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陳村(白居易)
徐州古豐縣 有村曰朱陳 서주의 고풍현에, 마을 하나 있는데 주진촌이라고 하네.
去縣百餘裏 桑麻青氛氳 현에서 가자면 백여리인데, 뽕나무와 삼나무 푸르고 향기롭네.
機梭聲札札 牛驢走紜紜 베틀은 철컥철컥 베 짜는 소리 내고, 소와 나귀 어지럽게 섞여 달리네.
女汲澗中水 男採山上薪 여인들은 강에서 물을 길어 올리고, 사내들은 산에 올라 나무를 하네.
縣遠官事少 山深人俗淳 고을이 멀어 관에서 하는 일이 적고, 산이 깊어 사람과 풍속이 함께 순박하네.
有財不行商 有丁不入軍 재물이 있어도 장사하지 않고, 사내아이 있어도 군대에 안 보내네.
家家守村業 頭白不出門 집집마다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흰머리 되도록 밖에 나가지 않으니.
生爲村之民 死爲村之塵 살아서는 주진촌 사람으로 살고, 죽어서는 주진촌의 흙으로 돌아가네.
田中老與幼 相見何欣欣 밭에 있는 노인과 어린아이들, 볼 때마다 뭐가 좋은지 즐거워하고.
一村唯兩姓 世世爲婚姻 한 마을에 오로지 두 성씨만 있어서, 대대로 두 집안이 혼인하네.
親疏居有族 少長遊有羣 가까운 사람 함께 살아 집안이 되고, 어른, 아이 무리 지어 함께 노니는데.
黃雞與白酒 歡會不隔旬 닭 잡고 맛 좋은 술을 담가서, 열흘이 멀다고 모여 즐기네.
生者不遠別 嫁娶先近鄰 산 사람은 멀리 떠나 헤어질 일 없고, 시집 장가가는 짝도 이웃에서 고르며.
死者不遠葬 墳墓多繞村 죽은 사람도 먼 곳에 장사 지내지 않아, 무덤들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네.
既安生與死 不苦形與神 사는 것과 죽는 일이 함께 편안하고, 몸과 맘 괴로울 일이 없으니.
所以多壽考 往往見玄孫 나이 들어 오래도록 사는 이들 많아서, 고손자를 못 보는 게 오히려 드무네.
我生禮義鄉 少小孤且貧 이 몸은 예의 따지는 곳에서 나서, 어린 나이에 고아 되고 가난했는데.
徒學辨是非 只自取辛勤 헛되게 잘잘못 가리는 것 배워서, 얻은 것이 힘들게 일하는 것뿐이었네.
世法貴名教 士人重冠婚 세상 법은 이름과 배움을 귀히 여기고, 선비들은 관례와 혼례를 중히 여기지만.
以此自桎梏 信爲大謬人 이것이 스스로에게 속박이 되고, 믿음이 사람을 크게 그르치네.
十歲解讀書 十五能屬文 열 살에 책을 읽고, 열다섯에 책을 엮고.
二十舉秀才 三十爲諫臣 스물에는 과거 치르고, 서른에는 간쟁하는 신하가 되네.
下有妻子累 上有君親恩 아래로는 아내와 자식이 여럿이고, 위로는 군왕과 부모님 은혜 있는데.
承家與事國 望此不肖身 가문을 잇고 나라를 섬기는 일에, 이 몸이 제 할 일을 하지 못했네.
憶昨旅遊初 迨今十五春 처음으로 길 떠난 게 어제 같은데, 어느새 열다섯 해 흘러가는 동안.
孤舟三適楚 羸馬四經秦 혼자서 배에 올라 초 땅에 세 번 갔고, 야윈 말 타고 네 차례나 秦 땅 지났네.
晝行有飢色 夜寢無安魂 대낮에 길 갈 때는 배가 고팠고, 밤중에 잠잘 때는 맘 편할 틈 없었는데.
東西不暫住 來往若浮雲 동서로 잠시도 머물 새 없이, 오가는 게 마치 뜬구름과 같았네.
離亂失故鄉 骨肉多散分 난리를 피하느라 고향을 잃고, 형제자매 뿔뿔이 흩어진 뒤로.
江南與江北 各有平生親 강의 남쪽과 북쪽으로 갈라진 채로, 평생을 따로따로 그리면서 살았네.
平生終日別 逝者隔年聞 살다가 마지막 날 헤어지는 것인데, 해 걸러 떠난 사람 소식 들려와.
朝憂臥至暮 夕哭坐達晨 아침에 걱정하다 누우면 저녁이 되고, 밤이면 슬퍼하다 앉은 채로 새벽 맞네.
悲火燒心曲 愁霜侵鬢根 슬픔의 불길이 마음속을 태우고, 희어진 머리칼이 귀밑에서 생기네.
一生苦如此 長羨村中民 한평생 고달프기 이와 같아서, 오래도록 주진촌 사람들 부러워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