고,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분은 쓰지 않아도 됩니다. 다른 사람의 선택에 간섭하지 마십시오. 성당에서의 중요한 예식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머리 보를 쓰든 안 쓰든 서로 간섭하지 말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십시오. 꼭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말고, 하늘의 눈을 지켜야만 그리스도 안에서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면 너무 많아서 결국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잃게 됩니다.”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왜 사람들이 그들을 그렇게 불렀을까요? 당시에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제자들을 세우신 지 오래되지 않은 초기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또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잘 모르는 때였습니다. 제자들은 특별히 대단한 일을 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처럼 집을 돌보고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가진 것을 나누며,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모습이 두드러졌습니다. 또한 핍박 속에서도 기쁨과 소망을 잃지 않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려고 했습니다. 이런 삶을 본 사람들이 ‘저들은 예수를 따르는 무리다’ 하고 깨닫게 되었고, 그래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입니까, 아니면 단순히 그리스도교 신자입니까? 그리스도교 신자는 세례를 받고 성당이나 교회에 다니는 사람을 말합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은 세례를 받았고 성당에 다니니, 모두 그리스도교 신자입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신자가 아니라, 예수의 가르침, 곧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성당이나 교회에는 열심히 다니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진정한 의미의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는 것은 비교적 어렵지 않습니다. 세례를 받고 성당에 다니면 누구나 신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는 세상 사람들이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안티오키아 사람들은 ‘아, 저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다’라고 말했지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직접 판단하신다는 점입니다.”
“여러분은 ‘아침이슬’이라는 노래를 아십니까? 우리 어르신들이 참 좋아하시는 노래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별로 이 노래를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아침이슬’이라는 노래는 김민기가 작사·작곡했고, 양희은이 불러 널리 알려졌습니다. 김민기 본인도 직접 불렀습니다. 또 ‘친구’라는 노래 역시 김민기가 만든 곡입니다. 김민기는 2024년에 타계하셨습니다.”
“김민기 씨가 삶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예술인들, 특히 음악인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같은 훌륭한 예술인들이 이름을 알리고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앞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삶의 모토는 늘 다른 사람을 앞세우고 자신은 뒤에 남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남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삶의 태도였습니다. 그는 어떤 종교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을 잘 알던 천주교 이병옥 주교님께서는 그를 가리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었다. 나보다도 훌륭한 그리스도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우리의 삶이 어떠하냐에 따라 내가 단순히 그리스도교 신자인지, 아니면 참된 그리스도인인지가 결정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세상이 너무나 우리들의 삶을 흔들기 때문입니다. 작은 일에도 우리는 마음이 흔들리고,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나를 흔들어버립니다. 그렇지요? 예를 들어, 우리 본당은 주차장이 좁습니다. 남성동 성당은 아예 주차장이 없지만, 우리 본당도 차량 수에 비해 주차장이 작아 늘 차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한 번은 미사를 마치고 다른 곳에서 주차장에 나가려는데, 앞차가 빠지지 않아 제가 나가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차주를 찾고 연락을 했지만, 휴대폰이 꺼져 있거나 연결이 잘 되지 않아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결국 5분 정도 늦게 나타났는데, 만약 제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아마 성질을 내며 불평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옆에서 지켜보니 ‘지금 차를 빼고 있구나’ 하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3월 말, 부활절을 앞두고 성당 청소를 함께 했습니다. 한참 일을 하다가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주차장에서 또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누군가 차를 앞에 세워 두어 다른 차가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한 자매님은 미사를 마치고 급히 가야 할 일이 있어 차를 맨 앞에 세워 두었는데, 본인이 늦게 나오다 보니 다른 차들이 빠져나가지 못했습니다. 결국 10분 넘게 기다린 끝에 나타나서 여러 번 죄송하다고 인사를 하며 차를 빼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다른 자매님이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천천히 차 빼십시오’ 하고 부드럽게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대신 그분에게도 미안하다고 사과를 드렸습니다. 이런 작은 일 속에서도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드러납니다. 서로 이해하고, 기다려주고, 부드럽게 대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천천히 하십시오. 서둘러 가다가 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 천천히 가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이 있을 때 비로소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시작이 됩니다. 그것이 바로 출발점입니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나는 과연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제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분들은 자랑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 저분이 자랑을 하는구나’라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자랑이 아니라, 신앙의 증거를 나누는 것입니다.”
“바른 것이 곧 올바른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가치에 흔들리며 세상의 기준을 따라 살지만, 결국은 복음의 가치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래서 사제의 독신은 단순히 혼자 사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사제가 세상의 가치에 흔들리지 않고 복음의 가치를 따라 살아낼 때 비로소 독신의 의미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우리를 흔드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그중 가장 쉽게 우리를 흔드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돈입니다. 돈은 우리를 쉽게 흔들어버립니다.”
“돈은 우리를 쉽게 흔들어버립니다.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본 적 있습니까? 혹은 빌려준 적 있습니까? 돈을 100만 원 빌려주면, 그때부터 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3일 뒤에 갚겠다’고 했는데 일주일 뒤에 갚으면 괘씸한 마음이 들지요. 그래도 한 달 안에 갚았다고 생각하면 넘어갈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1만 원짜리 지폐가 많았는데, 100장을 세어 빌려주곤 했습니다. 그때는 ‘괜찮다, 내가 너를 믿는다’ 하고 주었지만, 집에 와서는 혹시나 해서 다시 세어보기도 합니다. 손에 침을 묻혀가며 세어보니 99장이 나오면, 다시 세어보고 또 아들에게까지 부탁해 세어보게 됩니다. 결국 100장이 맞는데도 순간적으로 ‘혹시 1만 원을 떼먹은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깁니다. 이처럼 돈 문제는 사람 사이를 흔들고, 신뢰를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사람 마음은 참으로 쉽게 흔들립니다. 단지 1만 원짜리 한 장 차이에도 마음이 요동칩니다. 돈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도 우리를 크게 흔듭니다. 누군가가 나를 비난하며 ‘이중인격자’라고 한다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당연히 좋지 않지요. 사람은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흔들립니다. 책상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의 말이 나를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너는 안 됐잖아’라는 식으로 던지는 말이 마음을 깊이 흔들어버립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이런 흔들림 속에서도 복음의 가치를 붙잡고, 주님을 바라보며 흔들리지 않는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저는 올해 나이가 66입니다. 젊었을 때는 사진을 찍으면 눈길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깨닫는 것은, 예수님의 은총밖에는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은총만이 나를 이런 흔들림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새벽 3시 반에 일어납니다. 늦어도 4시에는 일어나서 기도합니다. 새벽에는 전화 오는 사람도 없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으니, 그 시간에 기도에 마음을 집중합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면 다른 일들을 시작합니다. 아침 첫 시간을 하늘께 맡기고, 기도가 끝난 뒤에는 우리 본당 공동체를 위해서 매일 남자 화장실 청소를 합니다. 월요일은 성당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청소하지 않습니다. 그 외의 날에는 거의 매일 깨끗하게 청소합니다. 저는 신학생 때부터 화장실 청소를 해왔기 때문에 벌써 30년, 4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것이 제 안에 하나의 길이 되었습니다.”
“청소가 끝나면 성당 마당과 성당 주변 골목길을 쓸기도 합니다. 맑은 날에는 늘 그렇게 합니다. 지저분한 골목길을 걸어서 출근하거나 학교에 가는 것보다 깨끗하게 쓸린 골목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훨씬 더 밝아지지 않겠습니까? 우리 본당 주변에는 어렵게 사시는 어르신들이 적지 않습니다. 김치 같은 것을 나누어 드리기도 하고, 도시락을 사서 찾아가 함께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에게도 조금씩 도움을 드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봉투를 주시기도 합니다. 강의를 하고 사례비를 받기도 했습니다. 어떤 때는 10시간 강의를 하고 20만 원을 받은 적도 있고, 다른 기관에서는 1시간 강의에 50만 원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 차이가 너무 커서 속은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신부님들 모습을 보며 깨달았습니다. ‘돈을 받아도 나 혼자 쓰지 말아야겠다.’ 그래서 그때부터 저도 사례비를 개인 통장에 넣지 않고 따로 모아 두었다가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고 있습니다. 사제마저 돈에 휘둘리면,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그리스도를 향해 길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희망에 대해 물어보면 언제든지 대답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가르칩니다. 그 희망은 물질이나 권력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복음의 가치, 복음의 삶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복음을 살아내지 못한다면, 아무리 말해도 힘이 없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가장 시급한 문제 중 하나는 우리 아이들이 물려받을 다음 세상입니다. 아이들이 푸른 하늘이라도 볼 수 있는 세상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후세에 대한 죄일 뿐만 아니라 하늘에 대한 죄이기도 합니다. 자연은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이기에 우리는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저는 집에 있던 차를 몰고 갈 때도 시속 80km로 달리면 100km로 달릴 때보다 연료 소모가 줄고 환경오염 물질도 적게 배출된다는 것을 실천합니다. 또 물을 절약하기 위해 일주일에 샤워를 두 번만 합니다. 샤워할 때도 비누를 쓰지 않고 간단히 물로만 씻습니다. 치약 대신 소금을 가지고 양치질을 합니다.”
“사소한 것까지 뻣뻣하게 따지고 가리면 오히려 불편만 커집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이야기를 기억하십시오. 어린아이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놓았을 때, 그것이 아무 소용없어 보였지만 예수님께서 그 작은 행동을 통해 5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이루셨습니다. 우리의 작은 실천이 세상 전체를 바꾸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최선을 다해 행동할 때, 하느님께서는 그 노력을 보시고 세상을 새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적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견진성사를 통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신앙적으로도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살아가는 단계에 이르는 것입니다.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아도 자기 삶을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이 진정한 어른이지요. 그렇게 성숙한 신앙인이 될 때, 그리스도의 삶을 닮아가는 길이 열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