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일시: 2015년 1월 31일 (토)
o 날씨: 맑음
o 산행경로: 황골탐방지원센터 - 입석대 - 황골삼거리 - 정상(비로봉) - 사다리병창 - 세렴폭보 - 구룡사 - 치악산 관리사무소
o 산행거리/ 소요시간: 12.3km / 5시간 30분
o 일행: 좋은사람들 산악회
o 치악산 산행정보: 치악산
오늘의 산행들머리 황골입구
입석대와 입석사 석탑
입석사 석탑은 조선 태종이 즉위한 후 스승이었던 운곡 원천석을 불렀으나 응하지 않자 그를 생각하고 세운 탑이라고 전한다. 원래 입석사 석탑은 청석탑이라고 하나, 현재의 탑은 입석사 주변에 있던 석탑 조각을 모아 놓은 것으로 화강암과 점판암이 섞혀 있다. 화강암으로 된 2점은 16개의 연꽃무늬를 조각해 놓았고, 다른 하나는 안상(탑 면석에 팔면의 오금곡선으로 안쪽을 파낸 모양)을 새겨 놓은 것으로 보아 청석탑의 일부분이라기 보다는 부처님을 모시던 자리인 불대좌 같은 느낌이 든다. 3장의 점판암으로 된 석재 중 1매는 연꽃무늬가 조각되어 있어 청석탑의 기단 갑석 (두껑으로 덮은 돌)으로 보인다. 다른 2매는 아무런 조각이 없고, 파손되어 잘 알아 볼 수 없지만, 탑의 지붕으로 보인다. 이 석탑의 원형을 알수는 없지만, 점판암의 재질로 보아, 고려시대 여러층으로 된 청석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연꽃이 새겨진 점판암 탑재는 인근의 보문사 청석탑과 그 모양이 똑 같다.
입석대
원주 흥양리 마애불좌상
이 마애불좌상은 암벽면에 돋을새김 한 것이다. 부처가 앉은 자리인 대좌의 오른쪽 밑에 '원우5년'의 문구가 새겨져 있어, 1090년(선종 7)에 만들어졌음을 알수 있다. 부조로 새겨진 얼굴은 풍만하며, 전체적으로 눈, 코, 입의 비례가 잘 맞는다. 머리가 약간 큰 듯하지만 전체적으로 양어깨, 양무릎으로 이르는 신체 비례가 안정감이 있다. 머리 가운데에는 상투구슬이 있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어깨까지 들어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고, 왼손은 배 앞부분에 놓고 손바닥을 위로 하고 있다. 앙쪽 어깨를 덮은 옷 사이를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내의자락, 형식적으로 표현된 옷 주름, 머리의 상투구슬, 둥글넚적한 얼굴 모습 등은 고려전기 불교 조각의 일반적인 특정이다. 고려시대 전기의 경우 정확한 제작 시기를 알 수 있는 불교 조각이 거의 없는 실정이기 때문에 고려시대 조각연구의 기준 작품으로 그 가치가 높다.
입석사
입석사에서 바라본 입석대
황골삼거리에서 바라본 정상 (비로봉)
눈꽃이 너무 아름답다. 사진으로 담을수도 없고, 말로는 더더욱 표현하기가 어렵다
정상으로 가는길에 바라본 원주시내 방향
눈덮인 산과 눈꽃이 환상적인 조합이다.
정상(비로봉)까지는 눈꽃의 향연이다.
비로봉 미륵불탑을 배경으로 한 컷.
비로봉에서 바라본 원통재(오른쪽 앞) 그 뒤로 곧은재와 향로봉 중간이 사명봉과 남대봉이다. 멀리 보이는 산이 감악산 인 듯...
비로봉 정상에서 한 컷.
치악산의 유래:옛날에는 치악산을 '단풍이 아름다워 적악산' 이라고 불렀는데, 전설에 의하면, 옛날 경상도 의성 땅의 한 나그네가 이곳을 지나다 꿩을 잡아먹으려는 구렁이를 발견하고 꿩을 구해주었고 이 꿩도 구렁이가 나그를 헤치려는 것을 구해주었다고 한다. (나그네를 휘감은 구렁이가 상원사에서 종이 세번 울리면 살려주겠다고 하였는데, 꿩 세마리가 머리로 종을 세번 치고 죽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구렁이가 꿩을 잡으려는 것을 살려주어 꿩' 들의 종소리에 유래되어 꿩을 의미하는 치(雉)자를 써서 치악산이라 이름을 바꿔 부르게 되었다. 지금도 남대봉 상원사에 은혜를 갚은 보은의 종이 복원되어 있다.
비로봉 미륵불탑
치악산 비로봉에 세워진 돌탑은 원주에서 제과점을 운영하던 용창중(일명 용진수)이라는 사람이 꿈에 비로봉 정상에 3년안에 3기이 돌탑을 쌓으라는 신의 계시가 있어 혼자서 탑을 쌓았던 것인데, 1962년 9월 처음 쌓기 시작하여 1964년 5층으로 된 돌탑을 모두 쌓았으나 1967년과 1972년에 알 수 없는 이유로 무너졌던 것을 용창중씨가 각각 그해에 복원하였다. 1994년 이후 두차례에 걸쳐 벼락을 맞아 무너진 것을 치악산국립공원사무소가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미륵불탑 중 남쪽의 탑은 '용왕탑', 중앙의 탑은 '산신탑', 그리고 북쪽의 탑을 '칠성탑' 이라고 한다.
비로봉에서 바라본 두산리 계곡 방향(?)
멀리 보이는 두개의 봉우리가 백덕산이다.
정상(비로봉)에서 구룡사로 내려가는 길이 가파르다. 사다리 병창길이라고 한다.
세렴폭포. 폭포라고 하기에는 좀 규모도 작고, 그마나 얼어붙어 별 볼 것이 없다.
구룡사 자연관찰로에서 바라본 정상 방향
구룡사 전경. 지난번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복원된(현재도 진행중) 모습이다.
구룡사의 유래: 치악산의 으뜸 봉우리인 비로봉에서 학곡리 쪽으로 약 6km 떨어져 있는 구룡사는 신라 문무왕때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는데, 전설에의하면 원래 대웅전 자리에는 연못이 있었고, 그곳에 아홉마리 용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의상은 연못 자리가 좋아 그곳에 절을 지으려고 용들과 도술시합을 하여 용들을 물리치고 절을 지었고, 아홉마리의 용이 살았다 하여 구룡사(九龍寺)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들어 사찰이 퇴락하게 되었는데, 어느날 한 노인이 절 입구의 거북바위 때문에 절으 기가 약해진 것이라 하여 혈을 끊었는데 이후 절이 더욱 쇠락해져 갔다. 절이 더이상 운영되기 여려워 폐사가 되려할 때에 이번에는 한 도승이 나타나 절이 더욱 쇠락해진 것은 혈맥을 끊었기 때문이라 하였다. 그때부터 거북바위를 살리는 뜻으로 절 이름을 구룡사(龜龍寺)로 바꾸었다고 한다.
청아한 풍경소리까지 사진에 담을수만 있다면....
구룡사에서 바라본 치악산 정상 방향
구룡 관리사무소 (오늘의 날머리)에서 바라본 치악산 정상 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