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도 3.5
동창이 밝아 왔을 때 여기가 또 산중이요 멍에목인가 싶다. 동창에 해 오를 때, 유리창에 낀 하얀 성에도 같이 보였던 것이다. 방안에서 점퍼를 입을 정도로 급락한 기온, 그로 인해 생긴 서릿발이 아름다웠을까? 그 결정 위에 빛이 채색되었을 때는 휴대폰부터 들었다. 한 컷을 찍으려다가, 소스라치듯 내려놓았다. 이 산 위에서 산 아래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창밖은 지금 영하 11도, 장시간 노출되면 이내 동사하는 지경이다. 유리창 하나 사이로 삶과 죽음이 갈릴 수 있는 완전 딴판 세상, 아, 코로나로 고통받는 이웃들이 바로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에에서 반사되는 빛의 스펙트럼처럼 코로나 기간 중 마음의 빛띠도 켜켜이 쌓여온 것이다. 코로나 레드(분노), 블루(우울)에서 이제는 블랙(좌절)으로 첩첩하다.
청주 시내를 옳게 나다닌 적이 없다. 어저께야 멍에목에 들어갈 준비 차 상당공원 근처에를 갔다. 지하상가에 들어서려는데 에스컬레이터가 꺼져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지하상가 전체가 캄캄히 닫혀있었다. 또 돌아오는 길가의 율량 상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폐업한 가게들만 시야에 들어왔다. 옥산의 모 식당에 들어섰을 때도 손님은 나뿐이었다. 요 명절 무렵, 저녁이나 먹으러 갈 적마다 다른 손님은 없었다. 오죽하면 내일부터는 못 온다는 인사를 미안하게 했을까? 그밖에도 지인들에게 들은, 할 일 없이 앉아 있는 직원을 내보냈다는 얘기, 노래방, 시장의 점포, 여행사, 집합금지로 영업정지를 당하고 계신 분들, 아, 그분들은 장기간의 혹한을 어찌 견디고 계실까?
영업정지를 시켰으니 국가가 손실보전을 해야한다고 한다. 국가는 국가대로 선의에 기대했던 ‘착한 임대인’ 운동이 부진하다며 ‘임대료 멈춤범’을 만지작거린다고 한다. 그러면 “공산국가냐?”라는 위헌 소지가 있다. 재난지원금에 대해서도 ‘선별지원’이냐 ‘보편지원’이냐, 정당별로 말도 많다. 나는 본래 여당도 야당도 아니다. 당을 둔다면 성당이요, 기어이 천당이 되고픈 사람이다. 요는 국가의 지원도 한계가 있질 않겠냐는 거다. 사실 이즈음 가슴을 치고 싶을 만큼 답답한 것은 국가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이다. 1997년 IMF 때는 ‘금 모으기 운동’이라도 했다. 성당이라도 마음껏 오갈 수 있었다. 지금 코로나는 유리창 하나 사이로 생사가 갈리는데, 사회적 차원으로 뭔가를 해보려는 움직임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이웃을 향한 마음마저 마스크로 차단된 걸까? 양로원, 고아원 같은 시설을 돕자는 게 아니다. 당장 코앞의 이웃사촌 내 형제에게, 도대체 무슨 방법이 없는 걸까? 발이라도 동동 굴러보는 마음이, 사회적인 온도도 없이, 허 참, 거 참, 너나없이 이러는 사이에, 창밖의 생명은 위독해졌다.
진짜 방법이 없는 걸까? 먼저 정상 수준의 월급을 받는 공무원, 준공무원, 회사원, 안정적 연금자, 여전히 돌아가는 중소기업 직원이 자원하셔서, 다만 월급의 몇 %를 나누자는 운동은 없을까? 아니, 우리 천주교 신자분들만이라도 잠자코 있지 말고, 이 사순시기에 “함께 부활하기” 위해 (부활시기가 끝나는) 5월 하순까지만이라도, 선구적으로 나서는 분들은 없을까?
수많은 오염원에도 불구하고 바닷물이 썩지 않는 것은 3.5%의 소금기 덕분이라고 한다. 세상의 소금 역할이 되는 3.5도! 혹시 어떤 분이 자기 월급의 3.5%로써 “코로나 피해자와의 나눔 운동”을 먼저 시작하신다면, 나도 분연히 참여할 것이다. 박봉이지만 3.5% 이상을 선뜻 낼 수 있다. 정말 성품이 적당히 체계적이고 주도면밀하신 분이 나서주시면 좋겠다. 그런 분이 전반적으로 공평하게 “뭔 운동”이라도 벌여 주시면 좋겠다. 가뜩이나 현실감이 떨어지는 멍에목 산중에서 이 ‘뚱단지’ 같은 제안을 하는 까닭이야 하나이다. 부활은 다가오는데, 되도록 “함께 부활”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이것은 드디어! 3월 1일로! 200회 생신을 맞이하시는 최양업 신부님께서도 천상에서 지지해주실 일이라 믿는다.
첫댓글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사제 탄생 200주년,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마스크에 마음을 닫아야 했던 2021년의 글이시군요.
자나깨나 최양업 신부님 걱정으로 가득하신 요한 신부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