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환상이다”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5년전에 나는 존재하는가? 5년전에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다. 즉 5년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나이고 5년전에 나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또한 사라질 것이고 미래의 또 다른 나는 생성될 것이며,지금의 나와는 다른 나일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과거와 현재 미래의 나를 동일시 하는 것은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기억하기 때문이며,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를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과거를 기억하지 아니하면 나는 더이상 과거의 나와는 다른 나이며, 다시 기억하면서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의 동일성을 느끼면서, 과거에 대한 은혜도 복수도 갚기도 한다. 나는 과거로 부터 미래에까지 과거를 기억해 가면서 현재의 나를 과거의 나로 인식하면서 나를 기억하는 연속에 의해 나를 확인한다.
나는 과거의 나를 확인하면서 내가 살아있다고 생각하기에 과거를 기억하지 아니하면, 나는 과거의 나하고는 별개의 그러나 과거의 나가 기억을 유지하게 할 수있었던 장치인 몸을 그대로 기반으로해서 새로운 나의 기억을 만들어가는 다른 나가 된다.
5년전의 나는 5년전에 죽었고 존재하지 아니하며 지금의 내가 5년전에 죽은 나를 기억하고 그 기질대로 살면서 5년전의 내가 지금도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5년전의 나는 존재하지 아니하고 5년전의 나에 대한 기억이 지금의 나에게 살아있으며, 기억의 축적에 의해서 세월의 연속의 나를 인식하는 것이다.
5년전에 나는 존재하지 아니하며, 지금의 나는 스스로 존재하지 아니하고, 기억에 의하여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본질로서의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기억이 카피되서 업로드 되었다고 생각해보자. 카피가 된 나가 나인가, 아니면 업로드 되어 그 기억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또 다른 나가 나인가? 둘다 나이다. 둘다 5년전 죽은 나의 기억을 기반으로 현재의 삶을 영위하는 각자 다른 나인 것이다. 마치 유전적으로 똑같은 쌍둥이 형제가 태어나기 이전 찰나에 하나 이다가 둘로 태어남으로 서로 다른 나가 되고 서로 다른 나를 살아가는 경우와 같다.
내가 꿈을 꾼다. 내가 꿈을 꿀때에는 꿈을 꾸는 나는 없으며, 꿈속의 내가 꿈을 꾸는 나를 대신해서 꿈속에서 삶을 현실화한다. 하지만 내가 꿈을 깨는 순간 꿈속의 나는 사라지고 꿈을 꾼 나로서 꿈속의 나를 기억한다. 그렇게 나는 꿈을 꾸기전의 나, 꿈속의 나, 꿈을 깬 나의 연속으로 의식이 인지하는 나를 나로 인식한다. 즉 꿈속의 나와 꿈꾸는 나는 그 동일성이 인정되는 기억의 나이다. 그러나 기억이 카피되어 업로드 된 나와 피카피된 나는 이후 다른 경험에 의해 기억이 달라지면서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는 각자의 내가 된다.
하나님이 우리가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우리를 기억하지 아니하겠다는 말씀은 우리가 그의 기억속에서 존재한다는 뜻일가?
5년전의 나는 존재하지 않으나 5년전에 지은 내죄를 지금 존재하는 내가 안고 간다는 것은 5년전의 나를 기억해가며 책임을 지거나 책임을 회피한 채로 변화된 지금의 나의 모습이 상을 받거나 벌을 받는 자격으로 서의 모습으로 바뀌어져 있기 때문일까?
그렇게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시면 기억되는 모습만 남아있는 우리는 새사람이 되었는 것일가? 죄를 사랑하여 타락하던 내가 거듭난다라는 것은 죄를 사랑하며 살던 기억에 의존하지 아니한채 다른 미래의 기억을 생성하면서 다른 나가 된다는 것일가?
과거의 나는 죽고 내가 거듭났다면 과거의 나와 동일 성이 인정되는 현재의 나 이라는 애기와 함께 과거를 기반으로 미래를 살아갈 수 있었던 또 다른 나는 더이상 과거를 기반으로 그 습성에 의한 미래의 생각이 기억할 수 있는 현재를 만들지 못한채 존재하지 아니하게 되었다.
본질적인 나는 존재하지 않기에 우리가 soul 이라 생각하는 물질은 없으며, 내가 이 세상에서 죽어도 저 세상에서 나를 남게하는 나의 본질, 혹은 이 세상에서 귀신으로 나를 남게하는 본질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신의 기억에 의존하여 살면서 죽은 후 살았을 때의 죗값이 인정된다는 것은 죽은 후의 우리의 모습이 죽기전에 행위한 모습의 결과의 반영이면서 그렇게 우리의 죽기전과 죽은 후의 동일성을 인정하게 하는 영혼이라는 것이 신의 기억속에 깃들어져 있다는 것이다. 즉 신의 기억이 우리의 영혼이며, 예수님이 “영혼을 죽일 수 있는 자”를 두려워하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이 기억하므로 우리의 영혼이 산다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