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지저귀는 새들의 울음소리에 잠을 깼다. 한두 놈이 아니다. 울음소리를 들어보면 몇 놈이 떼거리로 앉아 쫑알대는 모습이다. 요즘 들어 화단의 나무위로 날아오는 새들이 부쩍 많아졌다. 빌라 마당에 서있는 은행나무도 있고. 깍지벌레 때문에 곧 베어질 운명에 처한 마당의 감나무도 있지만 새들은 줄기차게 향나무에 안착하여 편안한 울음을 쏟아냈다.
외형적으로 볼 때 향나무는 그리 통 큰 가슴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다. 바늘같은 잎들이 나뭇가지를 뒤덮어 새들을 품어줄 만한 가슴이 없지만 새들은 새벽부터 날아와 향나무에 진을 치고 시끄럽게 울어댔다.
창문을 열고 새들이 하는 짓거리를 눈여겨보니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꽁지를 까불대다 휑하니 빌라마당의 은행나무로 포로롱 날아가는 놈들도 있고 몇 놈은 분주하게 무엇인가를 쪼아대다가 바람결에 맞춰 날갯쭉지 화들짝 펴드는 놈들도 있다. 그러면서 연신 화음처럼 청량한 울음소리를 쏟아낸다. 새벽마다 새들을 불러들여 내 마음을 말갛게 헹궈주는 향나무를 보는 것을 난 여태까지 즐거움으로 삼아왔다.
그런데 어머니만은 달랐다. 향나무에 철천지원수라도 맺힌 것처럼 그 나무를 싫어하셨다. 거실에서 나와 눈이 마주치면 대뜸 잔소리부터 늘어놓았다. 맨날 똑같은 레퍼토리였다.
“애비야. 저 왜솔나무 언제 배어낼래”
“왜솔나무가 아니고 향나무란 말이여”
“왜솔나무라면 왜솔나무인줄 알아”
한번 어머니와 입씨름이 붙었다하면 어머니는 나한테 한 번도 지지 않았다. 오히려 우기는데 선수였다. 어머니가 향나무를 왜솔나무로 알고 베어내기를 강요하는 이유는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었다.
옆집의 감나무는 가을이 되면 굵은 단감을 척척 열어주는데, 향나무는 아무런 이용가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나만 보면 제발 저 보기 싫은 나무 좀 베어내라고 고집을 부리셨던 것이다.
그것은 한평생 어머니에게 굴레처럼 따라다닌 가난 탓이기도 했다. 배고픔 앞에서는 꽃나무가 다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듯 화단엔 채소나 작물 아니면 과일나무를 심는 것을 즐겨하셨다. 그래서 화단은 텃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화단에 사시사철 녹음을 품고 훤칠하게 키만 큰 향나무를 좋아할 리 없었다.
집안에서 나와 눈길이 마주치면 어머니는 버릇대로 향나무 타령이었다. 그러면 나는 어머니를 피했다. 되도록이면 어머니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나는 방에서 꼼짝 않고 나오지 않는 날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 어머니의 잔소리가 뚝 그쳤다.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들어줄 것 같지 않는 나의 고집에 그만 지쳐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마음이 허전한지 알 수 없었다. 어머니에게 불효를 하는 것 같아 가슴이 쓰렸다. 차라리 어머니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아무것도 아닌 향나무에 집착을 하다 어머니가 세상이라도 뜨신다면 밀려오는 후회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심은 일단 어머니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고 아내의 마음을 슬쩍 떠 보았다. 그랬더니 아내는 노발대발이다. 눈에 쌍심지를 켜더니 어머니의 부탁을 들어주면 이혼이라고 못을 박았다. 난감한 노릇이었다.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서 갈등을 하며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가 봄을 맞아 그 향나무 밑에 호박 구덩이를 파고 호박씨 몇 개를 심었다.
시간이 흘러 채소와 상추가 파랗게 고랑을 뒤덮고 호박이 넝쿨손을 뻗어 향나무를 감아오를 무렵, 보름달이 화농처럼 터진 달빛을 지상으로 하염없이 쏟아 붓는 한밤중이었다. 태풍이 불어온다며 바람이 세차게 마당을 쓸고 가는 날이었다. 저녁부터 바람소리 드세게 몰아쳤고 감나무는 세찬 바람을 이기지 못해 나뭇가지를 붙잡고 윙윙 우는 소리를 냈다.
빌라 마당에 서있는 은행나무에서 떨어진 잎들이 스산하게 마당을 쓸고 다녔다. 바람소리를 들으며 깜빡 잠이 들었을까. 새벽에 화장실을 다녀오다 달빛이 훤하게 비친 창문에 눈길이 멎었다. 보름달이라 달빛은 눈이 시리도록 환했다. 창문을 뚫고 들어온 달빛은 거실 바닥까지 넘칠 듯 출렁거렸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거실 창문에 실루엣처럼 비친 검은 그림자가 곁눈으로 슬쩍 지나갔다. 난 하마터면 놀라서 쓰러질 뻔했다. 다급히 안방으로 뛰어 들어가 숨넘어가는 소리로 곤하게 잠든 아내를 깨웠다. 아내도 놀라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우둘투둘 우유 빛처럼 뿌연 우리창이라 선명하지는 않지만 확실히 사람의 그림자는 아니었다. 풀 더미처럼 펑퍼짐한 그림자가 가끔씩 손사래 치듯 나풀거렸다.
나는 숨을 죽이며 가만히 창문을 열었다. 그 순간 난 또 한 번 소스라치게 놀랐다. 담장 옆에 서있던 향나무가 뿌리를 쳐든 채 마당을 가로질러 누워 있었다. 끄트머리의 나뭇가지들이 거실 창문까지 닿아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흔들거렸다.
얼마나 비몽사몽간을 헤맸을까. 아침이 되자 마당에 나가 향나무를 살펴 보았다. 막상 쓰라지니 그렇게 커 보일수가 없었다. 훤칠한 나무 둥치에 덕지덕지 붙은 자잘한 잎들이 아침 햇살에 질반질 빛났다. 호박 넝쿨도 향나무의 둥치를 휘감고 넝쿨줄기를 나풀거렸다. 볼수록 아까웠다. 저렇게 큰 덩치가 쓰러진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태풍이 몰아쳤지만 군말 없이 바람을 막아내던 향나무 아니었던가. 뿌리를 치켜들고 마당에 쓰러져 누운 향나무가 중풍으로 쓰러진 환자처럼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일말의 아쉬움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나는 아내의 도움을 받아 향나무를 일으켜 세우려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몇 년 동안 받아먹은 세월의 무게가 얼마인데 어줍짢은 우리 부부의 힘으로 그 한 많은 세월을 일으켜 세운단 말인가.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눈만 뜨면 어머니가 베어내라고 노래를 불렀던 향나무를 이 기회에 없애버리고 싶었다.
아쉽기는 했지만 나는 향나무의 가지를 쳐내며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뒤엉킨 호박넝쿨이 낫자루를 붙잡고 늘어지는 향나무 품속에서 누런 호박 두덩이가 딸려 나왔다. 익을 대로 익은 호박은 들어보니 묵직했다. 세찬 바람에도 잘 견딘 호박이 향나무와 함께 일생을 마친 인연이 기구했다. 향나무도 어머니의 잔소리를 들었던 것일까.
“애비야, 저 왜솔나무 언제 베어낼래”
매일 마당을 쓸어주는 상큼한 향기도 모른 채 자신을 왜솔나무로 착각하여 부르는 어머니 말에 아마도 열 받은 향나무가 태풍에 못이긴 척 쓰러졌는지 모른다. 나만 보면 향나무를 베어내라고 다그치던 어머니는 호박 두 덩이를 보자 어린아이처럼 싱글벙글 하셨다. 어머니가 소원하셨던 향나무도 사라지고, 호박 두덩이도 얻고 일석이조를 경험하신 어머니의 얼굴은 푸르른 하늘처럼 해맑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