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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05. 19
앞으로 한 달은 한반도 정세의 역사적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최근 미.북 간에는 장외 신경전이 가열되고 있다. 양국 모두 원하는 것을 좀 더 얻어내기 위한 '보상과 압박' 병행의 '투트랙 전략.전술' 인상이 짙다.
최대한의 위협카드와 협상카드를 동시에 테이블에 올려놓고 협상력을 극대화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정부 특유의 드라이브에다, 미국과 남한내부의 최근 관련 동향에 대한 북한 당국의 각론적 반발이 중첩되면서 북미회담 자체의 전도에도 어떤 함정과 변수가 돌출할지 알 수 없을 정도가 됐다.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역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이 다음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기로 예정돼 있고, 이미 양국간의 이른바 '빅딜' 안이 윤곽을 드러내기도 했었지만, 여전히 긴장을 풀 수는 없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의 의미는 실로 중차대하다. 70년의 적대와 대결, 불신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평화를 향해 나아가기로 한 두 지도자의 결단은 역사적 의미가 가볍지 않다. 국제적으로 두 적대적 최대 당사국의 정상이 한 테이블에 마주 앉는 장면은 世界史的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하다.
‘완전한 비핵화(CVID)’와 북한 체제안전 보장을 맞바꾸는 협상이 기본 성격이다. 비핵화도 북한 체제안전 보장도 ‘불가역적’이어야 한다. 협상은 주고받는 내용이 균형을 이뤄야 성공할 수 있다. 한반도 평화의 새 역사를 과연 제대로 쓸 수 있게 될 것인지, 남북 정상회담 성과에 이어 제2의 분수령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 형국이다. 오늘의 갈등상황과 그 파장, 그리고 앞으로 4주 후 북·미 정상회담에서 과연 어떤 식으로 '빅딜'이 이뤄질 수 있을 런지, 그 가능성 여부와 향방의 귀결점을 짚어본다.
북한 반발과 존 볼턴
북한 핵의 검증을 거쳐 실제 해체까지 갈 길은 이렇게도 먼가.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북한이 다시 미국과 남한을 향해 거친 경고 메시지를 내놨다. 일방적으로 핵 포기를 강요하면 북미정상회담을 다시 고려할 수 있다는 요지다. 남북고위급회담은 아예 무기한 연기 조치를 취해 버렸다. 6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순항하던 한반도 정세가 북한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라는 암초를 만났다.
북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은 긴급담화문을 통해 "미국이 일방적 핵포기 만을 강요하려 든다면 그런 대화에 더는 흥미를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 선언했다. 북미회담의 취소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미국에 '각종 도발적 행동'을 중단하라며 진정한 태도 변화를 촉구한 것이다.
그 미국의 '도발적 행동'이란 최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북한 핵무기와 대량살상무기까지 폐기해야 한다고 밝힌 대목을 겨냥한 것이다. 핵보유 강국인 북한 자신들을 핵개발 초기단계였던 리비아와 대비하는 것은 아둔한 것이라며 리비아 운명을 강요하려는 의도라고 강력 비판했다.
북한이 한미 공군의 연합공중훈련인 '맥스선더'(Max Thunder) 훈련을 비난하며 16일로 예정됐던 남북고위급회담 당일 일방적으로 이를 무기한 연기 통보한 것도 결국은 미국을 향한 메시지라는 분석이다.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 한미훈련을 용인하는 태도를 보이기는 했었지만, 훈련의 규모와 전략자산 전개 여부와 관계없이 무조건 용인하는 강도가 아니었음을 이번에 보여준 것으로 파악된다. 이번 훈련에는 F-22 스텔스 전투기 8대와 B-52 장거리폭격기 등 100여대의 양국 공군 전력이 참가했다. 역대 최대 규모였다.
사실, 미국은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최대한의 압박과 최대한의 보상을 제시하는 당근과 채찍 투 트랙 전략의 흐름을 보였다. 협상력을 극대화하려는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스타일을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들이다.
이와관련, 핵 협상 조건을 한 단계씩 더 강화하려는 경향을 나타냈다. 과거에는 '살라미식 대 리비아식'으로만 맞섰다면, 최근에는 CVID를 넘어서는 PVID(영구적 폐기), 또 핵은 물론 탄도미사일과 생화학 무기를 비롯한 모든 대량살상무기까지 폐기해야 한다며 북한 인권문제까지 언급, 그 수위를 높혀왔다. 그 중심에 볼턴 보좌관이 있었다.
이같은 미국의 자세에 대응, 북한은 자신들의 비핵화를 위해서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청산이 선결되어야 한다는 점을 수차례 천명했다면서 미국이야말로 자신들의 '대범한 조치'를 오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볼턴 보좌관에 대해서는 '사이비 우국지사'라고까지 지칭, "그의 말을 듣는다면, 북미관계 전망은 불보듯 명백하다"고 비판했다.
또 하나, 북한은 '핵'과 '경제보상'을 맞바꾸겠다는 '빅딜론'에 대해서도 자존심이 상한 것 같다. "미국이 경제적 혜택을 주겠다고 떠들고는 있지만, 우리는 미국에 기대를 걸고 경제건설을 해본 적이 없다"고 강조한 것이 그렇다.
그러나 아직까지 판을 깨자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북미정상회담 개최 자체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다만, 북한이 비핵화의 조건으로 요구하는 對北 군사적 위협 해소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새로운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새 쟁점 부상
즉, 북한은 “우리가 주장하는 비핵화는 조선반도 전역의 비핵화, 남핵폐기와 남조선 주변 비핵화가 포함돼 있다”(2016년 7월6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대변인 성명)고 밝혀왔다. 한.미의 비핵화 관련조치와 북한의 비핵화는 상호적이란 방향이다.
북쪽이 최근 미국과 사전 접촉 때 '5대 요구사항'으로 △미국 핵 전략자산 한국에서 철수 △한-미 연합훈련 때 핵 전략자산 전개 중지 △재래식·핵무기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보장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 △북한과 미국의 수교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것도 같은 맥락이다. 남북 정상회담 때의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그동안 보여준 미국 주요인사들의 견해와도 간극이 크다. 미국 측은 최근 영구적 폐기(PVID)라는 대전제 위에서 이를 실현할 방안과 함께 두 원칙을 공개했다. 하나는, 북한 내 모든 핵(核)무기와 물질이 미국으로 반출돼야 하며, 반출 완료 시점(時點)이 보상 시점(始點)이라는 것이다. 볼턴 보좌관은 ABC방송 인터뷰에서 “모든 핵무기를 폐기해 미국 테네시주 오크리지로 가져가는 것이며, 이는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 능력 제거까지를 뜻한다”고 규정했다. 핵무기와 핵물질은 물론 탄도미사일과 화학·생물학 무기까지 논의 대상이라고 언급했다. 비핵화 개념을 핵 원료, 제조 수단 폐기뿐 아니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생화학무기 등 대량 살상 무기(WMD) 전반의 폐기로 넓히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핵·미사일 시설의 위치 공개와 개방적인 사찰 허용도 요구했다.
그 핵심은 비핵화 막바지 단계에서 폐기될 예정이었던 '보유 핵'을 초장에 신고해 국외 반출함으로써 북한의 진정성을 국제적으로 명실상부 확인시키라는 것이다. 그래야 북한 경제개발을 도울 이른바 '트럼프 플랜'도 가동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동안 북한측 해법 기조인 단계적 접근 수순을 뒤집은 방식이다.
볼턴이 언급한 오크리지 국립 연구소는 2차대전 당시 핵폭탄 제조를 주도한 곳으로, 2005년 리비아가 포기한 핵물질이 보관돼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일괄타결이라는 리비아식 해법에 초점을 맞추면서 속도와 강도를 더욱 높인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이 북한 핵무기 처리 장소를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마디로 북한의 의표를 찌르는 카드다. 혹여 북측이 23~25일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쇼 이후에도 핵 맨파워를 유지해 핵보유국 지위를 지키려는 속셈이었다면 더욱 그렇다.
둘째는, 북핵해체후 경제보상과 관련해서도 미국민의 세금을 직접 투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제재를 해제함으로써 민간 자본의 대북 투자 길을 열어 주겠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양국간 갈등 쟁점이 내재한다.
그렇지만, 겉으론 간극이 이처럼 크지만 북.미 정상회담까지 한달 가까운 협상 시한이 남은 만큼 미리 비관할 이유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북.미가 ‘비핵화’와 ‘(평화와) 번영’이라는 최종 목표에 상당한 공감을 이룬 것은 이미 사실이기 때문에, 과연 어느 정도 선에서 서로 원하는 것을 짜맞추는 교환 방식이 되느냐가 귀결점이 될 것이란 관측이다.
북·미회담 긍정 측면
역시 6월 12일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와 북한이 바라는 체제안전 보장 간 '빅딜'이 정말 이뤄질 것인지가 관건이다. 이 정상회담은 상징적 이벤트가 아닌 구체적 성과로 평가받을 것이고, 그 핵심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로 진정한 평화를 이룰 합의를 어떤 수준에서 이뤄낼 것이느냐가 될 것이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북이 보유한 핵무기, 핵물질, 핵시설을 빠른 시일 내에 해외로 반출하거나 다시는 사용할 수 없게 폐기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고, 그 완료 시점에 합의한다면 비로소 확실한 한반도 평화의 역사적 출발점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큰 흐름에서 보면 회담 전망은 일단은 밝다. 양국의 태도는 진지하다. 미국은 핵폐기 후 '북한의 경제번영' 약속을 계속 언급하고 있고, 북한은 풍계리 핵 실험장 폐쇄 방침과 함께 억류해온 김동철 목사 등 한국계 미국인 3명도 전격 석방했다. 최근 방북한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측에 사전 예고 없는 미사일 실험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으며, 핵·미사일 실험 중지 약속도 계속 실천하고 있다. 북·미 양측이 신뢰를 쌓아가려는 흔적도 한동안은 역력했다.
북-미 정상회담 장소와 날짜가 확정됐다는 것은 회담 의제의 조율이 어느 정도 끝났다는 걸 의미한다. 미국은 장소 발표 뒤 회담의 최우선 과제가 ‘CVID', 곧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임을 다시 한번 분명히 했다. 회담 확정은 이 문제에서 북한의 ‘확실한 양보’를 받아냈다는 뜻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북한도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 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를 받았으며 만족스러운 합의를 봤다고 밝혔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상응하는 새로운 체제보장 방안이 전달돼 북-미 사이 ‘빅딜’의 밑그림이 완성됐음을 짐작케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 대해 "자신의 세계를 현실 세계로 이끌고 나오려는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언급이 시사하듯 북한이 CVID를 수용.이행하고 개혁.개방에 나선다면 최상의 시나리오다.
북·미 정상회담은 한반도 냉전구조의 해체에 시동을 거는 역사적 의미를 갖게 된다.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나고 정전체제로 전환한 이후 1990년대 동서 냉전체제가 붕괴되는 세계사적 전환이 이뤄졌지만 한반도는 유일한 냉전의 '파행아'로 남아 있었다.
싱가포르가 회담 장소로 결정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평양과 판문점 같은 파격보다는 정석(定石)을 택했음을 보여준다. 한국 정부는 판문점을 추천했고, 북한은 평양 회담을 원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결국은 가장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 싱가포르는 북한과 대사 관계를 맺고 있고, 미국과는 전통적인 우정을 유지하고 있다. 트럼프에게는 우호적인 장소이고 김 위원장에게도 상대적으로 안전지대라고 할 수 있다. 제3국에서 이뤄지는 만큼 두 정상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의제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싱가포르는 2015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 대만 총통이 66년 만에 첫 정상회담을 가진 적도 있어 ‘역사적 화해’의 장소로도 적절하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남·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방안도 적극 고려하길 바란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비핵화 등 현안을 완전히 매듭지으려면 세 정상이 모여야 한다. 종전 선언을 거쳐 평화협정 체결로 나아가기 위해선 최소한 남·북·미 3자 합의가 필요하다.
북핵협상 새 특징
이번 미.북 회담은 이전에 논의된 북한 비핵화 협상과 성격이 다르다. 과거 회담은 핵 동결·불능화-검증-보유 핵 폐기의 순서였다. 북미가 초장부터 보유 핵 폐기를 논의하는 것은 그만큼 비핵화 속도가 빨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이번 비핵화 논의는 비핵화-체제안전보장의 교환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지난 날 對北협상 때는 경제적 보상이 상대적으로 덜 거론됐지만, 이번에는 경제지원이 비핵화 논의의 중요한 본질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북한 비핵화와, 그에 상응한 미국의 보상이 얼마나 빨리, 그리고 제대로 진행되느냐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진실이라면 비핵화를 최대한 빠르게 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임기인 2020년 안에 완전한 비핵화에 도달하는 것이 불확실성을 가장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북한은 과거 획기적 합의를 하고 실천 단계에서 약속을 깬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북한 역시 이번에는 회담이 깨졌을 때 가해질 더 강화된 제재와 '완전한 북한 파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미북 정상회담에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기대와 희망이 걸려 있는 것이다. 아직 미국의 '일괄 폐기'와 북의 '단계 조치' 사이에 어떤 접점이 만들어졌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단계적으로 폐기 절차를 밟되 그 시한을 1~2년으로 못 박는 방안 등이 양국간 '협상접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어떤 방식이든 북이 과거처럼 국제사회를 속일 수 없는 분명한 합의가 미·북 정상회담에서 이뤄지면 한반도 평화에 획기적 전기가 마련될 수 있다.
▲ 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 10일 방송을 통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겸 국무위원장이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을 9일 접견했다고 알렸다. 김정은 위원장과 폼페이오 장관은 북미정상회담과 북한에 억류중인 미국인 3명에 대한 석방을 논의했으며, 억류된 미국인들은 폼페이오 장관과 함께 미국으로 귀국했다. / ⓒ뉴시스=조선중앙TV 캡처
한국안보 - 패싱우려
그러나 협상과정에서 한국이 우려할 대목도 지적치 않을 수 없다. 혹여라도 미국과 북한의 비핵화가 '선언' 수준에 그치는 대신, 북한 체제 보장과 보상만 합의된다면 한국으로선 그야말로 '패싱' 악몽이다. 북한의 비핵화가 확고한 이행방안 없이 미.북 간 정치적 선언에만 그친다면 우리로선 최악의 시나리오다. 미.북 간 비핵화보다 평화체제 문제를 먼저 논의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설상가상이 될것이다.
북핵의 본질은 남겨둔 채 핵 동결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포기로 미 본토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는 선에서 타협한다면 우리에게는 최악의 결과가 될 수 있다. 한국만 북핵을 머리에 인 채 '위장평화' 속에 살아가야 한다. “북핵 문제는 ‘완전한 핵폐기’가 아니라 ‘북핵 위협 감소’로, ‘핵군축’으로 막을 내릴 것이며, 결국 북한은 ‘비핵 국가로 포장된 핵보유국’으로 남게 될 것”이라는 일각의 걱정들이 현실화돼선 결코 안된다.
그 배경은 북이 지난달 노동당 회의에서 밝힌 대로 '핵무기 병기화'가 완료됐기에 더 이상의 핵실험이 필요 없게 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풍계리 폐쇄계획도 북 스스로 핵실험장이 쓸모가 없어졌다고 발표했다는 점에서 과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파키스탄도 북한처럼 여섯 차례 핵실험으로 핵 보유국 행세를 하고 있다.
이와관련, 김 위원장은 지난 7~8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대북 적대 시 정책과 안보 위협이 제거돼야 한다"며 '단계적 동시적 조치'를 거듭 요구했다. 그렇다면 북.미가 비핵화 이정표를 발표하되 이행 협상은 추후로 넘기는 절충안이 합의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한반도 전체 비핵화가 회담 목표라면 주한미군 문제 등 한.미 동맹을 흔드는 논의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이것이 한국의 우려다.
그런 면에서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나의 업적은 전체 한반도의 비핵화가 이뤄질 때 달성될 것"이라며 느닷없이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를 들고 나온 배경도 궁금하다. 그가 석방된 미국인 3명을 환영하면서 기자들에게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 대신 “한반도 전체를 비핵화시키는 순간이 나의 가장 자랑스러운 성취가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은 유의할 대목이다.
이는 트럼프가 2020년 임기만료때 까지 북한 비핵화를 완료해야 한다는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미국이 한미 연합훈련 기간 중 핵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중단 등에 동의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반도 전체 비핵화’가 더 나아가 핵우산 제공 범위에서 한반도를 제외하는 극단적 수준으로까지 확대될 우려는 만에 하나라도 없는 것인지, 한국 정부는 면밀히 체크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큰 그림에서의 협상 타결을 위해 미국 입장에선 작은, 그러나 한국의 안보에는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목들을 주고받을 우려가 있는 것이다. 이런 가능성을 제로(0)로 만드는 게 22일 한미 정상회담을 비롯해 앞으로 한 달간 우리 외교안보팀이 총력전을 기울여야 할 과제다.
북미회담의 성패는 우리가 핵을 이고 살 것인가 아닌가의 갈림길이 될 것이다. 문재인정부 또한 북한이 이미 개발한 핵무기와 추출한 핵연료 등을 남김 없이 신고.사찰.검증하는, 지난한 과정이 완료될 때까지 한.미 공조에 빈틈을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한·미 동맹은 앞으로도 최소 반세기 이상 대한민국 안보의 초석으로 변함없이 남아 있어야 한다. 오는 22일 한·미 정상회담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전문가 검증 필수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비핵화의 구체적인 이행과정에서 '검증 문제'다. 북한은 23일에서 25일 사이에 기상 조건을 고려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의 핵실험장을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실험장 내 모든 갱도를 폭발시켜 무너뜨리고 입구를 완전히 폐쇄한 뒤 관측설비와 연구소 등 지상 구조물을 철거하겠다는 약속이다. 중국 러시아 미국 영국 남조선(한국) 기자들의 현장 취재도 허용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북한이 당초 약속했던 전문가 초청을 언급하지 않은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 윤영찬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은 남북 정상회담 직후인 지난달 2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핵실험장 폐쇄를 투명하게 공개하기 위해 한미 전문가와 언론인을 초청하겠다고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이 1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에게 “핵실험장 폐쇄 현장에 유엔이 함께 해줬으면 좋겠다”고 한 것도 김정은의 전문가 초청 의지에 근거한 것으로 해석되었다.
북한은 전문가들이 갈 경우 갱도 폭파라는 이벤트보다 핵능력 평가에 초점이 쏠리는 것을 우려했을 수 있다. 북.미회담에서 '단계적 비핵화 협상카드'를 쓰려고 전문가 초청을 배제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기자들이 참석한다지만 이런 유형의 '폐쇄 쇼'로는 북이 지난 여섯 차례 핵실험에서 플루토늄, 우라늄은 얼마나 사용했는지, 폭발력은 얼마나 됐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잖아도 북한 핵시설은 의문투성이다. 국방부도 북한이 50여㎏의 플루토늄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하지만 어디에 어떻게 보관돼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지하시설만 1만여 곳에 이른다는 추정까지 나오고 있는 북한에서 핵시설을 일일이 검증하는 것도 쉽지 않다. 북한 핵실험 관련 데이터를 확보하려면 전문가 검증은 필수다.
북한이 초청 대상에서 국제적 핵 전문가들을 뺀 것이 논란의 불씨가 될 수는 있다. 풍계리에 남아 있을 핵 흔적은 앞으로 북핵 검증 과정에서 폐기돼야 할 핵 물질과 핵무기가 어느 정도인지 판별해주는 하나의 판단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전문가 참석은 중요한 전제다. 그렇지만 너무 비관할 대목은 아니다. 北 핵실험장 폐쇄는 본격적인 협상전 비핵화의 시작일 뿐이다. 국제사회 전문가들에 의한 구체적 검증 절차 역시 ‘전면적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북미 양측이 주고 받을 행동 대 행동 속에 들어가야 할 대목인 것이다. 과거보다 훨씬 강력한 검증장치 작동이 상호 면밀히 협의돼야 마땅하다.
경제지원 시기·방법론
다음은 대북 경제지원 문제다. 북핵 폐기가 끝나면 미국 민간자본의 대북 투자를 통해 북한의 경제번영을 이루게 한다는 요지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회담 후 "북한이 한국과 같은 수준의 번영을 달성하도록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폐기하면 미국의 대규모 대북 민간투자가 허용될 것이고 북한의 에너지망 건설과 인프라 발전을 위해 '엄청난' 지원이 이뤄질 것이라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북·미 정상회담 사전협상을 진두 지휘해온 폼페이오가 북한에 대해 ‘번영’이란 표현을 두 차례나 사용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미국이 원하는 수준의 비핵화에 도달하면 체제안전 보장은 물론 제재 완화와 경제적 보상을 하는 방안이 북·미 간에 심도 있게 협의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국제기구의 대북 융자나 외국기업의 대북 투자를 막아온 미국 국내법령이나 독자제재를 해제하는 방안을 미국이 염두에 두고 있다는 분석도 그래서 나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선 실제 미국으로부터 가장 원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핵·경제 병진 노선'에서 '경제 총력 집중 노선'의 변화를 천명한 바 있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시기(2016∼2020년) 내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한국은 물론 서방국가의 경협과 자본유치는 필수다. 북미 정상회담의 궁극적 목표도 체제안전에서 더 나아가 '경제 부국' 달성이다. 이를 위해서는 제재해제→경제협력→금융자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미국의 경제지원도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가 먼저 풀려야 한다.
북한의 국제경제 체제 편입이야말로 '불가역적 비핵화'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나라들과 무역을 하고, 해외의 지원과 투자를 받아 북한 경제가 외부와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 북한은 다시 핵 개발에 나서기 어렵다. 만약, 또 핵 개발을 추진하면 거듭 고립과 제재에 직면하고, 이는 북한 경제의 파탄과 붕괴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앞으로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되고 미국과 유엔의 대북 제재가 풀리면 남북 경협도 급물살을 타게 될 것이 분명하다. 한국의 부담이 커질 가능성도 높다. 이번 북미간 합의로 남북한 경제협력사업이 본격화할 경우 최대 270조원의 비용이 필요할 것이라는 계산도 있다. 남북경협기금은 1조6000억원에 불과한데 북한의 ‘대남청구서’가 쏟아질 태세다.
제2 개성공단 조성 등의 내용을 담은 통일경제특구법이 추진되고, 경협을 총괄할 협의체인 남북경협공동위원회가 11년 만에 부활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벌써부터 공단 재가동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정부는 경협 재개를 위한 로드맵도 짠다는 소식이다. 정부와 재계가 치밀하고 체계적으로 남북 경협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남북경협이 당장 재개될 수는 없다. 경협 재개는 북한이 얼마나 신뢰할 만한 비핵화 계획을 밝히고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다. 아직 비핵화 선언만 나왔을 뿐, 북한이 핵 폐기를 위한 구체적 로드맵을 내놓지 않고 있는 마당에 ‘보상’ 성격의 경협카드를 미리 꺼내는 것은 곤란하다. 지금은 북한 비핵화 방식과 북한이 요구하는 체제 보장 방법, 핵 폐기 후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조건 등을 놓고 이제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단계일 뿐이다. 비핵화를 위해 모든 역량을 우선적으로 동원해야 할 판에 경협부터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퍼주기'는 안된다
한마디로 일방적 '퍼주기'는 안된다. 시장경제 원리로 지원해야 지속 가능한 북한발전에 도움이 된다. 현대사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때 차관 형태로 대규모 대북 지원을 했지만 북측은 이를 그대로 뭉개고 말았다. 당시 정부는 10년 거치 20년 분할상환 조건으로 6차례 대규모 식량 등의 지원을 했고(8억7000만 달러 상당), 2012년부터 만기가 돌아왔지만 북한은 상환 요청에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노 정부 말기에 제공된 경공업 원자재 차관 8000만 달러에 대해서도 3%만 현물 형태로 갚았을 뿐이다. 문 정부에서는 이런 식의 ‘퍼주기’가 다시는 없어야 한다.
대북 경제 관여 정책이 본격화된 김대중 정부 때부터 북한이 도발을 멈추고 개방화를 선택할 경우 대규모 경제 지원책은 꾸준히 제안됐었다. 2000년 DJ의 베를린 선언은 정부 차원의 북한 사회간접자본 확충 지원을 비롯한 경협 안이 담겨 있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북한판 마셜 플랜' 구상을 천명했으며, 2007년 10·4 남북 정상선언에도 광범위한 경협 사업을 담았었다. 물론 보수 정부들도 선(先) 북핵 폐기를 전제로 대북 경제 지원책을 내걸었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방안은 남북 상호 불신으로 시동도 걸지 못한 채 좌초했다.
과거 북한이 대규모 경제 지원 유인책에도 불구, 핵 포기와 개혁·개방 결단을 내리지 못한 건 외부 세계와 손잡고 문호를 열 경우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군사력의 정점인 핵무기 보유에 매달린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이번에 만약 대북 경제지원 보상이 이뤄진다면 그 규모는 핵무기 개발전인 1994년 제네바 합의로 지원된 20억달러(약 2조원)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다. 북은 이제 핵무기와 미사일을 손에 쥐었다. 핵무기 40~50개를 내놓는 대가로 요구할 액수는 천문학적 규모일 것이다. 북한이 일본 고이즈미 정부와 국교 정상화 협상을 하면서 요구했다는 100억달러보다 단위가 훨씬 클 것이라는 짐작을 할 뿐이다.
문제는 이번에도 제네바 합의 때처럼 한국이 비용의 70% 이상을 떠안게 되는 구조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협상은 미국과 북한이 하고, 비용은 대한민국이 두고두고 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말란 법도 없다. 물론 북핵 리스크가 없어지면 우리 안보와 경제에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그와 동시에 북한에 주는 대가는 경제 면에서 고스란히 우리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관건은 지금도 북한을 과연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느냐다. ‘벼랑 끝 전술’뒤 ‘통 큰 제안’을 하고, 의제를 세분화해 단계마다 보상을 받아내려 한 게 그간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부자의 전술이었다. “협상을 분쟁 해결이 아니라 혁명 성취 수단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는 일각의 분석이 나오는 것도 그런 맥락 때문이다. 근거 없는 낙관론이 아닌, 미·북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냉철한 자세가 필요한 때다.
남과 북은 지난 1991년 상호 불가침과 정치·군사적 대결 해소, 화해와 교류·협력 증진 등 구체적 실천 내용이 담긴 기본 합의서를 만들었다. 공존(共存)과 통일로 나아갈 수 있었던 이 합의는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면서 깨졌고, 한반도와 우리 민족은 북핵이란 먹구름 아래 묶여야 했다. 김정은이 이번에 핵 포기 결단을 내리고 실천에 옮긴다면 남북은 27년 만에 미래를 함께 써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싱가포르 대타결' 기대
시대적 큰 구도로 보면, 이제 비핵화 담판은 선순환 궤도에 오르는 분위기다. 이런 전향적 국면을 싱가포르 북미 핵담판의 역사적 성과물로 이어가려면 양측 모두 통 크고 진지한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북한이 요구하는 ‘단계적·동시적’ 조치에 대해 미국은 “잘게 쪼개지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세밀한 추가 조율이 요구되는 것도 현실이다.
북한이 한국 수준으로 번영하는 것은 비핵화 로드맵, 더 나아가 남북관계를 일궈나가는 데 있어 큰 목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정상국가화를 통한 번영은 북한 주민뿐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 국가들의 이해와도 일치한다. 지금처럼 북한이 불량국가로 남아 있는 한 한국의 미래도, 동북아의 미래도 계속 불안정하기 마련이다. 북한의 정상국가화와 이를 통한 경제발전을 위해 모든 관련 당사국들이 노력해야 함은 당연한 목표다.
핵 능력 완전 제거에 집중하면서 시장논리에 입각해서 정상국가로 유도하겠다는 이런 접근법은 한·미가 온전히 공유할 필요가 있다. 문 정부의 대북 지원 원칙도 반드시 ‘국제 기준’을 따라야 한다. 그래야 북한 변화가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통일 비용도 줄어들게 된다.
김정은 정권의 앞날에 중국식, 혹은 베트남식 개방 이외에 다른 활로가 있을 리 만무하다.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불시 핵사찰이나 핵.미사일의 조기 반출 제안을 과감히 받아들여야 한다. 북으로서도 그 길밖에 일어설 길이 없다. 핵 동결이 대화의 입구라면 완전한 핵 폐기는 대화의 실제 출구가 될 것이다. 북한은 당연한 핵폐기로 평화의지를 국제적으로 공인받도록 해야한다.
북한은 우리와 같은 민족이다. 우리가 이룬 경제 기적을 북이 이루지 못할 까닭이 없다. 그 과정에서 정권의 폭력성이 줄어들고 주민 인권이 개선되면 사실상 통일된 것과 비슷한 상황이 오지 말란 법도 없다. 북한과 미국은 이번 회담을 통해 6·25전쟁 이래 68년의 적대관계를 명실상부 청산하고 새 역사를 쓰는 역사적 만남을 일궈내야 한다. 김정은 정권은 이 분수령을 계기로 '완전한 비핵화' 이행과 함께 신속히 정상국가로 가는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북·미 정상의 ‘싱가포르 대타결’을 기대한다.
이병도 주필
출처 : 시사오늘(시사ON)(http://www.sisa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