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관세음보살님은 천의 손 천의 눈을 가지신 분이라고 하는 걸까?.
위 사진의 타이틀을 천수관음이라 했는데.. 잘 보면
손바닥에 눈을 그려 놓아 천의 손[천수] 뿐 아니라 천의 눈[천안] 관세음보살을 표현하고 있고..
천의 손 천의 눈 그리고 천의 발 무용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아쉬움이라면..
관세음보살님이 천의 눈 천의 손을 갖고 있는 것은 한 번에 한 사람뿐 아니라 천 사람, 만 사람의 어려움을 보살펴준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인데..
무용은 그저 천의 손 천의 눈이 있는 분처럼 보여준다.
천수천안으로 사람의 고통을 닦아주는 관세음보살님의 모습을 무용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어쩌면 천의 손 천의 눈 관세음보살을 잘 표현한 것은 찬불가 '천의 손 천의 눈' 가사에 나오고 있는 게 아닌지..
천의 손 천의 눈
내가 두 손을 따스히 내밀면 나의 두 손은 천 개의 손이 되리라
내가 두 눈을 크게 멀리 뜨면은 나의 두 눈은 천 개의 눈이 되리라
천수천안 내가 천의 손 천의 눈으로
님처럼 관세음 온누리 보살펴주고
님처럼 관자재 온 세상 껴안아주고
한 몸 한마음 이루어지리라
나는 따스하게 두 손을 내밀었을 뿐인데.. 그것은 어느새 천 개의 손이 된 듯 세상에 도움이 되는 시작이 되었다..
그뿐이 아니다.
내가 누군가에 도움을 주었으면 도움을 받아 기뻐하는 자가 있듯이.. 주는 나와 받는 상대가 있는데..
관세음보살이라 함은 주는 자와 받는 자 둘이 있는 게 아니라 한 몸 한 마음처럼 하나로 만나고 있다는 것.
해서 기쁨이 있지만 내가 주었다는 마음이 없기에 상대가 받았다는 마음을 나는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기에 관세음보살님은 끊임없이 중생을 구원하지만 한 순간도 내가 중생을 구했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천의 손 천의 눈 가사를 보면..
관세음보살이란 마음도 없이 따스히 내가 손을 내밀었을 뿐인데.. 그런 내가 관세음보살이라고 한다.
하여 온누리 온 세상을 보살피고 껴안아 주고 있지만
내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있을 때
그를 관세음보살이라 한다.
너와 나라는 생각 없이 따스히 손을 내밀고 있을 때..
거기에는 아미타부처님, 지장보살님,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나 있는 것이지만..
관세음보살이란 생각을 일으키고 있지 않으니..
둘이 아닌 하나로 있는 것과 같다.
<반야심경>을 보면..
관세음보살님[관자재보살님]이 어떻게 관세음보살님이 될 수 있는지 그 길의 이치를 보여준다.
곧 5온이 존재가 아닌 비존재임을 관찰했기에 가능했다 하며.. 무색 무수상행식.
5온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은 5온이란 인식을 만드는 안과 색 등 2법6쌍인 12처가 마음에서 생긴 것임을 관찰했기 때문이라는 것..
그런 깨달음이 생기자 자신에게 있던 괴로움이 마음에서 생긴 것임을 깨달아 마음을 비우니 일체 괴로움이 사라지는 깨침에 이르렀다.
그와 같이 깨침이 생기니 너와 나 가리지 않고 함께 괴로움이 없는 세계로 나아가자는 길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리 사바하.().
원영 큰스님께서는 뉴저지에 보리사를 세우시고, 아미타 부처님이 계시는 새 법당 이름을 관음전[관세음보살님 법당]이라 지으셨다.
왜일까?.
보리사 신도라면 관세음보살님처럼 세상의 고통을 보살펴주는 길에 앞장서야 함을 강조하시려는 게 아니었을까?.
지금 미국이나 한국은 얼마나 어지럽습니까..
미래 불교는 세상을 보살펴주는 관세음보살님 실천에 동참하는 불교여야 함을 강조하는 게 아니냐 말입니다.().
내가 두 손을 다정히 내밀면 나의 두 손은 천 개의 손이 되리라
내가 두 눈을 밝게 활짝 뜨면은 나의 두 눈은 천 개의 눈이 되리라
천수천안 내가 천의 손 천의 눈으로
님처럼 관세음 온누리 보살펴주고
님처럼 관자재 온 세상 껴안아주고
한 몸 한마음 이루어지리라
한몸 한마음 이루어지리라
첫댓글 어느누가 알리요.
나 자신이 관세음인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