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 장 욥의 회개와 축복
내 용 요 약
제 42장은 욥기서의 결론입니다.
욥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미천한 한계를 깨닫고 참회합니다.
급기야 욥은 친구들의 허물을 용서하며 중보기도를 드리고, 욥은 이전보다 갑절의 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늙어 나이가 차서 죽을 때까지 그 복을 누리며 사는 해피 앤딩입니다.
생각할 점
우리는 여기서 고난 뒤의 갑절의 복이 주어지기 때문에 현재의 고난을 잘 참고 견디자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잠간이요 미래의 복은 영원하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욥이 친구들의 허물을 용서한 뒤로 갑절의 복이 받았기에 용서의 복을 누리자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적용은 못내 아쉬움이 많습니다.
아니 오늘 우리의 적용은 그렇다치고 그 극심한 고난과 환난을 통과한 욥이 이런 교훈만을 깨달았다고 한다면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 갑절의 복을 받았다고 그 자식을 잃은 아픔과 상처가 잊혀질까?
욥은 말로 형용하기 힘겨운 고난의 인생을 걸어오면서 깊이 깨달은 것을 고백합니다.
2~4절에는 자신의 무지함으로 친구들과 논박했던 것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었음을 자책합니다.
5절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지금까지는 종교적 전통이나 조상들의 가르침 등의 외적인 요인으로써만 주께 대한 것을 들어서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실재를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욥의 영안이 열리고, 하나님의 위대한 주권과 놀라운 섭리에 대하여 새삼 깨달아 알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결국은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내보이시더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르고 불러도, 그토록 부르짖어도 대답이 없으신 [하나님의 침묵]이 가장 고통스러웠습니다.
아무리 찾고 찾아도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도대체 살아계시기는 하는 건지 의심만 들게 하는 [숨어계신 하나님]...., [하나님의 부재]로 느껴질 때가 가장 미칠 것 같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침묵과 부재의 하나님이 어느 날, 어느 순간, 얘기치 않게 [내가 여기 있다!]라고 자신을 내보이셨다는 것입니다.
욥은 자기 앞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뵈옵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욥의 질문과 신음은 항복입니다. - '아, 하나님!' - 그리고 회개합니다. = 이것이 우리의 실존적인 모습입니다.
지금까지의 고통과 환난을 이기고 견디게 하는 유일한 힘과 소망은 고난 뒤에 찾아올 '고통 끝, 행복 시작' 아닙니다.
고난 끝에 늘 복이 찾아오는 것도 아닙니다.
수십 년의 고난을 헤치고 사는데도 여전히 욱여쌈을 당하는 신앙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여정 가운데 우리가 기대하고 바라는 복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욥처럼 갑절의 복이 내게는 없을 수도 있단 말입니다.
그러나 기억해야할 사실은 누구에게도 예외 없이 하나님께서는 간절하게 찾는 자에게 자신을 내 보이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여기 있다!" - 네가 간절히 만나고 싶어 했던 나 하나님이 네 앞에 있다. 너 참 고생했다. 수고 많았구나 ~
현재의 고난에 허덕거리고 신음할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눈으로 뵈옵는 것입니다.
고난의 현장과 현실의 실존은 정말 가슴을 후벼 파는 고통이 맞는데, 그럼에도 그 가운데 "내가 여기 있다!" 하시는 하나님을 눈으로 뵈옵는 것이 우리 신앙의 유일한 동력인 줄 믿습니다.
11절 각각 케쉬타 하나씩과 금 고리 하나씩을 주었더라 - '케시타'는 구약의 족장 시대에만 나타나는 돈의 무게 단위
욥과의 신뢰 관계를 예전처럼 다시 회복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16~17절 그 후에 욥이 백사십 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 대를 보았고 17 욥이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더라
욥의 결말의 상징은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죽음 = 끝이 아니라 소망으로 마무리 됨
약 5: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 욥이 받은 복은 인내의 결과로 주어진 상급입니다.
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신앙의 여정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이는 만큼 믿고, 따르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욥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도 함께 하심을 믿고,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는 주를 바라며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