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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장 지연된 재림 : 공개된 신령한 이유 - No. 2
Ⅰ. 20세기 - 1915년까지
1900년과 1915년 사이에 20번 이상의 부과적인 말씀이 꼬리를 물고 많은 친근책과 여러 가지 호소가 있었다. 영혼 안에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이 요구되었다. 세계적인 활동과 가속을 격려했다. 우리의 사업은 반드시 끝마쳐져야 한다. 하늘의 갑옷을 입고 분기하지 안으면 안 되고 경고하고 해소해야 한다. 하나님은 아직도 인도하고 계시고 사건을 지배하고 계시다. 우리는 반드시 통합하고 용기 있는 말을 하고 주안에서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1. 자금을 보류하는 것은 지체시키는 한 요인이다
“모든 사람들이 십일조와 헌물이 있어서 하나님은 이것을 주께 돌려 드리는 일에 충실할 때 세 산이 이때를 위한 기별을 들을 수 있도록 길이 열릴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이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으로 채워져 있다면 모든 교인이 자기희생의 길이 열릴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이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으로 채워져 있다면 모든 교인이 자기희생의 영으로 온전히 주입되어 있다면 만일 모두가 철저한 진지함을 나타냈다면 국내나 외방 선교 자금에 부족이 없을 것이다.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을 이행했더라면(자비의 기별을 세상에 전파함에 있어서) 그리스도께서는 이전에 이 땅에 오셨을 것이다. 성도들은 하나님이 도성으로 영접되었을 것이다”(6T 450).
그리스도는 하실 수 있었다. 그렇지만 하실 수 없었고 하시지 않았다. 부분적으로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일에 불충실했기 때문에 물론 이것은 더 깊은 문제의 한 증상에 불과하다.
2. 1900 - 그리스도의 품성이 재생될 때 오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회에서 당신 자신이 나타나기를 간절한 열망으로 기다리고 계시다. 그리스도의 품성의 당신의 백성에게 완전히 재현될 때 주께서 당신 자신의 것을 데리러 오실 것이다”(COL 69). 그리스도의 품성이 회복되는 것이 기본적인 요구 조건이다.
3. 1900 - 상당한 순간이 남아 있을 뿐이다
“우리는 크고 엄숙한 사건의 입구에 서 있다. 예언들이 성취되고 있다. 이상하고 중대한 역사가 하늘 책에 기록되어 있다. 우리 세계에 있는 모든 것이 소란스럽다. 전쟁의 소문들이 있다. 열국이 분노하고 죽은 자들이 심판을 받아야 할 때가 왔다. 사건들이 변하여 하나님의 날에 크게 촉진시키고 있다. 세상 사람들 상패는 하나님의 날을 촉진시키고 있는데 교회와 사역자, 신자들은 촉진시키지 않고 있다. 말하자면 한 수간의 때가 남아 있을 뿐이다”(6T 14).
품성과 행동이 이 권면 중에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해야 할 큰 일이 있다. 그러나 거룩케 하시는 하나님의 신으로 말미암아 품성의 변화가 먼저 있어야 한다. 이것 없이는 가장 열렬한 활동과 최대의 지식은 대부분 공허하고 자기기만에 불과할 것이다.
4. 1901 - 예정된 때 이상으로 지체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주님의 오심)은 기별이 모든 나라들과 방언들과 백성들에게 증거된 때를 초과해서 지체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언 연구생들이라고 주장하는 우리가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주께서 영혼의 구원의 성취를 주구하고 계시는 크고 자비스런 계획의 일부라는 사실을 망각할 것인가?(R.&H. 6, 18, 1901; Ev 697).
그러나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그가 결정한 목적과 조화되지 안 으면 안 된다. 그 운명의 시간은 모든 인간적 요소를 미리 아시는 하나님의 천지 안에서 예정되어 있다. 그 지체하는 일을 그 분께서 배정한 때를 초과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때에 놀라운 말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그가 결정한 목적과 조화되지 안 으면 안 된다. 그 운명의 시간은 모든 인간적인 요소를 미리 아시는 하나님의 천지간에 예정되어 있다. 그 지체하는 일은 구분께서 배정한 때를 초과하지 않을 것이다. 그때에 놀라운 말씀이 있을 것이다.
5. 1901년 - 불순종 때문에 많은 년 수가 남아 있다
우리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러했던 것과 같이 불순종 때문에 더 많은 해 동안 이 세상에 이렇게 남아 있어야 할 지 모른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의 백성은 그들의 잘못된 행동 코스의 결과로 인하여 하나님을 원망하므로 죄 위에 죄를 더해서는 안 된다(우리 자신들이 회개, 기도, 헌신 않고, 성령 못 받아 품성 변화를 시키지 않고, 전도하지 않고, 지상 재물, 육신 안일에 머물러 있고 겨우 교회 출석이나 하여 시간만 지연시키고는 왜 이제까지 주의 약속, 재림 속히 오지 않느냐고 주께 책임 전가하는 것은 죄 위에 죄를 더하는 큰 죄이다 -역자 주)(Letter 184, 1901; Ev 696).
이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이 불순종의 죄는 참으로 중대하다. 반항, 반대, 반역, 순복의 거부, 도전, 반란, 폭동, 그것은 죄라고 부를 수 있는 죄악들 중에 극악한 죄악 중에 하나이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가장 깊이 영혼을 살피고 무릎을 꿇고 죄를 자백하도록 해야 한다. 과고 1888년의 어떤 이들의 죄 때문이 아니요 오늘날 우리 자신의 죄 때문에(통회해야 한다.
* 1901년에 대총회 시에 재조직을 반대한 것은 그 반항적 태도이었다. 그 총회 외기에 A. T. Jones와 어떤 동료들이 대총회의 회장 선출을 반대했다. 그런 직책은 왕 같은 권한을 행사하는 교황권과 같다고 말했다. 결과로서 1901년 G.C. 회기 동안에 대총회장 선출하지 못했고 25명의 대총회 행정 위원이 의장을 선출하기로 준비되었다. 대총회장 직분을 없애야 한다고 요구된 예언의 신의 기별은 한번도 없었다. 1903년이 되기 전 계시는 이 반항이란 문구를 극복하지 못했고 재조직이 완성되지 못했고 그제야(1903) 대총회장 직이 회복되었다(A. V. Olson의 Through Crisis to Victory: 1888-1901. p. 316-320).
A. T. Jonse은 그의 형제들과 교회에 대하여 곧 심한 반대를 했다. 1907년에 그의 복사 신임장을 회수했다. 2년 후에 그를 구원하기위한 온갖 노력이 실패했다. 그 후에 그는 교인 명부에서 탈락되었다(그는 나중에 교회에 재 연합했다. 도한 J. H. Kellogg와 여러 다른 뛰어난 사람들이 반역에 가담했다. 1904년과 1905년에 A. F. Ballenger 하늘이 있는 성소에 관한 우리 교훈에 반대하여 나갔고 얼마 후에 그의 형제 E. S.와 다른 여러 사람들이 미에 가담했다. 그리고 그 벌은 이 세상에 더 많은 해동안 남아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은 1901년에 기록되었고 분명히 그대로 되었다.
6. 1902 - 갑옷을 입고 전진할 것인가?
주의 인도를 받도록 자신들을 하나님의 주관 아래 둔 자들은 주께서 예정하신 사건의 줄을 붙잡을 것이다.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바치신 분의 영으로 감동된 그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늙을 때까지 더 이상 아직도 서 있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주의 전능하심이 그들의 필요를 공급하실 것을 알고 하나님을 위하여 용감히 자원해서 일하기 위하여 하늘의 갑옷을 입고 전투를 위하여 전진할 것이다.
7. 1902년 - 신령한 효능이 재림시까지 뒤따를 것이다
“신령한 능력을 통해서 이룩된 품성의 좋은 바탕은 하늘에서 온 빛과 영광을 받을 것이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보좌를 가리키는 한 증인으로서 세상 앞에서 뛰어나게 드러날 것이다. 그 때 사업은 견고하고 이중의 힘으로 전진할 것이다 새로운 효력이 각 방면에 있는 사역자들에게 부여될 것이다. 사람들은 메시야가 그의 희생을 통해서 지고 가신 죄악에서부터 화목을 배울 것이다. 경고와 구원의 마지막 기별은 큰 능력으로 전파될 것이다. 땅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환하게 될 것이며 우리 주님과 구세주의 능력과 영광으로 곧 오심을 우리가 증거하게 될 것이다”(B 58, 1902.; MM 185). 품성 공동 일치, 힘과 권능은 확실하다. 매우 필수적인 계 18:1의 놀라운 빛은 하나의 큰 가능한 실제가 될 것이다. 그때에는 만일과 그러나란 말이 없을 것이다.
8. 1903년 - “산 연결”의 부족으로 지연되었다
나는 만일 하나님의 백성이 주님과 산 연결을 유지해 왔더라면, 만일 주의 말씀을 순종했더라면 그들은 오늘날(1903) 하늘 가나안에 있을 수 있다(GC Bulletin 3, 30, 1903; Ev 694).
산 연결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잘라졌거나 부분 적으로 끊어졌기 때문이다. 그 생명이 연결이 다시 연결되지 않는다면 점점 퇴보와 궁극적인 사망밖에는 없다. 이 지체되는 원인은 단순하나 중대하다. 그러나 그 원인을 아는 것은 구제책을 아는 것이다.
9. 1904년 - 열매 맺음으로 오심을 촉진시킨다
우리 주 예수의 오심을 바라볼 뿐 아니라, 촉진시키는 일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특권이다. 만일 주의 이름을 고백하는 모든 자들이 주의 영광을 위한 열매를 맺는다면 온 세상은 얼마나 속히 복음의 씨앗이 뿌려질 것인가? 신속히 최후의 수확이 다 익고 그리스도께서는 그 귀한 곡식을 거두시려고 오실 것이다(8T 22; Ev 696-697).
10. 1903년 - 영원하신 손이 아직도 인도하신다
“에스겔의 계시 중에서 본 그 바퀴들은 너무 복잡하게 배열되었으므로 처음에 보기에는 혼돈한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아들은 완전한 조화 중에 움직였다. 그 그룹의 날개 아래에 있는 손으로 유지되고 인도되는 하늘 존재들은 이 바퀴들을 추진시키고 있다. 이들 위에 녹 보석 보좌 위에 영원하신 분이 계셨다. 그리고 그 보좌 둘레에 신령한 자비의 상징인 한 무지개가 있었다. 그 복잡한 바퀴가 그 그룹의 날개 밑에 있는 송의 인도 아래 있는 것같이 인간 사건의 복잡한 작용은 하나님의 주관 아래 있다. 나라들의 투쟁과 소등 중에서 주께서는 아직도 지상의 사무들을 인도하고 계신다.”(Ed 178). 내성적으로 우리 자신의 연약성과 부족을 바라볼 때 우리는 낙망하기 쉽다. 그러나 여기에 하늘에서 온 희망이 있다. 세상의 우울한 상태와 인간적인 복잡성의 위에는 영원하신 분의 인도하는 손이 있다. 모든 사건들은 아직도 그분의 주관하에 있다. 주께서는 아직도 00의 통치권으로 세상의 사건들을 인도하고 계시다. 주께서는 주께서 정하신 때에 저항 할 수 없는 승리를 가져 올 것이다.
11. 1905년 - 지정된 일을 위한 유예의 순간
지금 천사들은 세상이 다가오는 운명에 대해 경고를 받을 때까지 전쟁의 바람을 억제하고 있다. 그러나 땅 위에 불도록 준비된 한 폭풍이 준비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분의 천사들에게 바람을 놓으라고 명하실 때 펜으로 묘사할 수 없을 만큼 무서운 폭풍이 준비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분의 천사들에게 바람을 놓으라고 명하실 때 펜으로 묘사할 수 없을 만큼 무서운 투쟁의 장면이 있을 것이다. 한 순간의 유예 기간이 은혜스럽게도 우리에게 부여되었다. 우리에게 빌려주신 하늘의 모든 투쟁의 장면이 있을 것이다. 하늘의 모든 능력은 아직 못해서 멸망하고 있는 자들을 위하여 주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업을 멸하시기 위하여 주께서는 주의 가장 사랑하시는 분을 보내셨고, 주께서는 비극의 장면을 종결시킬 권한을 주와 협력을 통해서 우리 권한 내에 두셨다. “이 한국 복음을 모든 민족에게 전파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될 때 끝이 올 것이다”(Ed 264). 우리는 참으로 중대한 역할과 책임이 있다.
12. 1904 - 밀러주의자들이 3째 기별을 받아들였더라면
“1844년의 사업에 연합해서 일하던 모든 사람들이 셋째 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이고 성령의 권능으로 그것을 선포했더라면 주께서는 그들의 노력과 더불어 강력히 역사했을 것이다. 빛의 홍수가 세상 위에 비취었을 것이다. 수년 전에 땅의 거민들은 경고를 다 받았을 것이며 끝마치는 사업은 완성되었을 것이며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경고를 다 1904년 전에 오셨을 것이다”(8T 116).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목적을 성취시키는 일을 전진시켜야만 했던가의 이유이다. 이같이 1844년의 이야기와 교훈을 또다시 우리 앞에 제시한다. 1904년은 겨우 밀러 운동의 숫자였던(1884년) 10만 명에 도달되기(1911년까지) 7년전 이었다. 빛의 홍수(계 18: )는 아직도 인식해야 할 것이었다. 그날은 아직도 우리 앞에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과 그의 말씀과 같이 진실로 다가오고 있으며 파기될 수 없다.
13. 1909 - 파수꾼의 변덕이 지연시켰다
“만일 모든 시온 성벽 위에 있는 파수꾼들이 분명한 소리로 나팔을 불었다면 세상이 이전에 경고의 기별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업은 수년 뒤졌다. 사람들이 지고 있는 동안에 사단은 우리에게서 전진을 훔쳐갔다”(9T 29; Ev 694).
이것은 1909년에 우리에 대해서 기록된 가장 큰 비난이다. 이것은 결정적인 발전에 적용한다. 그것은 파수꾼 중의 어떤 이의 치명적인 “불확실”이다. 재난을 가져오는 것은 다른 이들은 비슷하게 불확실한 느낌을 갖게 하든지 거짓 안전감을 갖게 하든지 우물쭈물 미루어가도록 할 가능성이 있게 한다. 그것을 살피게 하고 근신하게 하는 자극이다. 우리를 인도해야 할 사람은 모두 우리의 기별을 사람들에 전할 때에 명백한 확신과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살피도록 무릎을 꿇어야 한다.
14. 1909년 - 하나님은 환경의 주인이시다
“하나님께서 환경의 주인이심을 계시하는 일연의 사건이 있을 것이다. 진리는 명백하고 틀림없는 말로 선포될 것이다. 우리는 한 백성으로서 성령의 압도적인 인도아래에서 주의 길을 예비해야 한다. 복음은 그 순수성 그대로 전해야 한다. 생명수의 강은 흘러가면서 깊어지고 넓어져야 한다. 가까운데나 먼데 있는 모든 분야에 사람들은 경작지에서와 크게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더욱 일반적인, 상업적인, 사업 분야에서 부름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경험 있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교육을 받을 것이다. 그들이 효과적으로 일하는 것을 배울 때 권능으로 진리를 선포할 것이다. 신의 섭리의 가장 놀라운 역사를 통해서 산 같은 어려움들이 옮겨서 바다에 던지우게 될 것이다.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그렇게 많은 의미를 내포하며 온 땅이 경고를 받고 그 때에 끝이 올 것이다”(9T 96).
15. 1909년 - “문들은 열렸다. 세상은 밝아졌다. 수백 수천 명이 가정들을 방문하여 그들 앞에 하나님의 말씀을 펴 놓는 것을 보여 주셨다. 마음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각성되었고 진정한 회심의 정신이 나타났다. 사방에서 문들이 진리를 선포하도록 활짝 열려 있었다. 세상은 하늘의 감화로 환하게 되는 것 같았다”(9T 126; Ev 699).
이 백성을 위한 하나님이 사자로서 엘렌 화잇의 개인적 사명이 그 끝이 가까웠음에 따라서 용기와 확신과 보증의 기록이 깊어졌다. 하나님 환경의 지배, 순수한 그대로의 기별을 명백하고 신실하게 선포하는 것을 강조했다. 평신도 중에 보충병을 모집하라. 효과적인 일, 신의 섭리, 영광스러운 결과, 음산한 비관론이나 낙망적인 기록은 없다. 이상한 기분을 주는 강조도 없다. 계 18:1의 빛은 그 예정된 절정의 역할을 한다.
16. 1911년 필수적인 늦은 비의 부여된 권능
“지상의 추수의 끝이 가까워서 영적 은혜의 특별한 부어주심은 인자의 오심을 위하여 교회를 준비시키기 위하여 약속되어 있다. 이 성령의 부으심은 늦은 비의 내림과 같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늦은 비의 때에 주수하는 주인에게 이 부가적인 권능을 위하여 저희의 간구를 해야 한다. 이 기도의 응답으로 주께서는 빛나는 구름을 만들어 모두에게 소낙비를 주실 것이다. 그 분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리도록 할 것이다”(AA 55). 그 특별한 은사는 확실한 것이니 가장 열렬하게 간구해야 한다.
17. 1915년 - 사업이 마쳐질 때 오실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의 교인들이 복음 사명의 성취로서 국내와 외국에서 필요 되는 일터에서 그들에게 지정된 사업을 할 때 온 세계는 곧 경고를 받을 것이며 주 예수께서는 능력과 큰 영광으로 이 땅에 오실 것이다”(AA 111). 끊임없이 필수적인 필요성을 생각나게 하고 늦은 비의 확신, 그 준비와 그 일과 그것과의 우리 개인적인 관계를 항상 상기시킨다. 그 준비는 완전히 개인적이다. 그것은 대리로 될 수 없고 어떤 단체적 준비로 될 수 없다. 그것은 개인적인 일이다 .성령께서는 우리 주위에서 모두 내리고 있어도 우리는 빠질지도 모른다. 내릴지라도 많은 이들은 알지 못할 지도 모른다.
Ⅱ. 총회 회집에서 교회에게 보내는 마지막 기별들
1. 경건한 낙관주의의 불멸의 감성
엘렌 화잇, 그런 뛰어난 영적 지도자 중 한 분의 마지막 공중 기별에는 가장 엄숙하고 잊을 수 없는 어떤 무엇이 있다. 그 생애의 황혼기인 1913년에 서서, 1844년부터 그 이후로 69년 동안의 이 운동을 통해서 이 백성의 전 역사를 돌이켜 볼 수 있는 입장에 서서 한 기별인 화잇 부인의 1913년의 “대총회에 보내는 최후 기별”은 부인이 직접 참석할 수 없었으므로 그 회기 중에 부인대신 낭독되었다. 그 첫째 기별은 1913년 5월 17일 그 총회 안식일에 W. C. White이 읽었다(GC Bulletin 5, 19, 1913; 1SM 398-402). 두 번째와 마지막 기별은 5월 27일 화요일에 A. G. Daniel가 온 회중들 앞에서 전달했다(GC Bulletin 5, 27, 1913. p. 402-408).
* 개인적인 기록
“나는 나의 목회를 방금 시작한 때였다. 나의 아내와 나는 J. L. McElhany 장로의 주례로 1913년 회기 직전에 5월 13일에 Tokoma Park에서 큰 텐트 옆에 있는 GC 응접 텐트에서 결혼했다. 우리는 둘이 함께 천막 밑에서 항상 개최된 이 마지막 대총회에서 GC 찬양대에서 노래를 물렀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천막에서 일어난 모든 주요 사건들을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 모든 것 중에서 이것들은 가장 감명 깊었다.
나의 첫 번째 대총회에서의 이 유별난 기별들의 기억은 나와 함께 항상 남아 있을 것이다. 특히 1888년 미네아폴리스 총회 이후 25년 후에 엘렌 화잇이 표현한 이 백성의 승리에 대한 확신과 용기의 기록이 귀를 울려 주었다 부인의 뛰어난 낙관주의(교회의 약점들과 실패들을 누구보다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그 구성분자인 목사와 신자들)는 결코 지울 수 없는 감명을 주었다. 낙망이나 비관의 기록은 하나도 없었고 오직 용기와 확신뿐이었다. 나는 그 때 거기에서 그런 가치 있는 전례와 더불어 그것이 나의 항구적인 태도가 되어야 한다고 결심했다.
2. 영광스럽게 승리하기로 예정되었다
부인의 첫째 기별에서 대표자들에게 충만한 희망과 용기의 정신을 품으라고 권면하면서 부인은 피로에 지치거나 고생으로 수척해지거나 우울해지지 않도록 지키라고 격려했다. 부인은 요령 있게 부언했다. “향상시키는 증거를 하라.” 그의 살피시는 감독아래서 우리의 생애와 우리의 가진 것 00을 바치고 있는 현대 진리의 사업은 영광스럽게 승리하도록 예정되어 있다. 그것은 기조였다. 승리는 확실했다. 우리가 세상에 선포하고 있는 기별의 중요성과 범위에 관한 광범위한 견해를 권면하면서 화잇 부인을 격려하기를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이해하기 위하여 가장 열렬히 기도하라. 그리고 주의 목적의 더 충분한 관념과 영혼 구원에 더 큰 효과를 위하여 가장 열렬히 기도하라”(p. 400).
Ⅲ. 하나님의 목적과 준비의 확실성
하나님의 약속들과 경건의 조건적인 성격을 떠나서 우리가 연구해온 불가피한 인간적인 요소 때문에 만일 우리가 안전하게 묘사하고 결론을 묘사한다면, 묘사하지 안으면 안 될 성경 예언들의 결과에는 확실성이 있다. “약속들과 경고들”의 특성 이상의 무엇이 있다. 지체하는 문제를 참되고 건전하게 연구하려면 성경 예언을 통하여 계시된 세월이 흘러가는 것을 적당히 계산하고 전반적인, 궁극적인 완성 없이는 할 수 없다.
1. 인간을 취급하는 모든 것에 영원한 목적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과 우주를 그 일을 위하여 그들 자신의 행동의 코스를 충분히 선택한 능력이 있고 창조주의 뜻과 온전히 조화되고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죽음을 수반함을 충분히 아는 거룩하고 행복한 존재들을 살도록 창조할 의도를 가지셨다. 우주와 특히 이 세상에 죄의 침입은 이 신령한 목적을 변경시키지 않았다. 죄의 가능성과 들어올 것을 미리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들어올 때 그것을 처리할 방법을 충분히 준비하셨다. 죄인을 잃었던 무리로 회복시키는 주님의 계획은 제공된 구원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자들을 위하여 이루어질 것이다.
성경 예언들로 보류되는 성성의 부분들은 완전한 우주를 위한 주의 계획과 준비를 이행하는 모든 것을 지배하시는 신의 결정의 빛 가운데에서 세상에 있게 될 특수한 환경을 취급하시는 하나님의 선언하신 목적 혹은 결정의 표현들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성서에 이 같은 방법으로 여러 차례 말씀하신 것은 의미심장하다. 예컨대 그 죄 때문에 Balylan에 일어날 것을 말씀하신 후에 그 선지자는 사 14장에 묘사한 것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온 지구에 목적하신 그 목적이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민족 위에 뻗히신 그 손이다. 만군의 주께서 그것을 뜻하셨으니 누가 그것을 폐하겠는가? 그리고 그의 손이 펴졌으니 누가 그것을 거두겠는가(사 14:26, 27; 사 19:12; 23:8, 9; RSV 46:11; 렘 36:1-3; 49:20도 보라).
2. 변경될 수 있는 조건적 예언
특수한, 특히 지방적인 예언들에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순종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하실 일을 말씀하시고, 흔히는 인간이 악을 회개하거나 그들의 선을 버리거나에 따라서 그 계획을 변경시킬 것과 그 후에 행하실 것을 선언하신다. 엘렌 화잇은 이것을 매우 명백한 말씀으로 묘사한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위하여 예비하지 않은 교회는 하나의 구름도 그 위를 덮지 않고, 주께서 미리 보시지 않은 하나의 반대도 하나님이 사업을 도전하기 위하여 일어날 것인가를 예언적인 말씀으로 묘사하셨고 그의 섭리를 통해서 세상 역사에서 지정된 장소에서 행하실 것을 주께서 그의 성령의 감동을 받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언하셨다. 그의 모든 목적을 선택할 자유를 허용하시면서도 충분히 활동된다.
3. 모든 말씀들이 확실하게 성취될 것인가
화잇 부인의 긴 생애동안에 하나님께서 참으로 확실하게 그 분의 약속들을 이루실 것이라는 많은 확신을 현대 교회에서 주었다. 아래의 간단한 모본은 하나님의 남은 백성에게 보내는 부인의 모든 기별의 취지의 특성이다.
“내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을 볼 때 나는 두려움으로 가득 차고 지도자이신 그리스도안에 확신으로 충만케 된다. 우리는 주께서 우리를 인도하신 길과 우리 과거역사에서의 그의 교훈을 잊어버리는 것 외에는 미래에 대하여 아무 것도 없다”(LS 196).
“그 분은 곧 오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나타나심을 위하여 준비하고 기다려야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기다려 왔지만 우리의 희망을 희미하게 해서는 안 된다”(8T 253).
“우리는 우리 구세주의 오심을 오래 기다려 왔지만 그러나 절대로 그 약속은 확실하다”(p. 254).
“우리는 하늘의 세 큰 권세들이 역사하고 계심과 한 신령하신 손이 그 바퀴를 붙잡고 있고 하나님께서 그의 약속을 성취시킬 것을 잊지 말자. 주께서는 세상에서 의로 주를 섬길 한 백성을 모으실 것이다. 우리는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증거 해 온 믿음, 하나님의 약속들을 붙잡고, 주께서 정하신 대와 방법으로 구워하실 것을 기다리는 믿음을 품고 개발시켜야 한다. 그 예언의 확실한 말씀은 우리 주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주와 만주의 주로서 영광스럽게 재강림하실 때 그 최후의 성취를 볼 것이다. 기다리는 시간은 긴 것처럼 보이고 영혼은 낙망시키는 환경에 의하여 억눌릴는지 모르고 확신을 가지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곁길로 떨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비상한 배도의 시대에 유다를 격려하기 위해 노력했던 선지자와 함께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말하자. “주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니 온 땅에 거하는 자들은 그 앞에서 잠잠할 지어다. 우리는 이 위로하는 기별을 항상 염두에 두자. 그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합 2:20, 23).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 PK 387, 388).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은 문자대로 성취되었다. 하나님 목적하신 바를 인간이 폐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악의 활동 중에서 까지도 하나님 목적은 그 성취를 향하여 견실하게 전진해 왔다. 이스라엘 집에도 그러했고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에도 그러하다”(p. 720).
그러므로 하나님의 목적의 성취에 관해서 우리는 최고의 확신을 가질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반역적인 인간들이나 악마의 세력에 의하여 제거되어지지 않을 것이다. 죄는 확실히 우주에서 제거될 것이며 하나님 크신 통치에 의가 다스릴 것이다. 주께서 하늘의 시간표를 주관하신다. 회복을 위한 주의 뜻은 주의 계획하신 시간표에 따라서 진행될 것이다. 너무 빠르지도 않고 너무 느리지도 않게 서두르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고 정확하게 5977년간 진행되었고 조금 더 남았을 뿐이다.
Ⅳ. 구속의 계획은 나라들의 연쇄 중에 세워졌다
1. 오직 하나님께서만 재림의 때를 결정하신다
최초로 초림에서 절정에 이루고 그 다음에 재림에서 완성되는 구속의 최고의 준비뿐만 아니라 인간과 접촉할 때 인간 역사의 구조 속에 있는 배경은 다니엘 2, 7, 8, 9장의 누가적인 예언의 영감적인 연쇄를 통해서 공개되어 있다. 명확하게 기록된 바와 같이 인간은 절대적으로 초림의 때를 정하는 데에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다. 그것은 영원한 과거 전부터 신성에 의하여 독점적으로 특별히 결정되었다. 그리하여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셨다(갈 4:4). 이것을 바울이 강조하기를 “그가 스스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듯을 다라 예정을 입어”(엡 1:10, 11). 이것은 처녀 탄생의 기적을 통해서 성취되었다. 우주에서 최대의 기적 하나님께서 친히 한 특별한 여종을 택하사 성육신의 기적을 행하셨고 거기에 대한 천사의 선언을 그녀가 승인하였다(눅 1:28-38). 이런 방법으로 한 인간적 몸이 예수님을 위하여 준비되었고(히 10:5). 이리하여 영원한 신성의 제이위는 세상에서 인간 중에 사실 수 있었고, 인간 대신 죽으실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놀라운 성애와 속죄의 죽으심의 나타남은 하나님이 영원한 목적과 계획의 예언적 정확성으로 시간이 결정되었다. 다시 반복한다. 이 계획, 준비 시간 등에는 인간이 아무것도 간섭하지 못한다. 그것은 인간에 의한 조건적이 아니요 하나님만이 홀로 결정했다.
2. 심판의 시간은 오직 하나님의 전권에 속한다
또한 역시 모든 사람의 심판의 때도 십자가의 결정적인 사건과 관련하여 재림에 대하여 없어서는 안 될 필요조건이다. 이 심판이 시작되는 시간은 또한 온전히 하나님의 전지에 속한 것이며 역시 이미 결정되었고 그 후에 그 같은 역사적 사건 선지자 다니엘을 통해서 선언되었다.
재림 운동의 최고의 목적을 명기하면 그 최고의 마지막 처사의 개시를 선언하는 것이며 각처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오시는 주님을 맞기 위하여 함0한 영혼의 준비를 하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신의 구속적 활동 중에서 이 두 최고의 사건들의 시기는 이같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다.
3. 열국의 운명들을 조심스럽게 지켜보았다
일전0한 것에 따라서 열국들 그들의 존재, 진로, 연쇄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권의 관계를 관찰하라. 둘째로 영감으로 기록괴고 반복된 인간의 사건들의 수단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하나님의 예지와 정확성을 시험해보고 그의 통치권을 평가해 보라는 도전을 받는다. 하나님을 열국의 통치자라고 말하면서 엘렌 화잇은 주 하나님 전능자, “모든 왕들 모든 통치자들, 모든 나라들이 그 분의 밑에 있고 그의 치리와 지배 하에 있다고 말한다”(R.&H. 3, 28, 1907; 4BC 1170). 다시 주 하늘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 오직 그분만이 모든 권세위에 모든 왕들과 통치자 위에 계시다라고 했다(Te 53). 그리고 더욱 명백하게 “주 하나님 전능하신 분이 통치하시도다. 모든 왕들과 모든 나라들은 주님의 것이요 그분의 통치와 지배 아래에 있다. 열국의 운명들을 왕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분에 의하여 이완됨이 없이 아시는 깨어 있는 주께서 지켜보고 있으시다”(Letter 201, 1899; 4BC 1173).
하나님의 계획 중에 세상의 기초적를 놓기 전에 예정되었다. 이것은 우리 앞에 감독하는 주관하는 작용들에 관한 비범한 통찰력과 이해력을 공개한다. 여기에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영원의 범위가 공개된다.
4. 열국은 연대와 국경이 허용되어 있다
교육에 “역사와 예언에 관한 빛을 주는 장에서 엘렌 화잇은 역사에 있는 열국들은 흥망성쇠에 연대와 국경이 정해져 있다”(p. 178). 사실은 “각 나라와 각 개인은 하나님께서 그의 크신 계획 속에 한 장소가 정해져 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주장하시기를 위대하신 스스로 계신 분께서 당신의 말씀에 표시한 역사는 영원한 과거에서 영원한 미래까지 그 예언적 사슬에 고리와 고리가 연결된 그 역사는 우리에게 오늘날 우리가 그 각 시대의 과정 중에 어느 위치에 와 있는가를 말해주고 앞으로 무슨 일이 올 것인가를 말해 준다. 오리라고 예언된 것을 확신할 수 있다. 할애되었다. 지정되었다. 때와 장소가 표시되었다. 예언적 사슬에 고리에 고리가 연결되어 각각 그 순서대로 각 시대의 과정 중에서 영원한 과거에서 영원한 미래까지 등은 불가피한 의미의 주가적인 표현들이다. 하나님은 다스이시고 위에서 지배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웃라인을 정하시고 그대로 성취하신다.
5. 세상의 기초 이전에 결정하셨다
하나님의 어린양 그리스도는 창세부터 죽임을 당하셨다(계 13:8). 각 시대 최대의 신학자 바울에 의하면 특히 성취될 때가 있었다.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준 바 되었다(행 2:23). 여기에서 인간의 구속을 위한 무효화할 수 없는 신성의 언약의 준비가 실시 중이었다. 그와 같이 구속의 계획은 틀림없는 열국의 아웃라인(여러 세기의 전 모습을 틀림없이 미리보고 기록한 다니엘의 정확한 아웃라인 예언들을 통해서 계시된 속에 섞여 짜여져 있었다. 이것은 역시 세상의 창조 전부터 아웃라인 되었다. 구속의 계획의 시기는 이렇게 계시되었다.
이 지울 수 없는 준비의 관대함과 의미는 전율케 한다. 그것은 또한 놀랍게도 영감을 주고 믿음을 세워준다. 우리가 그 광범위한 의미와 틀림없는 하나님의 통치권의 의미와 그 분의 틀림없는 예언적 예보를 이해할 때 구약성서에서 이사야는 이것을 암시했다.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않은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사 46:10). 그리고 신약에서 바울이 아무 수식하는 말이 없어 연대를 정하시고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라고 말했다. 이상은 성경과 예언의 신의 예비적 증언의 기본적인 일치이다.
6. 하나님의 감독하는 주관은 부정확하지 않다
다니엘 2장과 7장에 개략되고 예언된 세상 권세들의 예정된 연속에서 하나님의 감독하는 주관에 관한 놀라운 진리는 역시 창세전에 예정되었다. 이것은 각 개인의 구원을 위한 그분의 구속적인 활동에서와 마찬가지로 열국의 사건들 중에 주님의 지도하시는 손을 공개한다.
이것은 그 첫째가 세계적 권세가 되었을 때 선언되었다. 바벨론 그 선언된 순서에서 그 이후의 통치권과 감독하는 지시를 시험해 보도록 하기 위하여 그런 것이 신령하게 공개된 각 시대의 주요 계획이다. 지상 왕국의 코스, 하나님의 역사 철학, 열국의 연쇄에 대한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지도, 하늘의 구속의 계획의 시간표와 지상의 조직, 하나님의 전지하신 통치권의 의지는 절대 과오가 없고 무효화 할 수 없다. 궁극적으로 the metes와 경계를 정하고 역사의 시간을 정하는 분은 하나님이다. 이렇게 무한하신 손에 우리는 완전한 신뢰를 가질 수 있다. 이것이 우리의 확신의 기초이다. 그리고 그것이 또한 처음에는 이상하게 보이겠으나 지체에 포함된 모든 것이다.
Ⅴ. 예정된 정확한 예언들의 신령한 보증
1.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억제하신다
또 하나의 엘렌 화잇의 술어인 “예정한”의 동의어의 표현인 들과 함께 무조건적인 결정적인 예언을 의미한다. 예컨대 이런 범주적인 개괄적인 예언들은 다니엘 2장 7장에 지울 수 없이 기록되어 있다. 무조건적인, 결정적인 예언을 의미한다. 예컨대 이런 범주적인 개괄적인 예언들은 다니엘 2장과 7장에 지울 수 없이 기록되어 있다. 7장에서 단지 더욱 상세하게 깊이 약정이 있을 뿐 모두 역사적 연쇄에서 같은 근거를 포함하고 있다. 이 예언들은 사람들 앞에서뿐만 아니라 전 우주 앞에 천사들과 마귀까지도 자세히 살펴보도록 공개되어 있다. 무조건적, 할당된, 지정된 영국의 연쇄가 계시되어 영감을 통해서 틀림없이 여기에 제출되어 있다. 왜냐하면 선지자 다니엘이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때와 기한을 변하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기 때문이다(단 2:21).
그 놀라운 정밀한(precision)과 세심한(meticulous) 정확성을 주목하라. 바벨론에서부터 시작하여 정밀하게 네 왕국이 있을 것이다. 3이나 아마 5도 아니다. 4째 세계의 권세는 깨어져서 10조각으로 될 것이다. 9나 11 왕국이 아니다. 이 중에서 3은 00할 것이다. 꼭 2나 4도 아니다. 그것은 불가사의하게도 사실이다.
2. 상습된 하나님의 율법의 신성 모독
그리고 그 다음에 꼭 하나의 최고 교회 세속 왕국들이 아니다. 이 반영된 로마 사이레서 나타나서 작은 싹이 나서 한 놀라운 권세를 가진 기관이 되어 계속되고 어떤 특기할 만한 일을 하고 담대히 위엄을 나타낼 것이다. 그 권세와 통치의 특별한 기간은 1260년(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감히 하나님의 영원한 십계명의 안식일을 도전하거 변경하려고 하거 그 행위를 자랑할 것이다. 누가적 성취의 정밀은 놀랍고 결론이 확실하다. 그것은 단지 그저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구절은 부정확하거나 애매하거나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거나 이해하기 힘든 문구가 섞이거나 ambivalent 듯이 없다. 하나님께서 앞에 있는 것을 아시고 그 정밀한 개관을 과오가 있을 수 없게 말씀하시어 모두 왕의 전지성을 알고 주의 통치권과 전능성을 증거할 수 있게 하셨다. 이 권세들이 스스로 결정하는 인간적 요소가 있을지라도 그러나 나라들을 일으키기도 하시고 망하게도 하시는 분이시다. 여러 세기의 달력에 주께서는 때와 기한을 정하셨다. 그분은 인간 나라들을 총 지휘하신다. 주께서는 짓밟을 수 없는 경계를 정하신다.
이 예언들은 조건적이 아니요 잠정적인 것도 아니요 우연히 일어난 것도 아니다. 00의 구속의 계획이 이 성구와 calendation과 섞여 짜여 있다.
여기에 궁극성이 있다.
3. 심판의 시간은 변경할 수 없이 고정되었다
이 장엄한 열국의 개관적 예언들은 이렇게 그리스도를 통한 신성의 최고 구속의 행위를 위한 동시에 일어나는 동일시되는 지상의 배경을 준비한다. 말씀한 때가 차매 예정대로 초림하시여 미리 아시고 예언하신대로 하나님의 어린양의 속죄의 죽음은 연속적 왕국 중 4째 로마의 통치 기간에 일어나야 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승천 직 후에 그의 대제사장의 하늘 봉사의 첫째 국면 혹은 중보사업에 새 시대에 들어가셨고 오순절이 완전히 되었을 때 00들에게 신호하셨다(행 2:1). 이상이 그 시간의 정밀성이었다(2300주야 그대로 - 단 8:14; 9:24-27). 역시 그 큰 2300 년 기간의 시작 유대교의 시대와 기독교 시대가 모두 포함된 예정된 할당된 연속적 왕국 중에서 페르샤 혹은 왕국에 닻을 내리고 최후의 심판국면의 시작으로서 1844년을 중대한 종점으로 확정했다. 아직도 로마의 붕괴에서 발생한 일곱 왕국에 분정된 시대 안에 있다. 그리고 이 7월 10일 속죄일의 불변성은 고대 하나님의 백성의 의식 중에 출애굽 이후에 000의 행위 그 전가지 거의 1500 년 간 항상 훈련되어 왔다. “더 이상의 성취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시간을 시작하는 바로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은 1844년 가을로서 영원한 회의에서 고정되었다. 1843년이나 1845년이나 47년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한날을 정하셨다(핸 17:31). 죽을 자를 심판하는 때가 있다)계11:18). 땅 위에 잇는 아무것도 혹은 마귀의 군대 중의 아무도 시간의 시초부터 모든 산 영혼의 운명을 결정하는 그 초월적인 신령한 시간적 사건을 앞당기거나 늦출 수 없다(롬 14:10, 고후 5:10). 우리는 하나님께 대해서 아멘 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에 복종해야 한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모든 심판을 그 아들에게 위탁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이 거룩한 율법에 복종해야 한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모든 심판을 그 아들에게 위탁하셨다(요 5:22). 그는 그 예정된 년일의 정확한 날에 그 엄숙한 사건에 들어가셨다. 아무것도 그 이상 깨뜨릴 수 없다.
4. 구속의 intrrent 시간표
그리고 교황권 작은 뿔에 배정된 1260년(일 기간은 분열된 로마의 계속적인 기간 내에 순서대로 정확하게 들어맞고 예정된 마지막 때의 시작에서 끝난다. 그것은 곧 재림이 뒤따르는 것은 이 기간 내에 있다(마지막 때 = 1798-조사심판-재림).
이것들은 신성하게 할당된 구획된 예언적 사슬에 고리와 고리가 연결되었다(Ed 178). 이들은 각 시대를 포함하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개관을 구성한다. 이보다 더욱 확실하고 더욱 깨뜨릴 수 없는 것을 없다. 그것은 구속의 계획의 중대한 준비와 세상 영국의 구조적 역사와 그 사이에 함께 깨어 있는 것이요 이것은 통해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00의 구속의 시간표를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이 믿을 수 있는 안내를 위하여 세상 역사와 하나님의 섭리가 섞여 있는 신성한 철학이며 틀림없는 역사의 확실성이다.
Ⅵ. 미리 결정된 변명할 수 없이(Irrevocably) 고정된 경계선
1. 징벌이 은혜시기를 대치할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전반적 묘사의 뗄 수 없는 부분을 형성하는 어떤 동시에 일어나는 요인이 잇다. 그것을 고려함은 충분히 원활한 이해를 위하여 강요하다. 1863년과 엘렌 화잇이 돌아가실 때 1915년 사이에 여러 차례 주의 사자는 누가적인 경고의 기별들을 기록해 두라는 지시를 받았다. 하나님의 다비, 은혜, 오래 참으심, 관용, 아량, 인내, 자비, 관대함 등을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불순종과 도전은 사람들이 악용하기 때문에 벌 받지 않고 무제한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예언의 신이 같은 의미의 여러 가지 표현에 의하여 피할 수 없는 계산하는 날 한계, 즉 선언된 한계 지점 정한 때, 고정된 불량, 최종 기한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비와 진노 사이의 00, 주의 예고에서 그의 징벌까지의 교차점이다. 주께서 악의 넘칠 듯한 잔을 측정하신다. 주께서는 교회들과 나라들의 계산서를 표시하신다. 그의 눈은 그가 정해 놓으신 한계를 주목하신다.
엘렌 화잇의 술어에는 주께서는 한 종점 더 이상 계속 갈 수 없는 지점 돌아올 수 없는 지점, 통과할 수 없는 선이 있다. 그것은 모든 인류에게 신속하게 닥쳐오고 있는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의 순간을 의미한다.
2. 포화 상태 지점에 급속히 육박하고 있다
이 말씀들은 그 같은 두려운 사실(은혜의 문이 닫히는 때가 냉혹하고 임박해 온다는)을 단순히 다른 sakf로 표현한 것들이다.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전관계의 범위 중에 그것과 비교할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홍수는 가장 비슷한 유사점, 전조이다(벧후 3:3-12). 우리는 인간의 시련 시기, 기회, 최후 시험의 기울어지는 시간에 논쟁의 여지없이, 살고 있다. 지금은 빨리 없어져가는 시기, 연장된 신의 행위를 때이다. 명백하게 정하신 지점, 때의 00의 순간, 주의 틀림없는 계약 조항에 의하여 하나님께서 그 한계점을 향하여 가속도로 달리고 있다. 그때는 신속히 악화되는 조건들에 의하여 결정된다. 왜냐하면 그 둘 조건들과 시간은 나눌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는 다른 하나 없이 생길 수 없다. 주님이 들릴 때까지는 알지 못하고 못할 것이다. 그 동안 인류의 은혜의 시간이 영원히 끝나버릴 때가 있다. 인류의 깊어만 사는 죄악과 함께 그 한계점을 향하여 가속도로 달리고 있다. 그 때는 신속히 악화되는 조건들에 의하여 결정된다. 왜냐하면 그 둘 조건들과 시간은 나눌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는 다른 하나 없이 생길 수 없다. 주님의 무한성에 의하여 하나님은 언제 그런 때가 올 것인지 아신다. 사람은 전능하신 분의 보좌로부터 그 명령이 들릴 때까지는 알지 못하고 못할 것이다. 그동안 인류는 증가하는 운동량으로 소모성의 시간의 고속도로를 달려 내려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 끝에 통과할 수 없는 장벽이 있는 죽음으로 끝나는 길이다.
3. 주요한 근접감
시간은 거의 지나갔다. 취소할 수 없는 자비의 문은 매우 속히 닫히려 하고 있다. 우리는 두려운 사실인 근접한 느낌, 절박감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만이 정확한 시간과 한계선을 아시고 주관하신다. 그 분의 최고 통치권의 음성이 하늘에서부터 “다 이루었다”, “끝났다”라고 취소할 수 없이 들려올 것이다. 그 다음에 재앙들이 시작된다. 징벌이 내린다. 보응이 임한다. 시간은 끝나고 영원의 활동에 길을 비킨다. 그것은 하늘과 땅 사이에 전체적으로 새로운 관계를 투입한다. 그것은 은혜스러운 구속의 작용을 끝낸다. 운명이 실현된다. 죄인들의 시체는 버려진다. 죄의 통치는 끝난다.
4. 하나님의 경고는 반복되고 가지 모양으로 퍼진다
이 무서운 경고를 우리도 역시 반드시 인류에게 권고와 탄원이 섞인 음성으로 선포하지 안으면 안 된다. 계 18장은 인류에게 보내는 하나님이 마지막 호소이다. 그것은 지금 들려야 한다. 자비는 사람의 절실한 필요와 더불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자비 때문에 조금 더 머물러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용의 끝이 이를 때 고칠 수 없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이 예정하신 징벌보다 더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사랑과 공의와 같이 확실하다. 다음의 정확한 말씀의 산적한 인용들을 그 주요한 표현은 이탤릭체로 한 그 의미 있는 시간 관례와 함께 자세히 검토해 보라.
5. 1863년 - 죄악의 잔이 거의 찼다
“시간은 지상 거민들이 그들의 죄악의 잔을 다 채울 때까지 조금 더 있다가 끝날 것이다. 그 때에 그렇게 오랫동안 잠잠했던 하나님의 진노가 잠에서 깨어날 것이며 이 빛의 땅은 주의 섞이지 않은 진노의 잔을 마실 것이다”(1T 363).
6. 보응이 내리려 한다(1885년)
죄악의 잔이 거의 찼고 하나님의 공의의 보응이 죄인들 위에 내리려 한다(4T 489).
7. 열국과의 계산이 끝마쳐감(1889년)
틀림없는 정확성으로 무한한 신분은 아직도 열국과의 한계산서를 지키신다. 회개하라는 호소와 함께 주의 자비가 남아 있는 동안 이 계산서는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확정하신 어떤 정도까지 그 계산이 달하면 그 분의 활동이 시작된다. 계산은 끝났다. 신령한 인내는 끝났다. 그들을 위한 더 이사의 자비의 탄원은 없을 것이다(5T 208).
8. 헤아림(1889년) - 정해진 한계 - 분량
하나님께서는 열국을 헤아리고 계신다. 죄악이 하나님의 자비의 정해진 한때에 도달하는 그 때가 충분히 올 때 주의 오래 참으심은 끝날 것이다. 하늘의 기록 책에 있는 축적된 숫자가 완전한 죄악의 분량을 가리킬 때 진노가 임할 것이며 그 때 하나님의 참으심이 따 끝난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5T 524).
9. 통과할 수 없는 한계가 정해져 있다(1890)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가 오래 남아 있는 동안 사람들이 더 이상 죄를 범하지 못할 한계가 있다. 그 한계에 도달할 때 은혜의 역사는 거두어지고 심판이니 봉사가 시작된다(p. 162-163).
10. 하나님의 최고의 통치권
그들은 그들 위에 계신 하나님의 통치권의 최고임을 발견할 것이다 (TM 462).
11. 관용의 한계(1900)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며 아무도 멸망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그러나 주의관용에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가 지나면 둘째 은혜의 기간은 없다. 주의 진노가 발동할 것이며 주님은 가차없이 멸하실 것이다.
12. 측정기가 거의 찼다(1902)
세계의 거민들의 악은 그들의 악의 분량이 거의 찼다. 이 땅은 하나님께서 파괴자로 하여금 맘대로 하도록 허용하심 위치에 거의 도달했다(7T 141).
13. 더 이상 계속하지 못할 “한 점”(1904)
그들이 기만과 거만한 행동에 있어서 사람들은 주께서 더 이산 가도록 허용하지 않으실 점에 도달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여호와의 관용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구원하기에 강력했던 그 손이 파괴시키는데도 강력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어떤 지상 권세도 하나님의 손을 멈출 수 없다(LS 413, 414).
14. 한계가 거의 도달했다(1910)
사람들의 악은 그의 그 한계에 도달했다. 하나님께서는 땅 위에 그의 심판을 내리기 시작하고 계시다(R.&H. 3, 31, 1910; TM 457, 458).
15. 죄가 끊나는 점(1904)
범죄는 거의 그 한계에 도달했다. 혼돈이 충만하고 한 큰 공표가 곧 인류 위에 임할 것이다. 끝은 매우 가깝다. 진리를 아는 우리는 압도적인 놀람으로 세상에 곧 터질 일을 위해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8T 28).
16. 하나님의 지정하신 때가 세워졌다
여호와의 관용에는 한계가 있다. 어떤 지상의 권세도 하나님의 손을 멈출 수 없다. 사람들이 하나님이 율법을 부시한 것과 그들의 이기적인 야망 때문에 그들에게 보응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지정하신 때가 올 때 멸망에서 그들을 보존할 아무런 재료도 건축에 사용될 수 있는 것이 없다(9T 13).
17. 더 이상 지체함이 없다(1916)
여호와의 심판을 더 이상 지연시킬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최고 통치권의 확실성과 포괄성이다. 그리고 말하자면 하늘의 컴퓨터 조직에 의한 것이다. 대다수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빨리 지체는 끝날 것이며 첩ㄹ은 시작될 것이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다. 그리고 그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분명히 이루어져야 한다. 근접은 한 낱말이다. 그것은 우리 희망의 깨뜨릴 수 없는 근거이다.
* 난외주 - 통치권 혹은 최고 통치권은 한 특성이 아니다. 다만 신성의 절대권이다. 그 분의 존재의 완성, 전지, 통치, 그의 창조주 되심에 기초된 절대권이다. 하나님의 통치권은 절대적이다. 그 분은 어떤 외부적인 인간이나 마귀의 제한을 조금도 받지 않는다. 그 분은 모든 중대한 사건의 최고 결정자이다. 존재의 모든 형태는 그의 지배의 범위 안에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그의 지성적 피조물들에게 주신 도덕적 자유 권한을 축소하지 않는다. 혹은 사람들을 그들 자신의 운명의 조정자가 되는데 침해하지 않으신다. 그들은 선과 악 사이에 최후 선택의 권한을 갖도록 강조되었다. 바로 이 하나님의 통치권과 의와 정직은 우리의 확신의 근거이다(렘 44:22, 23 - 하나님의 인내의 한계).
Ⅶ. 지연과 완성의 사실을 요약함
1. 품성 변화가 제 일의 필수 요건이다
이제 명백하게 된 바와 같이 그 완성의 종국 이전에 지체함에는 여러 가지 근본적 요인들이 포함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재창조하시는 은혜로 말미암아서 그들의 품성을 완전히 변화시키지 않은 자들과 그 영혼 속에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자들에게 끝없는 불멸성을 부여하지 않은 자들과 그 영혼 속에 회복된 하나님이 형상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자들에게 끝없는 불멸성을 부여하지 안 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제 일의 요구 조건 첫째 요인이다. 그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화 될 때 완전한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로 갑옷을 입을 때만 영원한 하늘 왕국을 위한 시민이 될 것이다. 그것이 기본적이다.
어떤 모순, 투쟁, 질투, 거룩치 못한 야망, 권력 위한 투쟁, 지위 다툼, 자만, 반항의 씨로 갑옷을 입을 때만 영원한 하늘 왕국을 위한 안전한 시민이 될 것이다. 그것이 기본적이다.
어떤 모순, 투쟁, 질투, 거룩치 못한 야망, 권력을 위한 투쟁, 자위다툼, 자만, 반항의 씨는 다가오는 영광의 왕국에 들어가도록 허용될 수 없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죄가 그 생활에서 근절되었는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그 평가와 그 후의 행위는 온전히 그 분의 손에 있다.
2. 중대한 그릇된 견해들로 인하여 지연되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확실히 그들의 마음이 주를 향하여 온전한 자들을 확실히 구워하실 것이다. 주께서는 수세기에 걸쳐서 그렇게 해오셨다. 그러나 남은 교회에는 더 이상의 적당히 기대하는 바가 있다. 과거의 모든 진리들의 회복 자들로서 위임되고 마지막 때가 기대하는 무엇이 있다. 이들은 오늘날 필수적인 현대진리를 모든 사람에게 알고 선포해야 한다. 이것들은 세상에 울려서 참되게 펴져야 한다.
그릇된 견해들을 지지함은 신성의 모든 충만함이신 그리스도 대신에 제한된 아리안적 그리스도관 같은 것, 삼위일체의 제 삼위이신 성령을 단지 한 인격적 감화력으로 보는 것과 속죄를 십자가의 초월적 행위에서 대부분 분리하는 것 등 그 영원한 진리들의 이 중대한 범주 안에 들어 있었다. 어떤 이들의 그런 초기의 견해들은 인류에게 보내는 영원한 복음과 하나님의 최후의 기별의 세계적인 선포의 집중 조명의 강조와 온전히 모순되었다. 이 그릇된 사상을 먼저 교정하지 않으면 안 되다. 어떤 이들의 이 최고 진리들에 관한 그릇된 견해를 고집스럽게 지지함은 매우 분명히 세상에 보내는 초기의 건전하고 가납 될 수 있는 선조를 늦어지게 하는 데에 한 역할을 했다. 1888년과 그 이 후에 교정되지 않으면 안 될 오류들은 지연시키는데 물어 볼 것 없이 한 가지 명확한 요인이었다. 올바른 정신과 태도로서 그리고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이 오류들은 1844년 이후에 단시일 내에 혹은 1888년 즈음에 미네아폴리스에서의 큰 전진과 관련하여 속히 교정할 수 있었다. 의심의 여지없이 이것들은 우리 초기 수십 년간에 확실한 지체의 요인들 중에 포함되었다.
3. 세계적인 증거, 근본적 필수 요건
임박한 왕국의 영원한 복음이 그 최후의 성령으로 추진되는 국면 중에서 온 세상에 있는 반응을 나타내는 모든 사람에게 전파가 완료되기까지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시련 시기를 닫지 않을 것이다. 이것과 연관하여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초월적인 자비는 인간의 개인적인 단체적인 책임이 있다. 이 신성하게 위임받은 사명의 완성에 대하여 우리는 회피할 수 없는 개인적인 단체적인 책임이 있다. 우리는 이렇게 함으로 그 날을 촉진시킬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무력함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약속하신 능력과 절대 필요한 능력을 달라고 간청하도록 한다. 우리는 가서 증거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맡기신 일이요, 우리에게 지우신 사명이요 회피할 수 없는 사명이다. 이것이 세 번째 필수 요건이다 품성 변화와 교리의 교정은 물론 한 일이었다. 그것이 우리 현재의 접합점이다.
4. 신성과 인성의 연합
그 다음 4번째는 우리는 여하한 방법으로 우리 스스로 이것을 성취할 수 없다. 찬란함, 교육, 추진력도 부여된 권능 아래에서 완전히 역사하는 땅 끝까지 미칠 모든 반응을 보이는 인간의 귀에 도달할 수 있는 배우 감동적인 소리들이 될 것이다. 그리고 오직 계 18:1의 증거하는 천사의 빛나는 광채만이 온 땅을 하늘의 영광으로 채울 것이며 인간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자비의 최후 기별의 완성을 가져올 수 있다.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이해할 수 있는 희망이다. 그것은 아직 결코 경험해보지 못한 그런 복종을 요구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강렬한 위탁과 행위를 위하여 우리는 너무 안일하게 걸어왔고 너무 뜨뜻미지근해왔다. 능력은 하나님의 것이며 한편 인산은 기구이다. 선택의 자유를 가진 인간 기계는 우리의 것이다. 우리는 회피할 수 없는 역할을 가지고 있다.
5. 주의 무한한 절대통치권이 이길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5번째 요인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취소할 수 없는 공약 죄와 도전이 주께서 그어놓으신 선을 넘지 못할 것이다. 그가 정하지 ㄴ지점, 그 분의 정하신 때를 초과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 분이 미리 정하신 구속의 준비의 일정한 개관 그 분의 약속한 공약에 따라서 성취될 것이다. 이점에서 어긋남이 있지 않을 것이요, 있을 수 없다. 하나님과 그의 정부의 명예와 완전, 그리고 그 분이 선언하신 말씀의 명예가 걸려 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심이 확실한 것처럼 여우가 끝난다. 연장이 결말을 짓고 그 때 정해진 최후, 약속된 완성이 온다.
하나님 편에는 불신실함도 없고, 모순도 없고, 동요도 없으시고, 연약함도 없고, 실패함도 없다. 그것들 대신, 무한한 지혜와 이해와 자비와 공의와 애태우는 사랑과 확고한 의가 있다. 그 분은 당신의 보좌를 포기하지도 않으시고 주관하고 계신다. 그 분은 얼마 안 있어서 당신의 택하신 배, Zion 호를 영원의 항구로 인도하실 것이다.
* Zion호 여객선은 항구에 안착함
1888년의 총회가 가까워서 엘렌 화잇은 가장 감명 깊었던 한 영감적인 꿈은 꾸었다. 그것은 “강력한 배”(좋은 배 Zion호)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 배의 갑판 위에까지 휘몰아치는 매우 거친 바다를 항해하고 있었다. 그 배에 탄 어떤 이(그 꿈에 보니 실제로 D.M. Canright였다)가 그가 물 속에 바지고 그 빼는 침몰될까 두려워하여 그 배에서 떠나기를 원하였다.
그는 멀리서 보니 매우 안전하게 보이는 그가 본 다른 배 위에 기회를 봐서 갈아타기 원했다. 그러나 그 배의 선장이 말하기를 이 배는 그 항구로 항해한다. 이 배는 결코 침몰하지 않을 것이다(5T 571). 그는 좀 더 설명하기를 그 당시 그 환경에서 쓰는 언어로 그 다른 배의 제목들은 벌레 먹었고 기만적이라고 했다. 그것은 배 전체가 침수되어 침몰될 다른 적은 배였다. 그 교훈은 분명하고 깊다. 하나님이 택하신 배 Zion호(비록 종파와 싸우고 지연되었지만 어떤 괴롭히는 다른 농간 때문에)를 떠나는 자들은 결코 그 항구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비록 파도가 높고 물살이 세고 환경이 역경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배 Zion호는 그 배 위에 남아 있는 모든 자들과 함께 그 항구로 안전하게 항해할 것이다. 우리는 가짜와 진짜 사이를 식별하라는 권면을 받았다(p. 572). 그것은 오늘날 우리를 위하여 가장 중대한 중요한 권고의 기별이다. 겉으로 보기에 반대로 보일지라도 인류가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주님은 무한하시고 무효할 수 없고 전지하신 시간 조절을 하신다. 우리가 만일 영원의 회고적인 빛 가운데에서 본다면 모든 환경과 사건들의 빛 가운데에서 이 지연이 달리 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최선의 것을 행하신다. 그 분은 결코 잘못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주님의 지혜와 전능 성을 신뢰할 수 있다.
6. 지연에 대한 선인적인 감사
마지막으로 우리 주님이 오심이 지연되지 않았더라면 이 책을 읽는 우리 중 대부분이 헬 수 없는 구원받은 자들의 무리들 중에 포함되지 못했을 것이다(계 7:9). 즉 만 일 주께서 1844년 후 초기 수십 년 내에 오셨거나 1888년 이후 얼마 안 되어 혹은 1900년대의 33년 안인 50년 그것 내에 오셨더라면, 대부분의 오늘날 시대 사람들은 아직 탄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그 이전에는 책임감이나 결정을 할 수 있는 연령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개인적 인간적 각도에서만 볼 때 오래 지체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부드러운 멸망 때문에 하나님께 개인적으로 감사해야 할 이유가 있다. 오직 이 오래 지체함을 통해서만 오늘날 우리가 만일 충실하면 구속받은 남은 자들 중에 계수 됨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우리 중 아무도 그렇다면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지혜와 최고 통치권, 그 분의 무한한 통찰력과 예지 그리고 그 분의 틀림없는 판단과 결코 과오가 없는 시간 조절을 의문시하지 말자. 그 대신에 우리는 주님의 자비 우리를 위한 수년간의 은혜의 시간을 더 연장해 주신데 대해서 개인적으로 기뻐해야 한다. 전적인 위탁, 거리낌없는 복종, 아낌없는 봉사, 전화된 품성, 성령으로 채움과 능력을 받음은 오늘날의 최고의 필수 요건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위탁된 반응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오래 지연됨의 이 괴롭히는 문제 그리고 임박한 완성에 관하여 이 백성에게 보내신 영감 받은 예언의 신의 권면(1850년과 1915년 사이에 기록된)을 요약한 것이다. 그 지연은 예정된 승리에 절정이 될 것이며 그 일은 곧 올 것이다. 그 동안 우리는 임박함, 신뢰와 확신의 절박감을 결코 상실하지 말아야 한다.
제39장 다가오는 재림의 확실한 징조들
Ⅰ. 최근 수십 년은 성장하는 강조로 특정되었다
1. 새로운 각성이 태동하고 있다
금세기의 지체하는 수십 년 동안에 일어난 세계적인 상태에 큰 불리한 조건이 발전됨과 동시에 최근 수십 년간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한 성장하는 강조가 견실하게 점차 있었다. 이것은 여러 가지의 통로들을 통해서 이루어져 왔다. 때때로 정기 간행물들과 서적들, 성경 연구회, 안교 과정책, 라디오 방송, 텔레비전 방송, 신학대학원 교실에서 설교 단상 게시를 통해서 목회자 연구회와 신학 연구 틈 그리고 다른 많은 여러 방법, 개인 연구 등을 통해서 해왔다.
우리 지도자들이 그런 강조를 경려하고 자금을 보조해 준 사실은 교회 전체로서 특히 그 책임 있는 지도층에서 이때에 누가적인 강조를 위해서 깨어서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이 기별을 점점 더 장려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새로운 각성이 분명히 태동하고 있다. 이것은 기운을 북돋아 줄뿐 아니라 반복해서 들려 줄 필요가 있다. 여기에 전진의 증거가 있다.
2. 옹호자들의 대표적인 관록
이 문제를 제시해온 여러 통로들뿐만 아니라 이 큰 필수적인 문제를 선봉에 내세운 도구가 되어온 사람들의 관록과 품성을 주목하라. 그들은 변두리에 있는 변덕스러운 사람들 이일을 취미로 다룬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이 운동의 대표자들이요, 예리한 비전을 가진 사람들 균형진 강조와 솔직한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충분히 원만한 진리의 옹호자들이다. 이 말씀들은 그들이 이 시대에 촉진시켜야 된다고 느끼는 원고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표현은 받아들여지고 있다. 몇 개의 예를 관찰해 보자. 그러나 이 명단은 보시는 바와 같이 소수의 현저한 선구자들의 많은 음성으로 여겨지기 않았다. 목회 설교단에서 전도 걸교장에거 지방 방송망을 통해서 정기 간행물을 통해서 안식일 학교 과정을 통해서 각급의 교과 과정에서 많이 들리지는 않고 있다. 이 사람들은 그들의 강조를 제목으로 삼지는 않는다. 그들은 이 주제에 집중 조명하지는 않는다. 참으로 이런 강조는 공공 관계나 선전에서 번쩍이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충실한 증거를 하고 있다. 그들은 영향권 내에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기록된 바와 같이 시작에 불과하다. 그 조수는 확실히 일어나고 있다. 여기에 더욱 뚜렷한 징후들 중에 빛이 있다. 1949년에 A. W Spalding에서 시작되어 그의 계승자들이 이 주제를 여러 가지 형태로 교회 앞에 분명히 제시해 왔다.
Ⅱ. 1888년에 Spalding의 증언과 그 결과(1949)
먼저 역사가 A. W. Spalding의 “Captains of the Host:”(1949)를 참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우수한 논문 36장에 1888년 논쟁을 광범한 개관으로 다루었다(그 유익되는 의미가 더불어서). 그것은 고통을 겪은 배경에 관한 충실한 역사적인 이다. 그 다음에 1888년의 중대한 대결, 그 다음 나누인 반응, 그리고 마지막으로 용기를 주는 결과들에 관한 충실한 역사적 묘사이다. 그 모든 것 중에서 Spalding은 성령으로 채워진 운동, 그리고 그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의 승리의 확실성에 관한 엘렌 화잇이 지지한 빗나가지 않는 확실한 태도와 확신을 반사했다. Spalding은 엘렌 화잇이 미네아폴리스에서 반대한 죄는 미네아폴리스에서 빛을 거절한 자들의 이름 옆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E. G. White Letter to O. A. Olson, Sept. 1, 1892). 교회 전체나 1888년 이후의 지도층이 나쁘다고 기록된 것이 아니었다. 부인은 교회가 어둠 속에 빠졌다. 특히 교회가 바벨론이 되었다고 주장한 자도, 가르친 자들을 책망했다. 부인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점차적으로 맏아들인 것을 기뻐했다. 부인은 하나의 낙천주의자 재림 신도의 음성이었다. 부인은 항상 자신을 교회와 그 승리와 동일시했다. 부인은 하나의 낙천주의자 재림 신도요 현실주의자였다. 1893년에 화잇 부인은 의미 있는 말을 기록했다. “우리는 거의 30년간 전쟁 마당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때 우리 백성 중에 결정적인 변화가 생겼고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우리는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Letter 40, 1893).
*. Ather W. Spalding(1888-1953). 교육가, 저자, 편집자, 역사가, 1902년 이후에 R. M. Kilgor, Dr. J. H. Kellogg, E. A. Sutherland와 기타 여러 사람의 서기였다. E.M.C.의 교사, Bethel 고교 교장, The Watchman(1918-1921)의 편집인, Spalding이 대총회 가정회 창설, 회장, 여러 책 저자 “개척자들의 발자취”, “Captain of the Host”, SDA의 기원사 4권의 저자, 우리 교회 초기 역사와 1888년 경험의 가장 예리한 믿을만한 역사가였다. 몇 명만 할 수 있는 본 교회 역사를 산 역사로 만든 분.
기억해야 할 일은 Spalding은 역사가로서 비교할 수 없을 만한 이점이 있었다. 그는 1888년 직후에 그 비판적인 수십 년간의 주요한 인물들의 계속적인 서기 직을 맡았었다. 그는 그 동시대의 발전 중에 있었다. 기록을 강화시키고 빛을 비취 주는 그런 개인적 지식과 체험을 가진 역사가는 거의 드물다. 그것이 힘을 준다. 거의 예언적인 안목을 가지고 Spalding은 1949년에 그의 책을 출판한 직후에 1952년에 감명 깊은 Review지난에 기록했다. “왜 우리 사업의 역사에서 난관과 불화와 투쟁의 이 이야기를 최후의 승리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선군들이 고난과 투쟁을 통해서 이 이야기를 최후의 승리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선군들이 고난과 투쟁의 이 이야기를 최후의 승리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선군들이 고난과 투쟁을 통해서 전진했다는 것을 새로운 신자들과 젊은 신자들에게 알게 하는데 유익하기 때문이다. 미래에 그런 경험을 또한 경험할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 군병의 길은 강화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맏아들이고 아는 자의 영혼에는 평화가 있다. 그대 주위에 있는 군중으로부터가 아니다. 성령의 교통으로부터 그러므로 기쁨을 취하라. 하나님께서만 연단 받은 참된 동지들에 대항해서 섰다. 그도 역시 참된 낙관 주의자였다. 그의 음성은 비교적 최근에 역사적 배경에 짜여진 그 새로운 강조를 함에 있어서 길을 안내하는데 에 통렬한 음성이었다. 그는 이 취재 범위 중에 잘 조사해야 할 근거에서 많은 가치인ㅆ는 제의들과 가장 열렬한 후원을 하는 일에 놀랍게 관심을 표명했다. 그는 역사에 직접 참여한 자의 각도에서 그 영역을 알았다.
Ⅲ. 1952년의 성경 연구회의 기초적인 주제
1. Branson은 의의 주제를 강조했다
조금 후에 “SDA 성경 연구회”가 약 450명의 대표자들과 28명의 강사들로 1952년 9월 1월 13일 까지 Maryland, Tokoma, Park에 있는 Silga 교회에서 개최되었다. 그것은 당시 대총회장 W. H. Bramson에 의하여 시도되었고 완성되었다. 우리 신학대 학원장 D. E. Rebok가 편집한 “Our Film Foundation”(우리의 확고한 토대)라는 제목에 제출된 2권의 보고서가 그 회의의 주제가 되었다.
* William H. Bramson(1887-1961) 전도 목사, 행정가, 저자, Battle Creek과 임마누엘 선교 대학에서 수학하고 남도에서 목회와 전도목사 경험 후에 남 California대회장이 되고 그 다음 Cumberland가 대회장 계속 행정적 지위에 43년 계속, Africa 지회장(1920-1930) 중국 지회장(1939-1940), 드디어 대총회장(1950-1954), 그는 그의 여러 책이 입증하는 바와 같이 영성을 강조했다.
그 회의에서 토의한 다른 주제들 중에 모든 참된 설교의 중심인 그리스도와 같은 그런 중대한 주제들을 논했다(L. K. Dikinson). “속죄와 십자가”(T. G. Bunch), “여호와 우리의 빛”(W. H. Bramson), “성령의 늦은비”(L. K. Dikinson), 그리고 여러 다른 비슷한 주제들과 강사들
2. “의”, “진리의 사슬”
우리 신학대학원 원장. Denton E. Rebok는 그 성견 연구회의 일반서기로서 봉사했고, F. H. Yost와 R. A. Anderson과 L. E. Froom이 보조했다. Rebok가 서론에 기록하기를
“그 연구회들은 강사들이 개별적으로 준비되었고 공동 연구하지 않았으나 그들 서로를 연결시키는 진리의 사슬을 통해서 현저하게 연합되고 목적의 일치가 있었다. 그 사슬은 진짜 셋째 천사의 기별인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이다. 그리고 이 교리는 늦은 비의 부어주심으로 결과 되는 큰 왜침의 기별이 되어야한다”(Our Film Foundation vol Ⅱ. 1953, p. 5).
그러므로 그 주제는 연구회, 서적, 학교 강의실, 안교 과정, 설교잔, 그리고 물론 대량 전달 매체를 통해서 계속되고 있다. 이 연구회는 교리의 여러 면에 존재해왔던 불확실과 견해 차이들에서 조화와 일치를 보았다. 그것은 명백히 봉사를 했다.
Ⅳ. Clifford의 중대한 개론과 취재 범위(1958)
또 다른 비록 작으나 가치 있는 논문을 기록해야 한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라는 제목이며, 그 당시 호주 지회장 F. G. Clifford이 편집했는데 이 책은 그 지회가 1959년에 출판했다. 그것은 이 큰 주제에 관한 예언의 신의 현저한 증언을 수집한 것이다. 이 multum in parva는 한 특별한 지방의 문제를 해결하지 위하여 호주 지회 행정 위원회의 지도 하에서 준비되었다. 그 책의 12항 모두는 그 여러 양상과 적용에 있어서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특별히 효과적으로 기초된 것이다.
* Francis G. Clifford(1905- ) 전도 목사, 행정자. Stanforough Park and Spionkop대학 전도 목사. 남 아프리카 연합회와 Rhadesia (1923- 1939)에서 각 부 책임을 맡고 남 아프리카 연합회장이 되고(1914-1946) 다음 남아프리카 지회서기(1946-1954) 그 다음 호주 지회장(1954-1962), 그 외 Rightousness by Faith는(1959) 하나의 중대한 공헌이다.
그 취재 범위에 있어서 원만하고 균형 잡혀 있고 표현에 있어서 강력한 것으로서 그것은 그 주제를 촉진시키는 관심을 나타내는 성장기에 있는 서적의 일부를 형성했다. 그 도움이 되는 범위는 일견하여 그 내용을 알 수 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그 단순성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 육체적 본성과 반대된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 순종과 관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 늦은 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그리스도인 완성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초대 교회
남은 교회에서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새로운 강조에 뒤따른 교회의 발전
대종회에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제시에 반응
찬송 중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확장의 연대
이것은 이 큰 주제에 관한 도움이 될만한 압축된 취재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주요한 예언의 신의 말씀의 가치 있는 수집이요, 이 큰 지회의 지도 하에서 제시한 그 큰 필수 진리의 건전한 이해를 똑똑히 보여준다.
Ⅴ. Pease -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한 촉진하는 강조(1962)
또 하나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한 분명히 선장하는 관심과 현대적인 강조의 징후는 당시 앤드류스 대학교의 Dr. Nowal F. Pease 저 249쪽이 되는 “By Faith Alone”이다(1962). 그 당시 대총회장 R. R. Figulir의 식별력 있는 서언 후에 저자의 서론에서 이 주제에 관한 엘렌 화잇의 설복적인 저서들에 대하여 상당히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한 성장하는 강조를 강조한다(그 뒤에 편찬은 광범한 유포를 보증했다).
1. 초기에는 한 편만 강조했다
“의무와 예언과 하나님의 계명에 무겁게 강조함으로 교단 적으로 시작되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한 구원하는 진리들은 단지 허용되었을 뿐이라고 Pease는 말한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강조의 비교적인 결핍은 1888년의 미네아폴리스 총회에서 결정적으로 보충되기 시작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한 1920년대와 30년에 다시 강조하기 시작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성서적 근거를 연구한 후에 Paul에서 Wesley가지 그 교리의 역사를 묘사하고 Pease는 그 지리에 SDA 교회를 둔다. 그 당시 한 젊은 목사였던 Pease는 갈라진 주장에 의하여 교회는 1888년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교리를 거절했다고 대결시켰다. 이 혹평을 B.D. 학위를 위한 논문 연구 주제로 택하여 Pease는 유능하게 그의 연구를 발전시켜서 1962년에 “By Faith Alone”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2. 부인하지 않았고 단지 강조하지 않았다
Pease는 우리 교회에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초기의 가르침은 주로 James White와 엘렌 화잇을 통해서 되었고 대부분 그들의 저서에 제한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다른 이들이 부임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SDA 의 주요한 가르침으로 일반적으로 강조되지 않았다. pease는 어떤 이들이 미네아폴리스에서의 E. J. Waggoner의 제시를 혼합해서 받아들이고 지도함으로서 그런 강조를 통해서 재림교의 독특성을 상실할까봐 두려워했고 논제들이 중화되고 혼돈될 가능서이 있을까 두려워한 것을 열거한다. 그러나 이것과 더불어서 엘렌 화잇은 와그너의 묘사를 지지하고 분명히 확증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 후에 유감스럽게도 계속적인 논쟁이 뒤따랐으나 90년대의 부흥과 자백이 있었고 광범위하게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Pease는 정로의 계단(1892), 산상 보훈(1896), 시대의 소망(1898), 실물교훈(1900)등에서 이 주제로 가득한 우리에게 표 중이 되는 책들 화잇 부인의 그 문제에 관한 조직적이며 명백한 가르침에 강조를 둔다.
3. 1888년 이후 많은 강조들
Pease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의 1888년의 개별자들의 그 후의 탈선을 솔직하게 다루고 다른 이들이 계속적으로 강조한 것에 향한다. 그는 Bruno Steinweg's Masters' 논문 “1900년 이후의 SDA 교회에서 친의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교훈의 발전의 도움이 될만한 개론을 인용한다.(1948). 다음에 많은 다른 이들 중에서 G. A. Inoin, I. H. Evang, w. W. Prescott, L. H. Christian, F. M. Wilcox, Meade MacGuire, A. G. Daniells, O. Montgomery, C. B. Haynes, W. H. Bramson, C. H. Watson, A. W. Spalding, H. M. S. Richards 등 유명한 관련된 저서들이 있다. 그리고 지금은 SDA B.C. 중에 엘렌 화잇 주석과 “Questions on Doctrine”(1957) 같은 저서들이 있다. 그 다음 19221년부터 1959년까지 정기 안식일 학교 과정 중에서 12명의 다른 저자들이 쓴 31 과정책은 다소간 그 제목을 취급했다. 1938년부터 1959년까지 Pease는 직접 계속적으로 안식일 학교 교과 만드는 분이었는데 이 기간 동안에 22명의 저자들에 의하여 33기 과정책이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안식일 학교 과정을 통해서만 이라도 비록 그 독특한 제목으로 항상 기록되지는 않았을 지라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교리는 흘러넘쳤다. Pease는 SDA 신한개학원 교과 과정 중에서 그가 그 책을 쓸 당시(1962) 11 과목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강조하고 하나는 특히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교리라는 제목이 있고 다른 하나는 SDA 교회에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교리의 역사라는 과목이 있다는 사실을 인용하여 끝마쳤다. 이렇게 그 강조는 증가되었다.
4. Institutionalism(제도주의, 규정 주의, 관습 주의)에 대한 오늘날의 위험
Pease는 최근 수십 년간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한 출판된 교훈들의 큰 집합을 요약한다. 그는 이것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다른 교리들 안식일, 율법과 그와 비슷한 순전히 구조적인 교리적 주제들을 강조함으로 대부분 즐거웠었던 때인 1888년 이전의 수십 년과 대조해서 제시한다(p. 221). 최근 수십 년간에는 그 강조는 수정되고 균형 잡혀 왔다. Pease는 다음의 마음을 살피는 진지한 관찰로서 결론짓는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랑의 탁월함은 오늘날 교리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가 아니라 규정ㅈ의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 말미암아 도전받고 있다. 오늘날 교회는 조직, 의료 기관, 교육 기관 세계적 확장, 교회 건축, 전도회 등으로 지나치게 바쁘다. 이 모든 활동들은 좋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우리가 세운 건물의 문 밖에 그리스도께서 서 계실 가능성이 늘 마음에 떠올라 괴롭히고 있다(Pease, By Faith Alone p. 221, 222).
이 말은 사려 깊고 중대한 관찰이다. 이 주요한 논문 By Faith Alone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제시함에 있어서 이 시대의 정당하고 더 큰 위치에 조직적으로 배치한 것으로서 가치 있는 기고이다.
Ⅵ. Olson은 우기의 13년간을 취급함(1966)
1. E. G. White 권면에 유별난 접근
최근 대총회 직원 A. V. Olson은 1888년 즈음에 일어난 논쟁과 1901년의 대총회의 재조직에 관해서 수년간 열렬히 연구(그가 원래 부르던 대로 위의 13년 사후에 Through Crisis to Victory로 변경하여 출판한 연구)를 남겼다.
엘렌 화잇이 출판 위원의 의장으로서 그는 화잇의 출판 물 지하 저장실에 저장되어 있는 이 큰 주제에 관한 엘렌 화잇의 귀한 특별한 권면들에 남달리 접촉을 가졌다. 그는 그 광범한 내용에 의하여 깊이 감동받았다. 사실은 그가 치명적인 심장병으로 그의 저술을 갑자기 정지하게 되었을 때 더욱 확대하는 묘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2. 우리(SDA)의 동시의 조사 연구
그가 별세하기 거의 5년 전에 Olson과 본 저자는 우리 대총회 본부에서 인접한 사무실에 있었다. 같은 주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우리 둘은 각각 연구했는데 같은 근거를 가지고 아주 비슷한 연구를 했다. 그의 약 320 쪽의 책 Through Crisis to Victory 우리는 가끔 의견을 교환하고 발견한 것을 비교했다. 상호 일치하여 우리는 특별한 분야에서 어떤 필요 없는 노력의 중보를 제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는 상당히 오해되어왔던 어떤 논쟁적인 관점에 관하여 전문적으로 썼다. 이것들을 그는 고심하여 명백히 했고 합당한 전망을 첨가했다.
그러나 우리 두 사람의 책에서 함께 철저히 각각 연구한 부야 중에 하나는 우리 SDA 초기 수십 년간(1844년부터 1888년까지)의 무서 상에 나타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범위였다. 그러므로 나는 그의 기록 중에 발견한 것과 구두의 대화를 통해서 주의 깊이 대조해 본 결과 그것들은 나 자신의 연구한 결과와 본질적으로 조화되었다. 결과적으로 일반적인 방법에서 이 운명을 결정짓는 운도의 이 부분의 취재 범위는 우리 공동의 견해 차이를 반사하는 것이며 그러나 각각 따로 발견한 것들이다.
3. Olson의 제시의 범위
Olson의 매우 신뢰할 수 있는 제시의 범위는 23개로 구성되는 장들의 제목을 통해서 훑어봄으로 빨리 파악될 수 있다.
율법의 설교자들 /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 부흥과 호소 / 미네아 폴리스의 회기
반대하는 소리들 / 미네아폴리스 이후에 퍼진 부흥 / 목회 연구회들과 그 열매
George I. Butler는 빛으로 전진한다. / Uriah Smith는 반석에 떨어졌다.
아직 더 많은 고백들 / 베틀 크릭에서의 태도 / 1891년 회기에서 미네아폴리스 정신
이기주의와 세상 정책의 논쟁 / 교회 조직 한 은혜 / 세계적인 성장에 수반하는 문제들
재조직을 깨뜨리려는 기도 / 1901년의 재조직의 총회 / 1901년에 변화와 승리
출판 사업에서의 위기 / 하나님께서 불로 말씀하심 / 형제들을 참소하는 자들
1901년 이후에 반대의 소리가 남 /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4. 유일무이한 안전 보호의 이점을 갖춤
Movement of Destiny의 광범위한 취재 범위를 빛과 비교해 볼 때 더욱 제한된 올슨의 묘사는 연속적 시간적 사건들을 알기에 더욱 적합하다. 그는 그 특별한 기간(1888-1901년)에 관한 정확하고 믿을 만한 묘사를 했다. 다행스럽게 그의 책은 화잇 출판위원 직원(확실한 도움이라고 위험 방지책이 되는)의 고심한 대조와 편찬의 이점을 가졌다. 올슨의 책의 정확한 강조와 취재 범위를 알고 나는 고의적으로 그가 보충한 1888년과 1901년 사이의 같은 시대의 여러 가지 특색들을 기록하지 않았다. 독자들은 그런 시대의 특성들을 알기 위하여 Throughh Crisis to Victory를 연구해 보라고 권고하는 바이다. 이 의미에서 우리 두 책은 서로 보충적이다.
5. 엘렌 화잇의 설교들이 기록됨
Through Crisis to Victory의 또 다른 중요한 특색은 미네아폴리스 총회와 그전의 연구회에서의 엘렌 화잇의 9개의 공중 설교가 부록이 완전히 포함되어 있다. 이것들과 나는 Movement of Destiny의 13장에 요약해 놓았다. 독자들은 이 없어서는 안 될 처음 9개의 그 총회 권면들의 완전한 문장을 올슨의 책에서 찾아보기 바란다.
그리고 올슨도 이 더 충분한 논문의 범위와 강조에 관해서 준비과정에서와 그 원고를 열심히 읽고 권면해 주신 분들 중의 한 분으로서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부언하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구가 보아 준 부분들을 그는 진심으로 인정했다. 상당히 세밀한 것을 그와 더불어 잘 조사했던 전체적인 개론을 그가 적극 지지했다. 그 주요한 취재 범위와 그 결론들(이것들에 관해서 나는 자주 그와 더불어 상의했다)을 그는 분명히 의견이 일치되었다.
* Albert Victory Alson(1884-1963) 노련한 행정가 미네소타와 중부 캐나다에서 목회 봉사 후 Quebec, 다음 Qntaria 대회장 다음 동 캐나다 연합회장(1917-1920). 유럽에 가서 라틴 유니 온 합회장, 오랫동안 유럽 지회장(1929-1946), 그 다음 그는 대총회 총 부회장(1946-1958) 화잇 출판 위원 의장(1952-1963). Through Crisis to Victory는(1966)은 그가 죽을 때 기고가 끝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역사적인 관점에서 쓴 유일한 부분임.
Ⅶ. 영원한 진리들을 취소할 수 없이 선언했다
이상과 같은 대표적인 서적들과 더불어서 설교단과 강의실의 강의와 대회 사역자 수양회, 그리고 우리의 전파를 통한 대량 매체를 통해서 우리는 이제 구속의 근본 원리들, 구속의 준비들, 구속의 인격자들, 영원한 복음의 영원한 진리들의 참된 핵심을 세상 앞에 취소할 수 없이 선언했다.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최후의 탄원 중에 있는 중심으로서 그의 충만함 둥에 있는 그리스도 안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해서 강조하는 재림 교회를 인식하는 데게 근거가 있는 거침들이 더 이상 없다. 최후의 큰 마지막 용솟음치는 전진과 향상을 위한 기초 작업은 모두 완성되었고 무대는 모두 세워 놓았다. 이제 남은 것은 늦은 비와 큰 외침 중에서 성령의 가능케 하는 준비들과 능력 아래에서 그 위대한 사명의 완수를 위하여 하나님의 충분한 준비 속으로 당신의 백성이 들어가는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때에 우리가 살고 있는가! 오늘날 지상에서 하나님의 최후의 사업의 한 부분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특권인가! 그것은 과거의 모든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대표자들의 특권보다도 훨씬 능가하는 영예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굴복하고 우리 자신을 새롭게 헌신하라는 부르심이다. 주께서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과거 어느 때보다도 우리에게 채우시고 능력을 부여하사 사용해 주시도록
Ⅷ.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옴은 누적적인 예언의 강조의 결과이다
1. 끊임없이 흐르는 권면의 시냇물이 나타남
최근 수십 년간의 누적적인 강조에 관한 이 연구는 1889년부터 부인의 저술을 마칠 때까지 이 최고 주제에 관한 엘렌 화잇의 주요한 기별들의 요약 풀이가 당연히 포함된다. 사실상 최근의 그 문제의 부활과 강조가 생긴 것은 대부분이 권면 등의 재 연구 때문이었다. 나타난 연대에 따라서 어떤 wdy한 말씀들을 관찰해 보라.
1888년에 와그너가 새롭게 강조한 후에 부인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경험적인 의의 미는 물론 그리고 그 결핍이나 등한이 위험, 그 효력과 필요성 등은 강조하는 일을 결코 중지하지 않았다. 1889년에 엘렌 화잇은 부활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 뒤에 온 그 영광스러운 결과들에 관해서 기록했다(R.&H. 3, 5, 1889). 그리고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원도 되시고 의도 되시는가(생애를 정결케 하고 충만케 하는)에 관해서 기록했다. 부인이 또한 그 당시 100명 중 한 명도 그 문제에 관한 성경 진리를 이해하지(우리의 현세와 영원한 안녕에 그렇게 필요한) 못했다고 말하고 사단이 얼마나 그 의의 기별을 말소하려고 애쓰고 있는가를 지적한 것도 그 같은 논점에서 나왔다. 그 사단은 그 당시 그 운동에 대하여 분노했고 지금도 분명히 그렇다. 우리는 직접 간접으로 그의 계속적인 공격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다음 1890년에 화잇 부인이 기록하기를 우리 교회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그 문제에 관한 가르침의 부족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고 했다(GW 301). 한국 교회 각 교회가 영적으로 죽어가는 이유가 주로 여기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최고의 진리가 얼마나 모든 교회에 전해져야 할 것인가를 말씀했다(R&H 3, 18, 1890). 부인은 참된 믿음은 그것을 자기 것으로 삼는다(R&H 7, 1, 1890). 그것은 주께서 항상 제공하시는 준비이다. 부인이 1888년에 그리스도의 의의 계시는 참으로 큰 외침의 시작이었다고 말한 것은 또한 이 점에서였다(R&H Extra 12, 23, 1890).
2. 그리스도 안에서 구체화 되었다
우리의 기별을 구성한다. 1892년에 화잇 부인은 그리스도 의는 우리의 빈 마음에 반드시 채워져야 한다고 말했다(R&H 4, 5, 1892). 정결케 되는 것만은 충분치 못하다. 부인은 의를 이해하도록 하는 것은 십자가라고 말했고 그 의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다(R&H 5, 20, 1892; SC 66, 67). 부인은 많은 사람들이 제공된 의의 겉옷을 자기 것으로 삼지 않은 사실을 비탄한다(R&H 11, 29, 1892). 그리고 부인은 우리에게 Laodicean 기별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준비를 포함된다는 것을 상기시켰다(Letter 24. 9, 19, 1892). 그 후에 1896년에 엘렌 화잇은 그리스도의 의는 셋째 천사의 기별을 이룬다고 했고(TM 91, 92). 또한 이 의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체화 되었다고 말했다(MB 34). 이상이 그가 자주 사용하는 방정식이다. 이리하여 부인은 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준비에 관한 성장하는 이해를 계속해서 완성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은 우리의 유일한 악에 대한 방패이기 때문에(DA 324) 그리스도의 의의 내적 역사를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허용하지 말라는 권고를 받는다(MB 148). 부인의 계속적인 권면과 호소에 중단이 없었다.
3. 구속받은 자들의 표지이다
그 다음 1900년에 엘렌 화잇은 셋째 천사의 기별의 마지막 국면에 있어서 그 강렬한 강조의 절정을 이루는 계 18:1에 상징이었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비하여 다른 모든 관심사는 제 2 그것으로 삼으로라고 격려를 받았다(Col 223). 그 다음 1904에 부인은 그리스도의 의는 구속받은 자들의 표시이다라고 말한다(R&H 11, 23, 1904).
그리고 1908년에 부인은 오직 그리스도의 의로서 옷입은 자들만이 주의 임재 앞에서 견딜 수 있다고 확증한다(R&H 7, 9, 1908). 그 묘사는 완전하고 놀랍게 감명을 준다. 모든 면이 포함되어 있다. 금실과 같이 이 귀한 필수진리는 남은 교회의 사자로서 긴 몽사기간을 통한 부인의 저서에 섞여 짜여 있다. 이 말씀들은 점점 더 강조되었고 마지막 때까지 있을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록 보관되었다. 그리고 이것들은 열매가 없지 암ㅎ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이것을 보기 시작하고 있으며 점점 더욱 더 인식될 것이다.
4. 사람들이 힘 있게 전진하도록 예정됨
전진이란 인용구들은 인도하는 빛이다. 그 같은 긴요한 강조와 더불어서 그 주요한 제시를 지지하고 완성하는 수많은 잊을 수 없는 말씀들이 있다. 이 말씀들은 사람들이 힘차게 증거한다. 그리고 이 출판된 말씀들에 첨가해서 부인의 부단한 해설들, 경고들과 탄원들을 적응하고 강화하는 요령 있는 권고들로 너무 충만한 많은 굉장히 많은 개인적인 증언들이 있다. 참으로 우리는 만일 우리가 하늘에서 온 이 기별들에 유의하지 않는다면 변명할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1926년 이후에 A. G. Daniells의 Christ Our Righteousness의 출판에서부터 더욱더 많이 나타나 그들은 그들자신 안에 점점 더 변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 연구는 대조적인 배경과 하나님을 위하여 큰일을 성취한 유명한 지도자들을 이 위대한 진리가 어떻게 사로잡았는가에 관하여 5중의 증언으로서 끝을 잘 맺을 것이다. 이 5 중중의 음성들은 화음이 잘 맞는 멜로디를 이룬다. 이것은 40장에 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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