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편
위대한 스승
삶과 죽음은 자연의 변화일 뿐이니, 살든 죽든 즐겁게 여겨라
2-1 삶과 죽음은 운명이니, 낮과 밤이 변함없이 갈마드는 것처럼 하늘의 이치여서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것이고 모든 사물의 참모습이다.
2 사람들은 오직 하늘을 아버지로 여기고 몸을 바쳐 사랑하는데, 하물며 하늘보다 더 뛰어난 것을 위해선 더욱 그러지 않겠는가! 사람들은 오직 임금이 자기보다 더 훌륭하다고 여겨 목숨까지 바치는데, 하물며 임금보다 더 참된 자를 위해선 더욱 그러지 않겠는가!1)
3 샘이 마르면 물고기들은 땅 위에 모여 서로 습기를 뿜어주고 서로 거품으로 적셔주지만, 물이 넘실대는 강이나 호수에 살아서 서로 도울 필요가 없는 것보다는 못하다. 요 임금을 찬양하고 걸왕을 비난하지만, 이는 둘을 다 잊고 천도와 하나가 되어 사는 것보다는 못하다.2)
4 대지는 모양을 주어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고, 삶을 주어 나를 수고롭게 하며, 늙음을 주어 나를 편안하게 하고, 죽음을 주어 나를 쉬게 한다. 그러므로 나의 삶을 좋게 여기는 것은 바로 나의 죽음을 좋게 여기기 위한 것이다.3)
5 사람들은 배를 산골짜기에 숨기거나 산을 연못 속에 숨기고서 배나 산이 안전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밤중에 힘 있는 자가 훔쳐 등에 지고 달아나면 어리석은 자는 알지 못한다.4)
6 큰 것과 작은 것은 숨겨두기에 각각 마땅한 곳이 있으나, 그래도 도둑이 훔쳐 달아날 것이 있다. 그러나 만약 천하를 천하에 숨겨둔다면 도둑이 훔쳐 달아날 것이 없으니, 이것이 영원한 사물의 위대한 참모습이다.5)
7 우리는 단지 사람의 모양을 입고 태어난 것만으로도 기뻐하는데, 만약 사람의 모양이 수없이 다른 모양으로 변화하여 처음부터 끝이 없다면, 어찌 그 즐거움을 이루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8 그러므로 성인은 사물이 달아날 수 없는 곳에서 자유롭게 노닐며 그 모든 것을 보존한다.
9 성인은 자신이 요절해도 좋게 여기고, 늙어도 좋게 여기며, 태어나도 좋게 여기고, 죽어도 좋게 여긴다. 사람들은 성인의 이런 점을 본받는데, 하물며 만물이 매여 있고 일체의 변화가 의지하는 도를 본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6)
주1) 여기서 “(하늘보다) 더 뛰어난 것[其卓]”은 ‘하늘의 도(자연의 이치)’ 또는 ‘운명’을, “(임금보다) 더 참된 자[其眞]”는 하늘의 도 또는 운명을 체득하여 생사에 초연하고 자신의 운명을 사랑할 줄 아는 ‘참사람[眞人]’을 뜻한다.
“생사 문제에 얽매어 있는 사람들은 생사의 문제라는 늪을 건너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하늘(신)을 아버지로 여기고 신명을 받들어 모신다. 그렇게 하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장자는 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참된 길은 하늘(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하늘의 도 또는 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적인 사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를 수용하며 더 나아가 사랑하고 즐겁게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니체의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애)’를 장자는 그보다 이미 2천 3백여 년 전에 말하고 있다.
또 사람이 살아가면서 모든 문제를 자기의 힘만으로 헤쳐 나갈 수 없음을 잘 아는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참된(능력 있는) 사람에게 의지해서 처리하고자 한다. 한 나라의 권력을 집중시켜 임금으로 삼고 임금의 명령에 따라 복잡한 사회문제를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그런 현상이다.
장자는 이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라는 것을 일단 인정하고, 그렇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 참으로 참된(능력 있는) 사람[眞人]에게 의지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이효걸)
주2) “걸왕의 폭정이 행해져서도 안 되지만 요 임금의 인의(仁義)조차도 필요 없는 세상, 인의를 잊어버리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바로 도가 편만한 세상이요, 각자가 자연의 흐름에 동화되어 살아가는 삶이요, 물고기가 물에서 헤엄치듯 자유롭고 자족하는 삶이라는 말이다.”(오강남)
주3) “대자연의 품 안에서 우리 자신을 본다면, 각자의 생명과 개별적 삶은 모두 자연의 한 구성요소이고 변화과정의 한 단면일 뿐이다. 그리고 자신을 구성하는 수많은 세포를 순간마다 죽이거나 혹은 새롭게 탄생시키면서 우리 각자가 생명을 유지하듯이, 자연은 자신을 구성하는 작은 세포인 개별 생명체의 죽음과 탄생을 통해 자신의 생명을 유지한다.
그런데 생명체 안의 한 세포가 이기심에 사로잡혀 자신의 성장만을 위하고 주변을 돌아보지 않을 때, 그 생명체가 암에 걸렸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자연 안의 한 존재인 인간이 자신만을 위하고 자연과 조화하지 않는다면, 자연은 암에 걸리고 자연의 흐름은 바뀐다.
또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한 생명체가 자신만이 지속되기를 원하는 이기심의 다른 모습이다.
그러한 이기심에서 벗어난다면, 우리는 죽음이 삶의 연장선 위에 있는 필연적 귀결이고 삶의 한 과정임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삶을 좋아하듯이 죽음도 좋아할 수 있을 것이다.”(이효걸)
주4) “‘배를 산골짜기에 숨기고 산을 연못 속에 숨긴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자연의 끊임없는 변화(힘 있는 자/도둑=죽음)를 거부하고 변치 않는 모습, 즉 생명을 영원히 지켜 가지려는 인간의 어리석은 행위에 대한 은유이다.
자연에서 변하지 않는 것을 고수하려는 어떤 행위도 어리석은 것인데, 사람들은 유독 자신의 생명에 대해서는 어처구니없는 집착을 한다. 사람들은 생명<배나 산으로 비유>을 연장하고 죽음을 피하기 위해 온갖 장생불사의 방법을 추구하거나 절대자 신에게 종교적으로 귀의하고<배를 산골짜기에 숨기고 산을 연못 속에 숨기는 불가능한 행위로 비유> 영생을 얻었다고 믿고 좋아한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헛된 행동인지를 ‘한밤중에 힘 있는 자(자연의 변화=죽음)가 잘 숨겨두었다고 여기고 있는 것(배/산=생명)을 훔쳐 달아날 수 있다.’는 말로 지적한다. 자연의 거침없는 변화의 힘이 생사의 문제에서 벗어났다고 여기는 자의 대응을 무력화시키고 그에게도 예외 없이 죽음의 그림자는 드리운다는 점을 일깨운다.
아무리 생사 문제를 초월했다고 떠들어도, 자연의 변화 과정인 죽음을 거역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이효걸)
주5) “‘천하를 천하에 숨겨둔다.’는 것은 우주 자체를 제 집으로 삼아 생사문제에 더 이상 얽매이지 말고 자연의 변화에 맡기라는 말이다.
곽상은 이것을 ‘사물과 더불어 융화되지 않음이 없고, 변화와 더불어 하나가 되지 않음이 없으므로, 나의 안과 밖의 경계가 없고 죽음과 삶의 경계도 없어서 천지와 한 몸이 되고 변화와 합일한다[與物無不冥, 與化無不一, 故無外無內, 無死無生, 體天地而合變化].’고 했다.”(이효걸)
주6) “여기선 생사의 문제 가운데 자연의 변화에 따르며 살아가는 즐거움, 즉 생에 중점을 두고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말했다. 인간의 삶은 천재일우의 우주적 사건으로서 무한한 가치를 갖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삶에 애착을 가지고 삶을 즐기려 한다.
그러나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고 변화의 한 과정에 불과하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의 삶은 자연 속에서 그 모습을 바꾸어 가며 무궁무진하게 지속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삶의 즐거움은 인간의 차원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에 그 즐거움의 다양함과 크기는 가늠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7절)
그러한 우주의 참모습을 터득한 성인은 자연의 끝없는 변화의 길을 따라 자유롭게 노닐 것이고, 나날이 새로워지는 변화의 흐름에 자신의 삶을 맡기고 만물의 온갖 변화와 더불어 끝없이 자신을 바꾸어 간다면, 죽음이 그의 삶을 훔칠 수 있겠는가?
성인은 살아있을 때 오히려 자연의 도가 없어졌다고 여기고, 죽었을 때는 오히려 자연의 도가 보존된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성인에게는 어느 때라도 자신의 변화에 따른 그 모든 즐거움이 보존되지 않는 경우가 없을 것이다.(8절)
그런 태도로 세상을 보는 성인은 인간적 차원의 삶을 초월했기 때문에 사람으로서 일찍 죽는 것도 좋게 여기고, 오래 사는 것도 좋게 여기며, 살아있는 것도 좋게 여기고, 죽는 것도 좋게 여긴다.
사람들이 성인을 본받으려는 것은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는 성인의 생사관이다. 그런데 이런한 성인의 생사관에 근거를 제공하는 자연의 변화, 곧 자연의 도를 어찌 본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9절)”(이효걸)
第六篇 大宗師
2-1 死生, 命也, 其有夜旦之常, 天也。 人之有所不得與, 皆物之情也。
2 彼特以天為父, 而身猶愛之, 而況其卓乎! 人特以有君為愈乎己, 而身猶死之, 而況其真乎!
3 泉涸, 魚相與處於陸, 相呴以溼, 相濡以沫, 不如相忘於江湖。 與其譽堯而非桀, 不如兩忘而化其道。
4 夫大塊載我以形, 勞我以生, 佚我以老, 息我以死。 故善吾生者, 乃所以善吾死也。
5 夫藏舟於壑, 藏山於澤, 謂之固矣。 然而夜半有力者負之而走, 昧者不知也。
6 藏大小有宜, 猶有所遯。 若夫藏天下於天下, 而不得所遯, 是恆物之大情也。
7 特犯人之形而猶喜之, 若人之形者, 萬化而未始有極也, 其為樂可勝計邪!
8 故聖人將遊於物之所不得遯而皆存。
9 善妖善老, 善始善終, 人猶效之, 況萬物之所係, 而一化之所待乎!
** 涸(학): 물이 마르다
** 呴(구): 숨을 내쉬다, 입김을 불다
** 溼(습): 습기, 물기(濕)
** 遯(둔): 달아나다
** 妖(요): 요사하다; 아리땁다; 요절하다, 어리다, 젊다(夭)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