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지황(地黃) (: 현삼과 지황의 뿌리)
생지황(生地黃)은 미(味)가 고(苦) 감(甘)하고 기(氣)가 양(凉)하니, 기(氣)가 박(薄)하고 미(味)가 후(厚)하며, 침(沈)하고 음(陰)이니라. 신선(:鮮)한 것은 더 양(凉)하고, 건조(:乾)한 것은 미량(微凉)하느니라.
생혈(生血) 보혈(補血)하고 심화(心火)를 량(凉)하며 혈열(血熱)을 퇴(退)하니, 번조(煩躁) 골증(骨蒸), 열리(熱痢) 하혈(下血)을 거(去)하며 구혈(嘔血) 뉵혈(衄血), 비(脾) 중의 습열(濕熱)이나 부인(婦人)의 혈열(血熱)로 인한 경고(經枯)나 상하(上下)의 삼소(三消)로 열갈(熱渴)하는 것을 지(止)하느니라.
총괄(:總)하자면 그 성(性)이 다소 양(凉)하니, 만약 비위(脾胃)에 한(寒)이 있으면 그 사용에 마땅히 짐작(斟酌: 어림잡아 헤아리다)하여야 하느니라.
숙지황(熟地黃)은 미(味)가 감(甘) 미고(微苦)하니, 미(味)는 후(厚)하고 기(氣)는 박(薄)하며, 침(沈)하고 음(陰) 중에 양(陽)이 있느니라.
본초([本草])에 이르기를 "수족(手足)의 궐음경(厥陰經) 소음경(少陰經)에 들어가 혈쇠(血衰)를 대보(大補)하고 신수(腎水)를 자배(滋培)하며 골수(骨髓)를 전(塡)하고 진음(眞陰)을 익(益)하며 전적(專)으로 신(腎) 중의 원기(元氣)를 보(補)하고 겸하여 장혈(藏血)의 경(經)을 료(療)한다." 하였느니라.
이는 비록 그 대개(:槪)를 광범(:泛)하게 득(得)한 것이지만, 또한 어찌 충분히 그 묘(妙)를 다한 것이겠는가?
지황(地黃)은 중주(中州)의 옥토(沃土) 지역에서 산출(:産)되니, 토기(土氣)의 가장 후(厚)한 것을 득(得)한 것이니라. 그 색(色)이 황(黃)하니 토(土)의 색(色)이고 그 미(味)가 감(甘)하니 토(土)의 미(味)이니라. 토(土)의 기(氣)를 득(得)하였는데도 태음(太陰) 양명(陽明)의 약(藥)이 아니라고 말하면 나는 믿지 못하겠느니라. 오직 생(生)한 것은 성(性)이 양(凉)하니, 비위(脾胃)는 난(煖)한 것을 좋아하므로 비양(脾陽)이 부족(不足)하면 당연히 신중(:愼)히 사용하여야 하느니라. 숙(熟)한 것은 성(性)이 평(平)하니, 지음(至陰)의 덕(德)을 품(稟)하고 기미(氣味)가 순정(純靜)하므로 오장(五臟)의 진음(眞陰)을 보(補)할 수 있고 또한 다혈(多血)의 장(臟)에 가장 요(要)한 것이니, 이것이 비위경(脾胃經)의 약(藥)이 아닐 수 있겠는가?
또 사람이 생(生)이 있는 까닭은 기(氣)와 혈(血) 뿐이니, 기(氣)는 양(陽)을 주(主)하면서 동(動)하고 혈(血)은 음(陰)을 주(主)하면서 정(靜)하느니라. 보기(補氣)는 인삼(人蔘)을 위주로 하고 황기(黃芪) 백출(白朮)은 단지 좌(佐)로 하는 것이 가(可)하며, 보혈(補血)은 숙지황(熟地黃)를 위주로 하고 천궁(川芎) 당귀(當歸)는 단지 좌(佐)로 하는 것이 가(可)하느니라. 그런데 황기(黃芪) 백출(白朮)과 당귀(當歸) 천궁(川芎)은 또한 당연히 피(避)하여야 할 바가 있지만, 인삼(人蔘)과 숙지황(熟地)는 기혈(氣血)에 반드시 없으면 안 되는 것이니라. 따라서 제경(諸經)에 양기(陽氣)가 허(虛)하면 인삼(人蔘)이 아니면 안 되고, 제경(諸經)에 음혈(陰血)이 허(虛)하면 숙지황(熟地黃)이 아니면 안 되느니라. 인삼(人蔘)은 건운(健運)하는 공(功)이 있고 숙지황(熟地黃)은 정순(靜順)의 덕(德)을 품(稟)하느니라. 숙지황(熟地黃)과 인삼(人蔘)은 일음(一陰) 일양(一陽)으로 서로 표리(表裏)가 되고, 일형(一形) 일기(一氣)로 서로 생성(生成)을 주(主)하느니라. 성미(性味)가 중정(中正)하여 이보다 더 나은 것이 없으니, 진실로 다른 것을 가차(假借)하거나 경대(更代)할 수는 없는 것이니라.
진음(眞陰)이 휴손(虧損)하면 발열(發熱)하거나, 두동(頭疼)하거나, 초갈(焦渴)하거나, 후비(喉痺)하거나, 수담(嗽痰)하거나, 천기(喘氣)하거나, 비신(脾腎)의 한역(寒逆)으로 구토(嘔吐)하거나, 허화(虛火)가 구비(口鼻)까지 재혈(載血)하거나, 수(水)가 피부(皮膚)에 범(泛)하거나, 음(陰)이 허(虛)하여 설리(泄利)하거나, 양(陽)이 부(浮)하여 광조(狂躁)하거나, 음(陰)이 탈(脫)하여 부지(仆地)하느니라.
음(陰)이 허(虛)하여 신(神)이 산(散)하면 숙지황(熟地黃)의 수(守)가 아니면 취(聚)하기가 부족(不足)하고, 음(陰)이 허(虛)하여 화(火)가 승(升)하면 숙지황(熟地黃)의 중(重)이 아니면 강(降)하기가 부족(不足)하며, 음(陰)이 허(虛)하여 조동(躁動)하면 숙지황(熟地黃)의 정(靜)이 아니면 진(鎭)하기가 부족(不足)하고, 음(陰)이 허(虛)하여 강급(剛急)하면 숙지황(熟地黃)의 감(甘)이 아니면 완(緩)하기가 부족(不足)하느니라.
음(陰)이 허(虛)하여 수사(水邪)가 범람(泛濫)할 때 숙지황(熟地黃)을 버리면 어찌 스스로 제(制)하겠고, 음(陰)이 허(虛)하여 진기(眞氣)가 산실(散失)할 때 숙지황(熟地黃)을 버리면 어찌 원(源)으로 귀(歸)하겠으며, 음(陰)이 허(虛)하여 정혈(精血)이 모두 손(損)하고 지고(脂膏)가 잔박(殘薄)할 때 숙지황(熟地黃)을 버리면 어찌 장위(腸胃)를 후(厚)하게 하겠는가?
또 가장 현(玄)하고 가장 묘(妙)한 것은 숙지황(熟地黃)에 산제(散劑)를 겸하면 비로소 발한(發汗)할 수 있는데, 왜 그러한가?
한(汗)은 혈(血)에서 화(化)하니 음(陰)이 없으면 한(汗)을 작(作)하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숙지황(熟地黃)에 온제(溫劑)를 겸하면 비로소 회양(回陽)할 수 있으니, 왜 그러한가?
양(陽)은 하(下)에서 생(生)하니, 복괘(:復)가 없으면 건도(:乾)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그런데 양(陽)의 성(性)은 속(速)하므로 인삼(人蔘)은 적게 사용하여도 또한 공(功)을 이루지만 음(陰)의 성(性)은 완(緩)하니 숙지황(熟地黃)을 많이 사용하지 않으면 주효(奏效)하기가 어려우니라.
요즘 사람들은 그 체니(滯膩)를 외(畏)하는데, (그렇다면) 최씨(崔氏)가 어찌 신기환(腎氣丸)으로 담부(痰浮)를 치료(治)하였겠고, 그 활습(滑濕)을 외(畏)하는데, (그렇다면) 중경(仲景)이 어찌 팔미환(八味丸)으로 신설(腎泄)을 의(醫)하였겠는가?
'양(陽)은 음(陰)을 생(生)할 수 있으나 음(陰)은 양(陽)을 생(生)할 수 없다.'고 말하는데, 음양(陰陽)의 이(理)는 원래 서로 근(根)이 되므로 피차(彼此)가 상수(相須)하므로 하나라도 결(缺)하면 불가(不可)하느니라. 양(陽)이 없으면 음(陰)이 생(生)할 수가 없고 음(陰)이 없으면 양(陽)이 화(化)할 수가 없느니라.
따라서 내경([內經])에 이르기를 "정(精)이 화(化)하여 기(氣)가 된다."고 하였으니, 음(陰)이 아니면 또한 양(陽)을 어찌 생(生)하겠는가? 누가 '양(陽)은 생(生)할 수 있고 음(陰)은 장(長)할 수 없다.'고 말하는가?
또 제(制)하여 사용하는 법(法)으로는, 강즙(薑汁)에 섞어서(:拌) 초(炒)하는 것은 반드시 중한(中寒)에 구(嘔)를 겸한 후에라야 가(可)하고, 사인(砂仁)으로 제(制)하는 것은 반드시 창만(脹滿)으로 불행(不行)한 후에라야 가(可)하며, 주(酒)에 섞어서(:拌) 초(炒)하는 것은 반드시 경락(經絡)의 옹체(壅滯)가 있은 후에라야 가(可)하느니라.
이러한 몇 가지의 경우가 아니고, 억지로 제(制)하는 법(法)을 쓰려고 하면 숙지황(熟地黃)을 쓰는 것은 바로 그 정중(靜重)의 묘(妙)를 쓰는 것임을 모르는 것이니, 도리어 산동(散動)하여 그 성(性)을 란(亂)하게 하므로, 화사첨족(畫蛇添足)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요즘 사람들은 보음(補陰)으로 쓸려고 할 때 반드시 삼리(滲利)를 겸하는데, 보음(補陰)은 이수(利水)하지 않고 이수(利水)는 보음(補陰)하지 않으니 보음(補陰)의 법(法)에는 삼(滲)이 불의(不宜)하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보혈(補血)로 쓸려고 할 때 또 그 체니(滯膩)함을 의(疑)하는데, 혈(血)이 허(虛)하여 조(燥)한 토(土)와 같다면 마치 극한 가뭄(:旱)에 운예(雲霓: 구름과 무지개)를 바라듯이, 고갈(枯竭)한 양(陽)은 자(滋)를 극(極)히 좋아한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만약 이에 명(明)하지 못하면 적게 사용하면서도 이(利)를 겸(兼)하여야 하는데, 또 누가 감히 단용(單用)하면서 다용(多用)하려 하겠는가? 단용(單用)하면서 다용(多用)하는 것도 또한 감당하지 못하는데, 또한 누가 감히 감(甘)으로 조(助)하여 그 장(長)한 바를 다할 수 있겠는가?
이는 또한 인열폐식(因噎廢食: 사소한 것을 인하여 중요한 것을 폐하다)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아! 아! 숙지황(熟地黃)의 공(功)이 시용(時用)에 중(中)하지 못한 지가 오래 되었느니라. 글로 다 적지 못한 것이 아직 많지만, 내가 이제 특별히 이를 표출(表出)하였으니, 명(明)한 자는 스스로 깨닫기를 기원(:祈)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