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밧#헤세드#사랑
예슈아는 토라에서 가장 큰 계명이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 가르치셨고, 두 번째 계명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핵심 계명을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계명이 언급된 레위기(19:18)에서 ‘사랑’으로 번역된 동사는 ‘아하브’입니다. 능동형 동사인 이 단어는, 다시 말해 사랑은 ‘행동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웃을 잘 사랑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스스로를 가치 없는 존재로 생각하면, 다른 사람을 그렇게 대하거나, 스스로 그렇게 대하도록 만들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이웃을 사랑하는 우리의 능력은 ‘우리 자신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우리 자신에 대한 계명의 합당한 시각을 가지고 못했다면,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그분이 보시는 것처럼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더 ‘높은 형태의 사랑’인 헤쎄드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사랑’을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인 ‘헤쎄드’는 영어로 번역하기가 어렵습니다.
‘헤쎄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언약에서 비롯된 힘, 굳건함, 충성심, 헌신의 의미를 내포하며, 감성적 측면으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을 말합니다.
“여호와는 은혜롭고,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애(헤쎄드)가 크시도다” (시 145:8, 출 34:6~7).
‘하나님의 13가지 속성’ 중 하나인 ‘헤쎄드’는 모쉐에게 주신 하나님의 계시 중 하나입니다. 이것은 요하난의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묘사와 일치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이여, 우리가 서로 사랑합시다. 왜냐하면 사랑은 하나님께로 부터….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요 14:7~8).
헤쎄드는 언약 관계에 기반한 ‘평생의 사랑’ 즉 ‘영원까지 지속되는 굳건하고 견고한 신실함’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산들은 떠나고 언덕이 흔들린다 해도 내 인애가 네게서 떠나지 않을 것이며 ‘내 평화의 언약’이 떠나지 않을 것이다.” (사 54:10).
헤쎄드는 어떤 죄나 배신을 넘어 상한 마음을 치유하고 기꺼이 용서를 베푸는 ‘사랑’의 한 형태입니다. 사실 헤쎄드는 ‘하나님의 사랑’ 그 자체입니다.
성서학자인 존 오스왈트는 출애굽기 34장 6절에서 사용된 헤쎄드는 권력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베푸는‘과분한 친절과 관대함의 적절한 예’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히브리 민족이 하나님을 찾지 않았는데도 어떻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는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계속 어겼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그 언약에 하나님 자신이 충실했는가에 대해 주목합니다.
“주님은 인간과 달리 변덕스럽고 신뢰할 수 없고, 이기적이며 욕심 많은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 대신 그는 신실하고 진실하며 올곧고 관대했습니다” -오스왈트-.
헤쎄드의 ‘언약적 측면’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에서 목격됩니다.
신실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십니다. 그분은 이스라엘을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을 이야기할 때 하나님의 헤쎄드를 배제하고는 상대적으로 250:1의 적은 인구의 나라가 더 많은 인구수의 나라를 상대로 나라가 보존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땅의 사람들이 전쟁에서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을 목격했고, 분쟁과 크고 작은 소요가 끊이지 않는 나라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헤쎄드’를 충분히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소위 힐로님(유대인 중에서 가장 종교적이지 않은 분류) 또는 세속적인 유대인들조차도 하나님의 존재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헤쎄드’를 알고 있습니다. ‘유대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거룩 ‘하신 분, ‘의’ 자체이신 분의 헤쎼드가, 유대민족의 부족함에도, 그분의 언약을 향한 사랑에 대가 없는 ‘자비와 친절’로 길을 열어 주십니다. 헤세드는 자비와 연민을 뜻하는 ‘라훔’과 자주 짝을 이루며 사용됩니다. 이사야 54장 10절의 내용 또한 그렇고, 호쉐야 2장 19절에 ‘의와 공의와 인애와 자비를….’ 이라고 할 때도 ‘라훔’이 쓰입니다.
헤쎄드의 사치?
“참으로 당신의 인애(헤쎄드)가 제 눈앞에 있어 제가 당신의 진리 안에서 걸어갑니다” (시 26:3).
레 20:17에서 사용된 헤쎄드는 ‘누이를 취하여 그녀의 하체를 보는 것’을 설명하면서 ‘수치’라고 해석했습니다. 여기서 헤세드는 ‘거룩의 명령’, ‘그 선을 넘었다’의 뜻으로, ‘넘치고 경계가 없는 것’의 의미가 더해집니다. 이 경우는 헤세드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거룩의 명령’ 차원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제한 없이 사랑하는 것’, 즉 넘치는 은혜와 자비, 나눔을 이루는 ‘사랑의 행위’를 말합니다. 이런 종류의 사랑에는 ‘내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없습니다. 룻기 1:8~20은 헤쎄드의 예를 잘 보여줍니다.
노오미가 그녀의 두 며느리에게 말하였다. “각자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거라. 너희가 죽은 내 아들들과 내게 행한 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인애를 베푸실 것이며” (룻 1:8)
오르바는 돌아갔지만, 룻은 노오미를 도우며 친절 이상을 행했습니다. 룻은 가족의 의무를 넘은 ‘충성스러운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몰락한 가정을 일으켜 세우는, 더 나아가 믿음의 계보를 잇는 강력한 ‘헤쎼드의 삶’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헤쎄드가 의무와 계약 준수를 넘어선, ‘그 이상의 가치’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감정이나 기분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결핍을 알아채고 연민과 아하바(사랑)로 그 ‘필요를 채우는 것’, 곧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게밀룻트 하싸딤’의 미쯔바 (친절한 행위의 계명)
“여호와께 감사하여라. 참으로 그는 선하시며 참으로 그의 인애가 영원하시다.” (시 136:1).
유대 전통에 따르면 ‘경건한 (하씨드) 사람’이 되려면, ‘헤쎄드를 배워야 한다’라고 가르칩니다(하씨드는 헤쎄드에서 유래).
피르케이 아보트1장 2절에 따르면, 세상은 ‘토라(공부), 아보다(예배와 기도), 게밀룻트 하싸딤’(헤쎄드에 기초한 기부), 이‘세 가지 기초로 유지된다’라고 말합니다. ‘토라의 미쯔바’인 ‘쩨다카’는 보통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기부하는 것’이지만, ‘게밀룻트 하싸딤’은 누구에게나 베푸는 ‘사랑의 친절’을 (보통 개인적인 봉사) 말합니다. 이 개념은 매우 광범위하고 모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포함합니다. 실제적인 관계 속에 하싸딤을 행하면서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을 배운다’라고 말합니다. 쩨다카(기부)가 가장 기본적인 의무나 계명을 이행하는 것이라면, 헤쎄드는 ‘자발적’이고, ‘과잉의, 넘치는 기부’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헤쎄드는 받을 권리가 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과잉의 은혜’이자,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는 마땅히 받을 것보다, ‘더 많이 풍성하게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헤쎄드를 행하는 것은 단순한 의무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종종 공동체로부터 외면당하고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구원’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사람에게 ‘부여하신 가치’를 볼 때, 우리가 가능한 아낌없는 은혜와 친절의 행동을 누군가에게 보낸다면 그는 인간답고, 회복된 형상대로 존중받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회복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것이 우리 가운데 보이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요한1 4:9).
우리 각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헤쎄드를 알고, 그분이 우리를 소중하게 여기시는 것과 같이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다른 사람들과 그분의 헤쎄드를 나누며 누군가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헤쎄드’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는 내가 기뻐하는 것이 인애지 희생 제사가 아니며, 올림 제물들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내가 기뻐하기 때문이다.” (호 6:6).
글: <월간 샤밧> 고은희
그림: Sefira Lightstone
※월간샤밧 이야르월호가 출간되었습니다. 지금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구독 신청:
http://www.israelacademy.co.kr/store
<블러드 문>,<하나님의 전쟁>의 저자 마크 빌츠 목사님의 한국 초청 컨퍼런스가 6월 6일부터 6월8일까지 3일간 개최됩니다.
▶ 월간 샤밧을 만드는 사람들..
https://www.shabbat.co.kr/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