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못지 않은 수위… 스크린에 옮긴 노벨문학상

[누구도]

원작 못지 않은 수위… 스크린에 옮긴 노벨문학상 ‘단순한 열정’
[영화 리뷰]

김성현 기자
입력 2023.01.25 03:00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아니 에르노의 원작에 바탕한 영화 ‘단순한 열정’. 발레리노이자 배우 세르게이 폴루닌(왼쪽)과 라에티샤 도슈가 남녀 주인공을 맡았다. /영화사 진진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프랑스·벨기에 합작 영화 ‘단순한 열정’(2월 1일 개봉)은 지난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 여성 작가 아니 에르노(82)의 동명(同名)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 1991년 출간된 원작 소설과 마찬가지로 외국 외교관인 연하 유부남과 나눴던 밀회 경험을 고스란히 담았다. ‘경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다’는 작가의 지론은 자신의 불륜일 때조차 예외가 없었다. 상대 남자에 대한 그리움에 사로잡혀 지하철역을 놓치고, 정사의 흔적을 간직하기 위해 샤워마저 미루는 일화까지 원작은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어쩌면 그렇기에 ‘치정(癡情)’이라 부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의 묘사 수위 역시 원작 못지않다. 성애(性愛) 장면은 물론, 남녀 전신 노출도 수차례 반복된다. 활자의 예술인 문학이 영상 매체인 영화로 옮겨졌을 때 배가되는 직접성 때문에 자칫 불편함이 들 수도 있다. 국내 상영 등급은 당연히 청소년 관람 불가.

레바논 감독 다니엘 아르비드가 아니 에르노 작품을 각색해 만든 영화‘단순한 열정’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레바논 감독 다니엘 아르비드가 아니 에르노 작품을 각색해 만든 영화‘단순한 열정’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영화는 2020년 9월 토론토 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하지만 국내 개봉을 앞둔 현 시점에서 복기했을 때 결과적 실착이 두 가지 있다. 시대적 배경과 캐스팅이다. 우선 소련 붕괴 직전의 냉전 말기라는 원작 배경을 21세기 현 시점으로 옮겼다. 그러다 보니 파리 주재 외교관인 상대 남성 알렉산드르(세르게이 폴루닌) 역시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아니라 푸틴 대통령을 지지하는 러시아 대사관 직원으로 엉뚱하게 바뀌었다.


공교롭게 남자 주인공 역을 맡은 러시아 발레리노 겸 배우 세르게이 폴루닌(33) 역시 실제로 어깨와 가슴에 푸틴의 문신을 새긴 극렬 지지자다.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에는 푸틴을 옹호하는 발언으로 서방 공연이 취소되기도 했다. 한국이 지각 개봉이지만 그 시차를 감안하더라도 ‘온몸이 문신투성이인 친(親)푸틴 외교관을 사랑하는 프랑스 여주인공’이라는 영화 설정에는 공감대의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는 가슴의 푸틴 문신을 분장으로 가렸다고 영국 가디언은 전했다.

에르노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자기 고백적 성격을 충분히 감안하지 않은 구성 방식 역시 아쉽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불륜을 고백하는 여주인공의 초반 독백 장면은 인상적이다. 하지만 그 뒤에는 다소 진부한 치정극으로 전락한다. 원작은 ‘삶이 가장 아름다웠던 그 시절’과 작별하면서도 동시에 간직하고자 하는 작가의 모순적 몸부림에 가깝다. 이별 직후 시점에 과거를 돌아보는 방식을 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영화는 현재적 시점에 머무느라 그 애절함까지 온전하게 담지 못한다.

앱설치

김성현 기자
김성현 기자
문화·라이프 많이 본 뉴스
혹평 속출인데 세계 1위? 넷플릭스 ‘정이’ 미스터리
혹평 속출인데 세계 1위? 넷플릭스 ‘정이’ 미스터리
“집안 어르신 소장품…” 진품명품 최고가 찍은 ‘이 청자’ 뭐길래
“집안 어르신 소장품…” 진품명품 최고가 찍은 ‘이 청자’ 뭐길래
원작 못지 않은 수위… 스크린에 옮긴 노벨문학상 ‘단순한 열정’
원작 못지 않은 수위… 스크린에 옮긴 노벨문학상 ‘단순한 열정’


100자평4
도움말삭제기준
100자평을 입력해주세요.
찬성순반대순관심순최신순
정의 시인
2023.01.25 11:49:50
타락한 노벨상

답글작성
9
0
블랙재규어
2023.01.25 08:46:34
소설은 fact를 fiction화 하는 작업이다. fact 그대로라면 document 겠지. 그냥 포르노 보는게 더 낫지 않을까?

답글작성
9
4
zeni
2023.01.25 07:52:21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다는 작가의 전제에 노벨문학상의 수여에 의심이 들었던 작가. 경험만을 고스란히 썼다면 그건 이미 소설의 영역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답글작성
9
4
pellegrino
2023.01.25 13:10:56
노벨문학상은 정치인 처칠과 음악인 밥 딜런 등을 수상자로 선정하는 등 스웨덴 한림원이 문학적 성취보다 반체제적 성향을 중시한다고 하여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다. 작년에 수상한 에르노의 경우는 작가가 30~40년전에 쓴 작품을 기준으로 선정한 것 자체가 노벨문학상의 현주소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원작을 비틀어 각색하였고 배우 선정에도 작가의 인물상과는 거리가 멀어 원작을 살려 영화화했다고 보기 어려우며 감독이 여자인데도 불륜에 대한 여성의 심리 묘사와 연애의 현실과 이상에 대한 문학적 소묘가 부족한 점은 감독이 작품 해석에 있어 1990년대 작품을 21세기 사고에 기초한 것 같다는 인식을 받는다. 그리고 영화가 원작 소설을 소설보다 잘 표현했다는 평가는 바든 경우가 드물다.

답글작성
1
0
당신이 좋아할만한 콘텐츠
올해 연금저축 600만원까지 세액공제… 최대 99만원 돌려받아요
이번주 예상분석번호 공개! 나만 모르던 로또공식!
최상의 확률조합! '이것' 제대로 한다면 로또 대박...!
국내선 벤츠가 이겼지만, 글로벌 시장에선 BMW가 이겨
로또 자동으로 구매하지말고 '이것'
40년간 책 122권 쓴 이시형 박사...89세에도 건강한 5가지 비결 [송의달 LIVE]
Recommended by

많이 본 뉴스
1
최첨단 탱크·스텔스기 있지만
러시아가 투입 못하는 속사정
2
정부가 이런 부양책 내놓으면 집값이 ‘찐바닥’이다
3
“7수 해서라도 의대” 무한 半修에 대학 초토화[태평로]
4
“밤 11시 신고 출동하자 고교생이 ‘집 데려다 달라’”…경찰의 분노 글
5
골프대회 1라운드 치지도 않고…트럼프 “힘 좋아서 우승” 자랑
6
설 전날 83세 노모 몽둥이질한 중국 아들 부부…손자가 영상 올렸다
7
“안철수 당 대표 되나요?”…나경원 불출마에 안랩, 상한가
8
美 에이브럼스, 獨 레오파르트2... 주력 탱크 우크라 보낸다
9
전쟁터 끌려갈라… 러 파견 北 노동자 9명 집단 탈출, 국내 입국
10
나경원, 당대표 불출마… “화합·단결 위해 용감하게 내려놓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