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07. 10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한국 유도의 승전보는 계속됐다.
71kg급의 안병근은 1회전에서 아일랜드의 키어런 폴리를 곁누르기 한판, 2회전에서 엘살바도르의 후안 바르가스를 업어치기 절반 두 번 합쳐 한판으로 누인 뒤 8강전에서 1983년 세계선수권자인 일본의 나카니시 히데토시에게 주의승을 거두고 금메달로 가는 고비를 넘어섰다.
안병근은 준결승에서 영국의 케리스 브라운을 가로누르기 효과로 물리친 뒤 결승에서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이탈리아의 에치오 감바를 업어치기 효과와 누르기 효과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굳히기 기술이 강했던 안병근은 이후 1985년 서울 세계선수권대회와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우승하며 1980년대 한국 유도 중(中)량급의 대표 주자로 매트를 호령했다.
전해인 1983년 세계청소년유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19살의 신예 김재엽은 패기 있게 금메달에 도전했으나 60kg급 결승에서 일본의 호소가와 신지에게 누르기 한판으로 져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4년 뒤인 서울 올림픽으로 미뤄야 했다. 65kg급의 황정오는 은메달, 95kg이상급의 조용철은 동메달을 보탰다.
▲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 오른쪽부터 하형주 안병근(이상 유도) 서향순(양궁) 유인탁 김원기(이상 레슬링) 신준섭(복싱) / ⓒ대한체육회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한국 유도의 경기력 수준을 확인할 수 있었다.
1년 전인 1985년 서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71kg급 안병근과 95kg 이상급 조용철이 금메달을 차지하면서 성장세를 이어 간 유도는 이 대회에 걸린 8개의 금메달 가운데 6개를 휩쓸어 2개에 그친, 종주국을 자처하는 일본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물론 유도가 1964년 도쿄 대회에서 아시아 지역 무도 경기 가운데 가장 먼저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데에는 일본의 힘이 컸다. 그러나 이 대회에서는 홈 매트의 한국에 완전히 밀렸다.
이 대회에서 복싱은 전 체급 금메달을 기록했고 유도는 전 체급 메달을 땄다. 이 가운데 금메달리스트는 *60kg급=김재엽 *65kg급=이경근 *71kg급=안병근 *78kg급=조형수 *86kg급=박경호 *95kg급 하형주다.
이어 2년 뒤 열린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한국 유도는 세계적인 강호로서 위상을 확고히 했다. 이때 이후 2017년 현재 한국 유도의 강세는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 성적을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1964년 도쿄 대회 이후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까지 일본은 올림픽 유도에서 금메달 37개와 은메달 19개, 동메달 26개를 차지했다. 유도를 스포츠화 하고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만드는 데 가장 많은 노력을 한 일본으로서는 만족할 만한 성적이라고 볼 수 있다.
유럽의 유도 강국 프랑스가 금메달 14개와 은메달 10개, 동메달 25개로 일본의 뒤를 이었다.
한국은 금메달 11개와 은메달 16개, 동메달 16개로 3위에 올랐다. 여자부가 강한 중국(금 8 은 3 동 11)과 쿠바(금 6 은 14 동 16) 그리고 유럽의 강호 러시아(금 5 은 4 동 7, 옛 소련 금 5 은 5 동 13 별도)와 이탈리아(금 4 은 4 동 7) 등을 제친 성적이다. 북한은 금메달 2개와 은메달 2개, 동메달 4개로 선전했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순위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이 금메달 125개와 은메달 81개, 동메달 95개로 1위를 달리고 있다. 금메달 47개와 은메달 32개, 동메달 70개인 프랑스에 이어 한국은 금메달 27개와 은메달 8개, 동메달 51개로 3위에 올라 있다. 북한은 금메달 5개와 은메달 5개, 동메달 8개로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비교적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7편에 계속>
신명철 기자
자료출처 : 스포티비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