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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전 수요 예배인데도 많이 주셔서 감사하고 또 찬양단이 힘 있게 찬양하니까 저도 힘이 많이 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보시다시피 아직 감기에서 헤어나지 못해서 목소리나 정신도 약간 몽롱합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말이 새더라도 이해하시고 워낙 여러분이 지혜로우셔서 앞뒤 좌우로 잘 연결하셔서 들어오실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한 번 이렇게 읽으면 이해하기가 되게 어려워요. 약간 반어법 같은 뉘앙스도 있고 또 약간 사도바울이 비꼬는 듯한 이런 뉘앙스도 있고 해서 본문을 이렇게 액면 그대로 이렇게 읽으면 이해하기가 되게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그래서 제가 일부러 속도를 좀 줄여서 앞에부터 차근차근 어떤 의미인지를 좀 살피고 기도하려고 합니다.
바울은 평상시에도 그리스도 외에 존귀하게 되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어요. 자기가 그리스도보다 높아지는 것도 꺼려했고, 교회 안에 그리스도보다 높아지는 것이 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습니다.
그런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는 자기를 좀 자랑하도록 봐달라 내가 자랑해도 문제 삼지 말라 이렇게 양해를 구하고 있어요. 평상시에 사도바울의 생각이나 가치관과는 되게 거리가 먼 행동을 지금 바울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더 나가서 바울은 자기가 어리석은 자로 취급받는 것도 싫어했어요. 그런데 자기가 어리석게 말할 수 있도록 자랑할 수 있도록 또 양해를 구하는 거예요.
이게 뭐가 앞뒤 자고 잘 안 맞죠? 평상시에는 그리스도 외에 존귀하게 되는 걸 되게 꺼려하는 사람이 자기를 자랑해서 말이 안 맞고, 그리고 어리석은 것을 되게 싫어하는 사람이 자기가 어리석은 말을 해도 양해해달라라고 양해를 구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 또한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지금 지금부터 자기를 자랑할 텐데 자기가 자랑하는 이 말은 그리스도가 자기에게 지시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거예요. 이 말은 평상시에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시는 말씀을 했다는 의미예요.
근데 오늘은 그리스도가 가르친 말이 아닌 그냥 자기가 어리석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해 달라라고 양해를 구합니다. 마치 자기가 어리석은 사람이 된 것처럼 내가 이렇게 할 테니까 여러분들이 나의 이런 모습을 좀 이해해 주십시오. 양해해 주십시오라고 부탁을 하는 거예요. 그리고 지금 자기 스스로가 자기를 자랑하는 말을 하더라도 이것은 그리스도의 지시거나 성령의 말하게 하심이 아니라 어리석은 사도 바울이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주십시오라고 양해를 구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육신을 자랑합니다. 고린도 교회에 있었던 거짓 교사들, 거짓 선생들도 그들의 육적인 조건들을 자랑을 했어요. 바울은 그들보다 훨씬 더 육적인 조건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자기가 자신의 육체적인 조건들을 육적인 조건들을 자랑하겠다는 거예요.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바울은 평소에 그리스도의 높아지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던 거예요. 그래서 자기의 과거를 자랑하는 일도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도움되는 것 외에는 아예 하지 않으려고 작정하고 맹세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지금 자기를 자랑하겠다는 거예요. 이게 안 맞잖아요. 그러면 그러면 바울이 왜 이렇게 할까요? 평상시에 자기 모습이 아닌 정상시에 자기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지금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대하겠다는 거예요.
바울이 왜 이렇게 하냐 하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거짓 교사들에게 속아서 바울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게 되고, 고린도 교회가 바울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게 됨으로 말미암아 고린도 교회 안에 큰 분란이 일어났어요. 그러니까 자기를 마침 거짓 선지자들이 거짓 스승이 하는 것처럼 자기를 자랑함으로 말미암아 사도권을 세워서 고린도교회를 경고하게 하려는 사도바울의 어리석은 생각이 있었던 거예요. 이 거짓 교사들이 너무 육적인 사람들이라 사도 바울이 이렇게 대하지 않으면 이들이 어리석어서 사도바울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들의 어리석음처럼 자기도 어리석게 한번 말해보겠다는 거예요. 그렇게 자기가 하더라도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이해를 좀 이해를 부탁합니다고 이렇게 양해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자기 육신을 자랑하는 일에 대해서 이렇게 담대한 것은 바울의 육신적인 조건들이 거짓 교사들 거짓 선생들보다 전혀 밀리지 않았기 때문인 거예요. 그리고 바울이 이렇게 자기를 자랑하는 것을 통해서 고린도교회 이 분란을 좀 해결할 수 있다고 바울이 생각했던 거예요. 이런 생각도 바울은 스스로 어리석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이렇게 하는 것으로 교회를 지킬 수 있다면 자기는 이때까지 하지 않았던 어리석은 행동을 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사도권을 변호하는 것이 곧 고린도교회를 지키는 일이라 생각했고, 내 거짓 교사들이 워낙 어리석은 사람들이라 그들과 동일한 방법으로 맞불을 낳아야 이 사람들이 뿌리를 내린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후에 나오겠지만 사도 바울이 얼마나 좋은 육적인 조건을 가졌는지에 대해서 하나하나 따박따박 다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이런 태도 자기가 육적인 것을 자랑하는 것은 사역자들이 하면 안 되는 태도라고 말하는 거예요.
참 이게 애매해요. 목회자들이 너무 육적인 조건이 없으면 생각하기로 성도들은 목회자를 약간 무시하는 경향이 있고 반대로 또 어떤 사람들은 목회자의 육적인 조건이 잘 갖춰지면 오히려 영성도 있다고 여기는 이상한 것들이 교회 안에 이렇게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학벌을 높은 사람을 뽑으려는 경향도 없지 않아 있고, 대사적인 연륜이나 경륜이 많은 사람들을 뽑으려는 경향도 어떻든 있어요.
근데 사도바울은 자기가 교회를 변호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긴 하겠지만 결코 사역자들이 이런 태도는 취하면 안 된다 자기의 육신을 자랑하면 안 된다.
다행히 저는 별로 자랑할 것도 없지만 또 자랑한다고 해서 목장 교회 성도들이 막 솔깃해서 잘 듣지도 않아요. 그나마 참 다행이에요. 제가 자랑할 것이 없어서 다행이기도 하고 또 가끔 저도 인간이라 자랑하기도 하잖아요 하면 여러분이 또 잘 안 들어요. 그래서 이게 잘 안 맞아 가서 참 다행이긴 합니다.
어떤 사도바울의 생각은 사역자들은 교회에 앞서 일하는 사람들은 육신의 조건을 가지고 일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 바울의 생각이에요. 그러니까 잠깐은 효과적이지만 온전한 방법이나 해결책은 아니라는 거죠. 사도 바울도 그래도 자기가 잠깐 지금 자기 육신을 자랑하겠지만 이렇게 육신을 자랑하는 것은 사도바울이 생각해도 어리석은 일이고 자기 지혜로운 자신이 잠깐 어리석게 되는 일이라고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스스로를 지혜롭게 여겼지만 정작 어리석은 자 잘못된 신앙을 퍼뜨리는 사람들을 쉽게 용납하는 어리석음을 범했어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스스로를 지혜롭게 여겼어요. 그러면 지혜로워야 되잖아요. 그런데 어리석은 거짓 교사들과 거짓 선생들에게 속아서 그들에게 교회를 내어주는 아주 불행한 결과를 가져왔어요. 사도 바울이 되게 속상한 거예요.
이런 거죠. 똑똑한 척하더니 다 당한 거예요. 우리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잖아요. 나는 많이 알고 똑똑한 척하다가 오히려 그런 사람이 오히려 유하게 더 잘 넘어가는 것을 여러 번 봤어요.
한참 이렇게 신천지 문제로 신천지 명단이 전국 교회를 이렇게 돌 때가 있었어요. 제가 그때 행정을 하고 있어서 그 명단을 막 돌려서 그 교회에 있는 성도들을 명단을 이렇게 추려냈어요. 추렸더니 대부분 그런 사람들은 그 나름 똑똑한 척한 사람인 거예요. 말해서 자기가 지혜가 부족하고 자기는 믿음이 부족하고 자기는 봉사하는 부족 이런 사람들은 절대 넘어가지 않아요. 오히려 자기를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래서 성도들이 성도들은 이런 면이 부족하고 목회자는 이런 면이 부족하고 이렇게 말하던 사람들이 명단이 대부분 신천지 명단에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자유로운 척했지만 어리석은 사상 잘못된 사상을 전파하는 사람들을 환영했어요. 그러니까 교회에 받아들인 거죠. 정말 어리석은 것이 자기들의 진짜 스승인 바울은 배척하고 거짓 교사들은 받아들이는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거예요.
그래서 바울이 따지고 보면 좀 화가 난 거죠. 화가 나서 너희들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내가 한번 보여주겠다 이런 태도로 지금 자기 육신을 막 자랑하고 있어요. 육신으로 비교해도 내가 그 사람보다 훨씬 더 나은데 너희는 이것도 구별하지 못하느냐 그래서 왜 그들에게 넘어갔느냐는 거죠. 내가 정말 똑똑한 사람이라면 넘어가지 말았어야지, 내 말을 듣고 내 지도를 따랐어야지, 왜 거짓 스승을 용납하고 그들을 받아들였냐는 거예요.
자신들의 목회자인 자신들의 개척자인 바울은 배척하고 어리석은 사상을 퍼뜨리는 스승들은 환영했어요. 이런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태도를 19절에서 비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혜롭다고 하면서 어리석은 자를 받아들이는 것 이게 말이 안 되잖아요. 지혜로운 사람은 지혜로운 삶을 받아들여야 돼요. 내가 내 아이의 지혜를 자랑한다면 지혜로운 장소에 있어야 되고, 지혜로운 말을 해야 되고 지혜로운 행동을 해야 되죠. 내가 지혜롭다고 하면서 어리석은 말을 하고 어리석은 자리에 있고 어리석은 일을 하면 그 사람이 결국 어리석은 사람인 거예요.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지혜롭다고 하면서 어리석은 말을 하고 어리석은 자리에 있고 어리석은 행동을 했던 겁니다. 20절을 표준 새번역으로 한번 보겠습니다. 말씀 준비됐나요? 20절 말씀 안 됐으면 제가 한번 읽겠습니다. 읽습니다. 시작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이걸 표준 새번역을 보면 이렇게 돼요.
누가 여러분을 종으로 부려도, 누가 여러분을 잡아먹어도, 누가 여러분을 걸려도, 누가 여러분을 얕보아도, 누가 여러분의 뺨을 때려도 여러분은 가만히 있습니다.
이런 거예요. 거짓 교사들의 저의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회는 그들을 계속 용납했다는 거예요. 종으로 부리려고 하고 잡아먹으려 하고 골리고, 그리고 얕보고 뺨을 때리고 이거는 약간 종교적인 학대와 같은 거예요. 그렇게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대했는데도 어리석게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그들을 다 스승으로 받아들인 거예요. 참 스승인 바울은 배척하고 거짓 선생인 이 사람들은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만약에 그들이 지혜로웠다면 빨리 알아차렸을 것이고 그들을 쫓아냈을 것이에요.
그런데 지혜로운 것처럼 보였지만 어리석었던 거예요. 그래서 짐의 짐승이 먹잇감을 먹으려는 것처럼 그들을 잡아먹으려고 달려들었는데도 그 저의를 몰랐고, 사냥꾼이 짐승을 잡아먹기 위해서 포획하는 것처럼 덫이나 믿기로 유혹했음에도 불구하고 넘어갔다는 거예요.
사도바울의 요지는 이거예요. 누가 봐도 어리석은 자가 봐도 거짓 교사들의 저의가 분명했다는 거예요. 좋은 의도가 하나도 없었다는 거예요. 그런데도 그렇게 넘어가고서는 자기를 지혜로운 자라고 말하는 것이 사도바울은 너무 속이 상하고 어리석었던 거예요. 그래서 자기도 바울도 어리석은 자처럼 한번 해보겠다고 그래서 누가 이기는지 보겠다고 이렇게 나서서 자기 자랑을 나중에 이렇게 시작하게 됩니다.
20절 마지막 부분에 보면 누가 여러분의 뺨을 때려도 이렇게 돼 있잖아요. 이 뺨을 친다는 것은 어떤 의미냐 하면 신성 모독자들을 대할 때 뺨을 이렇게 때리는 거예요. 누군가가 신성 모독죄를 범하면 이 당시에 1세기 때는 뺨을 때렸어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목사인 제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면 사람들이 제 뺨을 때리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이 신성 모독죄를
모르고 입으로 범하면 여러분이 뺨을 때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거짓 스승들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뺨을 때렸다는 건 어떤 의미예요? 그들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신성 모독하는 사람으로 몰아갔던 거예요. 스승인 것처럼 다가와서 하나님을 잘못 섬기는 사람들을 막 그들을 몰아갔는데도 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이들의 저의를 모르고 그들을 쫓고 따르고 물질을 갖다 바치고 이렇게 했던 거예요.
이게 사도바울이 화가 났던 거예요. 그래서 나도 그럼 나도 한번 그들처럼 내가 육신의 조건을 자랑할 테니까 너희가 한번 들어봐라. 내가 육신의 조건으로 결코 그들에게 밀린 적이 없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거짓 교사임에도 불구하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영적으로 지배하기 위해서 신성 모독자로 몰았던 것입니다. 그래도 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그들을 따르고 바울은 배격했던 거예요.
여러분 종교적으로 사악한 사람들은 종교적으로 지배하려고 해요. 자유 있게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지배 우리가 옛날에 종교 중독에 대해서 한번 배운 적도 있었죠. 종교 중독인 거예요. 종교적으로 집배하려고 하는 것이 거짓 스승들의 대부분 일관적인 태도예요. 어떤 것들을 통해서 그들을 영적으로 지배하는 근데 앞에 말했던 것처럼 종으로 부리고 잡아먹으려고 하고 걸리고 얕보고 뺨을 때리고 이 모든 행동들은 이 거짓 교사들이 이 고린도 교회를 영적으로 지배하기 위해서 사악하게 지배하기 위해서 종교적으로 중독시키고 있었던 거예요. 자기 말만 듣도록 그랬더니 이게 효과를 본 거예요. 그래서 자기들의 스승 자기 교회 개척자 이 바울을 배척하고 공격하고 멀리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바울 자신은 절대로 거짓 교사들처럼 하지는 못하지만 거짓 교사들로 인해서 고린도 교회에 어려움이 생기는 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그들처럼 자랑해 보겠다고 하고 있는 거예요.
자랑하는 자를 사도 바울은 어리석은 자로 했잖아요. 그렇죠 자기가 지금은 어리석은 자가 돼보겠다는 거예요. 교회를 위해서 사도권을 지키고 다시 종교적으로 지배당하고 있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거짓 교사들로 빼오기 위해서 자기가 잠깐 어리석은 자처럼 되겠다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랑을 통해서라도 고린도 교회를 바로 세울 수 있고, 어리석은 자랑을 통해서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하는 것을 통해서 고린도 교회를 도울 수 있다면 자기는 그렇게 하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돕기 위해서 자기가 평상시에 하지 않던 것을 하겠다고 지금 나서고 있는 거죠.
사람은 자기가 하기 어려워하는 거 힘든 거는 정말 힘들어요. 여러분 못하는 건 평생 못할 수 있어요. 제가 여러분을 아무리 권면하고 아무리 막 가르치고 해도요. 이미 여러분이 오랫동안 여러분 마음속에 나는 저거는 싫어 나는 교회는 다녀도 난 저렇게는 못해 나는 막 아무리 내가 기도 시간이 많이 늘어도 난 저렇게는 절대 못해라고 스스로 규정되어 놓은 것들이 이미 있어요.
그래서 교회가 이렇게 뜻을 모으기가 되게 어려워요. 왜 자기가 규정하고 있는 게 다 있거든요. 제가 아무리 여러분을 막 이렇게 모으려고 해도 안 보여줘요.
결국 모은다는 것이 어떤 개념이냐 하면 여러분이 줄 하나씩이라면 결국은 내가 20개의 줄을 찾고 있는 거지 이 20개의 줄을 하나로 만들지는 못해요. 교회가 모은다는 개념이 그거예요. 마음을 모은다 20개를 모아서 줄 하나로 못 만들어요. 그냥 20개의 줄을 찾고 있는 거예요. 이렇게 제가 보기에 목회는 아마 이게 전부일 것 같더라고요. 20개를 하나로 만들 수 있다면 그거는 주님이신 것 같고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20개를 한 곳에 모으지도 잘 못하고 저도 잘 못 모으잖아요. 좀 탁월하고 유능한 사람들은 모아서 찾고 있을 수는 있어요.
근데 이분이 돌아가시거나 은퇴하면 그 교회가 확 풀리는 걸 우리가 경험하잖아요. 왜냐하면 대부분 자기들의 지금까지의 경험과 어떤 것으로 인해서 그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이렇게 규정된 게 있어요. 그래서 절대로 저는 그거 못해요. 저는 교회를 안 다니면 안 다니는지 저는 그거 못해요. 이런 것이 있어요.
사도바울도 그런 게 있어요. 그게 바로 자기를 자랑하는 거예요. 복음을 위해서 자랑하지만 그 외에서 자기를 자랑하는 것을 극도록 꺼려했어요. 그래서 사도바울이 어떤 배경에서 자랐는지에 대해서 알기가 어려워요. 사도바울이 뭉뚱거려서 가말리엘 문화에 있었고 있었고 있었고 몇 가지 이야기했을 뿐이지. 그래서 사도바울의 이 젊은 시절을 추적하기가 어려워요.
왜요? 말한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조금 하겠다는 거예요. 왜요? 교회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자기 사도권이 보호가 되면 고린도 교회가 회복되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자기를 보호하고 그 사도권을 회복시킴으로 고린도 교회도 회복시키겠다는 사도바울의 생각이 뜻이 이 안에 잘 담겨 있는 거 그러니까 교회를 위해서는 가장 싫어하는 것도 하겠다.
저는 구걸하는 걸 못해요. 길거리에서 이렇게 막 돈 달라 이거 말고 사람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생각보다 잘 못해요. 요즘은 그래도 좀 하는 편이에요. 제가 20대는 훨씬 더 못했고 30대도 비슷했던 것 같아요. 40 50 넘어서 조금 이제 부드러워진 건지 그게 좋아진 건 잘은 모르지만 못했어요.
군에 처음 가서 군목이 열심히 민간인 목사님들한테 도와주십시오라고 해야 저희 병사들이 잘 먹잖아요. 근데 그 말을 못하겠는 거예요. 열심히 사역은 하고 막 기도는 열심히 하지만 정작 뭐 도와주겠다 그래도 말도 잘 못하고 제 성향과 너무 안 맞는 거예요. 그래서 안 했어요.
근데 어느날 기도 중이었는지 묵상 중인지 잘은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 때문에 굶고 있는 우리 병사들이 이렇게 내 마음에 들어오더라고요. 내가 이렇게 체면을 차리다가 차려서 우리 병사들이 풍성하게 못 먹겠구나. 물론 제 사례비와 또 교회에서 주는 사례와 제 군인이었으니까 제 군인 월급과 교회에서 주는 사례비와 또 가끔 방문한 분들이 보내주는 것 선교 후원비로 형제들이 먹을 걸 사주고 돕긴 하지만 대규모의 민간 후원이 와야 전방 부대는 좀 풍요로울 수 있거든요.
근데 그런게 일치한다는 거예요. 어느 날 이걸 내려놓기로 마음 먹었어요. 그래서 형제들을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 좋은 음대에 다니는 형제가 많아서 7명인가 중창단을 만들고 이 친구들을 데리고 서울에 가서 중창을 성도들 앞에 음악을 전공했으니까 얼마나 잘 알겠어요. 군복 입고 가니까 막 성도들이 눈물도 흘리고 헌금이 얼마나 많이 들어왔는지 몰라요. 그래서 아이들을 정말 풍성하게 먹였어요. 풍성하게.
지금 돌아보면 100% 다 만족스럽지 않아요. 그게 다 바른 걸까라는 생각은 있지만 어떻든 형제들을 잘 먹이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에 대해서는 후회가 아주 많지는 않습니다.
사도바울은 교회를 지킨 일이라면 교회에 유익이 되는 일이라면 자기가 평상시에 하지 않던 것도 하겠다는 거죠. 그래서 자기 자랑을 하고 그가 어리석다고 판단하는 것들을 그대로 지금 본받아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도바울의 중심에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과 저의 중심에도 물론 가족을 사랑하는 것들, 세상에서 지위를 얻는 이런 것들이 다 우리의 중심에 있겠죠. 가장 내 삶의 중심에 내 마음에 한 가운데 있어야 하는 것은 교회이고 곧 하나님의 나라인 거죠.
여러분의 마음을 제가 헤집고 들어가요. 그래서 딱 이렇게 마음을 헤집었더니 이쪽은 딸을 위하는 마음, 여기는 물질을 사랑하는 마음 여기 봤더니 또 과거에 매인 마음 여기 봤더니 이런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막 파고 파고 파고 이렇게 들어갔더니 가운데 교회와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이 딱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우리 마음에 다른 마음도 있을 수 있죠. 당연히 그러나 그 중심에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향한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사도는 평상시에 그가 하지 않았던 이상한 행동을 자기 스스로도 이게 되게 불편했나 봐요. 그래서 계속 이야기해요. 나의 어리석음을 용서해라. 나의 자랑하는 것을 용서해라. 자기도 불편한 거예요. 자기가 이렇게 하는 게 왜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까. 그렇지만 사도권을 변호하고 그걸 통해서 고린도교회를 다시 건강하게 세우기 위해서 그렇게 하기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해서 때로는 가장 싫어하는 것도 하는 헌신이 좀 필요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여러분이 가장 불편해하는 것도 좀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럴 때 교회도 서 가고 여러분의 영혼도 서 갈 수 있습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