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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편 결혼 예식에서
제 15 장 엄숙한 약속
남편과 아내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 ― 하나님께서는 남가의 동무와 배필이 되고 남자와 하나가 되며 남자에게 즐거움과 용기와 축복을 주며 남자는 또한 그에게 힘센 돕는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하여 남자로부터 한 여자를 만드셨다. 거룩한 목적 ― 남편은 여자의 마음으로부터의 깨끗한 사랑을 얻고 아내는 자기 남편의 품성을 부드럽게 하고 증진시켜서 완숙하게 하는 ― 으로 결혼 관계에 들어가는 자는 모두 다 저들을 위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제도를 폐하려고 오셨던 것이 아니라 그것을 원래의 존엄성과 품위에로 회복시키기 위하여 오셨다. 하나님의 도덕적 형상을 사람에게 회복시키려고 오셨던 그분은 결혼 관계를 시인함으로써 당신의 사업을 시작하셨다.
아담에게 하와를 배우자로 주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처음 이적을 혼인 잔치에서 행하셨다. 친구와 친척들이 함께 즐기던 잔치 자리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공중 봉사를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그리스도는 결혼을 당신께서 친히 제정하신 제도로 승인하여 이를 윤허하셨다. 남녀는 혼인으로 가정을 건설하고 그 권속들은 영광으로 관 씌워져서 하늘 가족의 권속으로 인정되도록 제정하셨다.
예수께서는 행복한 결혼을 원하심 ― 그리스도로부터 흘러나오는 거룩한 사랑은 결코 인간의 사랑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포함한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사랑은 순화되고 정화되며 품위 있고 고상하여진다. 인간의 사랑은 그것이 거룩한 본질과 연합하고 하늘을 향하여 자라도록 훈련되기 전에는 결코 그 값진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예수께서는 행복한 결혼 곧 행복한 가정을 보기를 원하신다.
인류에게 보관하도록 맡겨진 다른 모든 하나님의 선하신 선물들과 마찬가지로 결혼도 죄로 말미암아 악용되었으나 그 순결함과 아름다움을 회복하는 것은 복음이 목적하는 바이다. …
그리스도의 은혜만이 이 제도가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대로 인류의 축복이 되고 인류를 향상시키는 요인이 되게 할 수 있다. 그렇게 됨으로 이 지상의 가족들은 그들의 연합과 화평과 사랑을 가지고 하늘의 가족을 대표할 수 있다.
사회의 형편은 이 신성한 관계에 대한 하늘의 이상에 대하여 슬픈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나 우의와 즐거움을 바라던 곳에서 쓰라림과 낙망을 당한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은 위로를 준다.
즐거운 자리 ― 성경은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이 가나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결혼 잔치에 초청되었을 경우에 그처럼 즐거운 자리에 나아가서는 안 된다고 말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잔치에 참석하심으로 당신은 당신의 율법을 준수하는 중에 즐거움을 누리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자 한다는 것을 가르치셨다. 그는 하늘의 율법을 따라 행하여지는 인간의 깨끗한 잔치들을 결코 못하게 하지 않으셨다. 그리스도께서 거기 계셔서 친히 높이시는 그런 모임에 그의 제자들이 참석하는 일은 옳은 일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잔치에 참석하신 후에도 많은 다른 잔치에 참여하셔서 당신의 임재하심과 교훈으로 그 자리를 거룩하게 하셨다.
허식, 낭비 그리고 떠들고 노는 일은 결혼 예식에 합당하지 않다 ― 결혼 예식들이 허식과 사치와 자아 방종을 나타내는 일이 되었다. 그러나 결혼하는 두 편이 종교적 신앙과 관습에 합의하고 그로써 시종 일관하다면, 그리고 그 결혼 예식이 사치나 허식 없이 거행된다면 이 시대에 있어서 결혼이 하나님께 불유쾌한 일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비록 결혼 잔치가 양쪽 가정에서 모두 완전히 마음에 들었다 하더라도 그렇게 큰 잔치를 베풀고 과시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기뻐서 들뜨고 허식에 찬 결혼 예식을 보는 것은 언제나 매우 합당하지 않게 생각되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하나의 예식이니 가장 엄숙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가족 관계가 형성될 때에 그것은 하늘의 가정으로서 마땅히 되어야 할 가정을 보여 주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이 언제나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
화잇가의 결혼 ― 화요일 오전 11시 우리 집 큰 식당은 결혼 예식을 위하여 준비되었다. B 형제가 주례하였는데 예식은 잘 마쳤다. 예식이 끝난 다음에 화잇 자매가 기도를 드리도록 하라는 부탁이 있었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특별한 자유를 주셨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나의 마음은 부드러워졌고 복종되었다. 이 경우에는 가벼운 농담이나 어리석은 말도 없었다. 이 결혼과 관련된 것은 무엇이나 엄숙하고 거룩하였다. 무엇이나 다 향상시키는 성격의 것이요 깊이 감명시키는 것이었다. 주께서는 이 결혼을 성별하시고, 이 두 사람은 선교지에 있는 사업 곧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는 데 그들의 관심을 연합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허락에 의뢰할 것 같으면 그들의 사업에 축복하실 것이다.
두 생명을 융합함* ― 영혼을 구원하는 봉사 사업에 있어서 피차의 취미와 동정과 사랑과 노력을 연합시키기 위하여 그대 앞에 선 자들에게 있어서 이때는 그들의 생애에서 매우 중요한 때이다. 결혼 관계를 맺음으로 아주 중요한 계단을 밟는 것이니 곧 두 생명이 하나로 융합되는 것이다. … 남자와 아내가 완전함과 거룩함 가운데 하나님의 사업을 전진시키기 위하여 함께 결합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는 일이다. 그들은 이 일을 할 수 있다.
이 연합이 있는 가정에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은 마치 하늘의 햇빛과같이 임한다. 이는 남편과 아내가 그리스도의 주관하심과 성령의 지도 아래서 거룩한 연합으로 결합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이기 때문이다. …
하나님께서는 가정이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 바로 하늘에 있는 가정의 상징이 되기를 바라신다. 가정에서 결혼의 책임들을 감당하고 그들의 취미를 예수 그리스도의 취미에 연결시키며 그분의 팔과 보증에 의지함으로 남편과 아내는 하나님의 천사들이 칭찬하는 이 연합에서 행복을 나눌 수 있다.
결혼은 그들의 유용성을 저하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를 강하게 한다. 그들은 결혼 생활을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봉사가 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내 말에 대하여 아는 것은, 나의 남편과 내가 36년 동안 연합하였고 주께서 명하시는 곳은 어디든지 갔던 까닭이다. 이런 일로 보아 우리는 결혼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칭찬이 있음을 안다. 그러므로 그것은 엄숙한 예식이다. …
나는 이제 이 형제의 손을 붙잡고 … 그리고 우리는 그의 아내된 그대의 손을 붙잡고 연합하여 하나님의 사업에 전진하라고 권장할 수 있다. 나는 하나님으로 그대들의 고문을 삼으라고 말하고자 한다. 서로 연합하고 연합하라.
신혼 부부에게 주는 권면 ― 나의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그대들은 평생 계속될 서약으로 결합되었다. 결혼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그대들의 교육은 시작되었다. 결혼 생활의 첫 해는 경험의 해로서 어린이가 학교에서 학과를 배우는 것처럼 남편과 아내가 상호간의 성품의 다른 특성들을 배우는 해이다. 결혼 생활의 이 첫 해에 그대들의 장래의 행복을 파괴할 장들이 없게 하라. …
나의 형제여, 그대의 아내의 시간과 힘과 행복은 이제 그대가 가진 그것들과 연결되었다. 아내에 대한 그대의 감화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든지 혹은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될 것이다. 여인의 생애를 해치지 않도록 깊이 조심하라.
나의 자매여, 그대는 결혼 생활이 가져오는 책임들에 대하여 첫 실제적 공과들을 이제 배우려고 한다. 날마다 성실히 이 공과들을 꼭 배우도록 하라. … 이기주의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계속 경계하라.
그대들의 생애의 연합에 있어서 그대들의 애정은 피차간의 행복에 공헌해야 한다. 각각 상대편의 행복을 위하여 봉사할 것이다. 이것이 그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나 그대들이 하나로 융합하는 반면에 그대들 중 아무라도 자신의 개성을 상대방 때문에 잃어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소유로서 그대들은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무엇이 옳은 것입니까? 무엇이 그른 것입니까? 제가 어떻게 함으로 저를 창조하여 주신 그 목적을 가장 완전히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하늘의 증인들 앞에서 하는 서약 ― 하나님께서는 결혼 관계에 들어가는 이들 사이에 완전한 사랑과 조화가 있어야 할 것을 명하였다. 신랑 신부는 하늘의 우주 앞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이 마땅히 그래야 할 것으로 정하신 대로 피차에 사랑할 것을 서약할 것이다. … 아내는 그 남편을 존중하고 존경할 것이요 남편은 그 아내를 사랑하고 소중히 하여야 한다.
남녀들은 결혼 생활을 시작할 때에 하나님께 그들 자신을 재헌신해야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계명을 순종하는 사람으로서의 그대의 기록을 손상시킬 생각과 말과 행위를 거부함으로써 그대는 그대의 결혼 서약을 강철처럼 참되게 하라.
제 16 장 행복하고 성공적인 협력
참된 결합은 평생을 두고 하는 경험이다 ― 결혼 관계에 대하여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평생의 사업이다. 결혼하는 이들은 이생에서는 결코 졸업할 수 없는 학교에 입학하는 것이다.
아무리 신중히 또는 현명하게 결혼 관계가 성립되었다고 할지라도 결혼 예식을 이루는 당시에 완전히 결합되는 부부는 적다. 결혼 생활에서의 두 사람의 진정한 결합은 후년의 일이다.
신혼 부부가 실생활에서 곤란과 걱정의 짐에 부딪히게 되면 그토록 상상으로 수놓아지던 로맨스는 그만 사라진다. 남편과 아내는 흔히 결혼 전의 교제에서는 알 수 없었던 피차의 성품을 알게 된다. 이 때는 그들의 경험에 있어서 가장 위험한 시기이다. 그들의 장래의 온 생애의 행복과 유용성은 지금 그들이 바른 노선을 취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그들은 때때로 이제까지 알지 못하였던 약점과 결점을 피차에 발견하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사랑으로 연결된 사람들은 아직까지 알지 못하던 장점도 또한 발견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단점보다도 장점을 발견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상대방이 우리에게 무엇을 드러낼지를 결정하는 것은 흔히는 우리 자신의 태도 즉 우리를 두른 분위기이다.
사랑은 시험과 단련을 받아야 한다 ― 애정은 수정처럼 맑고 그 순결함으로 아름다울 것이나 그것은 시험과 단련을 받지 아니하였으므로 아직 피상적일 것이다. 그리스도를 범사에 처음과 나중으로 그리고 최상으로 삼으라. 계속하여 그를 쳐다볼 것이니 그리하면 그리스도께 대한 그대의 사랑이 시험과 시련을 받을 때에 날마다 더욱 깊어지고 더욱 강하여질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께 대한 그대의 사랑이 증대될 때에 그대들 피차간의 사랑도 더욱 깊고 더욱 강하게 자라날 것이다.
곤란과 당혹과 실망이 닥치더라도 부부간에 누구든지 그들의 결합이 과오였다거나 혹은 실망이라는 생각을 품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다. 피차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도록 결심할 것이다. 초기의 정성을 계속 유지하라. 생애의 싸움에 있어서 백방으로 서로를 격려하라. 피차의 행복의 증진을 위하여 연구하라. 서로 사랑하고 서로 관용할 것이다. 그리하면 결혼은 사랑의 끝이 되지 않고 바로 사랑의 시작이 될 것이다. 참된 우정의 따스함과 마음과 마음을 결합시키는 사랑은 하늘의 기쁨을 미리 맛보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인내를 실행함으로써 인내를 길러야 한다. 친절하고 용서하는 중에, 참된 사랑은 마음 가운데 뜨겁게 보존될 것이요 그 특성은 계발되어 하늘의 인정을 받게 될 것이다.
원수는 이간시키고자 힘쓴다 ― 사단은 어떤 의견의 차이라도 생기면 이를 이용하고자 항상 준비하고 있어서 아내가 남편이 갖고 있는 못마땅한 선천적 특성들을 포착하여 하나님의 앞에서 엄숙한 약속으로 연합한 부부를 이간시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결혼 서약에서 그들은 하나가 되기로 약속하였으며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고 순종하기로 서약하였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소중히 하기로 약속하였다.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하면 다툼의 악마는 집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요 분리에 대한 흥미가 생기지 않을 것이며 애정의 소외가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강한 의지를 가진 부부에게 대한 권면 ― 남편도 아내도 지배자가 되고자 하지 말라. 주께서는 이 문제를 지도하기 위하여 원칙을 세우셨다.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소중히 하신 것처럼 아내를 소중히 해야 한다. 그리고 아내는 자기 남편을 사랑하고 존경해야 한다. 두 사람은 친절한 정신을 계발시킬 것이요 결코 상대편을 근심하게 하거나 감정을 상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
피차에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남을 강요하려고 하지 말라. 그대는 이렇게 함으로써 피차의 사랑을 유지할 수 없다. 고집이 나타나면 가정의 평화와 행복은 깨어진다. 그대들의 결혼 생활이 말다툼이 되게 하지 말자. 만일 그렇게 되면 그대들은 둘 다 불행해질 것이다. 친절하게 말하고 예모 있게 행동하며 그대 자신의 욕심을 버려라. 그대의 말들을 경계할 것이니 대개 그것이 선악간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대의 음성이 날카로워지는 것을 용납하지 말라. 그대들의 연합된 생애에 그리스도와 같은 향기가 있게 하라.
말과 행동에서 사랑을 나타내라 ―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표현을 유약(柔弱)한 것이라고 하여 다른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딱딱한 태도를 취한다. 이 정신이 동정심의 발로를 방해한다. 사교적이고 관대한 생각들이 억제될 때 그들은 메말라서 차고 쌀쌀하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잘못에 빠질까 주의할 것이다. 사랑은 표현 없이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그대와 관련된 사람의 마음이 친절과 동정의 결핍으로 굶주리지 않게 하라. …
부부는 피차에 사랑을 강요하느니보다 이를 서로 주도록 할 것이다. 자신에게 있는 가장 고귀한 것을 배양하고 피차에 남의 장점을 인정하기를 빨리 하라. 이해를 받고 있다는 자각은 놀라운 힘과 만족을 주는 것이다. 동정과 존경은 고상한 것을 추구하는 노력을 고무하는 사랑 자체는 그것이 고상한 목적을 위하여 자극될 때에 더 증가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그처럼 많은 무정한 남녀들이 있는 이유는 참된 애정이 연약한 것으로 간주되어 그것을 하려고 하는 마음이 꺾이고 억제되는 까닭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의 좋은 성격은 이미 유년기에 왜곡되고 위축되어서 하늘의 광선이 그들의 냉담함과 무정한 이기주의를 녹여 버리지 않는 한 그런 행복은 영원히 파묻혀 버릴 것이다. 우리가 만일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가지셨던 그런 친절한 마음씨를 갖고자 한다면 그리고 천사들이 죄된 죽을 인생을 위하여 가진 그런 성화된 동정심을 갖고자 한다면 우리는 단순성으로 충만한 유년 시기에 동정심을 계발시켜야 한다. 그리하면 우리는 하늘의 원칙들로 말미암아 세련되고 순화되고 고상하여질 것이다.
너무도 많은 염려와 부담이 우리 가정에 들어온 반면에 타고난 순진성과 평화와 행복은 거의 간직되지 못하고 있다. 세상에 대한 관심을 더욱 줄이고 가족들에 대하여 더욱 사려 깊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세속적인 예절을 과시하거나 꾸미는 일을 더욱 줄이고 가족들 사이에 친절과 사랑과 유쾌함과 그리스도인의 예절을 더욱 많이 실행하도록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가정을 즐거움을 누리는 장소로, 매혹적인 곳으로 만드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감사하는 마음과 친절한 외모는 부나 사치보다도 더욱 가치 있는 것으로, 만일 그 곳에 사랑이 있으면 단순한 일로 만족하는 것이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
작은 정성이 가치 있음 ― 하나님께서는 일상 생활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들로 우리를 시험하시고 판단하신다. 마음에 품은 일들을 나타내 보이는 것은 사소한 일들이다. 인생의 행복의 총체를 이루는 것은 인생살이의 허다한 작은 일들과 간단한 호의같은 작은 정성들이다. 그리고 인생의 불행의 총체를 만드는 것은 친절히 하는 일, 용기를 주는 일, 상냥한 말, 그리고 인생살이의 작은 호의 같은 일에 등한히 한 일들이다. 우리 주위에 있는 자들의 유익과 행복을 위하여 자제함은 마침내 하늘에 있는 생명책의 기록에 큰 구실을 하였다는 것이 알려질 것이다. 또한 자신에 대한 관심 곧 남의 유익과 행복에 대하여 상관하지 않고 자신에게만 관심을 쏟는 것은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 눈여겨 보실 만한 가치조차 없다고 하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사랑을 표현하는 일에 실패한 남편 ― 말과 용모와 행위에 사랑이 나타나는 가정은 천사들이 그들의 임재하기를 즐기며 영광으로부터 오는 광선으로 거룩하게 하는 곳이다. 거기서는 가족들이 행할 비천한 의무들이 그들에게 매혹적인 것이 된다. 그런 환경 아래서는 생의 어떤 의무라도 그대의 아내에게 있어서 하기 싫은 일이 될 수 없다. 그는 그런 의무들을 즐거운 정신으로 수행할 것이요 또한 그는 자신을 둘러싼 이들에게 햇빛처럼 될 것이며 주님을 향하여 마음으로 아름다운 가락을 노래할 것이다. 현재 그대의 아내는 그대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애정을 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그대의 아내가 그렇게 느끼는 원인이 그대에게 있다. 그대는 가장으로서 그대에게 부과된 필요한 의무들을 수행하기는 하나 결함이 있다. 정다움을 가지게 하는 값진 사랑의 감화력이 대단히 부족하다. 사랑은 용모와 태도에 나타나야 하고 음성의 고저에서 들려야 한다.
실망하게 하는 자기 중심적인 아내 ― 결혼으로 결합한 이들의 덕성은 그들의 교제로써 향상하든지 퇴화하든지 한다. 퇴화하는 일은 저속하고, 믿을 수 없고, 이기적이며 제어할 수 없는 성질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으로 그것은 결혼식 직후에 시작된다. 만일 청년이 현명한 선택을 할 것 같으면, 그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인생의 무거운 부담을 나눠 지며, 남편을 고상하고 세련되게 하며 그의 사랑으로 남편을 즐겁게 해주는 아내를 곁에 두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내가 발작적인 성격을 가지고 자아를 찬미하며 가혹하고 비평적이며 자기 자신의 왜곡된 기질 때문에 생기는 감정의 원인을 남편에게 뒤집어 씌운다고 하면, 또한 만일 자기 남편의 사랑을 인식하고 그것을 감사할 만한 식별력과 좋은 분별력을 갖지 못하고 남편이 자기의 모든 변덕을 만족시켜 주지 않는다고 하여 등한히 한다거나 사랑이 부족하다고만 한다면, 그는 자신이 한탄하고 있는 듯한 그런 상태를 거의 필연적으로 초래할 것이요 이 모든 비난을 전부 현실로 만들 것이다.
동무로 사귀기 좋은 아내와 어머니의 특성들 ― 미미한 가사에만 묻혀 버리지 말고 아내와 어머니된 이들은 시간을 내어 독서하고 친히 모든 지식을 얻으며 남편의 동무가 되고 자녀의 지력을 계발하는 일에 참여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자유로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지혜 있게 이용하여 사랑하는 자녀들을 감화시켜 천국의 생명을 얻게 할 것이다. 귀하신 구주와 날마다 사귀고 친밀히 교제할 시간을 가질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할 시간을 내고 자녀들과 함께 들로 나가서 하나님의 지으신 만물을 봄으로 하나님을 배울 것이다.
부인은 항상 유쾌하고 명랑할 것이다. 끝없는 바느질에만 시간을 사용하지 말고 각각 하루의 일을 마친 후에는 저녁 시간을 가족들이 다시 만나는 단란하고 유쾌한 사교 시간으로 쓸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많은 남자들로 클럽이나 술집같은 사교장을 찾기 전에 가정의 사교를 찾게 할 것이다. 많은 청년들이 환락의 거리와 골목의 술집으로 가는 것을 막게 될 것이다. 많은 처녀들을 경박하고 그릇된 교제에 빠지지 못하도록 구할 것이다. 가정의 감화력은 그 부모와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평생의 축복이 될 것이다.
결혼 생활은 전부 다 로맨스가 아니다. 거기에는 거짓 없는 곤란과 자질구레한 일들이 있다. 아내는 자기 자신을 시중을 받을 인형으로 생각지 말고 여인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는 자기 어깨에 상상이 아닌 실제적인 부담을 지고 세상에는 자기 자신보다도 생각해야 할 다른 일들이 있음을 생각함으로 이해와 사려 깊은 생활을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 현실 생활은 그늘과 슬픔을 가졌다. 고난은 모든 영혼에게 찾아온다. 사단은 계속적으로 믿음이 자리잡지 못하게 하여 각 사람의 용기와 희망을 없애려고 일하고 있다.
불행한 부부에게 주는 권면 ― 그대들의 결혼 생활은 아주 사막과 같았다. 즐거운 기억을 가지고 회고할 만한 푸른 지점은 아주 적었을 뿐이다. 그것은 반드시 그랬어야 할 것은 아니었다.
연료가 없이는 불이 계속하여 탈 수 없는 것처럼 사랑은 그 자체를 외부에 행동으로 나타냄이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다. C 형제여, 그대는 친절한 행동으로 부드러움을 나타내 보이며 그대의 아내에게 부드러운 말과 친절한 관심으로 사랑을 증명해 보일 기회를 찾는 것을 그대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대는 변하기 쉬운 감수성을 가졌는데 이것은 주위환경에 의하여 아주 큰 영향을 받는다. … 그대의 사무를 끝낼 때에 그대는 그대의 사무에 관한 염려와 곤란과 성가신 일들을 잊어 버려라. 즐거운 얼굴로, 그리고 동정과 부드러움과 사랑으로 그대의 가정으로 돌아가라. 이것이 그대의 아내를 위하여 약을 쓰고 의사를 부르는 데 돈을 쓰는 것보다 낫다. 이것이 몸에 건강이 되고 심령에 힘이 될 것이다. 그대의 살림살이는 아주 비참하였다. 그대들 둘이서 가정을 그렇게 만드는 데 각각 자신들의 몫을 다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의 불행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대들은 자제의 부족으로 그것을 자초하였다.
감정을 지배하도록 하라. C 형제여, 그대는 사랑을 나타내고 친절하고 정답게 말하는 것을 그대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일로 생각한다. 그대는 이모든 것을 다 연약하고 무용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것들 대신에 초조한 말과 반목하는 말과 다툼과 비난 같은 것들로 그 자리를 메꾸었다. …
그대는 만족해 하는 정신의 요소들을 갖지 않았다. 그대는 고생들만을 곰곰이 생각하고 먼 장래에 있을 가상적인 부족과 빈곤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고통과 고난과 괴로움을 당한다고 느낀다. 그대의 뇌는 불타는 듯하고 그대의 정신은 기가 꺾이었다. 그대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마음에 품지 않고 그대의 친절하신 하늘 아버지께서 베푸신 모든 축복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품지 않는다. 그대는 생애의 불안만을 본다. 세속적 착란증이 그대를 두터운 구름으로 된 깊은 암흑 속에 가두어 넣었다. 사단은 그대가 평안과 행복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경우에 그대가 불행해질 것을 인하여 기뻐 날뛴다.
상호간의 사랑과 관용이 보답된다 ― 상호간에 관용과 사랑이 없이는 어떠한 세상의 힘이라도 그대와 그대의 남편을 그리스도인의 연합으로 된 결속 가운데 붙들어 둘 수 없다. 결혼 관계에 있어서 그대들의 사귐은 하나님의 말씀이 요구하는 대로 각각 상대편을 위하여 가장 소중한 것이 되도록 밀접하고 친절하며 거룩하고 고상하며 그대들의 생애에 영적 능력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대가 하나님께서 도달하기를 원하시는 상태에 도달하면 그대는 이 지상에서 하늘을 발견할 것이요 그대의 생애에 하나님께서 계심을 경험할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그분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대들은 결혼 서약에서 행하기로 약속한 대로 서로를 행복하게 하는 일에 성공할 수 있음을 기억하라.
남녀를 물론하고 그리스도를 그들의 조력자로 받아들일 때 그들은 하나님의 이상에 도달할 수 있다. 사랑의 신뢰로써 하나님께 몸을 바친 자들은 인간의 지식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천부의 본성을 가진 마음들을 든든히 연합시킬 수 있다. 사랑은 단순히 부드럽고 감미로운 언어의 교환이 아닐 것이다. 하늘의 베틀은 지상의 베틀이 짜내는 것보다 더 가늘고도 오히려 더 강한 날과 씨로서 짜낸다. 그 결과는 인조 직물이 아니요 마찰과 시험에 견딜 수 있는 직물이 된다. 변하지 않는 사랑의 금사슬로써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는 것이다.
제 17 장 공동 의무
각자 개인적인 책임을 짐 ― 생애에 대한 관심사에 있어서 서로 연합하는 두 사람은 분명히 특성들과 개인적 책임을 질 것이다. 부부간에 각각 자신들이 할 일을 가질 것이나 여인은 마치 짐을 싣는 짐승들처럼 그가 하는 일의 양에 따라 평가될 것이 아니다. 아내는 현명한 남편의 아내와 친구로서 가족 사회를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 각 단계마다 그는 이것의 참된 여인 됨의 표준일까? 그리고 어찌하면 내가 나의 집에 그리스도와 같은 감화를 끼칠 수 있을까?라고 물어야 한다. 남편은 자신이 아내의 하는 일에 감사하고 있음을 그로 알게 해야 한다.
아내는 자기 남편을 존경해야 한다. 남편은 자기 아내를 사랑하고 소중히 해야 한다. 그들의 결혼 서약이 그들을 하나로 결합시킨 것처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주 안에서 그들을 하나 되게 해야 한다. 결혼 관계에 들어가는 이들이 함께 예수를 배우고자 힘쓰며 더욱 더 그리스도의 정신에 물들게 되는 일보다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일까?
그대는 이제 그대가 결혼하기 전에는 하지 않은 일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너희는 …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다음의 교훈을 면밀히 연구하라.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 교회가 그리스도에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하와에게 주신 하나님의 교훈 ― 하와는 슬픔과 아픔이 금후로 그가 가질 몫이 될 것이란 말씀을 들었다. 또한 주께서는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창조하던 당시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아담과 동등하게 만드셨다. 그들이 하나님의 크신 율법에 일치되도록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었더라면 그들은 계속하여 피차에 일치됨을 유지하였을 것이나 죄악은 불화를 가져왔고 그리하여 이제는 다만 두 편 중에 어느 한편이 그 다른 편에 복종하는 방법으로만 그들의 연합과 조화는 유지될 수 있었다. 하와는 최초로 죄에 빠졌다. 그는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거역하고 자신의 배우자로부터 떠남으로 시험에 빠졌다. 아담의 범죄는 여인의 권유에 의한 것이었으며 그는 이제 남편의 지배 아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율법에 명시된 원칙들이 타락한 인류에게 소중히 여겨졌더라면 비록 죄의 결과는 자라난다고 할지라도 이 선언은 그들에게 축복임이 입증되었을 것이나 남자가 주권을 남용하므로 여자의 운명을 아주 쓰라린 것으로 만들고 그의 생활을 무거운 짐으로 만드는 일이 너무도 많다.
하와는 그의 에덴 고향에서 남편 곁에 있을 때 완전히 행복하였으나 불안한 현대의 하와들처럼 하나님께서 그를 위하여 정하였던 것보다도 더욱 높은 영역으로 들어간다는 희망으로 우쭐하게 되었다. 본래의 지위보다 높이 되기를 꾀함으로 그는 그보다 훨씬 아래로 떨어졌다. 하나님의 계획과 일치되는 그들의 일상 생활의 의무들을 즐거이 이행하고자 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그와 같은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다.
아내의 복종과 남편의 사랑 ― 아내는 그 자신의 의지를 갖지 말아야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성경은 남편이 가정의 머리됨을 명백히 말하였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만일 이 명령이 여기서 그쳤다면 우리는 아마 아내의 지위란 부러워할 만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경우에 있어서 아주 어렵고 괴로운 위치일 것이요 결혼을 적게 하는 편이 더욱 좋을 것이다. 많은 남편들은 아내들아 … 복종하라 하는 데서 읽기를 그치지만 우리는 그 명령의 결론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하는 데까지 읽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내가 언제나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과 그 영광을 기억할 것을 요구하신다. 전적인 복종은 당신의 생명의 무한한 값을 주고 당신의 자녀로 그를 사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만 바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범하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양심을 여인에게 주셨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사신 바가 되었으므로 개성이 남편에게 삼켜질 수 없다. 맹목적인 헌신으로 모든 일이 꼭 남편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은 잘못으로 그가 그렇게 하고 있음을 깨달을 때에는 사단의 노예에서 속량되었던 그의 몸과 정신은 이미 손상을 받았을 것이다. 아내에게는 남편보다도 더욱 높은 자리에 계신 분이 계시니 그분은 그의 구속주이시다. 그의 남편에 대한 복종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행할 것이니 곧 주 안에서 마땅하게 할 것이다.
남편들이 아내의 완전한 복종을 요구하고 여인은 가정에서 발언하거나 의지를 세울 수 없다고 주장하며 다만 전적인 복종만을 해야 한다고 하면 그들은 그들의 아내를 성경이 지시하는 바와 배치되는 위치에 두는 것이다. 성경을 이런 방법으로 해석함으로 그들은 결혼 제도의 계획을 모독하는 것이다. 이런 해석은 단순히 그들의 특권이 아닌 것을 독단적으로 행사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는 말씀이 계속된다. 어찌 남편이 아내를 괴롭힐 수 있겠는가? 남편이 아내의 잘못과 완전한 실수를 발견하였다 하더라도 그 정신을 괴롭히는 것은 구제책이 되지 못할 것이다.
아내들은 남편들이 그리스도께 복종할 때에만 복종할 것 ― 많은 남편들이 아내와의 관계에 있어서 주께서 지시하신 길을 따르지 않으므로 주 예수께서는 당신과 교회와의 관계에 있어 그릇 묘사되고 있다. 그들은 아내들이 모든 일에 있어서 반드시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은 그리스도께 복종하지 않으면서 남편이라고 하여 가정의 머리로서 지배를 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시다. 그가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지배 아래 있어야 한다. 만일 그가 추잡하고 거칠며 난폭하고 독선적이요 무정하고 또한 오만한 사람이라면, 결코 그로 남편은 아내의 머리로 아내는 범사에 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하게 할 것이니 이는 그 말의 진정한 의미에 비추어 그는 주님의 소유도 남편도 아니기 때문이다. …
남편들은 그 모본을 연구하고 에베소서에 설명된 표상, 곧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관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도록 노력해야 한다. 남편은 그의 가정에서 구주와 같이 되어야 한다. 남편은 고상함과 하나님께 받은 인간다움을 지키고 언제나 아내와 자녀를 향상시키고자 노력하겠는가! 그는 자신의 주위에 깨끗하고 유쾌한 분위기를 풍기게 하겠는가? 그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부지런히 계발시킴으로 그것을 가정의 항구적인 원칙으로 삼고 자신의 권위를 주장하는 일을 옹호하지 않겠는가?
각 남편과 아버지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하여 연구할지니 일방적인 방법, 단순히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데만 집념하지 말고 갈바리의 십자가의 빛 가운데서 가정에 있어서의 자신의 위치를 연구하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씹어 말씀으로 깨끗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고하신 대로 예수께서는 성령의 감화하심으로 우리를 죄와 더럽힘에서 깨끗게 하시고 또 보전하시기 위하여 당신 자신을 주시고 죽기까지 하셨다.
상호간의 관용이 요구됨 ― 우리는 하나님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는 결코 가정에서 조화를 이룰 수 없다. 아내가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졌으면 자신의 말을 조심할 것이요 그는 자신의 생각을 다스릴 것이며 복종할 것이나 오히려 자신을 노예로 생각지 않고 남편의 동무로 생각할 것이다. 남편이 하나님의 종이면 그는 자기 아내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요 독단적이거나 가혹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너무 많은 염려에 붙잡혀서는 가정에 대해 애착을 가질 수 없는데, 그것은 주의 정신이 거하는 가정만이 하늘의 표상이 되기 때문이다. … 한 편이 잘못하는 경우에 다른 한편은 그리스도와 같은 관대함을 발휘할 것이요 냉정히 물리치지 아니할 것이다.
남편이나 아내나 상대방을 독단적으로 지배하려 해서는 결코 안 된다. 서로 상대방을 자신의 뜻에 복종하도록 구속하지 말 것이다. 이렇게 하고서는 서로 사랑을 유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친절하고 인내하고 용서하고 깊이 생각하며 예의를 가져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대들은 혼인 식장에서 서약한대로 서로를 행복하게 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각각 품위 있게 양보하라 ― 결혼 생활을 하는 중에 남편과 아내는 때때로는 훈련되지 않은 고집 센 어린이처럼 행동한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각각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고자 하여 어느 편도 양보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사태는 다만 가장 큰 불행을 가져올 뿐이다. 남편이나 아내는 피차에 자신들의 주장이나 의견을 즐겨 양보해야 한다. 쌍방이 각각 자신들이 좋아하는 대로 하기를 고집하는 동안 행복하여질 가능성은 없다.
남자나 여자가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지 않으면 흔히 어린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충동적이요 철없는 정신이 나타날 것이다. 강하고 훈련되지 않은 의지는 남을 다스리고자 한다. 그런 이는 바울의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는 말씀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가정의 불편을 조절함 ― 만일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복종시키지 못한 부부라면 비록 남편과 아내가 그들의 몇 가지 의무들에 대하여 공정하고 올바른 해결을 짓고자 노력한다 할지라도 가정의 불평을 조절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남편과 아내가 가정 생활에 대한 이해를 서로 달리하면서 어떻게 피차간에 사랑하고 굳은 단결을 계속할 수 있을까? 그들은 그들의 가정을 만드는 일에 관계된 모든 일에 있어서 일치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요, 만일 아내가 그리스도인이라면 그의 관심을 남편의 배우자로서 남편과 일치되게 할 것이다. 그것은 남편이 그 가정의 머리인 까닭이다.
불화한 가족에게 주는 권면 ― 그대의 정신은 잘못 되었다. 그대가 어떤 주장을 할 경우에 그대는 문제를 잘 저울질하여 보지 않고, 곧 그대가 그 견해를 고집할 경우에 어떤 결과가 생길 것인지에 대하여 생각지 않고 또 그대의 아내가 그대와 같은 견해를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의 기도와 담화에서 단독적인 방법으로 그대의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한다. 신사답게 아내의 생각을 존경하면서 친절하게 충돌을 회피하는 대신에, 그대와 의견을 달리하는 문제에 대하여 그대는 못마땅한 점을 곰곰이 생각하고 그대 주위에 있는 이들을 개의치 않고 그대의 의견을 고집하였다. 그대는 사물을 보는 데 있어서 다른 이는 그대와 의견을 달리 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런 열매들은 그리스도인이란 나무에서는 자라나지 않는다.
나의 형제 자매들이여, 예수님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마음의 문을 열라. 그분을 심령의 성전으로 청하여 들여라. 모든 결혼 생활에 끼어드는 장애들을 극복하도록 피차에 도우라. 그대들은 그대들의 원수 마귀를 이기기 위하여 맹렬한 투쟁을 할 터인데 그대들이 이 싸움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한다면 비록 그대들이 무릎을 꿇고 여호와여 나의 영혼의 원수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크게 부르짖어야 할지라도 나쁜 말에 대하여는 입술을 봉하기로 결심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일에 그대들 쌍방이 연합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각 사람의 마음에 계시면 연합을 가져온다 ―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면 남편과 아내는 피차에 존경하고 사랑과 신뢰를 계발할 것이다. 무엇이나 가정의 화평과 연합을 훼손시킬 것은 단호히 억제되어야 하며 친절과 사랑이 소중히 여겨져야 한다. 자비, 관대, 그리고 사랑을 나타내는 사람은 그 같은 정신이 자신에게 반영되어 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결혼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이 다스리는 곳에는 부적절한 말을 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그 안에 형성되면 그 가정에는 연합과 사랑이 있을 것이다. 아내의 마음에 거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남편의 마음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합의가 되실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예비하러 가신 그 거할 곳을 위하여 함께 노력할 것이다.
제 18 장
부부의 의무와 특권
예수님은 독신 생활을 강요하지 않으셨다 ― 결혼 관계를 하나님께서 명하신 하나의 거룩한 의식이요 하나님의 거룩한 계명의 보호를 받는 것으로 보는 이들은 이성의 명령에 지배될 것이다.
예수님은 어느 계급의 사람에게도 독신 생활을 강요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신성한 결혼 관계를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고상하게 하고 그 본래의 신성성을 회복하러 오셨다. 예수께서는 거룩하고 이타적인 사랑이 지배하는 가족 관계를 기쁨으로 바라보신다.
결혼은 합법적이며 거룩하다 ―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 자체가 죄는 아니다. 만일 합법적인 것이 합당하게 다루어지고 죄된 부절제로 발전하지 않으면 결혼은 노아의 시대에 있어서도, 그리고 오늘날에 있어서도 합법적이다. 그러나 노아 당시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상의하거나 그분의 지도와 의견을 구함 없이 결혼하였다. …
인생의 모든 관계는 일시적인 성질의 것이라는 사실이 우리의 모든 행위와 말에 조절시키는 영향을 끼쳐야 한다. 노아의 시대에 결혼이 하나님께 범죄가 되었던 것은 합당하게 사용하였었다면 그 자체로는 합법적인 것이었을 것에 대한 과도한, 부절제한 사랑이었다. 오늘날 이 세상에도 결혼에 대한 생각과 결혼 관계 자체에만 몰두함으로써 자신의 영혼을 잃어버리는 자들이 많이 있다.
결혼 관계는 거룩한 것이지만 이 타락한 시대에 있어서 결혼 관계는 온갖 종류의 악을 내포하고 있다. 이 결혼 관계는 악용되고 있으며 홍수 이전에 행하여지던 결혼이 그 당시 범죄이었던 것같이 오늘날의 이 결혼 관계도 말세의 징조 가운데 하나를 이루는 범죄가 되었다. 결혼의 거룩한 성격과 요구가 이해될 때, 결혼은 오늘날이라도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것이며 그 결과 남편과 아내 모두 행복하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결혼 관계의 특권들 ―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은 결혼 관계의 모든 특권의 결과를 충분히 숙고하여야 하며,* 성화된 원칙들이 모든 행동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부모들은 … 그들의 결혼의 특권들을 악용하였으며 방종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동물적인 정욕을 더 강렬하게 만들었다.
부절제를 피할 의무 ― 합법적인 것을 통탄할 만한 죄악으로 만드는 것은 그것의 부절제이다.
많은 부모들이 결혼 생활에서 마땅히 얻어야 할 지식을 얻지 못한다. 그들은 사단이 틈을 타서 그들의 정신과 생애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경계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들의 결혼 생활이 부절제하게 되지 않도록 통제하기를 요구하고 계심을 깨닫지 못한다. 자신의 정욕을 지배하는 것이 종교적 의무라고 느끼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그들은 그들이 선택한 배우자와 결혼으로 결합하였으므로 결혼은 비열한 정욕의 방종을 성화시킨다고 생각한다. 경건하다고 자처하는 사람들까지도 그들의 음탕한 정욕의 고삐를 풀어놓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이 활력을 낭비함으로 생명력을 약화시키고 전체 조직을 무기력하게 하는 데 대한 책임을 추궁하신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아니한다.
극기와 절제를 표어로 삼으라 ― 오, 내가 모든 사람들로 그 정신적, 육체적 기관을 최선의 상태로 보전하여 조물주께 완전한 봉사를 드려야 할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책임을 이해시킬 수 있기를 바라노라. 그리스도인 아내는 말과 행위에 있어서 남편의 동물적 정욕을 일으키는 일을 삼가도록 하라. 많은 사람들은 이 방면으로 낭비할 힘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하다. 그들은 청년기로부터 동물적 정욕을 만족시킴으로 말미암아 두뇌를 약화시켰고 신체를 약화시켰다. 그들의 결혼 생활에 있어서 극기와 절제가 표어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정신을 깨끗하게 그리고 그 몸을 건강하게 보존할 엄숙한 책임을 하나님께 지고 있는 바, 그래야 우리는 인류에게 유익이 되고 하나님께 완전한 봉사를 드릴 수 있다. 사도는 이와같이 경고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라. 그는 또한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라고 권면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하는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그들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권면한다. 그리고 그는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라고 말하였다.
남편이 자기의 아내를 자신의 정욕을 채우는 하나의 도구로 삼는 것은 순결한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방종하려고 하는 동물적 욕정이다. 사도가 자세히 설명한 방법 곧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 신 그 방법대로 그들의 사랑을 나타내는 남편이 얼마나 적은가. 이것이 하나님께서 거룩하다고 인정하시는 결혼 관계에 있어야 할 사랑의 특질이다. 사랑은 깨끗하고 거룩한 원칙이지만 정욕적인 열정은 억제되지 않으며 이성의 명령에 복종하거나 통제되지 않는다. 그것은 결과에 대하여 눈멀었으며 원인으로부터 결과를 미루어 생각지 않는다.
사단이 자제력을 약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이유 ― 사단은 결혼 관계로 들어가는 이들의 순결에 대한 표준을 더욱 낮추고 자제력을 약화시키려고 노력하는 바, 그 까닭은 비열한 욕정이 우세해지면 도덕력이 꾸준히 약화되고 그들의 영적 성장에 대하여 그가 조금도 염려할 필요가 없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단은 또 그의 흉한 형상의 인을 그들의 자손들에 찍는 데 있어서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는 것과 부모의 품성을 형성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쉽게 자녀들의 성품을 그같이 꼴 지을 수 있음을 알고 있다.
부절제의 결과 ― 남녀들이여, 그대들은 언젠가는 색정을 만족시키는 결과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혼외에서와 마찬가지로 그와 똑같은 비열한 성질의 정욕이 결혼 관계에 나타날 수 있다.
그 저열한 정욕의 고삐를 풀어 놓음으로 초래되는 결과는 무엇인가? … 하나님의 천사들이 관장해야 할 침실은 부정한 행습으로 불결하여졌다. 추한 수욕주의가 다스리므로 몸은 더럽혀지고 가증한 행습은 드디어 몸서리나는 질병을 일으킨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주신 것이 저주로 화한다.
성적 부절제는 경건의 실천에 대한 사랑을 효과적으로 파괴하고 뇌로부터 그 조직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빼앗고 가장 효과적으로 생명력을 고갈시킬 것이다. 어떤 여성도 이런 자멸하는 일에 남편을 도와서는 안 된다. 그가 만일 식견이 있고 참으로 자기 남편을 사랑한다면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동물적인 욕정에 빠지면 빠질수록 그 욕정은 더욱 강해지며 방종에 대한 욕구는 더욱 격렬하여질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남녀들은 그들의 의무에 대하여 각성하도록 하라.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방면에서의 부절제 때문에 신경과 두뇌의 마비로 고생하고 있다.
남편들은 동정심을 가져야 함 ― 남편들은 조심성 있고 주의 깊고 지조 있고 충실하며 동정 깊어야 한다. 그들은 사랑과 동정심을 나타내야 한다.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준행한다면 그들의 사랑은 그것이 그들 자신의 몸을 파멸로 이끌고 그들의 아내에게는 허약과 질병을 초래하게 할, 그런 저열하고 속되며 관능적인 성질의 것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아내들에게 모든 일에 남편에게 복종하여야 한다고 말하면서 비열한 욕정을 만족시키는 일에 탐닉하지 않을 것이다. 남편이 모든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고결한 품격과 깨끗한 마음과 고상한 정신을 가진다면 결혼 관계에서도 그것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다면 그는 몸을 파괴하는 자가 되지 않고 부드러운 사랑으로 충만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최고의 표준에 도달하기 위하여 힘쓸 것이다.
의심이 몰래 기어들 때 ― 어떤 남편도 자기 아내가 참을성 있게 복종하여 자기의 종이 되어 그의 타락한 욕정을 채우도록 할 때 그(아내)를 참으로 사랑할 수 없다. 수동적으로 굴종할 때 아내는 한때 남편의 눈에 들었던 그 가치를 상실해 버리고 만다. 남편은 아내가 모든 고결함에서 저급한 수준으로 끌려 내려온 것을 보고 자기에게 그러한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도 순순히 굴종하여 자기를 낮추지 않을까 하고 곧 의심을 품게 된다. 그는 아내의 청결과 순결성을 의심하고 그에게 염증을 느껴서 자기의 가증한 욕정을 불러일으키고 강하게 할 새 대상을 찾는다. 하나님의 율법은 무시된다. 이런 사람들은 짐승만도 못하다. 그들은 사람의 모양을 한 악마들이다. 그들은 참되고 성화된 사랑의 향상시키고 고상하게 하는 원칙들을 알지 못한다.
아내 역시, 남편을 질투하게 되고 만일 기회가 생기면 바로 자기에게 하던 것과 같이 다른 여자에게 쉽게 사랑을 구하지나 않을까 하고 의심하게 된다. 그는 남편이 양심이나 하나님에 대한 경외에 의하여 지배를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안다. 음탕한 정욕들로 인하여 이 모든 성화된 방책(防柵)이 허물어졌다. 남편의 모든 존엄한 것은 저열하고 야수적인 색욕의 종이 되었다.
부당한 요구들에 대한 문제들 ― 이제 해결을 지어야 할 문제는, 비열한 성욕만이 남편을 지배하고 있음을 알고서도 아내는 남편의 요구에 맹욕적으로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느껴야 하는가? 또 자기의 이성과 판단으로는 그렇게 행하면 하나님께서 거룩하고 귀하게 소유하여 하나님께 산 제물로서 보존하라고 명하신 자신의 몸을 해치게 된다는 것을 확신하면서도 과연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하는가 이다.
아내로 하여금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희생하면서까지 남편의 동물적인 기호를 만족시키도록 이끄는 것은 순결하고 신성한 사랑이 아니다. 만일 아내가 참된 사랑과 지혜를 가졌다면 그는 흥미 있는 영적 문제들을 강조함으로 남편의 마음을 색욕의 만족에서부터 고상하게 신령한 문제로 돌이키게 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혹 그 남편이 불쾌하게 여긴다고 할지라도 아내는 자신이 그 성적 부절제에 복종함으로 자신의 몸을 저하시킬 수 없다는 것을 겸손히, 애정을 다하여 설득시키는 일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는 유순하고 친절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전 존재에 대해서 첫째의 그리고 최고의 권리를 가지고 계신다는 것과 자기는 하나님의 큰 날에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이 요구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남편에게 상기시켜야 한다. …
만일 아내가 자기의 애정을 향상시키고 성결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세련된 여인다운 품위를 보존한다면 자기의 지각 있는 감화로 말미암아 남편을 성화시키고 아울러 자기의 고상한 사명을 완수하는 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기의 남편과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있고 그리하여 두 가지 일을 성취하게 된다. 이 문제는 다루기가 아주 미묘하고 어려워서 도덕적인 용기와 견인 불발의 정신 뿐만 아니라 많은 지혜와 인내가 필요하다. 힘과 은혜는 기도에서 얻을 수 있다. 성실한 사랑이 마음을 다스리는 원칙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남편에게 대한 사랑만이 행위의 올바른 토대가 될 수 있다.
아내가 자기의 몸과 마음을 남편의 지배에 굴복하여 모든 일에 그의 뜻을 복종하며 자기의 양심과 자기의 품위와 심지어는 자기의 개성까지 희생할 때 그는 남편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가져야 할, 선을 위한 위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는 그 남편의 거친 성질을 부드럽게 할 수 있을 것이며 그의 성화시키는 감화는 세련시키고 순화시키는 방법으로 남편으로 하여금 자기의 정욕을 진지하게 억제하려고 힘쓰게 하며 더욱 신령한 생각을 하도록 이끌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정욕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감화의 능력은 은혜를 힘입어 새로워지지 않은 마음이 쉽사리 구하는 저열하고 육욕적인 방종을 초월하여 고상하고 높은 주제들에 마음을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만일 아내가 남편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동물적인 정욕이 사랑의 주요한 기초를 이루고 그것이 행동을 주장하고 있는 그런 남편의 수준에까지 자기가 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그가 그 남편에게 성화시키는 감화를 끼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아내가 한 마디의 충고도 없이 남편의 동물적인 욕정에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그의 남편에게나 또는 하나님께 대한 자기의 의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값으로 산 바 된 하나님의 소유이다 ― 저열한 욕정은 체내에 자리를 차지하고 그것을 통하여 일한다. 육체 또는 육체의 또는 육체의 정욕들 이란 말은 그 저열하고 타락한 성격을 포함한다. 육체 그 자체는 하나님의 뜻에 배치되는 행위를 할 수 없다. 우리는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 신체를 고통스럽게 만들어야 할까! 아니다. 죄에 대한 유혹을 죽게 해야 한다. 부패한 생각은 추방되어야 한다. 모든 생각은 예수 그리스도께 사로잡혀야 한다. 모든 동물적인 경향은 심령의 더욱 높은 능력 아래 복종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최고의 통치권을 행사해야 하며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보좌를 차지하셔야 한다. 우리의 몸은 그가 사신 소유로 간주되어야 한다. 몸의 지체들은 의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