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 꽃물
견물생심(見物生心)
아버지!
사랑은 아무 조건 없어야 아름답다 했습니다, 인간이란 본시 혼자 사는 동물이
아니기에 아무리 사심없이 주고 또 주었다 해도 어느 시점에 가서 이유없이 서운한
맘이 드는게 인지상정이라 했습니다,저도 이즈음에 별반 다를 바 없는 보통의 인간
이라는 사실을 실감하면서 진솔한 사랑을 실천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지요,
아버지의 첫 손부 보시는 날 폐백실에서 아들 며느리 손자 손부와 딸 셋은
폐백실 밖으로 나가라고 하여 영문도 모르고 밖에 나와 서 있었지요, 아버지께서
아침부터 무겁게 들고 오신 가방을 열더니 며느리 둘과 손부에게 금목걸이를
차례로 걸어주셨지요,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며느리들은 감사와 감격의 눈물을
흘리더군요,
아버지 당신도 자식들에게 베푼 마음으로 흐뭇하셨지요, 팔순을 넘긴 연세에
장손의 자리매김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겠습니까, 집안의 뿌리가 튼실하게 자리잡아
가는구나 하고 덩달아 웃음을 벙글며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려 왔습니까, 이 기회에
아들 며느리들과 장손에게 자기자리를 지키며 어려운 세상 처신 잘하라는 무언의
큰 뜻은 참으로 정겨웠고 당당 하였습니다,그런데 감격과 서운함의 거리가 이토록
멀기도 하고 가까운 줄 저도 미쳐 몰랐습니다, 그 때만 해도 딸 셋은 정말 아무사심
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한순간 불같이 일어나는 섭섭함이 아버지
를 향해 가더이다, 아버지가 출가 외인이라고 밀쳐 내는 큰 힘에 우린 그냥 밀려
나고 말았지요,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면 그 날의 서운한 짧은 소견들이 사라질줄 알았는데 더
선명히 고여드는 눈물은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그 눈물을 보면서
웃음도 아니고 울음도 아닌 참 분간키 어려운 마음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꿰매
듯 했답니다,
당신의 첫손자가 핵분열을 일으키듯 어른이 되는 경사스러운 날에 아버지는 집안의
정신적인 지주로서 정말 훌륭한 일을 당당하게 마무리 잘 하셨지요,
전통적인 한국의 가풍을 그대로 실천하신 오늘, 올곧은 그 시대의 정확한 유교적인
풍습에 한 치도 어긋남이 없이 행하신 것은 아버지 시대에는 환영받을 일인 줄은
저도 압니다, 하지만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시는 것도 아닐진대 아주
조금만이라도 옆을 쳐다 보셨다면 이 경사스러운 날에 금상첨화 였을 거라고
욕심 부려 봤습니다.
여식이 물건에 탐하는 것이 아님을 아버지가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은 단순한 이기심만이 아닐 겁니다, 폐백실 문밖에 멀건히
서서 슬픔도 기쁨도 아닌 뜨거운 눈물이 났을때 저 자신이 더 놀랬습니다,
아버지가 가족적인 울타리를 쳐버리는데서 딸 자식은 비로서 출가외인이라는 단어가
가슴에 와 박히더이다, 딸 셋이서 폐백실 문밖에서 눈시울 뜨거워진 줄은 아버지도
짐작 못하셨을 겁니다.
손부나 아버지의 며느리에게 걸어주는 금목걸이가 탐이 났겠습니까, 너희들은 딸
이기 이전에 다른 가문에 뼈를 묻을 사람들이니 문밖으로 나가라는 아주 통념적인
눈짓으로 보여졌던 게 서운했던거지요, 이런 생각마저도 어리석다 하시면 저는 아무
할말이 없습니다.
아버지 정성이담긴 선물을 손부나 며느리에게 안겨줄 때 누가 보아도 보기
좋고 흐뭇하고 좋았습니다, 우리도 미쳐 생각지도 못한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신 이런
부모 그늘에 살아온 것이 얼마나 행운이었는가를 자신하며 뿌듯했습니다, 아버지의
형편으로 수 백만원의 거금을 들였다 는 것에 놀랬지만 그런 발상에 또한 감탄
햇습니다, 딸과 며느리가 그렇게 구분되는 순간도 의외엿지만요, 아버지 세대에는
당연한것이라고 이해하면서도 요즈음 세상과 너무나 동떨어진 편견의 들판에 서서
참바람을 맞는 것이지요,
이 나이에 양부모 계신것에 감사할 일이지 요것 저것 따진다고 복에 겨워 찧고
까불며 투정한다고 내 친구가 핀잔을 주더군요,
그마저도 복인 것을 왜 모르겠습니까,
차라리 딸네들은 이번 일에 뺏으니 서운하게 생각지마라 하고 그냥 앉아 있게
하셨더라면 하는 아쉬운 생각을 했습니다,어쩌면 이런 제 소견도 어리석을 푸념 인지
도 모릅니다, 아버지는 당연히 딸들은 제외라고 생각하셨을테니까요,그리고 너희들이
아무리 서운타 어쩐다 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라고 아버지는 딱 분질러 말씀하셨을
거고 오히려 당연한 처사라고 여겨을지도 모릅니다.
아무 사심도 가지지 않으려고 저 자신을 달래고 추스려 보아도 잠시 부모의
마음 밖으로 밀려난 느낌은 참 씁씁하엿답니다, 이런 생각들 마저도 자식된 도리에
어긋난다는 것도 알아요, 물욕에 어리석은 어깃장을 부린것입니까, 정녕 주재 넘는
것을 넘나 보았습니까,"하다 못해 실 반지라도 하나씩 해주시지..." 라고 웃으면서
또 눈물을 글썽이는 출가 외인 셋,"너희들은 너 시어른들이 잘해줄건데 뭐" 그런
말들이 뭔 타당한 이유라고 그리 말씀하시는지 부모의 깊은 속정을 모르는 나이
지긋한 딸들이 진짜 어리석은겁니까,
우리가 세상 살면서 남에게 보이는 것만으로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잘 압니다,
또한 이번 기회에 더 실감하게 되었고 바란다는 것도 내 속에 욕심의 찌꺼기가 앙금
처럼 갈아않아 있기에 이리 서운한 맘이 드는 것도 알았습니다. `선물 못 받아도
그런 아버지가 계셨으면.`참 훌륭한 처신을 하셨어,`분명 나름대로 생각이 깊으신
분이네, `이렇게 다들 입에 침이마르는 것이 듣기 좋으면서도 제기분은 자꾸 깊숙한
늪 속으로 빨려들어갔습니다, 추호도 욕심이 없다고 입버릇처럼 내뱉지만 어느 한
순간,코앞에 결정적인 일이 닥치면 솔직히 나타나는 게 사람의 마음인가 봅니다,
공 치사라도 듣고 싶어하는 내 꼴이 더욱 슬프게 하네요,
뭔가를 바란다면 분명 서운할 일이 다가올 것이고, 바라지 않는다면 서운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세상 순리를 비껴 가는 속내가 일언지하에 드러나고 만
것입니다.
조건 없이 주었지만 배신감을 안겨주는 일도 허다한 세상이지만 아버지의
삶은 뒤돌아 봐도 한 치 어긋남이 없는 눈 높이로 보셨는데 세상 이치를 아직도
잘 모르는 여식의 어리석은 생각들이 발동한것인지 눈이 부시도록 좋은 날씨인데
도 마음은 왜 푸른 하늘처럼 청명하지 않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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