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14일 경기도 동두천에 있는 소요산을 등반했다.
일기 예보는 오후 13 ~ 15시에 비가 온다고 하는데 아침에는 구름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비교적 화창하게 맑은 날이어서, 예보가 빗나가기를 바라면서 산행을 시작한다. 평일이어서 많이 붐비지는 않았지만 입구에는 봄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등산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고, 오후에 비가 제법 많이 왔는데, 산에서 안개가 너무 끼어서 경관은 볼수 없었다. 의상대 바로 밑에서 사격훈련하는 총소리에 두려움 마져 느끼고, 가끔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해보지만 반응이 없는 사람은 혹시 땅굴에서 나온 사람인가하는 의심에 섬뜩하기도 하다. 비가 오는데 이렇게 산에 오는 사람들은 열정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인지, 아뭏든 길이 미끄러워 너무 위험하다. 하백운대에서 상백운대로 가는 길에 비가 오기 전에 서둘러 점심을 먹는데 비가 오기 시작했다. 길에서 약간 절벽을 올라 가서 자리 잡았고, 식사후 절벽을 내려오는데 미끄러 져서 무릎과 팔꿈치에 약간의 타박상을 입었으며, 우의와 바지가 조금 찢어졋다. 절벽에서 길까지 4 ~ 5 m 정도 인데 비가 와서 미끄럽다는 생각을 못했다. 미끄러지면서 순간 어떻게 되었는지 생각이 없고 정신이 들었을 때는 내가 길옆에 있는 참나무를 잡고 있었고 모자는 길아래 4 m정도 날아 가 있었다. 무릎이 너무 아파서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계속갈 수 있을 까 걱정했는데,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진정되니 통증이 가라앉아서 다시 산행을 진행해서 무사히 마첬다. 산행은 소요산 역에서 출발하여 소요산 입구, 원효굴, 자재암, 하백운대, 중백운대, 상백운대, 칼바위, 의상대, 공주봉, 구절터, 일주문, 소요산역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소요산 입구
소요산은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전설이 전해진다.
신라 29대 무열왕의 딸인 요석공주는 일찌기 홀로 된 몸으로 요석궁에 머물러 있었다. 이 때 30대의 원효스님이 "누가 자루없는 도끼를 나에게 빌려주겠는가? 나는 하늘은 떠 받칠 기둥을 찍으리라" 라는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무열왕은 이 노래를 듣고 "이 스님이 필경 귀부인을 얻어서 귀한 아들을 낳고자 하는 구나. 이 나라에 현인이 있으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하면서 요석공주와 짝을 이루게 하여 대유학자 설총을 낳았다. 이렇게 요석공주와 인연을 맺은후 원효는 파계승이 되어 이 곳 소요산 원효대에 머물면서 수행에 전념했으며, 요석공주는 설총을 대리고 이 곳에 와서 별궁을 지어서 살았다.
요석교
자재암 가는길 벗꽃
자재암 가는길
요석공주의 별궁지
자재암 일주문
자재암 경내도
원효폭포, 원효굴, 원효대(위쪽)
원효굴, 석가모니 주불을 모시고, 협시불은 문수보살(좌) 과 보현보살(우)로 추정된다. 좌우측에 사천왕상이 있는데, 보이는 것은 좌측에 다문천왕(북), 우측에 지국천왕(동) 상이 조금 보인다.
백팔계단, 108번뇌를 의미하는 것 같다. 108번뇌는 육관(耳, 目, 口, 鼻, 心, 體)의 좋고(好), 나쁨(惡), 평등(平等)의 3가지 인식작용을 하게 되는데(3*6=18), 여기에 탐(貪), 불탐(不貪)이 있고(18*2=36), 이 것이 과거, 현재, 미래의 3世(36*3=108)가 있으니 이 것을 백팔번뇌라 한다.
해탈문, 해탈이란 몸과 마음의 고뇌와 속박의 원인인 번뇌로 부터 벗어나는 것
원효대, 원효스님이 정진중에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머물며, 좌정하고 수도하던 곳
추담선사 부도탑,
추담선사는 1898년 생으로 3.1 만세 운동으로 옥고를 치른후 일본 대정대에서 수학했다. 설봉산 귀주사에서 수도했으며, 능인학원을 창설하고, 함흥에서 아동교육에 전념했다. 만해 한용운 선사와 민족운동을 전개하던중 충남 부여에서 투옥되었고 농촌 계몽 운동을 전개했고, 40세에 삼각산 약사사(현 봉국사) 화명선사로 부터 추담이란 법호를 받았고, 금산사, 법주사 주지 등을 역임했다. 1978년 81세로 소요산 자재암에서 입적했다.
자재암 전경, 신라 선덕여왕 14년(645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 원효대사께서 수도하던중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자재무애(自在無碍)의 수행을 쌓았다는 뜻에서 자재암이라 한다.
자재암 대웅전
청량폭포
독립암
나한전
원효샘
자측부터 나한대, 의상대, 공주봉
하백운대 가는길
하백운대
중백운대
중백운대
상백운대
칼바위, 칼날처럼 날카롭게 생긴 크고 작은 편마암들로 상백운대와 나한대 사이에 약 500m 이어진 구간
나한대, 나한이란 불교를 수행하여 해탈의 경지에 이른 수행자
의상대, 소요산 정상(587 m)
매월당 김시습이 자주 거닐었던 산이라해서 소요산이하고 하며, 하백운대, 중백운대, 상백운대, 나한대, 의상대, 공주봉등 여섯개의 봉우리가 말발굽 모양의 능선을 이루고 있다.
의상대,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원효대사의 수행 동반자인 의상대사를 기리며, 소요산 최고봉을 의상대라 명명했다.
공주봉, 요석공주의 남편(원효스님)에 대한 애끊는 사랑을 기려 붙여진 명칭이다.
공주봉
공주봉
전망대
구절터로 표기 되어 있는데 절터로 인식하기에는 쉽지 않다. 다만 뒤쪽에 의상대를 등지고 있어서 소요산의 기를 받을 수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소요산 입구에 있는 동굴인데, 특이한 문자가 있어서 올려 본다. 무슨 암호 같기도 하고, 굴 입구에는 떠벌이, 참기름, 말죽, 딸기, 용공, ELECTDIC 72,2,23 이런 문자도 있다. 요즘 같은 뒤숭숭한 세상에....
첫댓글 조카님은 외롭게 이 사이트를 지키고 계시는군요.
크게 다치지 않으셨나요. 참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이용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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