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말씀을 받는 것'과 '말씀으로 받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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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에스라 성경연구원의 남대극입니다. 오늘도 성경 어휘 연구를 계속하겠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주요 어휘에 대하여 함께 공부하는데요, 오늘은 조금 긴 문구를 가지고 43번째 시간으로 공부하겠습니다. 제목은 "말씀을 받는 것과 말씀으로 받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입니다.
성경 한 구절에 보면 이 말씀이 나옵니다. "말씀을 받았다"라고 하고, 그 다음에 "말씀으로 받았다"라는 말이 나와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우리 함께 연구해 보겠습니다. 오늘의 주요 주안점은 '받는다'는 말이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입니다. 의외죠? 이 동사 두 개가 어떤 의미의 차이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성경 말씀은 데살로니가전서 2장 13절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서 역사하느니라."
우리말로는 둘 다 '받다'라는 동사로 번역되었습니다마는, 이 성경 본문의 헬라어 원문은 동사가 서로 다릅니다.
여기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즉, 하나님의 말씀을 '받다' 할 때는 그 동사가 '파랄람바노(Paralambano)'입니다. '람바노'라는 것은 이렇게 취한다는 뜻이고, '파라'는 그 옆이라는 뜻이 강합니다. 그래서 '파랄람바노'는 건네받다, 물려받다, 즉 사람이 주면 손으로 이렇게 물려받는 것을 뜻합니다. 제가 여기 성경을 가지고 왔는데요, 성경을 누가 이렇게 주면 손으로 받습니다. 이게 '파랄람바노'입니다.
그런데 이걸 손으로 받는다고 해서, 이 성경 말씀의 모든 내용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렇죠? 그래서 그 다음 구절에 보면 뭐라고 했습니까?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서 역사하느니라"라고 했는데, 왜 어떻게 역사하냐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 책을 건네받기는 받았는데,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 않고 그냥 역사책으로만 본다든지, 문학적으로 본다든지, 어떤 사람이 기록한 이야기로만 받으면 어때요? 진실로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라고 할 때 이 '받다'는 손으로 건네받는 것을 물론 포함하여 그걸 넘어섭니다. 여기 있는 뜻처럼 '받아들이다', '내용을 수용하다', '인정하다'라는 조금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가 바로 '데코마이(Dechomai)'입니다.
'파랄람바노'와 '데코마이' 둘 다 우리말로는 '받는 것'이지만, 그냥 손으로 물리적으로 받는 것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두 단어가 서로 다른 동사라는 사실을 유의하면 그 의미가 깊이 있게 다가옵니다.
제가 여기 신약성경을 포함한 고전 헬라 문헌에 나오는 단어들을 영어로 번역한 현대 사전을 가지고 왔습니다. 고대 언어나 중세 이전의 언어를 풀이한 사전은 보통 딕셔너리(Dictionary)라고 하지 않고 '렉시콘(Lexicon)'이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신약과 초기 기독교 문헌의 헬라어를 영어로 번역한 렉시콘, 즉 신약 헬라어 사전 중에서 가장 권위 있는 사전입니다.
이 사전에서 '데코마이'를 찾으면 221쪽에 이렇게 나옵니다. 다른 사람이 전해줬거나 제공한 어떤 것을 받다(Receive), 손에 취해 받다(Take something in hand), 어떤 사람을 용납하다, 혹은 장애물을 받아들여 극복하다 등의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 다섯 번째 뜻을 보면 '어떤 것을 용납함으로써 승인한다거나 확신하는 것으로 표시하다' 즉, 어떤 것을 받아서 내가 믿고 마음으로 수용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인정하다(Accept)', '수용하다'라는 뜻입니다.
아까 서두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어떤 사람이 성경을 줬을 때 손으로 건네받는 것은 '파랄람바노'이고, 그 내용을 수용하고 인정하며 진리로 받아들일 때는 주로 '데코마이'를 씁니다. 이 두 단어를 완전히 칼로 자르듯 구분하기는 힘들고 많은 부분 중복되어 있지만, 특별히 그 내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강조할 때는 '파랄람바노'보다는 '데코마이'를 쓰는 것이 단어들의 용례입니다.
자, 그래서 이 다섯 번째 뜻에 비추어 아까 데살로니가전서에 있는 말씀을 보면, '말씀을 받는 것'은 손으로 받는 것이고 '말씀으로 받는 것'은 그 내용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방금 읽었던 데살로니가전서 2장 13절을 그런 취지를 보태어 다시 읽으면 이렇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전하여 건네받았을 때)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함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데살로니가에 있는 교인들은 바울이 전도했을 때 그 설교를 귀로만 듣지 아니하고 마음으로, 진리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다른 경우도 한번 보십시다. 사도행전 7장 38절에 "시내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하며 스데반이 설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에 나오는 '받아'가 바로 '데코마이'입니다. 살아있는 말씀을 그냥 건네만 받은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여서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는 말씀입니다.
또 사도행전 8장 14절에 가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라고 합니다. 여기서 '받았다'는 말은 종이쪽지만 받았다는 게 아니라, 그 기별을 수용하고 믿기로 인정했다는 뜻입니다. 사도행전 11장 1절에도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다"라고 나옵니다. 가죽이나 두루마리로 된 성경만 건네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진짜 말씀으로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유대 성도들이 이방인들도 말씀을 수납하고 인정했다는 사실에 굉장히 기뻐했습니다.
또 사도행전 17장 11절,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말씀입니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개역한글판은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라고 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받았으니 그냥 책만 받았겠습니까? 그 안의 내용을 마음으로 받고 인정했다는 뜻입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말씀을 진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는 행동을 보여주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6절에도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라고 합니다. 여기도 그냥 물건을 건네받은 게 아니라, 말씀을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기음(기별)을 인정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이상의 사도행전과 데살로니가전서 구절 모두에서 '받다'라는 동사는 헬라어로 '데코마이', 즉 받아들이고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영어로 표현하면 단순히 '리시브(Receive)'하는 것이 아니라 '억셉트(Accept)'하는 것입니다. 리시브는 물리적으로 받는 뉘앙스가 강하고, 억셉트는 그 내용을 수용하는 차이입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구약에는 헬라어가 쓰이지 않았지만, 이와 같은 뜻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동사들이 있습니다. 신명기 33장 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모든 성도가 그의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 아래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도다"라고 합니다. 이 '받는도다'가 히브리어로는 '나사(Nasa)'입니다. '나사'라는 말은 들어 올린다(Take up) 혹은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이 받아들임 역시 그냥 손으로만 받는 게 아니라 내 것으로 용납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레미야 9장 20절에 보면 "부녀들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너희 귀에 그 입의 말씀을 받으라"고 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마음으로 용납하고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백성들에게 애곡하며 슬퍼하라고 호소한 선지자의 말씀이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처럼 단순히 리시브하는 것과 억셉트하는 것의 의미 차이를 아시겠지요.
우리가 전도할 때 전도지를 건네주는 것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 길 가다가도 이렇게 주면 되잖아요. 그러나 그 전도지를 읽고 그 안에 써 있는 기별을 받아들이게(억셉트하게)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흔히 말하기를 "우리는 전도만 하면 되고 그 결과는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라고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 생각 없이 막 떠맡기듯 주고만 가버리면 그것은 무책임한 전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찌하든지 그가 그것을 읽고 보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전도지를 받아들고(리시브), 그것을 읽어서 진리를 수용(억셉트)하게 하지 않으면 우리의 전도 활동은 온전한 결실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전도를 하되 결실이 있도록 해야 하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손이나 귀로만 받지 않고 마음속에 받아들이도록 모든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제가 한번은 학생들과 함께 전도지를 분급하러 장충단 체육관 앞에 갔습니다. 그날 한 두 시간 동안 전도지를 많이 살포했습니다. 이야기할 시간도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살포'였습니다. 그런데 맞은편에서 한 고등학생이 가방을 들고 입에는 껌을 씹으며 오고 있었습니다. '저 학생에게도 전도지가 필요하겠다' 싶어서 "학생, 이것 좀 가져가세요" 하고 전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갈 길만 가며 받아 가지 않는 것입니다. "학생, 좀 받아 가세요" 해도 그냥 지나치길래, 제가 그 앞을 딱 가로막았습니다. "학생, 나는 교사인데 자네 학교 선생은 아니지만, 여기서 이렇게 정성스럽게 전해주려고 하니 받기조차 안 하면 어떡하나. 받아 가지 오게."
그랬더니 한 손에 가방을 들고 껌을 씹으면서 마지못해 받아 들고 힐끗 보며 가더군요. 그 학생에게는 그 순간 별로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전도할 때 항상 그렇게 가볍게 전해서는 안 됩니다. 가을 낙엽처럼 기도와 함께 전해야 하고, 그에게 아주 주의를 기울여서 어떤 방식으로든 읽을 수 있도록 전해야 합니다. 전도지 종이만 받게 하지 않고 그 내용을 받아들이게(데코마이 하게) 하도록 최선을 다하고 기도하는 것, 그것이 전도지를 나누는 우리 모든 분급자들의 책임이자 특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늘 데살로니가전서에 있는 말씀을 통해, 단순히 말씀을 물리적으로 받는 것과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억셉트하는) 것의 차이를 말씀드렸습니다. 다음에 또 다른 어휘를 가지고 여러분과 함께 공부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핵심 요약 정리
두 가지 '받다'의 개념 차이 (헬라어 원문 비교)
파랄람바노(Paralambano):물건이나 책을 손으로 건네받다, 물리적으로 '물려받다'라는 의미 (영어의 Receive에 해당).
데코마이(Dechomai):전해진 내용이나 기별을 마음으로 용납하다, '수용하고 인정하다'라는 의미 (영어의 Accept에 해당).
성경 본문 적용 (데살로니가전서 2장 13절)
성도들이 바울에게 복음을 전해 들은 사건은 '파랄람바노'(말씀을 손과 귀로 건네받음)에 해당하며, 그 말씀을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수용한 사건은 '데코마이'(말씀으로 받아들임)에 해당함.
말씀이 성도 안에서 실제로 역사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건네받는 것을 넘어, '데코마이'의 태도로 마음 깊이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함.
구약성경의 용례 (히브리어)
히브리어 동사 '나사(Nasa)'역시 단순히 손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들어 올려 내 것으로 삼고 '용납하는 받아들임'의 의미로 사용됨 (예: 신명기 33장 3절, 예레미야 9장 20절).
실천적 교훈 (전도자의 책임)
전도는 단순히 전도지라는 종이를 건네주는 행위(파랄람바노/Receive)에 그쳐서는 안 됨.
전도 대상자가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진리를 마음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도록(데코마이/Accept), 전도자는 정성과 기도를 다해 결실을 맺도록 노력해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