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Date 2015.3.29
Text Lk 19,35-40
(35)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36)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37)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38)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39)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40)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1. 18세기에 들어서며 계몽주의 철학이 등장합니다. 과학적 검증을 진리의 필수조건으로 삼는 사상입니다. 자연히 신앙과 성경에 대하여서도 과학적인 비평적 연구가 시작되었는데 과학적 검증을 받을 수 없는 성경 내용들에 대하여 믿을 수 없는 것이라며 성경의 권위를 손상시켰고,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 등에 대하여 부인하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찬양하지 않고 인간 예수를 존경하라고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윌리엄 램지 경(Sir William Ramsay)은 무신론자의 아들이요, 자신 또한 무신론자었습니다. 부유했고 옥스퍼드에서 Ph.D를 취득한 학자였습니다. 그는 고고학 연구를 통하여 성경이 거짓임을 증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특히 사도행전이 그릇된 것임을 증명하는 것을 목표로 정하고 성지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성경의 배경이 된 지역에서 고고학적 연구를 하면 할수록 원래의 의도와는 반대로 성경의 기록들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무려 25년 이상 연구 후, 그는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의 기록이 믿기 힘들 만큼 정확한 데 감명을 받았습니다. 마침내 ‘누가의 기록은 가장 세밀한 부분 부분까지 완전히 정확하다“고 선포하였습니다. 고고학적 연구는 사도행전의 역사성을 확인하는 수 백 가지의 사실을 증명해냈습니다. 결국, 그는 한 저서에서 자기가 드디어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선포함으로써 전 비평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이 발굴해 낸 많은 유물들은 그에게 말을 했습니다. 성경은 진리라고,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성경의 권위에 상처를 입히고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려 했지만 유적지에서 발굴한 돌들이 외치는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여러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실 때 하신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40절) 오늘 이 종려주일에 우리는 누가 외치든 외치게 되어 있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38절) 혹은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막11,10)라는 외침을 들으시는 은혜가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2. 먼저, 오늘 읽은 성경에 나오는 군중들의 외침,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는 말의 뜻을 먼저 정확히 알아봅니다.
“호산나”라는 말의 뜻은 ‘우리를 구하소서’입니다. 다시 말하면 군중들은 어린 나귀새끼를 타고 제자들이 깔아놓은 옷 길 위로 오시는 예수님을 자기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왕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이는 당시의 사람들이 예언자 스가랴가 남긴 예언, 즉 슥9,9의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라는 말씀을 믿고 있었다는 뜻도 됩니다. 그래서 ‘호산나’하고 외친 다음 이어서,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라고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라도 소리를 지를 것이라고 하신 그 소리의 내용이 바로 ‘예수님은 구원자’입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예수님께서 이 사실을 사람들이 깨달아 알기를 얼마나 원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당시의 군중들은 입으로는 ‘호산나’라고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구원자’로 믿지 않았다는 것을 그 다음 일어난 몇 가지 사건들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호산나’ 소리를 지르게 하셨습니다. 이 외침을 듣기 위해 준비도 아주 철저히 하셨습니다.
앞에 있는 28-34절 성경구절을 보면 벳바게와 베다니 맞은 편 마을에 아직 사람이 한 번도 탄 적이 없는 새끼나귀를 준비하셨습니다. 왜 남의 나귀를 가져가느냐고 나귀주인이 물으면 “주께서 쓰시겠다”라고 말하고 끌어 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 나귀 주인과 미리 약속하셨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고, 예수님께서 신적 권능으로 그 주인이 순종할 수밖에 없게 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만, 이리 해석하든 저리 해석하든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철저히, 그리고 꼭 그렇게 하시려는 의지가 매우 강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겉옷을 벗어 나귀의 등을 덮고 길바닥에 펼쳤다는 것도 단순히 일시적 흥분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옛날에 왕이 전쟁에 나갈 때는 말을 탔다고 합니다. 하지만 평시에는 나귀를 탔습니다. 그래서 말은 전쟁을 상징하고 나귀는 평안과 평화를 상징합니다. ‘나귀를 탄 왕’은 ‘평화의 왕’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군중들이 ‘다윗의 나라’를 언급한 것도 바로 영원한 평강의 왕으로서의 예수, 즉 메시야로서의 예수를 외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16,16-17에서 베드로가 한 고백,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말에 너무도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여러분도 다들 아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저 훌륭한 성자 정도로 아는 것은 예수님을 안타깝게 하는 일입니다.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는 유일무이한 구원자로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애굽에서 데리고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간 광야에 살게 하며 그들이 깨닫기를 워하신 것도 유일하신 하나님, 상천하지에 하나님 외에는 하나님이 없음을 알아 오직 하나님만 찾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십계명 중 제 1계명이 뭡니까?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이지요. 언뜻 들으면 다른 신도 있는데 나만 섬기라는 말 같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신은 없으니 나만 섬기라는 뜻입니다.
아주 먼 저 옛날부터 지금까지 주님은 오직 당신만이 하나님이시오, 구원자이심을 알게 하고, 믿게 하며, 순종하게 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게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고백할까요? “예수님, 주님만이 구원자십니다. 주님을 믿습니다.”
3. 그러면, 주님은 왜 그렇게 당신이 구원자이심을 알리려 하실까요? 당신이 진짜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진짜요 유일한 구원자이시기 때문에 인생들이 헛된 데 찾아가서 사기를 당하여 결국 무서운 지옥 불에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십니다. 그 사기꾼은 마귀 사탄입니다. 사탄의 대리자 노릇을 하는 것들이 귀신들입니다. 그 귀신에게 속아 귀신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이단괴수들이며 무당들입니다. 이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미신숭배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이에 대하여 요10장에서 도둑과 강도, 월급장이 목자 등으로 표현하셨습니다. “(7)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1)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4)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10,7-15)
예수님은 죄로 인하여 망가진 인생들이 당신에게 와서 믿는다고, 의지한다고, 주님 뜻대로만 살겠다고 고백하기를 원하십니다. 힘들고 지칠 수밖에 없는 인생길에서 오직 주님께 찾아와 주님께 구해달라고, 도와달라고, “호산나”라고 외치기를 원하십니다. 인생을 사랑하사 인생들에게 참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고 그렇게 원하십니다. 고통의 길을 벗어나서 예수님께로 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렘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라고 안타까워하시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라고 초대하십니다. 사55,1-3에서는 “(1)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3)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라고 호소하십니다.
여러분, 평소에 하지 않으시던 이상한 행동까지 하시면서 주님은 사람들이 “호산나”, 즉 ‘우리를 구하소서’라고 주님을 찾아와 부르짖기를 유도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부모라 할지라도 자꾸 찾아와 도와달라고 하면 짜증을 내지만 주님은 절대로 짜증 한 번 내지 않으십니다. 도리어 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주님을 찾으십시오.
4. 여러분, 내일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고난을 헛되게 하여서는 안 되겠지요? 주님께서 그 고난의 길에서 비틀거리신 것은 누구를 위함이며 무엇을 위함이셨습니까? 인생길에서 비틀거리고 있는 당신을 위함이며, 다른 데가 아닌 바로 주님께 와서 “호산나!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기도하기를 원하셔서입니다. 이 고난주간에 열심히 주님을 찾아 주님의 큰 은혜에 푹 젖어드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