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니 나야 대령 64년 전 고귀한 죽음 한국과 인도 그리고 수성구와의 인연
때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7월 국제연합한국위원단 인도 대표로 파견돼 1950년 8월 12일 왜관지구 전선을 둘러보던 우니나야(Unni Nayar) 대령은 뜻하지 않은 지뢰폭발사고로 순직하게 됩니다. 전쟁 중인지라 본국인 인도로 송환이 어려웠으며 8월 13일 수성구 범어동 주일에서 나야대령의 유해는 경건하게 화장되었습니다. 1950년 12월 7일에는 그를 기리기 위해 당시 조재천 경상북도 지사가 기념비를 건립하였습니다.
미망인 비말라 나야 여사의 순애보- 영혼이라도 함께 있게 해주세요! 평생토록 남편을 그리워하며 살아온 내 인생, 영혼만이라도 남편과 함께 해주세요."라는 유언을 남긴 비말라 나야여사 2012년 8월 24일 장대비가 내리는 가운데 수성구청을 비롯해 수성구 의회 의장유가족과 지역주민들이 참석하여 모두 경건한 마음으로 영현 안장 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짧은 신혼생활을 끝으로 머나먼 이국땅에서 숨진 남편을 그리워하며 한평생 순애보를 가슴속에 간직하며 살다 세상을 떠난 비말라 나야여사 그 사랑은 우리 모두 잊지 않고 기억해야할 숭고한 사랑입니다. 1967년 인도에서 나야대령의 미망인 비말라나야 여사가 남편의 넋을 기리기위해 처음 한국을 방문하게 되면서 수성구와의 인연은 새롭게 시작되었습니다. 나야 여사는 그로부터 19년 뒤인 1989년 5월 주한 인도대사와 함께 이곳을 찾아와 세상을 떠나 나야대령의 넋을 기리고 애틋한 마음을 새기다 돌아갔습니다. 미망인 나야여사의 고귀한 사랑에 감복한 수성구청은 1996년 이르러 나야대령 기념비 주변을 새롭게 단장하여 해마다 현충일 마다 참배하고 있습니다. 또한 2003년 9월 국가 보훈처는 나야대령기념비를 국가 현충시설로 지정하였으며 2011년에는 나야대령의 조카사위인 비제이남비아UN사무총장 비서실장이UN 가입 2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 부인과 함께 나야 대령 기념비를 참배하였습니다. 일찍이 순직한 남편을 기리는 미망인의 마음은 가족들에게로 이어졌으며 한국을 찾는 인도인들의 방문 코스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딸 파바시 모한 여사의 편지 - 순직 외국인에 보여준 따뜻한 사랑 감사합니다.
애틋한 마음과 사랑은 대를 이어 유전자처럼 영혼에 아로 새겨져 전해지는가. 봅니다.
자신은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 나야 대령을 그리워하며 평생을 살다 결국 남편 곁에서 묻히고 싶다는 간절한 유언을 남긴 엄마, 그 엄마를 보며 자란 딸 파바시 모한 여사의 가슴속에도 사랑이 큰 나무가 되어 자라고 있었습니다. 2012년 12월 31일 수성구청으로 배달된 국제 우편 채권에는 미화 천 달러가 동봉되어 있었습니다. 함께 들어있는 편지에는 지난 8월 24일 억수같이 쏟아지는 장대비속에서도 100여명이 함께 참석해 고 나야 내령의 미망인 비말라나야여사의 영현 안장식을 너무나 소중하게 치러준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가슴 절절하게 쓰여 있었습니다. 아버님 곁에 묻히고 싶다는 어머님의 유언을 들었을 때 어떠하셨는지요. 저는 사실 어머님께서 한국을 방문하시고 그렇게 유언을 남기셨을 때 그동안 내가 어머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또 너무 일찍 홀로 돼 평생을 살아오신 어머님의 삶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꼭 어머니를 아버지와 함께 영원히 함께할 수 있도록 그 뜻을 받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현안장 식을 위해 범어공원을 찾았을 때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그날 장대비가 쏟아졌지요. 그렇게 비가 오는데도 많은 시민이 함께 참석해주신 정성과 환대에 정말 감동하였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더 행복하게 이곳에서 함께 하실 있겠구나 하는 마음도 절로 들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서도 그 고마움이 도저히 잊히지 않아 그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고 감사한 마음을 또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이진훈,수성구청장 인사
김숙자,수성구의회의장 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