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영축산 설법, 자수로 수놓다
돈황 장경도 출토된 우수 변상도
자수로 영축산 설법 모습 그려내
오존도 구성… 섬세한 표현 눈길
그림①. 돈황 막고굴 장경동에서 나온 〈영축산 석가설법도〉의 모습. 8세기에 조성됐으며 영국 대영박물관에 수장돼 있다. 자수로 이뤄진 불화라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변상도(變相圖)’라 하면 비단에 채색으로 그린 불화나 혹은 경전 속에 삽입된 목판화를 떠올리게 되는데, 이와 다르게 바늘로 한 땀 한 땀 수놓은 자수(刺繡) 변상도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8세기 돈황 벽화 〈영축산 석가모니설법도〉로 100여 년 전 영국으로 건너가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그림①)
이 자수작품은 색채가 풍부하고 솜씨가 뛰어나 돈황 장경동에서 출토된 가장 우수한 작품 중의 하나이다. 자수 작품을 말하자면 일본 나라국립박물관 소장(勸修寺舊藏)의 자수 〈석가모니설법도〉(일본불교미술원류·254쪽 참조)와 비견된다. 이 작품은 서하(西夏)시기에 제작됐으며 크기는 207×157cm이다.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영국의 오렐 스타인 수집품 중에는 다른 자수작품도 있지만 대부분 장식적인 것이 많은데, 이 작품은 마치 비단에 채색으로 그린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어 주목된다.
이 그림은 오존도(五尊圖)로 구성돼 있는데, 위쪽에는 화개와 비천, 아래쪽에는 수많은 공양인상이 배치돼 있다. 붓다는 청색 꽃잎이 살포시 핀 연화보좌에 서 있고, 편도형(扁桃形)의 신광은 몸을 감싸고 있으며 두광(頭光)까지 뻗어 있다. 만다라의 배경에는 법화경(法華經)에 나오는 영취산이 있다. 붓다는 우견편단(右肩偏袒)이며 오른손은 수직으로 내리고 왼손은 옷자락을 잡고 있다.
이 자수는 오랫동안 장경동에 방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두 보살은 상(像)의 일부가 훼손됐으나 다행히 주존인 석가모니불은 잘 보존되어 있다. 주존 주위의 각 상들의 배치는 우리가 조각상에서 보았던 각 상들의 배열방식과 같이 어느 정도 공간의 진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특징은 이 작품이 초당(初唐) 시기에 제작되었음을 말해 주고 있는데, 이 시기에는 그림이든 조각이든 공간감과 양감의 표현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그러나 이 자수벽화는 석가모니 붓다의 상이 비교적 생경하고 부드러운 호선(弧線)으로 그려진 가사(袈裟)가 왼쪽 어깨에서 앞가슴을 거의 사선으로 가로 질러 오른쪽 겨드랑이 밑에 밀착된 느낌을 준다. 가사의 겉면은 물결무늬로 능히 안감과는 다른 색깔임을 발견할 수 있다. 왼손에는 두 개의 매듭이 밑으로 늘어져 있다. 특히 앞가슴을 가로지르는 매듭 상단이 오른쪽 겨드랑이에 단단하게 밀착된 점, 가장자리에서 내려오는 물결 기복을 직선으로 딱딱하게 그려낸 점이 눈에 띈다. 가사는 청색 실로 초본의 먹선을 따라 섬세하게 수놓았는데, 그 실이 이미 끊어지고 결손된 부분에서 우리는 초본의 먹선을 볼 수 있다.
모든 불상의 얼굴을 보면 그 표현에 약간의 변화가 있음을 볼 수 있다. 가장 생동감 있는 표정은 붓다의 왼쪽에 서 있는 늙은 제자 마하가섭으로, 치아의 윤곽선을 비롯하여 주요 선들이 푸른색으로 돌출돼 있다. 눈썹은 비단 바탕에 엷은 먹으로 굵게 그렸는데 그 위에 가는 털을 실로 수놓았다. 검은 눈동자는 비단 바탕에 직접 먹으로 그려졌으며 수를 놓지 않았다. 오른쪽 제자의 얼굴(아난존자)은 일부분만 남아 있지만 표정이 부드러워 보인다. 검은 눈동자도 비단 바탕에 먹으로 찍어내고 눈썹은 파란색 실로 바늘 발은 가늘고 길게 처리했다. 얼굴부터 머리까지 옅은 은색 실을 사용하며 여러 가지 색상을 조합해 부드럽고 섬세하게 연출하고 있다.
두 보살의 눈썹과 안와선(眼窩線, Orbital gland), 살구씨 같은 눈의 윤곽을 푸른색의 호선으로 표현하였다. 검은 눈동자는 비단 바탕에 그리지 않고 자수에 먹으로 그렸다. 콧등과 입술 선은 같은 색상을 사용하였으며 원래는 담홍색일 수 있으나 현재는 누런색으로 바랜 상태이다.
붓다의 얼굴은 더욱 공을 들였는데, 머리는 짙은 감색이고 얼굴과 귀의 윤곽선은 밝은 남색을 사용하고 있다. 머리의 육계 자리에는 둥근 모양의 흰색 견사(絹絲) 바탕이 남겨져 있고, 주변을 맑은 남색으로 처리하여 마치 보석처럼 보인다. 가느다란 눈썹은 예쁜 호선으로 그렸으며, 색상은 머리카락의 짙은 감색에 비해 은은한 음영을 띠고 있다.
눈의 윤곽은 남색으로 처리하고, 눈의 흰자위는 얼굴보다 흰 견사를 사용하고 있는데, 감침질(hemming stitch) 수법을 차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자수의 수준이 꽤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세부적인 부분들에서 정교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같은 세부사항은 불화에서 비범함을 보여 줄 뿐 아니라 작품 자체의 제작연대가 이르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처럼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서 불상의 생동감을 높이는 특색은 초당에서 성당까지의 작품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두 보살의 손을 보면 세밀한 부분까지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예를 들면 석가모니의 오른쪽에 합장하여 시립(侍立)한 보살은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구부려 다른 손가락의 그림자 속에 숨겨져 있다.
왼쪽에 시립한 보살은 오른손을 뻗어 손바닥을 바깥쪽으로 향하고 있는데, 엄지손가락은 이미 파손되고 손목은 잘 보존되어 있는데 유약하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왼손은 손목과 손가락이 그대로 남아 있어 우아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이러한 정교한 부분은 초본의 묵(墨)선을 따라 자수로 새긴 것이다. 그림의 위쪽 비천이 주위에 흩뿌리는 꽃송이 등 디테일까지 이런 방법으로 처리하고 있다.
이를 종합하면 돈황 초당시대 벽화에 비해 제205굴 서벽의 인로보살도(引路菩薩圖, 그림②), 제401굴 공양보살도 등 가장 정교한 벽화에 비견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작품은 오랫동안 접혀져 있어 파손된 부분을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은 놀라울 정도로 잘 보존돼 있다. 화면의 양단은 파손 없이 잘 남아 있고, 위 아래쪽은 남아 있어도 수cm의 자수 무늬가 없는 비단 바탕에 불과하다.
그림②. 9세기 조성된 돈황 막고굴 장경동의 〈인로보살도〉. 영국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이 작품은 원래 삼베 위에 가는 재질의 얇은 비단을 겹쳐 놓은 것이다. 비단은 많이 훼손됐지만 화면 오른쪽 윗부분은 남아 있다. 작품 전체는 이 얇은 비단과 삼베를 각각 3폭 연접하여 꿰맨 것으로, 꿰맨 바늘구멍은 자수 밑에 완전히 숨겨져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여러 군데에서 바늘구멍이 드러나 보이고 있다.
이 자수 작품은 런던으로 옮겨진 뒤 다시 마포(麻布)로 배접돼 마치 유화처럼 변했고 액자에 유리를 끼웠으며 커튼에 덮여 오랫동안 대영박물관 북쪽 계단 평대(平臺)에 방치되어 있었다. 1971년에야 박물관 2층 진열실을 개조할 때 특수 제작된 상자에 넣어 동양회화진열실 입구의 눈에 띄는 곳에 진열했다.
이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면 먼저 그 원본을 직접 비단 바탕에 그려 넣은 뒤 그대로 수를 놓은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주선(主線)은 기본적으로 짙은 감색 명주실로 수놓은 것이다. 그러나 일부 드러난 산석(山石), 오른쪽에 시립한 보살의 가사 등은 감색 대신 갈색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외올의 명주실로 수놓을 범위를 열심히 채웠는데, 이를 스타인은 단수(緞繡, 홈질)라고 했지만 길고 매끈한 바늘 놀림으로 보아 할수(割繡, 박음질)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런 방법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직선 바느질뿐만 아니라 비단을 짜는 듯한 바느질 방법을 많이 쓰고 있는데, 왼쪽에 시립하고 있는 보살의 중선(中線)처럼 같은 색의 실로 수놓은 부분에 뚜렷한 경계선을 더하는 것이다.
이러한 수법은 붓다의 얼굴 색상을 변화시키는 것 뿐만 아니라 연화좌의 꽃잎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으며 두 보살의 옷자락 무늬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배경에서 바위가 맞닿은 부분은 서로 수직적 바느질로 바위 표면의 울퉁불퉁함을 표현하고 있다.
각 부분을 메꿔 나아갈 때 바늘땀의 길이나 사용하는 실의 종류를 바꿔 색상의 미묘한 변화를 주고 있다. 면적이 넓은 부분은 거의 꼬이지 않은 외줄로 되어 있으며, 바늘땀은 8~10mm로 표면에 광택이 난다. 그러나 여러 군데에서 수(繡) 바늘이 왕복하면서 두 가닥의 실이 가볍게 꼬이기도 하였다. 한 가닥의 실은 꼬이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이 특징은 암산의 청색 부분에 뚜렷하게 나타나 있으며 보살의 의상에도 군데군데 나타나고 있는데, 가는 실로 수놓아진 부분에 실이 꼬여 있으며 아주 촘촘하다.
그리고 이 부분은 바늘땀이 비교적 짧으며 겉으로 드러나는 느낌도 조금씩 다르다. 그 단적인 예가 붓다의 아래로 뻗은 오른손인데, 상하부의 수놓은 방법은 같지만 바늘땀은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갈수록 길이가 짧아지고 있다. 또한 하부로 갈수록 수놓은 실 가닥이 공간을 촘촘히 메우지 않고 땀과 땀 사이에 거리가 있어 틈 사이로 비단 바닥이 드러나 상부와는 전혀 다른 효과를 주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과 달리 이 작품은 처음 완성했을 때 아래 팔뚝과 손바닥이 이러한 기법으로 인해 금색 어깨나 위 팔뚝과는 다른 효과를 내면서 좀 더 밝았을 것이다. 이러한 효과는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으며, 손을 확대해 보면 자수의 선이 손바닥과 손가락의 곡선을 따라 다르게 그려져 있다. 지금은 손의 앞부분과 손목에서 어깨까지 이어지는 윤곽선이 검은색으로 변하여 원래의 남색을 알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