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문학회 문학기행(1박2일) 답사기
장 현 덕
기간 : 10월 15일 ~ 16일
장소 : 전주, 나주 및 담양
참석자 : 설균태, 강병천, 김용란, 윤범로, 이재성, 황인철,
홍범식, 정교현, 송태준, 장경진, 김광종, 이동섭, 윤여선,
박선광, 한용희, 손인자, 이계정, 장현덕
문학기행은 15일 08시 40분 잠실종합 운동장 야구장 옆에 주차된 온누리 관광버스로 출발하였다. 버스 안에서
설균태 회장의 문학기행 출발 말씀 후 이번 행사를 기획한 나주 출신 김용란 자문위원의 방문지 나주의 소개가
있었다.
이번 문학기행은 설균태 회장님과 나주가 고향이 김용란 자문위원님의 노고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고 생각하며
두 분께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첫날 점심은 김관영 전북 도지사가 주최했다. 그는 재경부에 근무한 인연으로 우리와 식사를 하게 된 것이다. 김관영
전북도지사의 좌우명이 挑戰竟成 有志竟成이고 전북특례자치도를 금년에 시작하고 전국 자치도 평가에서 1위를 한
인사로서 재경부, 김&장 등에서 근무하고 재선 국회의원을 지냈고 현재는 도지사이다. 이날 오찬엔 재경문학회원 외에
임환 전라일보 사장, 신봉철 MBC 전주방송국장도 참여하여 자리를 빛내주었다.
오찬 중 송태준님의 '가을앓이'를 불렀고,이어 이재성님의 '제니,금발의 아가씨'가 크게 울리어져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돋구어 주었다.
오찬에 참여한 전라일보 임환 사장은 16일자 전라일보에 재경문학회 문학기행 기사를 크게 보도해 주어서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전주에서 도지사 주최 오찬을 마치고 나주로 향했다. 나주에 들어오니 한전빌딩이 보였다. 높이 솟은 빌딩이 나주
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나주 인구는 한 때는 8만 정도로 떨어졌으나 지금은 많이 회복돼 12만 가량이며 전국 도시 가운데 인구가 늘어나
는 몇 안되는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공공기관 16 곳이 이곳에 소재하는데 특히 한전이 이곳에 본점을 두고 있다.
사실 상 이 공공기관의 입주가 나주시를 번성케 하고 인구가 늘어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주시의 면적은 608Km2 로서 대략 서울 면적(605 Km2) 정도이다. 나주는 삼국시대 경덕왕 때 금성군으로 불렸
다가 후에 후백제 땅이 되었는데, 궁예가 왕건을 시켜 지배하며 나주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달리는 차 안에서 김제만경평야를 보니 벼베기를 끝낸 논도 꽤 있었지만, 아직 황금 벌판도 꽤 넓게 펼쳐져 있었다.
가을 빛이 물든 산야가 참으로 아름다웠다. 나주로 가는 길에도 나주평야가 길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렇게 넓은 평야
가 있으니 예로부터 호남지역은 곡창지역으로 알려져 왔고 그래서 인심이 후하고 요리가 발달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차 안의 앞 유리 화면엔 우리나라 산야는 아닌 듯하지만, 가을 단풍이 아름답게 화면을 장식하고 있어서 문학기행하
는 우리의 마음을 가을의 정취에 젖게 만들었다.
나주에 도착하여 맨처음 들린 곳은 빛가람 전망대였다. 전망대로 가는데 모노레일이 설치되어 있었다. 전망대에 올
라보니 금성산, 한전 건물과 넓은 호수가 보였다. 올해 처음으로 영산강 정원박람회가 성황리에 개최됐다고 한다. 나주
는 혁신도시를 추진하여 옛날의 명성을 회복하려고 노력 중이다. 나주는 비단산지로도 유명하다.
빛가람 전망대를 떠나 나주향교를 방문하니 향교의 김평호성균관 고문의 자세한 설명이 있었다. 명륜당 앞에는 수령
500년의 은행나무와 비자나무가 지키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에서 교육을 받아 향시를 통해 관직에 나갈 수 있었다.
일제시대에 교육 기능을 뺏겨 제사 기능만 수행 했다. 현재 향교는 제사 기능과 예절교육 기능을 하고 있다. 오늘의 소
실되었다가 복원된 오늘의 성균관은 나주향교의 설계도를 본떠 만든 것이다. 특히 대성전은 국가 지정 보물로 되어 있
다. 현재 역사적인 향교 모델인 나주 향교 복원을 나주시가 추진하고 있다.
다음으로 나주 신청문화관 으로 향했다. 신청관엔 19세기 후반부터 판소리, 가야금, 대금 등의 명인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정미현 명창의 사철가, 사랑가, 진도아리랑 등의 공연이 있었다. 판소리가 바로 이런 것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귀한 시간이다. 혼자 신청 문화관을 지키며 판소리 등의 교육을 한다고 했다.
다음으로 금성관으로 향했다. 나주는 조선시대에 세곡을 가장 많이 냈다고 한다. 그만큼 나주가 컸기 때문이었다. 금성
은 지방 궁궐이라고 해서 어도(御道)도 있었다. 바닥엔 박석이 깔려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가라는 의도였을 것이다. 금성
관과 벽오헌이 보였다. 금성관 뒤엔 700년 된 은행나무가 보였다. 은행나무는 암수 딴그루인데, 숫나무가 없는데도 열매
가 열리는 것을 보며 생명의 신비를 본다.
금성관 관람 후 만찬 장소인 예향한정식 식당으로 갔다. 윤병태 나주 시장이 주최했다. 전에 기획예산처에 근무한 인연
으로 만찬을 주재했다. 식사 장소 간판이 우멸헌(愚滅軒)이라고 돼있는데 어리석음을 없애는 집이라는건데 그리됐으면
좋겠다. 나주시 시민 평가에 따르면 나주 역사 이래 최고의 시장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좋은 평을 받고 있다고 한다. 만찬
하며 건배사가 이어지고 흥겨운 노래가 울려 퍼졌다. 송태준의 고향, 이재성의 오 솔레미오 황인철님 등이 우리를 즐겁게
했다.
숙소는 나주목사 내아(羅州牧使 內衙)였는데 어렵사리 예약하였다고 한다. 나주 목사내아엔 500년 된 팽나무가 있는데
벼락맞아 죽을 번하였는데 나주 주민의 기원으로 다시 살아 나서 팽나무에서 기도하면 행운이 온다는 소문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팽나무를 안고 소원을 빈다고 한다.
16일 아침 8시에 일어나서 나주 할매곰탕 에서 아침 식사를 했는데, 안상현 나주 부시장이 함께 했다. 나주목사 내아를
떠나 나주국립박물관으로 향했다.전국 14개 국립박물관이 있는데, 면 단위에 있는건 나주가 유일하다고 한다.
박물관에 도착하자 김상태 박물관장의 환영사와 함께 특별 선물까지 제공한 후, 신수정 전시해설사가 박물관 소장품
에 대한 해설이 이어졌다. 고분문화실에선 신촌리 고분의 형태를 볼 수 있었다. 영상을 보여줬는데 eye-max 화면이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출토된 금동관은 국보로 지정돼 있다고 한다. 여러가지 구슬 등 장신구, 다양한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의 토기를 볼 수 있었다. 석등(고려시대)과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의 당포 앞바다승첩지도를 볼 수
있었다.
박물관을 떠나 영산강 황포돛배로 향했다. 가는 길에 보니 나주는 배로 유명한 곳이라서 그런지 배과수원이 보였다.
하지만 배재배지가 점점 줄어 들어서인지 그렇게 많이 보이지는 않았다. 지금은 배를 중국에서 많이 수입하는데 가
경쟁력이 떨어져 배 경작지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대체 과일로 세지 멜론이 유명하다고 한다. 토하젓, 장어도 유명
하다. 나주 금강굴에서 나온 젓갈도 유명하다.
황포돛배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구진포구까지 가서 돌아오는데 약 50분 정도 소요되었다. 특이한 건 육지에서 유일
하게 등대가 있다. 영산포 등대다.
배타기를 마치고 홍어일번지에서 점심을 하게 됐다. 나주시장, 정연수 해설사, 기사 분들도 함께 했다. 나주는 홍어
의 발상지이니 반드시 맛봐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내 생각엔 홍어는 마약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맛들이면 헤어나기 어려울 것 같았다. 홍어정식을 들었는데, 온갖 홍어요리를 맛볼 좋은 기회였다.
나주를 떠나 담양으로 향했다. 담양에선 소쇄원(瀟灑園)을 탐방했다. 노은희 문화관광 해설사가 소쇄원 소개를 한다.
소쇄원은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원림(園林)이다. 1503년에 태어난 양산보 선생이 세워서 55
세에 죽을 때까지 머물렀다. 평생을 벼슬을 하지 않고 재야의 성리학자 로 살았다고 한다. 담장이 닫혀 있지 않고 열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제월당(霽月堂)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정자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가 압권이다. 광풍
각(光風閣)은 사랑방 역할을 하는 정자이다. 16대 종부가 소쇄원 내의 한옥에서 현재 살고 있다.
서울 도착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8시 정도 도착할 것으로 예상되어 죽전휴게소에 들려 가락국수로 간단히 때웠다. 옛날
대전역에서 기차가 잠시 머무는 동안 가락국수 먹던 생각이 났다.
이번 문학기행은 나주의 문화향기에 취하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16일 아침 나주 시내를 산책하며 나주를 느끼
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기대했던 나주엔 좀 못미치는 것으로 생각됐다. 유럽의 오래된 된 도시 같은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이 아니라서 아쉬웠다. 나주 시내를 흐르는 하천을 보니 잡초가 우거져 있었고, 오•폐수가 고여 있어서 서울의 청계
천처럼 개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 곳곳이 복원 사업으로 정리되지 못한 것도 해결해야 할 것으로 보였다.
일제가 행정기관을 없애고 시장으로 바꾸는 바람에 탄생한 곰탕은 맛은 있지만 역사 도시로서 격조는 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행정기관이 복원되길 소망해 본다.
하지만, 역사 향기가 물씬 풍기는 나주가 주는 행복감이 훨씬 크다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송강의 관동별곡에 보면, "강호에 병이 깊어 죽림에 누웠더니 ...."라는 귀절이 있는데, 이번 나주 문학기행을 통해 나주에
병이 깊이 든 나를 발견한다.
첫댓글 문학기행문의 정석입니다 교과서에 게재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