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여나 당신을 켜 보네
심강우
나는 오늘 먼 산을 잠갔던 구름이 빗소리를 켜는 주파수에 맞춰 얼결에 당신 목소리를 켰네. 오늘이 당신 기일이란 걸 나만 알고 있다는 걸 당신은 알고 있다는 듯 주룩주룩 흘러나와 내 귀를 적시는 동안 나는 당신이 치댄 오래된 빨래판이 갈라지는 소리를 듣네. 당신이 간간이 웃는 틈새로 당신이 차려준 따스한 국밥을 헤적이는 소리도 듣네. 어째서 한 뼘 핸드폰 안에 있으면서도 천리안을 지닐 수 있는지 자맥질하며 더듬네. 그것은 허리 숙여 잘린 제 발목을 들여다보는 볏단의 묵연한 심사이거나 당신이 심어 놓은 머위가 올해도 잊지 않고 담장 한쪽에 초록 솥을 걸어놓는 습성과 다를 바 없으니 유정한 당신의 주걱이 언제라도 내 안에서 남은 슬픔을 긁어 누룽지처럼 불리겠다는 것. 편도 승객을 태운 배는 언제나 호주머니에 정박할 것이고 나는 부러진 닻처럼 떠나지 못할 테야. 누군가 물가에서 물소리를 듣는 게 두렵다는 나를 탓한대도 여전히 소문에 없는 구명정이 떠오를까 봐 나는
_시집[사랑의 습관],(시인동네. 2024) p71 수록작
_심강우 (시인·소설가) 2013년 시‘서술의 방식’으로 수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시인 등단 19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2012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2017년 눈높이 아동문학상 동시 부문 당선 2017년 어린이동산 중편동화 당선 2018년 소설집 『전망대 혹은 세상의 끝』성호문학상 수상 2019년 대구문화재단 개인예술가 창작지원 수혜 2022년 제1회 동피랑문학상 작품상 수상 2023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시 부문 발표지원 수혜 시집『색』『사낭의 습관』 소설집『전망대 혹은 세상의 끝』『꽁치가 숨쉬는 방』 동시집『쉿!』『마녀를 공부하는 시간』 동화집 『꿈꾸는 의자』 장편동화 『시간의 숲』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