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한 가운데
임 향 순
오십이 넘으니 한 해 한 해가 더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 십대는 십키로로, 삼십대는 삼십키로로, 오십대는 오십키로로 삶의 속도가 빨라진다는 말을 수년전에 듣고 웃어 넘겼는데 그 말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늘 바쁘게 사는 덕에 중년여성들이 흔히 겪는다는 우울증을 감정의 사치라고 치부해버릴 정도로 외롭거나 쓸쓸할 시간 없이 나이를 먹어버렸다.
어느새 오십의 후반부가 되었다.
엄마는 내 나이가 되었을 때 네 명의 손주를 품에 안았다. 예전을 돌아보면 오십대 후반의 여성이 할머니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머리카락도 희끗해지고 눈이 침침해져 돋보기쓰기가 귀찮아 노안라식을 한 지도 사 오년 전이다. 앉았다가 일어날 때 나도 모르게 아이고소리가 나기 시작한 것도 오래된 일이다. 이런 내가 긴 머리를 자르지 못하고 내년에는 단발을 하자고 마음먹은 것도 몇 해째인지 모른다. 주름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얼굴에 어울리지도 않는 롱헤어 스타일이라니! 갑자기 서글퍼진다.
아줌마라는 호칭에는 별 감흥이 없던 내가 얼마 전 대형마트에서 점원이 부른 `어머님`이라는 말에는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나 또한 직업이 직업인지라 만나는 고객들 중에 나이 드신 어르신에게는 어머님이라는 호칭을 친숙함의 표시로 하곤 했다. 내 나이가 이삼십 대의 젊은이들에게 그와 같은 느낌으로 비춰졌다는 것이 이해가 되면서도 내심 서운했다.
물론 나에겐 그 또래의 장성한 아들이 없으며 아직도 로맨스를 꿈꾸는 미혼의 여성 아니던가.
갱년기에 찾아온 육체적인 변화와 반응을 알면서도 남들보다 편하게 넘기고 있음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중이었다.
내가 갱년기를 심각하게 앓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건 얼마 되지 않았다.
평균치보다 폐경이 늦게 왔고 동안이라는 말도 가끔 들이니 건강하고 곱게 늙어간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는 작은 소망은 있었다. 팔십이 훨씬 넘어서도 건강하신 엄마의 DNA를 물려받아 나도 활기찬 노년을 기꺼이 맞이하려는 참이었다. 하지만 나의 갱년기는 몸이 아니라 마음의 까칠함으로 먼저 속내를 보이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주변사람들과 부딪힘이 잦아지고 소소한 일도 큰 사건으로 확대하여 일을 만들고 해결하느라 골머리가 아픈 일들의 반복이었다. 누군가 하는 말 한마디마다에 주머니 뒤집듯 뒤집어 그 이면의 다른 뜻이 있는지 궁리를 하는 버릇도 생겼다. 별것도 아닌 일에 서운함이 많아졌다.
사춘기보다 무섭다는 갱년기여성이 현재의 내 모습이라는 사실을 하루에도 몇 번씩 일상에서 깨닫는다. 첫 번째 감정의 변화는 서운함이 많아진 것이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혼자 소설을 쓸 때가 많다. 유치찬란하고 부끄러운 소설로 한없이 흘러가다 멈추곤 한다. 때론 나의 잘못이 아닌 순전히 상대의 잘못인 경우도 있었을 텐데 나는 그저 생각한다.
` 내가 갱년기라 겪는 변화무쌍한 감정 때문에 주변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거야`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중년이후의 황혼이혼이나 졸혼, 또는 형제자매간의 갈등 같은 문제들이 여성의 갱년기와 상관관계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 순수와 열정으로 잘 견디어 왔던 일들이 어느 순간 허망하고 부질없게 느껴진다.
삶의 전부였던 가족과 주변이 무거운 짐처럼 버거워진다. 그냥 훌훌 털어버리고 오롯이 나만을 위해 바깥세상으로 탈출하고 싶어진다.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하지만 한번쯤 꿈꿔봄직한 일이다.
이런 마음으로 하루를 살다가 누군가의 상처 되는 한마디에 폭발을 하고 마는 것이다.
그동안의 인내는 더 이상 없다.
누군가가 내게 했던 말보다 더 큰 상처를 상대에게 주고 만다. 한마디 했던 그에게 두마디 열마디로 핧퀴어 댄다. 그러고 난 후에 내 속이 시원해진다면 그 또한 보람이겠으나 그에게 준 상처보다 백배 더 내가 아프다. 쏟아 부었던 말들을 주워 담을 수 있다면 당장 그러고 싶어진다. 이런 갈팡질팡 나에게 내린 자가진단은 `갱년기`.
염치없게도 이 단어 하나로 용서를 받고 싶다.
그동안 내가 한 쌀쌀한 말로, 싸늘한 눈길로 마음에 잠시라도 그늘이 드리워진 누군가에게 나는 지금 갱년기를 심하게 앓고 있다고 민망한 넋두리를 늘어놓고 싶다. 그러면 내게서 상처받은 그 누군가는 날 이해해줄까? 중증의 환자도 아닌 멀쩡한 이 얼굴로 많이 아프다고 말하면 내 마음을 헤아려줄까?
자식처럼 귀하게 여기는 조카아이가 있다. 중2학년 때 가족 모두 노래방을 갔었다. 갑자기 어른들과 한 방에서는 노래 부르지 않겠다며 강한 어조로 얼굴이 빨개져서 했던 말이 ` 지금 내가 사춘기라 그래. 좀 지나면 안 그럴거야 `
정말 그 녀석은 사춘기가 지나고는 가족 모두 노래방도 가고 뻔뻔할 만큼 넉살이 좋아졌다.
나에게도 그런 날이 올 거라 믿는다.
가슴마다에 돋아있는 가시들이 사라지고 가시가 사라진 자리에는 새 살이 나와서 다시 부드럽고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인 내가 되어 있을 거라 믿는다.
등줄기에서부터 머릿속까지 뜨겁게 차오르는 식은 땀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던진 한마디의 나쁜 언어들이다.
지금의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정중히 부탁을 드린다.
때로 마트에서 갑자기 부딪히거나 쓰레기분리수거장에서 만나게 되어 인사가 대충이어도 서운해 하지 마시라. 세수도 안한 얼굴이 민망해 그러함을 이해해주시라. 농담으로 던진 우스갯소리 한마디에 각을 세우고 울컥하는 나를 보게 되더라도 당황하지 마셨으면 좋겠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사소한 일들에 뒤끝작렬인 나를 보며 다시는 상대 못할 사람이라고 비난하며 돌아서지 마시길 바란다.
내 마음속에 심한 병을 앓고 있음을, 때론 당신도 그러했음으로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길 바란다.
나도 지금을 잘 견디고 지나가면 예전처럼 자상하고 맑은 얼굴로 내가 사랑해마지않는 그대들과 아름다운 여생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니.
연일 계속되는 폭염이다.
내 기억으론 최고로 더운 여름이다.
그래도 며칠 전부터는 아침이 선선해졌다.
시간과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는 진리를 믿으며 한 낮의 더위를 견디고 있다.
무더위와 함께 나의 지긋지긋한 갱년기의 주체할 수 없는 방황도 끝이 나기를 바란다.
나의 가족, 나의 친구들, 사랑하는 사람들과 여유롭고 풍요로운 가을을 맞이하고 싶다.
첫댓글 아니? 임 선생님이 갱년기를 지나고 계시는군요. 언제나 밝고 예쁜 얼굴로 보는 우리를 기쁘게 해주신 선생님.
그 과정을 담백하게 이야기해주셔서 고마워요. 우리 모두 그 길을 지나왔고 또 누군가는 지나올 그 길 끝에 우리가 있잖아요.
함께 더불어 익어갑시다. 건강 잘 챙기시고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김영숙선생님의 수필을 따라가려면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더위에 건강하시고 월요일에 뵐게요~^
어제 갱년기 너무 공감됬어요 ㅡ잘 극복하고 행복한 나날이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