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회의 시가 있는 아침 241122)
그들 앞에서 어떤 아픈 소리를 내겠어 / 윤종희
나를 끌어들이지 못한 검은 음표들이
머릿속을 흔든다
능숙하게 꽃꽂이하는 창문 넘어
나뭇잎에서 흐르는 악기의 현으로 삼던 바람은
햇빛 결에 흔들리는 유리창의 노랫소리이다
잿빛 거리에서 갈 곳을 잃어 산속을 찾았다
발걸음을 내디디면서
순수한 나뭇잎의 흐름을 본다
순수하다 못해 푸르게 승화되어버린 숲
그곳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껍질이 벗겨져서 내 정강이뼈처럼 드러낸 나무뿌리들
어느 무거운 그림자가 드리운 발걸음에 닳았을까
밟고 밟혀서 하얗게 해탈해 나가는 아픔의 소리
거미줄이 미명의 바람에 흔들려
소리 없는 울음소리를 거두어들이고 있다
(시감상)
순수라는 말이 실종된 지 오래다. 전혀 다른 섞인 것이 없다는 말이며 동시에 사사로운 생각이나 욕심이 없다는 말이다. 시를 읽으며 나는 과연 순수한가 되물어본다. 갈수록 치유하는 숲의 면적이 줄어들고 있다. 내 마음속 순수의 면적이 줄어들고 있다. 어둠을 지키는 달의 면적이 줄어들고, 낮을 지키는 해의 면적이 줄어들고, 그러다 보면 남는 것은 무거운 그림자뿐. 거미줄이 거두고 있는 소리 없는 울음, 그 울음의 실체는 ‘나’라는 자연인이다. 나보다 당신이 더 아프다는 것을 생각하는 겨울이 되면 좋겠다. 아니, 나 보다 더 순수한 당신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이 계절은 그런 말을 하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가능한, 최대한 나를 낮추자. (글/ 김부회 시인, 문학평론가)
(윤종희 프로필)
2008《조선문학》 등단, 시집 『빛바랜 무채색 언어를 변주하다』,농촌문학상, 원주문학상, 강원문인협회 이사, 조선문학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