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기행 165번째로 찾은 한려수도의 심장이며
한국의 나폴리로 불리우는 통영의 미륵산
.
한려수도란 쪽빛바다에 보석처럼 박힌 360여 개의 섬이 있는 남해안을 일컫는다.
그 섬들을 품은 삼백리 바닷길은 경상남도 거제에서 시작하여 통영과 사천시,
남해군를 지나 전라남도 여수에까지 이른다. 1968년에 지정된 한려해상국립공원은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 한려수도의 중심에 자리잡은 작은 도시 통영은 수산업이 발달한 해상교통의 중심지였고, 한국의 나폴리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항구와 다도해의 많은 섬을 거느린 관문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통영은 사통팔달 고속도로가 연결되어 전국 각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관광도시로 변모하였다. 통영은 이순신 장군을 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곳이다. 이전의 지명인 충무는 ‘충무공(忠武公)’에서 따왔고, 현재 통영은 이순신이 최초 삼도수군통제사로 있었던 ‘통제영(統制營)’에서 따왔다.
통영은 임진왜란 당시 한산대첩의 현장이기도 하며 1604년 삼도수군통제영이 이곳으로 옮겨온 후 군사요충지로 발전하였다. 1603년 제6대 이경준 삼도수군통제사는 두룡포란 작은 포구에 터를 닦고 1605년 통제영 건물인 세병관(洗兵館)을 지으면서 통영의 역사가 시작됐다. 세병관의 정식명칭은 통영세병관이다.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설치했던 중심 건물로 궐패(闕牌)를 모시고 출전하는 군사들이 출사(出師) 의식을 행하던 곳이다. 앞면 9칸, 옆면 6칸의 단층 팔작지붕 건물로, 여수의 진남관(鎭南館)과 함께 남아있는 군사용 건물 가운데 면적이 넓은 건물 중 하나이다.
통영에 군사도시가 생기면서 살림을 도와주는 12공방도 함께 들어왔다. 여기서 나전칠기를 생산하여 400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기에 통영은 나전칠기의 본 고장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통제영은 이경준 통제사부터 208대 홍남주 통제사까지 300년 가까이 존재했다고 하니 역사의 도시임에 틀림없다.
통영의 이런 역사는 우리나라의 해상문화의 역사와도 그 맥을 같이 한다. 임진왜란 당시 그 유명한 한산대첩의 현장이기도 한 통영은 삼도의 중심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 결과 수군의 각종 병선과 세곡을 실어 나르던 조운선, 화물을 싣고 다니던 화물선과 장배들의 출입이 빈번한 도시이다.
아름다운 청정해역과 151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한려수도에 보석처럼 박혀 있다. 수많은 유무인도가 분포해 있는 통영은 각 섬마다 독특하고 다양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대표적인 통영의 섬 관광지는 소매물도와 욕지도 사량도 비진도 장사도이며, 다양한 해양관광 활동을 위한 개발 여건과 잠재력이 뛰어나다. 욕지도는 영화 촬영지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고구마로 유명한 섬이다.
오늘도 이 통영의 작은 섬인 미륵도의 미륵산 산행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
대전을 출발한지 약 3시간만에 도착한 용화사주차장!!
이곳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주차장에서 좌측의 용화사로 오르는 방법도 있지만
한려수도의 조망을 보면서 등산하려면 우측의 관음암 방향으로
산행의 들머리를 삼아야 한다.
산행을 시작한지 약 10여분(500m)만에 도착한 관음암!
관음암의 일주문격인 2층 문루에 '당래선원(當來禪院)'이라는 편액은
3차 설법을 하러 올 당래교주인 미륵불을 반기기 위해서라고 한다.
남쪽에 있는 미래사 라는 절도 '미륵부처님이 오실 절'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관음암을 지난 약 5분여 오르니 도솔암이 맞이한다.
이곳 도솔암 까지는 16분(721m) 소요되었다.
대웅전의 크기가 너무 작아서 인지 주변에 중창불사가 열심히
이루어 지고 있다.
1983년 7월 20일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62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집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의 말사 용화사의 부속암자로
943년(고려 태조 26) 도솔선사(兜率禪師)가 창건하였다. 창건 이후 초음(初音)과
자엄(慈嚴) 등의 고승들이 수도하며 후학을 가르쳐 한때 남방제일선원(南方第一禪院)으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중창과 중수의 역사는 전해지지 않으며 효봉선사(曉峰禪師)가 6·25전쟁 때 상좌 구산(九山)과 함께 이곳에 머물며 선종의 뿌리를 내렸다고 한다.
창건에 얽힌 설화가 전한다. 도솔선사는 17세에 출가하여 25세까지 지리산에서 수도하다가 이곳 미륵산으로 옮겨와 바위굴에서 호랑이 한 마리와 함께 여러 해를 지냈다. 어느날 호랑이 입 안에 꽂힌 비녀를 뽑아주었더니 처녀를 하나 업어와 선사에게 내려놓았다. 처녀는 전라도 보성군 배이방(裵吏房)의 딸로 혼인날을 받아놓고 목욕을 하다 호랑이에게 잡혀왔다고 하였다. 도솔이 처녀를 보성땅 부모에게 데려다 주자 처녀의 부모는 은혜에 감사하며 금 300냥을 주었다. 도솔은 그 돈으로 이 암자를 지었다고 한다. 지금도 도솔암 위쪽에 가면 호랑이와 함께 살았다는 바위굴이 있다.
이제 미륵산 정상을 향해 오른다.
지금까니는 아스팔트길을 걸어서 올라왔지만
지금부터 제대로 땅을 밟는다..
이곳 도솔암까지 올라오면 산행의 절반은 한 것이다.
이곳 미륵치에서 살짝 당황하기도 하는데..
우측으로 가면 미래사로 향햐는데 미륵산을 보려면 다시 올라와야 한다..
오히려 미륵불 전망대 방향으로 미륵산 정상에 올라
남해바다를 조망하고 미래사를 경유하여 용화사광장으로
원점 회귀가 가능하다.
이런 좋은 바위 계단도 오른다..
가까이 가니 그리 좁지는 않은데 그래도 올라가는 낙이 있는곳이다..
계단이 있다는 것은 거의 다 올라왔다는 것..
트랭글의 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한시간(1.9km)만에 정상에 올랐다.
경남 통영시 봉평동(鳳坪洞)에 있는 산높이 461m이다.
미륵도 중앙에 해발 우뚝 솟은 위풍 당당한 미륵산(彌勒山)은
용화산(龍華山)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 산에 고찰 용화사가 있어
그렇게 부른다고도 하고, 또 이 산은 미륵존불(彌勒尊佛)이
당래(當來)에 강림하실 용화회상(龍華會上)이라 해서
미륵산과 용화산을 함께 쓴다고도 한다.
산봉우리에 옛날 통제영(統制營)의 봉수대터가 있고, 산 아래 계곡에는
통영시 상수도의 제1수원지가 있다. 943년(고려 태조 26) 도솔선사(兜率禪師)가
창건한 도솔암, 1732년(조선 영조 8) 창건된 관음사(觀音寺),
42년(영조 18) 통제사 윤천빈(尹天賓)이 산 일대에 축성한 산성과 함께 창건한
용화사(龍華寺) 등이 있다. 정상에 오르면 한려수도일대가 장쾌히 조망된다.
한국의 산하 선정 100대명산 89좌
산림청 선정 100명산 87좌,
대한민국 300명산 134좌
도전 성공하였습니다.
오늘도 클린산행과 함께 했습니다.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섬들의 위치입니다.
저 멀리 대마도도 보이네요^^
위에 있는 사진과 노트9로 찍은 사진이 비슷하나요?
좀더 근접해서 찍어봤네요..
미륵산 정상에 있는 봉수대터 표지석 입니다.
미륵산 정상에 있는 이 표지석 있는곳이 봉수대터는 아닙니다.
이곳에서 미륵불 전망대 방향으로 가다가
봉수대터를 내려가자마자 좌측의 용화사로 하산하는 방법과
미래사까지 갔다가 용화사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이곳이 봉수대 터라고 합니다..
남해안 일대와 대마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통영성(統營城) 남쪽 4km 지점의 미륵산 정상 제2봉(450m)에 위치한다.
현존하는 봉수대는 산봉우리의 동남쪽 사면에 높이 5m 정도의 3단으로 된
석축 및 북쪽 사면에 약간의 석축 흔적이 남아 있으며,
정상에는 이 석축을 축대로 하여 만들어진 지름 7.5∼7.8m 정도의
반원형 터가 바다를 향해 돌출된 형태로 남아 있다.
봉수대 터에서 바라본 남해바다와 동원CC골프장 및 리조트의 모습입니다.
전망대에는 케이블카 마스코트?
케통이와 케순이라고 하네요^^
케이블카의 모습을 담아낸 조각작품 입니다..
이렇게 돌로 축조한 거북선도 보이고요..
하트도 돌로 축조했네요..
참으로 대단합니다...
정상에서 약 70m내려오다 보면 맞이하는 4차로에서
좌측으로 가면 용화사..
우측으로 가면 미래사 방향으로 갈 수있습니다..
정상에서 시간을 많이 지체해서 용화사 방향으로 바로 하산합니다.
정상에서 용화사로 하사는 하는 약 500m구간은
내리막길이 조금은 험하지만 지금부터는 이렇게
숲속길을 걷는 트레킹 수준입니다.
3시간(약 4.4km)만에 도착한 용화사 입니다.
효봉스님 석상입니다.
진신사리 7과를 봉안한
불사리사사자법륜탑(佛舍利四獅子法輪塔)
용화사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때(632~646)에 은점화상(恩霑和尙)이 초창하여 정수사(淨水寺)라고 불렸습니다. 그 뒤 고려 원종(元宗) 원년(1260)에 큰 비가 내려서 산사태가 나자 전체의 가람이 쓸려 무너지니 3년 뒤 자윤(自允), 성화(性和), 두 화상이 자리를 옮겨 짓고, 절 이름을 천택사(天澤寺)로 고쳐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조선 인조(仁祖) 6년(1628) 화재로 폐허가 된 것을 벽담선사(碧潭禪師)가 현재의 용화사 자리에 새로 중창하고 다시 용화사로 개칭하였습니다. 벽담 스님이 절 이름을 고친 데에는 그만한 사유가 있었습니다. 즉 화재로 말미암아 잿더미가 된 뒤 절을 중창하기 위해 미륵산 제일봉 아래에서 칠일칠야(七日七夜)를 미륵존불께 기도를 드렸는 바 회향날 밤에 한 신인(神人)이 나타나서 이르기를,"나는 당래교주미륵불(當來敎主彌勒佛)이니라. 이 산은 미래세에 용화회상(龍華會上)이 될 도량이니 여기에 가람을 짓고 용화사라 하면 만세(萬世)에 길이 유전(遺傳)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서몽(瑞夢)을 따라 새로 터를 잡아 절을 지었으니 그 이름이 용화사인 것입니다. 이렇게 이룩된 용화사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신도들의 귀의처로서 그 구실을 다하고 있습니다.
용화사는 보광전(普光殿), 용화전(龍華殿), 적묵당(寂默堂), 해월루(海月樓), 탐진당(探眞堂), 칠성전(七星殿), 명부전(冥府殿), 요사(寮舍) 2동 등 8동 건평 145평의 사우(寺宇)가 있으며, 이 중 보광전은 도지정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용화사 안에 있는 주요한 전당(殿堂)을 살펴보면 경내에는 불사리4사자법륜탑, 효봉스님 사리탑이 있습니다. 불사리4사자법륜탑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고대 아쇼카 양식의 원주 석탑으로 진신사리 7과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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