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 19
한국 반도체 100년 가는 길목에 중국의 폭풍 추격 만났다
내년부터 본격화하는 5세대 이동통신(5G)의 국제표준화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실질적인 개막을 의미한다. 최근 미·중 무역전쟁의 본질도 알고 보면 5G 기반의 기술·시장 패권 전쟁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이 화웨이의 5G 기술 확장을 저지하면서 중국의 반도체·정보통신 산업에 대해서도 지식재산권 인정과 정부 보조금 지급 철회를 강력히 요구하고 나선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 1983년 12월 6일자 중앙일보 1면.
미국은 인텔·마이크론·퀄컴·텍사스인스트루먼트 같은 반도체 분야, 애플의 스마트폰 분야, 구글·페이스북·아마존 같은 인터넷 분야 등 세계 최고의 정보통신기술(ICT)을 보유한 국가다. 중국은 화웨이·샤오미·비보·오포의 스마트폰 분야, 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 같은 인터넷 분야에서 미국을 빠른 속도로 추격하고 있다. 일본 역시 다가오는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4차 산업혁명 분야의 글로벌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의 산업전략도 중대한 변곡점을 맞이하게 됐다. 더 구체적으로 콕 짚어보면 삼성전자의 미래가 관건이다. 지금까지 삼성전자는 반도체·스마트폰 분야에서 글로벌 최고 수준의 기업이었다. 그러나 미·중 기술패권 전쟁, 중국의 추격, 일본과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겹치면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됐다. 삼성전자는 이 역풍을 뚫고 글로벌 리더십을 유지하려면 향후 10년을 어떻게 준비하는지가 중요하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중국은 삼성전자가 정보통신 제품 매출액의 3분의 1을 판매하는 가장 큰 고객이다. 하지만 중국은 앞으로 삼성전자가 나갈 길을 막을 치열한 경쟁국이다. 중국은 대형 액정디스플레이(LCD) 분야에서 삼성을 2년 전부터 추월했고, 소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도 3년 뒤에는 추월할 것으로 예상한다. 삼성전자의 또 다른 주력 사업인 스마트폰도 현재 세계 시장 점유율 22%로 1위를 유지하고 있으나 화웨이·샤오미·비보·오포의 중국 스마트폰 4개사가 계속 점유율을 잠식하고 있다. 더구나 삼성의 갤럭시 폴드에 대해서도 화웨이가 도전장을 내밀면서 발 빠르게 삼성을 추격하고 있다.
삼성의 반도체 주력 사업인 메모리 분야에서도 ‘중국의 제조 2025’를 통해 중국의 꿈인 반도체 굴기를 시작했다. 이미 반도체 펀드 1기로 약 24조원, 2기로 약 34조원을 투자하는 등 엄청난 자본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중국의 양츠메모리(YMTC)는 향후 10년간 170조원 투자를 통해 삼성의 주력 D램 사업을 쫓고 있다. 3D 낸드플래시 메모리는 올해 64단 양산에 이어 90단을 뛰어넘고 내년엔 128단으로 직행할 예정이다. 푸젠진화(JHICC)·이노트론도 대만·한국의 인력을 스카우트해 D램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지난 1일 창립 50주년을 맞이한 삼성전자가 100년 기업으로 성장할지는 중국 기업의 폭풍 추격을 어떻게 뿌리치고 나갈 것인지에 달려 있다. 이 목표를 위해 삼성전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반도체·디스플레이·통신·가전 분야에서 초기술격차를 유지해야 한다. 고도의 연구개발(R&D)이 선행돼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올 7월부터 시작된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관련 수출 규제는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 소재·부품·장비 산업이 글로벌 수준으로 동반 성장하지 못했다는 취약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특히 이 분야 기술은 미·중 기업과의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 초기술격차의 기술 개발에 글로벌 리더십을 갖기 위해서는 반도체·디스플레이·가전 분야의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글로벌 파트너십 강화와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국내 산업계는 과감한 R&D 투자와 글로벌 최고 수준의 인력 양성 및 확보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세계 1등의 정보통신기술 기업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또 4차 산업혁명 관련 분야의 더욱 선제적이고 지속적인 공격적 투자가 필요하다. 특히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공장, 미국 오스틴 공장, 베트남 공장 등과 같은 해외 현지에서의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확장 투자를 계속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2030년까지 비메모리 분야에 130조원을 투자하고 2025년까지 대형 OLED 패널 사업에 13조원 투자하는 등 대규모 선제 투자가 차질없이 이뤄져야 한다. 또 4차 산업 분야의 과감한 M&A와 신규 산업 진출도 주저해선 안 된다.
당장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향후 10년을 준비하며 10년 후의 한국 반도체 산업을 그리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래야 100년 넘어 지속 성장할 수 있는 글로벌 기업이 될 수 있다. 나아가 사람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글로벌 휴먼테크 기업으로 성장해야 한다. 삼성전자만의 이익 창출이 아니라 글로벌 지역사회와 동반 성장하고 사회적 배려를 하는 기업으로 성장해야 한다. 사람을 생각하는 글로벌 휴먼테크 정보통신기술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이재용 부회장의 혁신과 상생의 경영 철학이 발휘되기를 기대한다.
박재근 /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
중앙일보
가시밭길 걸어 50년 달려온 한국 반도체 산업
지난 11월 1일, 삼성전자는 창립 50주년을 맞이했다. 2018년 244조원 매출액 달성과 10만명의 임직원이 일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대형 TV·냉장고, 반도체 D램, 낸드플래시 메모리, 소형 OLED 패널 등 12개의 글로벌 1위 제품을 판매하고, 2019년도 글로벌 브랜드 가치 순위 6위의 글로벌 정보통신기술 기업으로 지난 50년간 성장해왔다.
이런 성과가 순탄하지는 않았다. 1983년 이병철 회장은 한국의 미래는 반도체 산업에 달려 있다는 확신으로, 삼성전자가 메모리반도체 산업에 진입한다는 도쿄선언을 했다. 기흥 단지에서 시작된 64K D램 생산이 출발이었다. 삼성전자는 도시바·NEC·히타치 등 당시 앞서가던 일본 기업보다 공사 기간을 2분의 1로 줄이고 매년 1개 이상의 신규 D램 라인을 건축하는 과감한 투자로 10년 만에 일본 기업을 따라잡았다.
이건희 회장은 세계 1등 IT 제품주의를 실현하자는 1993년 신경영 선언인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시작으로 기술력을 한 단계 다시 업그레이드했다. 그 당시 일본 D램 업체와는 다른 삼성 고유의 스택(쌓기) 메모리 소자 구조의 개발을 통해 세계 시장 점유율을 46%로 높였다. 국내 무선 전화기 애니콜 소각 지시는 2011년부터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하는 갤럭시의 신화를 창출했다. 반도체 성공 DNA는 소형 OLED 시장에서 80%가 넘는 세계 시장 점유율을 갖는 글로벌 1등 디스플레이 패널 업체 성장으로 이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삼성전자가 대형 TV 시장에서 2006년 일본 소니를 추월하는 발판이 됐다.
그 과정에서 고비가 많았다.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원화 가치가 폭락하자 반도체 설비, 부품 수급에 비상이 걸렸지만 과감한 투자는 계속됐다. 또 2007년 난야 등 대만 반도체 기업들과의 D램 2차 치킨게임은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D램을 팔면 팔수록 손해 보는 위기 상황이었지만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극복했다. 2010년 대만·일본의 생산설비 투자와 증산 선언으로 시작된 3차 치킨게임에서도 일본의 엘피다가 미국의 마이크론에 매각되면서 일본이 D램 사업에서 철수하는 방향으로 귀결됐다.
행운도 따랐다. 2009년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3을 개발해 스마트폰 글로벌 시장을 열고 삼성전자는 갤럭시를 통해 스마트폰 시장의 열풍과 폭발적 성장 기회를 잡아 지금의 글로벌 스마트폰 판매량 1위로 올라섰다. 스마트폰의 성장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성장도 동반해 글로벌 D램 시장 46%와 낸드플래시 메모리 시장 38%를 점유하는 세계 최고의 메모리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이 됐다. 또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사진촬영 이미지센서(CMOS), 전력 반도체 등과 같은 비메모리 사업도 동반 성장하게 됐다. 2017년 반도체 원조 강자인 인텔의 매출액을 추월해 세계 1등의 종합 반도체 기업이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