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 : 문과에 병과 7위로 급제
태종 이방원
고려 우왕 8년(1382년) 진사시에 2등으로 합격하고, 이듬해인 1383년(우왕 9년) 문과(대과) 병과 7위로 급제했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아들 중 유일하게 문과에 급제한 인물로, 당시 17세의 어린 나이였으며, 이는 조선의 왕 중 유일한 과거 급제 기록이기도 합니다.
급제 시기: 고려 우왕 8년(1382년) 진사시 합격, 1383년 문과 병과 7위로 급제.
급제 당시 : 17세
의미: 태조 이성계의 아들 중 유일한 문과 급제자이자, 조선의 왕 중 유일한 과거 급제자.
이숙번 : 조선 최초의 식년시 문과에 병과 7위로 급제
2차 왕자의 난은 1400년(정종 2년) 조선의 왕위 계승을 두고 이방원과 회안대군 이방간이 벌인 싸움으로, '방간의 난' 또는 '박포의 난'이라고도 불리며, 이방원의 승리로 끝나며 그의 왕위 계승 기반을 확고히 한 사건입니다.
숙청후 재기용
조사의의 난
조사의의 난(趙思義ㅡ亂)은 1402년 11월 안변부사 조사의가 동북면(함경도)에서 일으킨 반란을 일컫는다.
태종 이방원의 측근으로 이방원을 왕위에 올린 핵심 인물 중 한 명이다. 1차 왕자의 난에 참여하고 2차 왕자의 난을 진압했다는 점 때문에 사극에서 갑주를 입고 무인처럼 등장하는 경우가 많아서 무관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조선 최초의 문과 급제자로 엄연히 문관이다.
1373년 아버지 이경(李坰)과 어머니 영양 남씨 남휘주(南輝珠)의 딸 사이의 두 아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으로 이중번(李仲蕃)이 있었다.
이경과 결혼하기 전 윤공의 아내였던 남씨는 윤공이 죽은 후 두 아들 윤자량과 윤자당을 데리고 이경에게 재가하여 이숙번을 낳았는데 윤자량과 윤자당은 이숙번의 이부형이다.
성현의 수필집 <용재총화>에 따르면 이런 전설이 있다.
이숙번이 태어나기 전 이숙번의 이부형 윤자당이 7살 때 어머니 남씨를 따라 무당집에 가서 운명을 물어보았더니 무당은 윤자당이 귀한 상인데 반드시 동생의 힘 때문에 귀함을 얻을 것이라고 했다.
남씨가 과부의 아들이 어찌 동생을 얻을 수 있냐고 묻자 무당은 남씨가 재혼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고 정말로 남씨는 이경에게 재가하여 이숙번을 낳았다.
이숙번은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지략이 있었으며 기억력이 비상했다고 한다.
1393년(태조 2) 생원(生員)으로 조선 최초의 식년시 문과에 병과 7위로 급제했으며 민무구와 민무질 형제의 주선으로 맨 처음에 이방원을 만났을 때 자신을 돕겠냐는 이방원에게 "그런 일쯤은 손바닥 뒤집는 일보다 쉬운 일이다."라면서 패기있는 대답을 하여 이방원을 만족시켰다고 한다.
태종 이방원과 이숙번의 공통점은 왕자의 난 당시 이방원을 도와 권력을 획득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핵심 측근이자 공신이라는 점이며, 둘 다 조선 건국과 왕권 강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특히 이숙번은 태종의 절대적 신임을 받았지만 결국 자신의 과도한 권력욕과 전횡으로 몰락했다는 점에서 공통된 역사의 궤를 봅니다.
태종 이방원과 이숙번의 공통점 요약:
왕자의 난 주역: 두 사람 모두 1차, 2차 왕자의 난에서 이방원을 도와 정적들을 제거하고 왕권을 장악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태종의 최측근: 이숙번은 태종의 가장 믿음직한 심복 중 한 명으로, 사선(死線)을 함께 넘을 정도로 총애를 받았으며, 태종은 그를 아들처럼 여겼습니다.
권력의 획득: 태종은 왕자의 난을 통해 권력을 잡았고, 이숙번은 그 난의 공로로 막대한 권력과 부를 얻었습니다.
권력의 오남용과 몰락: 이방원(태종)이 왕위에 올라 왕권 강화를 위해 공신들을 숙청했듯이, 이숙번 또한 자신의 공을 믿고 오만해져 전횡을 일삼다가 결국 태종의 손에 숙청당하는 비극적 결말을 맞았습니다.
결론적으로, 태종과 이숙번은 같은 목표(권력)를 위해 손잡고 함께 혁명을 이루었으나, 결국 권력의 속성과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다른 운명(왕이 됨 vs. 숙청당함)을 맞은 뗄 수 없는 관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