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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상록 제 20화
2012.10.1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먼저 접하는 사고의 출발점은 누군가에 의한 ‘교육’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생명본능에 따른 원초적(살고자)행위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식물들의 공통점이겠으나, 유별나게도 인간에겐 너무나도 복잡하고 다양한 조건들이 따라 붙어 왔습니다. 복잡하다는 건, 그만큼 문제발생의 소지가 많을 수 있다는 걸 전제하고 있습니다. 단순명료하지 못하다는 건, 그 만큼 위험성이 존재한다는 걸 방증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 가장 심각한 문제 중에 하나는 바로 ‘교육’과 관련된 일일 겁니다. 그로 인하여 온갖 갈등과 대립으로 사회적 혼란은 물론이요 사람과 사람, 집단과 집단의 사회구성원들 사이엔 각종 불신과 증오가 나라를 어지럽혀 왔습니다. 순전히 소수 권력자들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선량한 국민들이 그 스스로 희생양이 되어왔습니다. 그런 문제를 발생시키고 진행되어온 선두 중에 하나가 바로 비뚤어진 ‘교육제도’입니다. 교육시스템입니다. 반인륜적이고 반인도적인 교육교재(내용)들입니다. 모두 알다시피 대만과 중공(중국)도 우리의 남과 북처럼 각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이념이 다른 정권이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대만정권은 공산 중국에 대하여 우리나라처럼 반공이데올로기 교육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들처럼, 세상에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증오심’을 교습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들처럼, 언제 어느 때 나타나 나와 가족과 주변사람들을 몰살시킬지 모를 -살인마 공산당의 존재를 상상하며 성장기를 보내진 않았다는 겁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면 또 누군가는 “그들은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루지 않았으니까 그럴 수 있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반드시 나타날 겁니다.
그러나 그건 잘못된 반론입니다. 왜냐하면, 6.25전쟁이 일어나기 이전, 그러니까 이승만 독재정권 하에서 이미 전쟁 아닌 전쟁을 (전면전보다 더 고통스럽고 참혹했던) 전쟁을 수시로 치르고 있었습니다. 입만 열면 북진통일을 주장하던 이승만,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던 제주도민들을 무자비하게 살육했습니다. 군대를 파견해 진압하는 과정에서 8만 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그 밖에도 공산당을 척결하겠다는 명분으로 민간인들을 비롯한 항일운동 가담자들의 죽임이 잇따랐으며, 그 와중에 김 구, 여운형 등도 저격당하는 전쟁이 진행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동족상잔의 비극(전쟁)이 있었기 때문에 그토록 이데올로기 교육이 필요했다’는 주장은 허위입니다. 거짓입니다. 사대주의자 이승만의 매국노전력을 감추기 위한 기만술책의 하나로 무수한 국민들의 생명을 죽이고 짓밟은 겁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통탄할 일은 그 다음이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집단과 집단. 지역과 지역을 이간질시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문화가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넘어서서, 이 나라 이 민족의 일상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버렸다는 겁니다.
이승만 식 사대주의 독재자들이 대를 이어 정권을 찬탈하며 뿌리 깊게 심어 놓은 이데올로기의 도구 중에, 언론과 더불어 교육시스템이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는 겁니다.
정작 분노해야 할 일엔 눈과 귀를 닫아버리고 입마저도 꽁꽁 단속하며 사는 게 미덕이요, 애국의 길인 것처럼 ‘교육’받아왔습니다. 지역차별, 계층차별, 업종차별, 학력차별 등은 마치,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너무도 당연한 의무요 권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한 인간이, 참된 인간(생명)이 되기를 거부하게 만들었습니다. 타인을 존중하거나 배려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타인을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는 것처럼 - 사고력과 행동의 시스템이 일상으로 획정되었습니다.
첫 째/ 대학 입학고시
쉽게 대학에 갈 수 있게 해야 한다. 또한 자신이 진정 원하는 학과에 진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학교는,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갖기 위한 ‘직업전문기관’이어야 한다. 그런 이유로 대학을 들어가기 위한 관문이 현재와 같이 ‘지옥’이 되어서는 안 된다.
* 시험제도: 3~4지 선다형의 객관식 위주/ 절대 평가
-위의 시험제도가 가져 올 긍정적 효과 및 사회현상
1. 반 동료나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시험공부를 할 수 있다.
1. 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적대적 경쟁상대로 친구나 동료를 생각하지 않는다.
1. 상대 평가가 아니므로 굳이 과외를 받을 필요 없어, 사교육비 제로 가능.
1. 학업성적, 대학선택 및 진학 스트레스 해소. 고액 과외학생과 저소득층 학생간의 위화감
해소. 소외감 및 열등감 등으로 인한 학교 폭력원인 제거, 해소.
*주관식 서술형을 도입하기엔.....그동안의 일방적 주입교육(학교,언론,제도,환경)등의 폐해로 인한
역사인식과 사회정치 인식이 지나칠 정도로 비뚤어져 있음으로 해서 그걸 바로 잡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이러한 환경 여건 속에선 평가자의 지극히 사적 감정이나 사익적 관점이 평점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 대학교 형태
- 해당 지역별(문화, 정서, 지리적 특성 제고), 혹은 대학 별 특정 과목(전문가 양성을 위한)을 균형 있게 배치시킨다.
-특정 대학 편중 없이 정부(중앙정부, 지방정부)는 모든 대학에 학생들이 원하는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일정부분 학자금 및 운영재정을 지원한다. (단, 정부지원금과 학생들 학자금에 대한 감사가 철저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조건 확립)
* 교육 시스템
교육 과목 및 가치
다른 생명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처음 태어날 때는 한낱 동물에 불과합니다. 동물이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 교육 이루어지는 것이겠습니다. 그러나 교육이 곧 긍정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건, 멀리 갈 것도 없이 일제 강점기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매국노 사대주의 독재정권 치하에서의 교육에 의한 폐해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이 듭니다.
어릴 적부터 저는 어른들로부터 수시로 교육받았습니다. “전라도사람을 가까이 하지 마라, 처음엔 간이라도 빼줄듯 갈룽피우다가 어느 순간 부지깽이까지 모조리 훔쳐 도망간다.”
‘공산당’이라고 명명되는, 도저히 사람이라고 상상되지 않는 괴물과 더불어 전라도 사람 역시도 공산당에 버금가는 -그야말로 천하에 있어서는 안 될 괴물이거나 흡혈귀였습니다. 더구나 그 당시 우리 마을에는 단 한 사람의 전라도출신을 구경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현상은 과거가 아닙니다. 지금 현재 충청도지역의 정서입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정치에 관심 갖는 걸 무슨 범죄라도 되는 양 생각하는 사람들이지만, 대통령 박근혜는 당연합니다. 지나가는 여성의 옷차림이 좀 야하면 불같은 분노를 쏟아내며 동조를 구합니다. 갖은 쌍욕을 쏟아내면서, 그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을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봅니다. 대부분 최소한 고등학교나 대학을 수료한 사람들임에도 불구함에도 그렇습니다. 진정 분노하며 목소리를 내어야 할 일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면서, 한낱 특정 개인의 사생활에 대해선 사사건건 트집 잡아 도덕 같지 않은 도덕적 자부심으로 소중한 시간들을 소비하고 배설하는 데 열정을 쏟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사람들이 과연 '도덕적'이냐,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생각해 보면, 이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점의 본질은 결국 ‘교육’에서 비롯되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집단화가 누군가에 의한 통치의 필요성을 야기 시켰으며, 어떠한 통치자이냐에 따라 통치자 개인의 성향에 의해 이데올로기라는 장르의 생성을 불러왔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문제의 본질은 교육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각 가정에서 할 수 없는(없었던) 교육(인격형성)을 공교육에서 감당해 주었어야 하는데요. 일명 ‘교육’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지식장사꾼들의 부(富)축적에 온 나라의 부모들이 죽을힘을 다해 동원되는 사태를 조성하게 했습니다. 더불어 잘 살아보겠다는 게 아니라, 나만 잘 살고 출세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지식들이 이 나라를 통째로 말아먹어 왔다는 겁니다.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그들 스스로가 사회구성원으로써의 역할을 방기하고 외면하게끔 하는 교육이 바로 오늘날의 비극을 가져왔다는 겁니다. 무엇보다도 각 개개인이 처한 환경이나 상황과는 동떨어진데다, 실제 삶과 연관성이 그다지 가깝지 않은- 그야말로 지식‘충’이 되길 강요당해 왔던 교육, 그 교육을 바로 잡지 않는다면 그 어떤 미사여구나 거대담론으로도 이 나라를 바로 세울 수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도대체 지식이란 무엇입니까?! 타인과의 원활한 교류 교감을 위해서 만들어져 공급된 게 글자가 아니던가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실제 생활에서 얻어진- 경험을 통해 익힌 지혜를 좀 더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는 목적이 아닙니까? 학교 폭력이나 왕따는 비단 오늘날의 문제가 아닙니다. 물론 그 방법이나 양상은 당시의 정치 사회적 환경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습니다, 만은. 예전에도 왕따와 폭력은 존재했었습니다. 다만 겉으로 드러내거나 드러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일제시대를 거치고, 청산하지 않은 일제잔재들을 그대로 이양 받은 이 나라 교육은 그야말로 사대주의(힘센 자에게 복종하는)를 바탕에 둔 것이어서, 각 개개인의 특성이나 특기를 계발 발전시킬 기회를 아예 박탈해버렸습니다. 실제 생활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 지식나브랭이들을 끊임없이 주입시켰습니다. 그리고는 커트라인을 만들어 놓고 골인하는 사람들에게 출세의 기회를 부여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자식에게만은 자신들의 서러움을 물려주지 않으려 등골 빠지게 자식들 뒷바라지에 나섰습니다. 그 교육이 참된 내용인지, 그릇된 건지 판별하거나 인식할 수 있는 기회와 여유를 갖지 못한 겁니다.
그러한 여건 속에서 그 자식들은 자식들대로, 지식빨대기로 자라느라 제 나름대로 머리통 쥐났던 게 더 선명하지, 자기 부모님들 개고생했다는 건 그다지 크게 와 닿지 않게 되어버린 겁니다. 그러다 보니 부모자식간의 의사소통뿐만 아니라, 정서적 심리적 심정적 거리감이 생성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겠습니다.
만일에, 우리 교육내용이 실제 생활과 근접하고 생활중심의 인성교육이었다면 어땠을까요?
개개인의 특성을 존중하여 계발하며, ‘나’보다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 보는 교육방법이 실행되었다면? 역지사지(易地思之)가 본바탕이 되는 인성조성을, 교육의 가장 핵심이요 중점과제로 삼았다면?
또 하나,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 밥 먹고 잠을 자고 공부하고 일하는 것, 그 모든 행위가 정치와 무관할 수 있는 게 단 한 가지도 없다는 사실을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교에 이르기 까지 - 이론을 기초로 한 현장답사 및 학습을 통해 알려줘야 합니다.
밥상에 밥과 반찬이 오르게 되는 동안에 이루어진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에 대해 말해야 합니다. 자신들을 편안하게 하는 집과 옷과 학습교재 등을 만들어내고 있는 노동자들의 수고에 대하여, 아주 구체적으로 전해줘야 합니다.
더구나 오늘날의 노동자와 기업주들, 농민과 소비자들의 관계에 대해서도 -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해야 합니다. 단지 재산이 많다는 이유로, 권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을 하대하는 오늘 날 한국 기업가들의 행태에 대하여, 그들이 내게 될 세금을 우리 국민들이 모조리 내어주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직설해야 합니다. 노사 문제, 농민문제, 정규직과 비정규문제 등등에 대하여.
제대로(왜곡 되지 않은 사실 중심) 된 데이터나 역사자료를 통해 - 제시된 자료를 바탕으로 ‘역지사지’로 세상바라보기를 학습의 기본적이고 일상적인 프로그램으로 채택하여야 합니다. 현장 답사 등으로 얻어진 소감을 바탕으로 학생들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는 연극이나 마당극 등을 만들어 토론을 벌이고 공감대를 형성해 가는 교육(제도)문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정신, 정서문화를 형성해 가야 합니다.
1.노동의 가치, 특히 농업과 제조업 노동, 그 노동의 소중함을 올바로 인식하고 깨우쳐 주는 교육.
1.못된 권력자들에 의해 조작된 역사가 아닌, 있었던 사실을 그대로 전하는/ 제대로 된 역사를 낱낱이 고하는 교육.
1.이 세상에 정치와 무관한 건 단 한 가지도 존재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교육.
1.정치는 특정인의 전유물이 아닌, 국민들 모두가 정치에 참여하는 게 곧 민주주의임을
깨닫게 하는 교육.
1.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그 어떤 사안도 별개 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교육.
1.사람과 사람, 사람과 동물과 대자연의 연결고리를 조명해 주는 교육. (그러므로 ‘나’만이 아닌, ‘우리’ 이어야 한다는 인식의 지평선 지향)
* 교사 임용 (일자리 확대)
위와 같은 교육을 시스템화 하기 위해서는 교사임용을 대폭 늘려야 합니다.
지금 현재 수많은 교사지망생들이 대기 중인 것으로 압니다. 도대체 기준이 뭔지도
모를 -바를 구멍 같은- 교사임용 시험에 낙방을 거듭하면서 비정규직으로 불안전한 생활을 하는
교사지망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공교육이 제대로 된 가치관과 프로그램을 갖고 그들을 훈련시켜 배치해야 합니다.
십여년이 다 되도록 교사임용시험에 매달려 열정을 허비하며 절망하는 교사지망생들 및
차기 교사 지망생들에게 교육의 가치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기회를 확대시켜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