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너희가 다 무장하고 여호와 앞에서 요단을 건너가서 여호와께서 그의 원수를 자기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이 여호와 앞에 복종하게 하시기까지 싸우면 여호와 앞에서나 이스라엘 앞에서나 무죄하여 돌아오겠고 이 땅은 여호와 앞에서 너희의 소유가 되리라마는
너희가 만일 그같이 아니하면 여호와께 범죄 함이니 너희 죄가 반드시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
너희는 어린 아이들을 위하여 성읍을 건축하고 양을 위하여 우리를 지으라 그리하고 너희의 입이 말한 대로 행하라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이 모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주의 종들인 우리는 우리 주의 명령대로 행할 것이라 (민32:21-25)
왜 하필 여인들과 어린아이들을 위하여 인가?
하나님의 나라는 소망이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입니다.
소망이라는 말은 날마다 새롭게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아이와 여인은 그것을 만들어내는 터전입니다.
생명의 보고입니다.
(과부와 고아) - 하나님 없는, 소망이 없는,
그들을 돌보시는 하나님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대안이다.
대안은 새로운 셋팅
새로운 것을 심는 것 (창조적 능력)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
(은혜로 사는 삶, 능력으로 사는 삶)
우리의 골은 무엇인가?
오늘 본문은 분명하게 이야기 한다.
그 땅에 들어가면 성읍을 건축하고 (전쟁 준비)
양을 위하여 우리를 짓고 (기업을 세우고) -각 지파에게
그리고 너희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을 하라 (하나님의 언약)
어린 아이들을 위하여
Build cities for your women and children,
and pens for your flocks,
but do what you have promised."
아이들은 지난 시간 보다 지낼 시간이 많다.
꿈, 희망,
노예로 살면 내 의지가 먹히지 않는다.
그래서 죄에서부터 놓아지게 하셨고
애굽으로 부터 해방 시키셨으며
바벨론 포로로부터 돌아오게 하였다.
제일 먼저 할 일은 성읍을 건설하는 알입니다.
싸워 이기는 것
극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지키고 계승하는 일은 더
중요하다.
가나안땅이 대안이었다.
그 대안이 대안되려면 그것이 계속 이어져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 발톱
새로운 발톱 (새것이 힘을 받아서 계속 이어가야 한다.)
두 번째는 양을 위하여 우리를 짓고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일생을 걸고 할 수 있는
기업 즉, 일을 찾는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은사와 그리고 즐거운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허송세월이 아니라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알아가고
그것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예) 취미, 아마추어, 프로,(돈 받고 하는 것) 사명으로 하는 것
열매가 다르다.
사명으로 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
1. 착하고 충성된 종이다. (무언가에 집중, 전심할 수 있는 기쁨)
- 아낌없이 주는 나무
2.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하나님의 기쁨)
다른 이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것
3. 더 큰 일을 네게 맡기겠다. (확장)
세 번째는 하나님의 언약대로
우리를 만드신 계획이 있다.
언약이라고 부른다. 그 언약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통로가
되고 그 통로를 통해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진다.
애굽에서 – 가나안
각 지파에게 나누어 준 기업
하나님의 기쁨이 곳곳에 열매를 맺게 된다.
예) 고아와 과부가 즐거워하고
이방인이 소망을 가지고
빚진 자, 억울 한자가 회복되고 병든 자가 치유되고
예) 사랑은 관계의 절정이다.
포도나무의 비유
아이들은 백지다.
그래서 손이 많이 필요하다.
귀한 것을 세워가야 한다.
아이들의 질문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나오는 이야기이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여러분들이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고 어른들에게 말하면,
어른들은 도무지 가장 중요한 것은 물어보지 않는다.
"그 애의 목소리는 어떠냐?
그 애도 나비를 채집하느냐?"
절대로 이렇게 묻는 법이 없다.“
그 앤 나이가 몇이지?
형제들은 몇이나 되고?
몸무게는 얼마지?
그 애 아버진 얼마나 버니?"
항상 이렇게 묻는다.
......
어른들은 언제나 이렇다.
그들을 탓해서는 안 된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을 아주 너그럽게 대해야 한다.
그러나 삶을 이해하고 있는 우리들은
숫자 같은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
어른들은 어린이와 대화하려면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추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만약 지금 어린이와 대화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어린이의 눈높이를 맞춘 것이 아니라
어린이가 당신에게 눈높이를 맞추어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어린이들은 너무도 궁금한 것이 많지만
당신이 못 알아들을까봐 물음을 자제하고 있을 뿐입니다.
만약 어린이의 생각을 자유롭게 하면
우리는 훨씬 더 많은 것을 그들에게 배우게 될 것입니다.
어린이의 세계는 하나님의 세계와 같다.
상상력
하나님은 그 상상력을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
아이들은 그 하나님의 상상력을 가진다.
그 상상력으로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의 꿈을 같이 꾸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일을 하셨지만
아이들에게는 그 꿈을 현실이 되게 하는 씨앗을 심은 것입니다.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세밀하지 않지만
기계와 전혀 다른 인간만가지고 있는 것
창조적 능력이다.
이 능력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영감을 주셔야만 가능한 것이다.
이웃나라 왕이 알렉산더 대왕에게 사냥개 한 마리를 선물했다.
알렉산더대왕은 그 사냥개를 데리고 사냥을 나갔는데
마침 토끼가 지나는 것이었다.
왕은 사냥개에게 가서 잡으라고 명령을 했다.
그러나 사냥개는 꼼짝도 않는 것이다.
왕은 기분이 상했다.
그 후 며칠이 지나 다시 그 사냥개를 데리고 산에 갔는데
이번에는 사슴이 뛰어갔다.
왕은 사냥개에게 '가서 잡아라.'고 지시했다.
이번에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화가 난 왕은 '이 개는 아무 쓸모도 없는 개로구나' 생각하고
단 칼에 목을 베었다.
얼마 후 그 사냥개를 선물한 이웃 왕을 만났다.
“폐하! 사냥개가 사냥을 잘 하지요?'”
“아닙니다. 토끼도 못 잡고, 사슴도 못 잡았습니다.
그래서 죽여 버렸습니다.”
이웃 왕이 깜짝 놀라 말하기를
“아니 폐하! 내가 보낸 사냥개는 토끼나 사슴을 잡는 사냥개가 아니라 곰을 잡고, 사자를 잡고, 호랑이를 잡는 사냥개입니다.”
아이들에게 그런 꿈을 가지고 있는데 혹시 우리는 자녀들에게
아주 현실적인 숫자들을 이야기하면서 그들의 꿈을 죽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무엇이 우선일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땅은 가나안 땅이다.
아무것도 갖추어지지 않은 땅이다. 가능성만 있다.
그러나 보장해 주신다. 이제 심고 자라게 하고 거두게 할 땅을
주신 것이다.
예) 하드웨어 아니면 소프트웨어
인물 혹은 인간
사랑이 제일 소중하다.
사랑을 통해 자라가는 것이다.
모든 중독은 사랑결핍이다.
자녀들이 어떻게 자라났는가?
유행을 따랐던가?
그냥 기도하고 충성하지 않았나?
하나님이 돌아가셨나?
아니면 성경이 바뀌었나?
하나님이 세워주시지 않았나?
나를 통해서 (부모, 교회, 선생님)
동아프리카에서 선교사의 자녀로 태어나 토론토 대학에서 토양학을 전공하였고, 8년 동안이나 양을 치는 목장 주인으로 생활했던 필립 켈러가 쓴 양과 목자라는 책에 보면 양의 네 가지 문제와 필요를 이야기한다.
첫째 두려움이다.
양은 다른 동물과 달리 공격용 무기도 없고 방어용 무기도 없다.
뭔가 가진 것이 있어야 자신감도 있고 담력도 있는 데 아무
것도 없으니 양은 공격을 받으면 속수무책이다. 그래서 항상
두려워한다.
둘째 상처이다.
양의 상처는 주로 다른 양과의 갈등에서 온다.
양은 겉으로는 부드럽게 보이지만 사실 다른 양들과 끊임없는
갈등 속에 살아간다. 양들이 함께 모이면 서로 잘난척하는
양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들 간의 갈등이 약한 양들에게 상처를 준다.
셋째 곤충과 기생충이다.
양들이 사는 들에는 보이지 않는 많은 벌레들이 산다. 말파리,
쇠파리, 진드기 같은 해충들이다. 이들은 양들을 공격한다.
그래서 양이 힘들다.
넷째. 양식이다.
아무리 착하고 용감한 양도 며칠 못 먹으면 죽는다.
공급의 문제이다.
교인들을 흔히 양에 비유하는 데 교회에도 이러한 종합적인 필요를 가진 양과 같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먼저, 두려움은 존재론적인 문제입니다.
인간은 피조물이고 약하기 때문에 누구나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데 무엇이 문제입니까?”하는
것입니다.
두려운 양들을 위해 목자가 하는 일은 항상 함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와 함께 항상 함께 하십니다.
이사야40장부터는 제2이사야서입니다.
시대적으로 이 부분은 이스라엘에 바벨론포로 시대에 해당한다.
남의 나라에 붙잡혀 있으니 위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씀이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하는 말씀입니다.
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사45:7,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사50:8-9,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뇨 나와 함께 설찌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뇨
내게 가까이 나아올찌어다.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뇨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에게
먹히리라“.
우리 속에 있는 존재의 두려움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영적 싸움에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말파리, 쇠파리, 진드기 같은 해충들은 영적인 공격을
의미합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것들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굶주림의 문제는 지속적인 생명의 양식의 공급으로 해결됩니다.
예배와 말씀이 이를 해결하게 해 줍니다.
그러나 끝까지 가는 것이 상처입니다.
상처는 관계적 갈등에서 옵니다.
여기에는 많은 사랑과 소통과 공감이 필요합니다.
사람마다 약점이 있는 데 가령 삼손은 성적인 면에서 약했다.
아나니와와 삽비라는 물질문제로 약했습니다.
사울왕은 시기심,
마가 요한은 인내심,
도마는 의심,
나발은 분노심,
베드로는 충동심,
야고보는 명예심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 문제는 용서와 사랑으로 해결 할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