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史記 46회]
☆韓信의 兎死狗烹☆
漢高祖 劉邦은 자신이 천하를 얻은 것은 천막 안에서 천리밖의 승패를 결정하는 능력을 가진 張良과 내치와 보급에 능숙한 소하(蕭河), 그리고 백만대군을 이끌고 백전백승한 韓信 이 세사람의 덕이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랬던 세사람 중에 대장군 韓信을 목베어 죽이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한신이 토사구팽(兎死狗烹)을 당한 것은 여러가지 원인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자신의 처신을 우유부단 했던데 있었습니다.
한신이 야전사령관으로서 趙, 燕, 魏, 齊를 정복했을 때 謨士 괴통(槐桶)이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말하면서 "이제 장군은 천하의 1/3을 정복한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초패왕 항우와 한왕 유방과 맞짱을 뜰수 있습니다. 즉 셋이서 천하를 1/3씩 나누자고 히십시오." 라고 조언하였습니다.
그런데 우유부단했던 한신은 거절하였습니다.
두번째는 유방이 천하를 얻은 뒤에 혹시 劉氏 성이 아닌 자들이 역성혁명(易姓革命)을 일으킬까봐 개국공신들을 의심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한신장군(韓信將軍)이 1번으로 찍혔던 것입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밀이 있듯이 한신의 모사 괴통이 천하삼분지계를 얘기 했던 일을 어느 간신이 유방에게 옮긴 것이 화근이었고, 황후 여치(呂稚)가 까닭없이 한신이 목에 힘을 주고 다닌다며 건방지다고 모함을 한데도 원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방은 한신을 齊王과 楚王으로 봉했다가 2년 후에 외지에 두면 반역할 염려가 있다며 회음후(淮陰侯)로 봉하고 낙양으로 불러들여 감금하다시피 수족을 잘라버렸습니다.
수족이 없어진 한신은 그냥 하루 하루 근근히 연명하는 처량한 신세로 있다가 유방이 반란군을 제압하러 출타중일 때 황후 여치가 죽여버렸습니다.
유방은 반란을 평정하고 돌아와서 한신이 죽은 것을 알고 크게 후회하고 황후 여치와 사이가 악화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한 국가의 제왕이라도 신하가 너무 똑똑하거나 대중의 인기를 얻는 것을 지극히 경계하였습니다.
선조 임금은 이순신 장군이 해전에서 연전연승하니,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삼도수군통제사직을 삭탈하여 감옥에 가두었고 박정희 대통령도 김종필이 너무 튀니, 김형욱이와 박종규 등을 시켜 견제구를 날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의반 타의반(自意半 他意半)"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지요.
독일의 히틀러는 사막의 여우 롬멜을 제거했고 트루만도 맥아더를 해임하였던 전례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모난 돌이 정(釘)을 맞는다." 말이 있지요.
지금 우리 정치계에도 정(釘)을 맞을 사람들이 여럿 있습니다. 부디 명철보신(明哲保身)하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