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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무나 읽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인생에서 깊은 쓴맛을 느껴본 사람들이나 공감할 수 있을 내용입니다
삶에서 저 바닥 끝까지 추락해서 심지어 언어로부터도 자유로운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주어가 목적어와 뒤바뀌기가 일상사이고
목적과 일관성 너머로 그리고 주체와 객체 사이에 구분 없이 흐릅니다
고통과 자존감 그리고 삶에 주인 따위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자신이 자존감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유약하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내가 고통 속에서 충분히 인내할 수 있고 수용할 준비가 되어서
고통 속에서도 일어설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이 책을 권합니다
할머니가 말했다 "너는 돌아올거야"
그 말을 작정하고 마음에 새긴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수용소로 가져갔다
그 말이 나와 동행하리라는 것을 몰랐다
그러나 그런 말은 자생력(自生力)이 있다
그 말은 내 안에서 내가 가져간 책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큰 힘을 발휘했다
'너는 돌아올거야'는 심장-삽의 공범이 되었고 배고픈 천사의 적수가 되었다
돌아왔으므로 나는 말할 수 있다
어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소소한 일들이 사소한 일들에 딸려왔다...
맨 엉덩이를 드러낸 우리를 아랫도리에서 나는 소리와 함께 외롭게 버려두었다
그 유대(감) 속에서 우리의 오장육부가 얼마나 초라하던지
아마도 이날 밤 급작스레 어른이 된 건 내가 아닌, 내 안의 '공포'였을 것이다
진정한 유대란 이런 식으로만 가능한지도 모른다...
점호 시간에는 부동자세로 서서 나를 잊는 연습을 했다
들숨과 날숨의 간격이 크지 않아야 했다
고개를 들지 않고 눈만 치켜 떴다
그리고 하늘을 보며 내 뼈를 걸어둘 만한 구름자락을 찾았다
나를 잊고 하늘의 옷걸이를 찾으면 그것이 나를 지탱해주었다
구름이 없는 날도 잦았다
그런 날 하늘은 탁트인 물처럼 푸르기만 했다
비가 눈을 찌르고 옷이 피부에 들러붙는 날도 잦았다
추위가 내장을 찌르는 날도 잦았다
그런 날은 하늘이 내 흰자위를 뒤집었고, 점호는 그걸 다시 뒤집었다
걸릴 곳이 없는 뼈들은 오로지 나한테만 걸렸다...
그는 주인 행세를 했고, 그래서인지 뭐든 거리낌 없고 사람을 얕잡아본다
그의 미소에는 함정이 있다
어쩔 수 없이 그의 미소에 응하면 웃음거리가 된다
그가 웃는 이유는 우리 이름 옆 빈 칸에 뭔가 새로운 것, 나쁜 것을 기입해서이다
그는 에나멜 핸드백처럼 반짝거리는 구두를 사뿐히 보도에 올려놓는다
텅빈 시간들이 그의 구두 밑창 아래로 떨어지는 것만 같다
그가 모르는 것은 없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가 잊어버린 것도 명령에 포함된다고...
어차피 명령의 내용은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경멸은 다르다
사람은 경멸에 익숙해진다
시간이 갈수록 명령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헛기침 소리, 기침 소리, 재채기 소리,
코푸는 소리, 가래를 뱉을 때처럼 침뱉는 소리로 들렸다
트루디 펠리칸이 말했다
러시아어는 감기 든 말이야...
물건들은 나의 밤 트렁크에 들어 있다
수용소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이후로 잠 못 드는 밤은 검은 가죽 트렁크다
트렁크는 내 이마 안쪽에 들어 있다
육십 년 동안 그 물건들을 기억하느라 잠들지 못하는 것인지 그 반대인지 나는 모르겠다
어차피 잠이 오지 않으니 물건들과 옥신각신하는 것인지
어찌 됐든 밤은 내 의지와 관계없이 검은 트렁크를 꾸린다
가끔은 수용소의 물건들이 차례로 하나씩 떠오르는 게 아니라 무더기로 나를 덮친다
그래서 나는 안다
물건들이 나를 찾아오는 건 내가 기억하려 해서가 아니라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임을...
시멘트 포대는 종이로 만든다
시멘트 포대는 시멘트를 가득 담기에는 너무 얇다
시멘트 포대는 혼자 나르든 둘이 나르든
포대 한가운데를 쥐든 귀퉁이를 쥐든 상관 없이 찢어진다
찢어진 포대로 시멘트를 아낄 수는 없다
시멘트를 아낄수록 시멘트는 죽어라 사람 진을 뺀다
시멘트는 거리의 먼지나 안개, 연기처럼 우리를 속인다
공중에 날아다니고 땅바닥을 기어다니고 피부에 달라붙는다
어디에나 있으면서 어디에서도 잡히지 않는다
아껴야 할 건 시멘트지만 주의해야 할 건 자기 자신이다
조심조심 날라도 시멘트는 자꾸만 줄어든다
시멘트를 지키는 자들은 어쩌자고 사람들을 의심할까
강제노역자들이 가진 거라곤 몸에 걸친 누비 외투 한 벌과
막사에 놓아둔 짐가방과 침대틀 뿐일것을
시멘트를 훔쳐서 뭘 한단 말인가
훔치는 게 아니라 집요하게 달라붙는 더러움을 묻혀가는 것이다
시멘트는 날아와서 살금살금 달라붙어서
토끼털처럼 잿빛이어서, 벨벳처럼 부드러워서
이유없이 스르르 사라져서 의심을 부추긴다...
시멘트는 아껴야 한다
시멘트는 잘 살펴야 한다
시멘트는 젖으면 안 된다
시멘트는 날아가면 안 된다
그러나 시멘트는 흩어지고 자기는 헤프면서 우리에게는 더할 수 없이 인색하다
우리는 시멘트가 원하는 대로 산다
시멘트는 절도범이다
우리가 시멘트를 훔친 게 아니라 시멘트가 우리를 훔쳐갔다
뿐만 아니라 시멘트는 적개심을 키운다
시멘트는 흩어지며 불신의 씨를 뿌린다
시멘트는 간교하다...
비가 초원을 몇 주 동안 잊어버려서
용해(溶解) 구덩이 주변의 진흙이 모피꽃처럼 바싹 마르면
쉬파리가 사람들에게 끈덕지게 달라붙는다
트루디 펠리칸이 말한다
쉬파리는 눈의 짠내와 입천장의 단내를 맡고 오는거야
약골일수록 눈물이 많고 침샘은 달아 (-_-;;;)
트루디 펠리칸은 수레 맨 뒤에 서야 했다
앞에서 수레를 끌기에는 너무 약했다...
그녀가 손수건을 내 손에 올려놓고는 가져도 좋다는 의미로
그대로 내 손을 감싸주었다
그녀가 내게 손수건을 선물했다
나는 그것으로 코를 풀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 일은 방문 판매라는 거래와, 나와 그녀와 손수건을 넘어서는 무엇이었다
그녀의 아들이 관련된 일이었다
거기 있는 사람은 나이고, 아들은 나처럼 집을 떠나 먼 곳(수용소)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거기 있는 사람이 나라는 게, 내가 그녀의 아들이 아니라는 게 고통스러웠다
그녀 역시 고통을 느꼈고, 어떻게든 거기서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지 않으면 아들에 대한 근심을 주체할 수 없을 테니까
나 역시 더는 견딜 수 없었다
두 사람이 되는것, 두 명의 강제추방자가 되는 것이 내게는 너무 버거웠다
그건 동그란 의자 위에 나란히 앉은 두 마리의 닭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나는 나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짐스러웠다...
빵을 바꾸기 직전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허둥대는 순간이 온다
그러고 나면 곧바로 의구심이 고개를 쳐든다
빵이 내 손을 떠나자마자 남의 손에 있는 빵이 더 커보인다
내가 받은 빵은 내 손에서 줄어든다
상대는 나보다 눈썰미가 있다
그가 이득을 보았다
다시 바꿔야 한다
하지만 상대도 마찬가지이다
그도 내가 이득을 보았다고 생각하고 빵을 다시 바꾸는 중이다
빵은 내 손에서 또다시 줄어든다
아침에는 빵 저울의 접시를, 저녁에는 빵과 상대의 눈을 더듬는다
빵을 바꾸려면 빵뿐만 아니라 얼굴도 제대로 골라야 한다
상대의 입이 쭉 찢어졌는지 잘 살펴본다
낫처럼 가늘고 긴 입이 제일이다
움푹 꺼진 볼에 배고픔의 털이 자랐는지도 살펴본다
하얀 털이 충분히 길고 촘촘한가
사람은 굶어 죽기 전에 얼굴에 토끼가 자란다
그래서 흰 토끼와 바꾼 빵을 볼빵이라고 부른다
아침에는 시간도 없지만 바꿀 것도 없다
막 자른 빵은 모두 똑같아 보인다
자른 빵은 저녁때까지 제각각 다른 모양으로 굳는다
건조의 광학(光學)에 따라 빵이 자신을 기만한 듯한 기분이 든다
빵을 바꾸지 않는 사람들도 이 기분을 안다
빵을 바꾸면 그런 기분은 점점 심해진다
착시는 또 다른 착시와 바꾼다
여전히 속은 것 같지만, 지친다
내 빵을 볼빵으로 바꾸는 일은 시작이 그랬듯 갑작스레 끝난다...
누구나 빵 바꾸기의 덫에 걸린다
그러나 아무도 경비원 카티의 볼빵을 자기 빵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이것도 빵 법정의 법에 속한다
우리는 수용소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시체를 치우는 법을 배웠다
사후경직이 시작되기 전에 죽은 이들의 옷을 벗긴다
얼어죽지 않으려면 그들의 옷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들이 아껴둔 빵을 먹는다
그들이 마지막 숨을 거두면 죽음은 우리에게는 횡재다
그러나 경비원 카티(정신박약자)는 자신이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고도 살아간다
우리는 그걸 알고 있고 그녀를 우리의 재산처럼 여긴다
서로에게 저지르는 나쁜 짓을 그녀에게 베푸는 선행으로 무마해보려는 것이다
그녀가 우리 틈에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저지를 수 없는 짓만 남겨두고 온갖 짓을 다 저지를 것이다
우리에게는 경비원 카티라는 인물보다 바로 이 점이 더 중요하다...
사흘 후면 크리스마스였다
크리스마스는 방에 초록색 전나무를 세우는 단어다
내가 가진 거라고는 트렁크에 든 찢어진 초록색 양모장갑뿐이었다...
배고픔은 떠난 적이 없는데도 다시 찾아온다
외로움도 그렇다...
배고픔의 단어는 모두 먹는 단어다
눈앞에 음식이 그려지고 입천장에 맛이 느껴진다
배고픔의 단어들 혹은 먹는 단어들은 환상을 먹여 키운다
말이 말을 먹으며 맛있어 한다
배는 부르지 않지만 적어도 음식 곁에 머문다
만성적으로 굶는 사람들은 저마다 선호하는 단어가 있다
드물게 쓰는 단어와 지속적으로 쓰는 단어가 있다
각자 제일 맛있어하는 단어가 따로 있다
배고픔의 단어들, 즉 먹는 단어들이 대화를 지배할 때도 우리는 혼자다
저마다 자기 단어들을 먹는다
함께 먹는 다른 사람들도 결국은 자기를 위해 먹는 것이다
배고픔에서 타인이 차지하는 자리는 없다
타인의 배고픔을 나눌 수는 없다
주식인 양배추 수프는 몸에서 살을, 머리에서 이성을 앗아가는 주범이었다
배고픔은 여름내 자라는 풀보다, 겨우내 쌓이는 눈보다 빨리 자랐다...
귀향과 수용소의 삶이 서로 반대말이었나
그렇다면 나는 그 두 가지 모두에 맞서고 싶었다
아마도 나는 그 순간부터 수용소의 삶, 아니 삶이라는 것이
희망에 의존하지 않게 할 작정이었다
매일매일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데도 그럴 수가 없었다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수록 그런 마음에 휘둘리지 않도록 애썼다
희망이 좌절될 때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귀향에 대한 희망은 놓을 수 없었지만 만약의 경우를 위해 나 자신에게 말했다
그들이 나를 이곳에 영원히 잡아두더라도 그 역시 내 삶이라고...
나는 늘 내가 무심한 편이라고 스스로 말한다
뭔가를 마음에 담아도 그것에 휘둘리지 않는다
잘 울지도 않는다
그러나 눈가가 젖은 사람들보다 강하지 않다
더 약하다
그들은 슬퍼한다
뼈와 가죽만 남으면 감정은 담대해진다
나는 차라리 겁쟁이이고 싶다
차이는 근소하지만 나는 내 힘을 울지 않기 위해 쓴다
어쩌다가 감정이 흔들릴 때는 상처를 향수(鄕愁) 잃은 메마른 이야기로 뒤바꾼다
시간이 흐르면서 단어의 냄새들은 치터 로머(꿈 해몽가)의 콩처럼 무뎌진다
(꿈 해몽을 위해서 콩을 던졌지만 생각보다 그 해몽이 시원찮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울지 않으면 괴물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이미 괴물이 된 게 아니라면
나를 그로부터 지켜주는 것은 대단한 무엇이 아니다
기껏 이 문장 정도이다
너는 돌아올거야...
그럴 수 있다면 내 향수는 그리움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나면 내 향수는 그저,
내가 언젠가 배불리 먹었던 곳에 대한 배고픔이 될 것이다...
불변하는 것들은 저 자신을 소모하지 않는다
세상과 영원히 똑같은 관계를 지속할 뿐이다
세상과 스텝(온대 초원지대)의 관계는 매복이고
세상과 달의 관계는 밝힘이며
들개는 도주, 풀은 흔들림이다
세상과 나의 관계는 먹는 것이다...
11월 초 투어 프리쿨리치가 나를 사무실로 불렀다
집에서 편지가 왔다고 했다
어머니가 보낸 적십자 우편 엽서가 수용소에 온 때는 11 월이었다
집에서 엽서를 보낸 때가 4 월이니 일곱달이 걸렸다
카드에 사진 한 장이 붙었다
사진 속에 아이가 있다
투어는 내 얼굴을, 나는 엽서를,
박음질한 사진 속의 아이는 내 얼굴을 본다
캐비닛 문에 붙은 스탈린은 우리 모두의 얼굴을 쳐다본다
로베르트 1947. 4.17. 출생... 그것 뿐이었다
손글씨가 가슴을 찌르는 것 같다
엽서에 쓰인 말은 단 한 줄이었고 나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없었다
한 줄 글 아래 흰 여백에조차도
나는 투어와 화주 한 잔, 또 한 잔을 마신다
뼈와 가죽의 시간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과한 양이다
화주에 속이 따끔거리고 눈물에 얼굴이 따끔거린다
얼마 만에 우는지 모르겠다
향수가 찾아오면 마른 눈으로 맞았다
향수가 주인 없이 떠돌게도 했다
눈이 수용소 담과 함께 차츰 멀어진다
그런데도 내가 걷고 있는 수용소 부지에는 눈이 목까지 차오른다
바람에는 날카로운 낫이 달렸다
나는 발이 없다
뺨으로 걷다가 곧 뺨도 사라진다
내가 가진 것은 박음질한 아이뿐이다
그는 나의 대리 형제다
내 생사를 모르는 부모님이 아이를 만들었다
어머니는 태어났다는 말을 출생이라고 줄여 썼듯, 죽었다는 말도 사망이라고 쓸것이다
어머니는 이미 그렇게 했다
어머니는 하얀 박음질 땀이 부끄럽지 않을까
내가 그 한 줄에서 무엇을 읽었는지 안다면
너는 거기서 죽어도 돼, 그게 내 입장이야
집에 입하나 준 셈치고...
나는 러시아인 마을에서 음식을 구걸하는 법을 배웠다
어머니에게 내 안부를 물어달라고 구걸하고 싶지는 않았다
남은 이 년 동안 답장을 보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지난 이 년 배고픈 천사에게 구걸을 배웠다
남은 이 년에는 거친 자존심을 배웠다
그것은 빵 앞에서 의연하게 버티는 것처럼 거친 무엇이었다
배고픈 천사는 나를 지독하게 괴롭혔다
배고픈 천사는 매일 어머니를 보여주었다
어머니가 내 삶을 외면하고 대리아이에게 밥을 먹이는 모습을
나는 사방에서 어머니를 바라본다
내가 보이지 않는다
한 줄 글 아래 흰 여백에서조차...
당신과 물리학,
거기에 사람도 사건도 자기만의 시공간을 가진다는 말이 있었다
그것이 자연법칙이다
세상 만물은 제 권리를 갖는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철사, 민콥스키 철사가 달려있다
(4차원 공간을 기하학적으로 묘사한 것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이다)
여기 앉은 내 머리 위에 민콥스키 철사가 달려있다
내가 움직이면 철사가 구부러지며 같이 움직인다
그러니 나는 혼자가 아니다
지하실 구석구석도 수용소의 모든 사람들도 그들만의 철사가 달려있다
철사는 다른 철사를 건드리지 않는다
철사로 이루어진 머리 위의 숲은 규칙이 철저한 공간이다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자기 철사와 호흡한다
실재 확률도 '당신과 물리학'에 나온 말이었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건 확실치 않은 일일 수도 있다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굳이 여기를 떠나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 몸은 어느 특정한 공간, 즉 지하실 안의 입자이자
동시에 민콥스키 철사를 통해 하나의 파동(波動)이 된다
나는 파(波)가 되어 여기 아닌 다른 곳에 있을 수 있고,
여기 있지 않은 누군가와도 나와 함께 여기 있을 수 있다
그 누군가를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적나라한 진실은,
법무사 파울 가스트가 배고픔을 어쩌지 못해
아내 하이드룬 가스트의 수프를 훔친 것처럼,
그 아내가 일어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죽은 것이고,
아내가 일어나지 못해 죽을 때까지
남편은 아내의 그릇에서 수프를 훔쳤다는 것이며,
그가 둥근 깃과 해진 토끼털 주머니가 달린 아내의 외투를 입고서
아내의 죽음을 책임질 수 없었듯이,
아내가 제 몸을 일으키지 못한 것이 그녀의 책임은 아니었으며,
우리의 여가수 로니 미히가 그 외투를 입긴 했지만
법무사의 아내가 죽어서 외투 한 벌이 남게 된 것이 그녀의 탓은 아니듯이,
아내가 죽음으로써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법무사를 추궁할 수 없듯이,
그가 아내의 빈자리를 로니 미히로 대신하려 한 것을 잘못이라고 할 수 없듯이,
로니 미히가 이불로 가리고 남자와 사랑을 나누고 싶었거나 외투를 갖고 싶었다고 해서
혹은 그 둘을 떼어 생각할 수 없었다고 해서 그녀를 나무랄 수 없듯이,
얼어붙듯 추운 것이 겨울의 책임이 아니듯이,
따뜻하게 몸을 데워주는 것이 외투의 책임이 아니듯이,
비록 외투 한 벌을 둘러싼 일이지만
원인과 결과라는 것이 이렇게 적나라한 진실임을
원인과 결과를 향해 따질 수 없는 것처럼,
하루하루가 원인과 결과의 굴레가 되어가는 것이 세월 탓은 아니었다
사건의 경과가 그러했다
누구도 책임이 없었기에 아무도 책임을 질 수 없었다...
나를 제 맘대로 다루는 단어들이 있다
그 단어들은 나와도 다르고 그들과도 다르게 사고한다
그 단어들이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유는,
어떤 처음들은 내가 원치 않아도 다음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향수(鄕愁), 마치 그것이 필요하다는 듯이...
나를 목표로 하는 단어들이 있다
예를 들어 복귀,
복귀라는 단어는 원래 의미는 제거된 채로
마치 수용소로의 복귀를 위해서만 만들어진 것 같다
내게 복귀가 실현되고 나면 그 말은 쓸모가 없어진다
회상이란 단어도 마찬가지고
손상이란 말도 내가 복귀하고 나면 쓸모가 없다
경험이란 말도 마찬가지다
이 쓸모없는 단어들을 접하면 나는 원래보다 멍청한 척해야 했다
그러나 그 단어들은 만날 때마다 이전보다 강해졌다...
철수세미가 지나간 침대틀과 널빤지는 뭉개진 빈대의 적갈색 피로 물든다
우리는 빈대 박멸에 죽자 사자 달려든다
우리는 깨끗한 침대에서 평화로운 밤을 보내고 싶다
벼룩의 피를 봐도 전혀 불쾌하지 않다
그 피는 우리의 것이었으니까
피가 많을수록 수세미질도 신이 난다
온갖 증오가 우리 안에서 기어나온다
우리는 빈대를 죽이며 그것이 러시아인이라도 되는 양 우쭐해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극심한 피로가 엄습한다
풀 죽은 우쭐함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우쭐함은 다음 기회가 올 때까지 자신을 잘게 잘라 털어냈다
우리는 빈대를 없앤 침대틀을 허무하게 다시 막사로 옮긴다
더할 수 없이 초라한 겸허함으로 우리는 말한다
이제 밤이 와도 되겠네...
그리고 육십 년 후 꿈을 꾼다
두 번, 세 번, 때로는 일곱 번까지 강제추방을 당한다
내 꿈은 어느 수용소를 맴도는 걸까?
심장-삽과 슬래그 지하실이 정말 존재했는지 꿈은 관심이나 있었을까?
갇혀있던 오 년으로 충분한데
꿈은 나를 영원히 강제추방하려 하고,
일곱번째 수용소에서는 일조차 못하게 하려는 걸까?
그것이야말로 모욕이다
나를 몇 번 강제추방하건, 어느 스용소로 보내건 나는 꿈에 대항할 수 없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또다시 강제추방을 당한다면 나는 알아야했다
어떤 처음들은 내가 원치 않아도 다음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그 이어짐 속으로 나를 밀어넣는 것은 무엇일까?
왜 나는 밤이면 다시 처참해질 권리를 가지려는 것일까?
왜 나는 자유로워질 수 없을까?
어째서 나는 수용소가 내 것이기를 강요할까?
향수, 마치 그것이 필요하다는 듯이...
나는 평화가 오고 몇 년이 지나서일지
그리고 앞으로 몇 년이 지나서일지는 몰라도
언젠가는 하얀 돼지를 타고 하늘을 달려
사람들이 내 고향이라고 말하는 그 산등성이로 갈 거라고 생각했다
수용소 사람들은 고향으로 갈 때 쯤이면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갔을 거라고 수군댔다
여기서 나가기는커녕 사람들이 우리를 붙잡아두어서 수용소가 망루 없는 동네가 되고
러시아 사람도 우크라이나 사람도 아닌 우리가 자연히 이곳의 주민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나가고 싶지 않을 만큼 오래 머물게 될 수도 있다
고향에서는 아무도 우리를 기다리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거기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모두가 정처없이 떠돌아다니고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고
집이라는 것이 따로 없게 된다
아니면 이렇게 될 수도 있다
우리도 고향 앞에 막막해지고 고향도 우리 앞에 막막해져서
결국 이곳에 영원히 머물기를 자청하게 되는 것이다
집이 있는 바깥세상의 소식을 오래도록 듣지 못하면
집으로 가고 싶기는 한지, 그곳에서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자문하게 된다
수용소는 마음속의 소망을 박탈했다
누구든 결정할 필요도, 결정할 의지도 없었다
집으로 가고 싶었지만 기억이 그 바람을 뒤로 밀어두었다
감히 그리움을 앞세울 수 없었다(-_-)
기억이 이미 그리움이라고 믿었다
머릿속에 항상 똑같은 장면이 돌아가고 세상과의 격리가 익숙해지면
그리운 것은 기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작은 보물이란 '나 여기있다' 라고 적힌 것들이야
그것보다 조금 큰 보물은 '아직 기억나니'라고 적힌 것들이고
그러나 무엇보다 큰 보물은 '나 거기 있었다'라고 적힌 것들이지...
나는 자유로운 세상으로 떠밀리듯 보내진다는 공포때문에
심적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자유라는 말 다음 바로 이어지던 그 심연은
고향으로 가는 길을 점점 짧게 만들었다
루마니아 경찰이 고향으로 돌아갈 승차권을 나누어줄 때
나는 수용소의 작별을 손에 들고 흐느꼈다...
나의 거만한 열등감,
나의 투덜거리는 두려운 소망들,
나의 지긋지긋한 조급함,
나는 무(無)에서 곧장 전체로 뛴다
나의 방어적인 양보심, 나는 문제가 있을 때
내가 불평할 여지를 남겨두려고
일단 사람들의 의견에 무조건 따라준다
나의 비틀거리다 기회를 놓치는 기회주의
나의 예의 바른 인색함
나의 그리움 섞인 부러움
인생에서 바라는 게 뭔지 아는 사람들을 만날 때 생기는 그 부러움은
젖은 털실처럼 차갑고 곱실거린다
나의 가파르고 텅 빈 수저질,
굶주림이 사라진 이후,
나를 밖에서는 압박하고 안에서는 공허하게 한다
나의 느린 오후들,
시간은 나와 함께 가구들 사이를 천천히 흐른다
나의 누군가를 버리고 떠나는 버릇,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싶어도 내가 나를 놓아주지 못한다
나는 뒤로 물러나며 비단 같은 미소를 짓는 법을 안다
배고픈 천사 이후 나는 누구도 나를 소유하지 못하게 한다...
첫댓글 그리고 하늘을 보며 내 뼈를 걸어둘만한 구름자락을 찾았다.. 걸릴 곳이 없는 뼈들은 오로지 나한테만 걸렸다
사람들은 말한다. 잊어버린 것도 명령에 포함된다고..
아껴야 할 건 시멘트지만 주의해야 할 건 자기자신이다..우리는 시멘트가 원하는대로 산다. 시멘트는 절도범이다. 우리가 시멘트를 훔친게 아니라 시멘트가 우리를 훔쳐갔다..시멘트는 간교하다.
몇 년간 읽었던 수많은 책들 중에서 가장 거부감이 적게 들고
가장 공감되고 가장 아프지만 가장 행복한 책이었어요
책을 읽으면서 페이지가 더 남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어요...
한번 찾아볼게요~~
나는 불꽃이 아니라 약골인 모양입니다
한 두 번 자빠졌다가 일어났을 뿐
여전히 짠내와 단맛을 풍기고 있지요
쓰디쓴 고통이 나를 살게 하는 걸까요?
아니면 겉만 달콤한 꿈들이 살게 하는 걸까요?
나도 단어들을 내 마음대로 쓰렵니다
불꽃이니 약골이니 꿈이니
배부른 소리에 불과한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