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남평 드들강변에 조용한 카페가 있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 커피를 만드시고 한번씩 가보면 조용하니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들곤 한다.
이번에 민생회복지원금이 나왔는데 마침 어머님이 근처에 사셔서 뵈러갔다가 갑자기 소낙비에 들리게 되었다. 아메리카노 커피한잔을 들고 주인장 시집을 읽고 있으니 참으로 잘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3장중에서 1장만 읽었을 뿐인데...그래도 흡족했고 충분히 돈을 지불하고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껴졌다. 2,3장은 일본을 다녀온 후에 마저 읽었고 사인을 받으러 카페에 들러서 주인장 홍관희 시인에게서 사인을 받게 되었다. 몇작품을 소개한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남평 드들강을 가게 된다면 '강물 위에 쓴 시'라는 카페를 들려보시라고 추천하고 싶다. 사랑1그램에 수록된 몇편의 시를 옮겨본다. 시가 짧고 간결하면서 위안이 되고 가끔은 울림을 주기도 한다. 보도연맹에 가입해 모진 고문과 풍파를 겪었을 아버지를 향한 원망과 애잔함 그리움 또한 이 시에 잘 담겨있다.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주에 30년 정도 살면서 이런 훌륭한 시인이 가까이 곁에 있어서 너무 좋다.
1. 새
새는
자신의 흔적을 지우면 난다.
흔적을 지워
가벼운 날개를 유지한다.
사람은 머리로 새를 꿈꾸지만
새는 사람을 꿈꾸지 않고
자신의 날개로 자유를 꿈꾼다.
창공을 나는 새를 쳐다보며
사람은 새를 노래하고
자신과 새와의 거리를 재지만
새는 제 삶의 무게를
날개에 실어 나를 뿐이다.
사람을 창공의 자유를 꿈꾸며
지상의 자유에서 멀어지고
새는 창공의 자유만을 꿈꾸며
창공에서 날개의 자유를 얻는다.
사람은 죽어 몸을 버리고
이름을 남기지만
새는 죽어 좌우 날개를 버리고
창공을 남긴다.
2. 마지막 이사
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로 난 일생 동안의 길들이
어느 순간 한꺼번에 몸 밖으로 나가
영원으로 닿는 길 하나를 내는 것이다.
어느 순간
한 사람의 일생이 우루루 한꺼번에 몰려왔다.
한꺼번에 떠나갔다.
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로 난 시간의 문이 모두 닫히고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수시로 열리는 기억의 자동문 하나 달아 주는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 여행이 계속된다는 말이고
여행이 끝났다는 건
주민등록을 옮길 필요 없이 자유롭고 평화로운
그 어느 곳으로
마지막 이사를 하였다는 말일 것이다.
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잘 살아야 할 이유를 알아차리게 해 주는 것이다.
밤하늘에 처음으로 보이기 시작한 작은 별 하나
그 별이 뜨는 이유를 알아차리게 해 주는 것이다.
3. 강물 위에 쓴 시 3(부제 드들강에서)
드문드문 내려앉는 햇볕을 쪼개어 쬐며
풀잎 같은 걸음으로 하루에 하루를 산다.
발걸음 옮긴 만큼 남은 길은 짧아지고
가 버린 것들과 다가올 것들에 대한 경계 쯤에서
나만 한 크기로 묵묵히 흐르고 있는 드들강을 찾아
강물 위에 풀꽃 같은 시를 쓴다.
쉬이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지만
그냥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닌 나의 시
강물 위에 쓴 나의 시는 더 낮은 곳을 향해
흐르면서 비로서 시가 되어 간다.
만나야 할 것들을 천천히 속 깊이 사귀면서
조금씩 조금씩 서로 익어 간다.
풀잎 같은 걸음으로 하루에 하루를 살아
내가 조금씩 내가 되어 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