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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분명한 사실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심리적 단계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시점이 있다. 첫째 생명이 잉태되어 태어나는 시점, 둘째 사람이 죽어가는 시점. 2003년 태어난 신생아는 48만 여명에 불과 하지만, 낙태당하는 생명은 약 2백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므로, 우리는 과연 인간답게 태어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또 자살사망률은 급격하게 증가해 자살사망률은 세계 최고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상황이고, 더구나 우리 사회에서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 혹은 비참하게 죽어가는 마지막 모습을 감안해볼 때, 과연 우리가 인간답게 죽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결국 우리 삶이 인간답지 못하기 때문에, 태어나는 과정과 죽어가는 과정 역시 문제가 많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죽음의 질뿐만 아니라 삶의 질 역시 문제가 많은 상황이다.
우리가 죽음과 관련해 분명하게 아는 사실은 4가지이다. 사람의 평등, 누구나 죽는다. 시간의 평등, 우리는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 장소의 평등, 우리는 어디서든지 죽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는 아직 정해져 있지 않다는 사실. 이와 같이 인간은 4가지 이유로 죽음 앞에서 평등한 존재이다.
그러나 누구나 이와 같이 4가지로 똑같은 조건에서 죽음을 맞이하지만, 사람마다 죽어가는 마지막 모습이 똑같지 않다. 지금까지 우리는 죽어 가는 사람이 어떤 심리상태를 거치면서 죽어 가는지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죽어가는 사람의 모습은 9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 1 두려움 혹은 절망, 2 부정, 3 분노, 4 삶의 마무리, 5 우울, 6 순응, 7 희망, 8 마음의 여유 혹은 유머, 9 밝은 죽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운 현상, 혹은 절망 자체로 여기고 있지만, 죽음을 수용해 밝은 모습으로 미소 지으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이 죽어 가는 모습은 또한 동물의 죽음과 비교해 볼 수 있다. 동물은 육체적으로 쇠약해지다가 죽게 되지만, 인간의 경우 육체적으로는 쇠약해져가도 정신적으로 성장을 계속할 수 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 육체적으로 노쇠해져 갈수록 정신마저도 나약해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육체의 기능은 점점 쇠약해지기는 하겠지만, 마음마저도 함께 늙어갈 이유는 없다.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인간은 정신적, 인격적으로 성숙을 거듭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죽음은 성장의 마지막 단계’라고 말한다. 죽음을 준비해 밝은 모습으로 여유있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값진 행위가 아닐까.
죽는 바로 그 순간 좋든 싫든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난다. 우리 삶에는 거짓이 통용되지만, 죽음의 순간 자신 존재의 값어치는 남김없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죽는 시간을 우리가 선택할 수는 없다. 그러나 죽음이 갑자기 찾아올 때 어떤 태도로 임하느냐, 어떤 식으로 죽을 것인가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정할 수 있다. 죽음을 인생의 도전이자 자극으로 즐기면서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적절하게 노력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1. 절망과 두려움
죽어가는 사람이 보여주는 첫 번째 반응은 바로 이다. 먼저 절망의 경우, 말기암 환자 박씨는 어느 날 위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가 늘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기에 무슨 걱정이 있느냐고 호스피스 봉사자가 물어 보았다. 그가 한숨을 푸욱 쉬면서 말했다. “아무런 희망이 없다. 죽음은 곧 절망을 뜻하지 않는가. 정말이지 죽고 싶지 않다. 죽으면 모든 게 정지하고 끝나는 것인데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로부터 며칠 지나서 그는 죽었다. 박씨처럼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해 죽고 싶지 않은 절망적인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례가 적지 않다.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삶의 시간만 연장하려고만 한다. 결국 두 눈을 부릎 뜬 채 공포와 두려움으로 얼룩진 표정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가족에게 안타까움만 남길 뿐이다. 사람들은 현재의 삶을 전부로 여길 만큼 영혼이 메말라 있다. 삶 이후의 삶에 대한 어떤 실제적인 또는 근거 있는 신념도 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궁극적인 의미를 상실한 채 자신의 삶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죽은 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런 희망도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제시되고 있지 않다. 삶과 죽음의 의미, 죽은 뒤 자신의 삶에 열쇠를 쥐고 있는, 반드시 필요한 단 한 가지만을 제외하고, 그렇게 많은 교과목이 청소년들에게 가르쳐지고 있는 우리의 교육현실은 너무나 안타깝다.
임종환자가 보여주는 또 다른 첫 번째 반응은 두려움이다. 60대의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간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친구인 의사가 잔여수명이 3개월 정도라고 말해 주었다. 잠시 후 환자의 상태가 이상해지더니 온 몸이 굳어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는 죽으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보았더니 “죽으면 꼼짝없이 지옥에 갈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지옥의 공포가 몰려와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지옥에 대한 공포로 인해 영적인 위기를 겪은 것이다. 의사는 정신과 의사에게 의뢰했는데도 별 효과가 없자 마지막으로 호스피스에게 의뢰하였다.
또한 유방암에 걸린 어느 여성(42살)의 죽음 역시 애처러운 죽음이었다. “불안하면 호흡곤란이 더 심해져요. 두 달 전부터 갑자기 심해졌어요. 살고 싶어요! 정말 살고 싶어요!” 그녀는 자신이 죽을까봐 두렵고 고통이 있을까봐 무섭다고 자주 말했다. 암으로 인해 쇠약해지는 신체적 원인 보다는 당사자의 심리적 불안에 의해 영향을 받는 상황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주 심해요. 죽음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아요.” 입원한지 열흘째 되던 날 호스피스 봉사자에게 꼭 할 말이 있다면서 무언가 말하려고 했는데, 꼭 하려고 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알려주지 못한 채 그녀는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만일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마음이 두려운 현상으로 사전에 미리 확고하게 정해져있다고 한다면, 누구든지 두려운 모습으로 죽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일 뿐이지, 모든 사람이 두렵게 죽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밝은 미소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죽음을 두려운 현상으로 확정하는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다. 바로 자기 자신이 그렇게 착각하는 것일 뿐이다. 두려움 속에서 벌벌 떨다가 죽은 영혼이 그런 죽은 것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후회할까.
인간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동물‘ ‘미완성 교향곡’이다. 삶의 방식이 이미 확정된 다른 동물과는 다르게, 인간의 경우 이미 확정된 부분도 있지만, 아직 확정되지 않은 부분도 있다. 예를 들면 음식섭취의 방법에 있어서 우리는 채식, 육식, 그리고 잡식, 어떤 방식이든 가능하다. 또 죽음의 방식에 있어서도 절망 혹은 희망, 어느 쪽이든 가능하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죽음의 방식, 어떤 식으로 정할 것인지 자기 자신에게 한번 물어보자. 우리의 삶은 아직 확정되어 있지 않은 부분을 자기 자신이 채워넣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죽음 역시 마찬가지이다.
2. 부정
죽어가는 사람이 보여주는 이다. 유방암 말기인 K부인은 남편이 회사의 회장이어서 병원에서도 VIP대접을 받고 있었다. 호스피스 관계자가 K부인이 누워있는 2층 방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가정부와 간병인이 옆에 있었지만, 가족들은 한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회사회장인 남편, 풍부한 재산, 이미 성장한 자녀 등 K부인은 현실적으로 소유한 것이 너무나 많았다. 그녀는 모든 것을 그대로 남겨두고 빈손으로 떠나야한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남편은 2, 3일에 한번 정도 방에 들르기만 할 뿐이어서 부부 사이의 대화는 막혀버렸고, 자녀들 역시 직장에 다니거나 대학생이라서 거의 얼굴을 보기 힘들다. 임종하던 날도 그녀는 결코 죽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 “안돼” 하고 소리치다가 숨이 멎어버렸다. 두 눈을 부릅뜬 채 두려움과 공포로 얼룩진 얼굴로 죽고 말았다. 죽음을 인정하기 않았기 때문에 삶을 아무런 마무리를 하지도 못했다.
죽음이 임박했다는 통보를 받고서 보이는 첫 반응은 “뭐라구요? 나는 아니야. 뭔가 잘못되었을 거예요.”라는 대답이었다. 병세를 진단받은 환자도 의사가 분명하게 말하지는 않았어도 죽을병이라고 판단을 내린 환자도 처음에는 자신의 죽음을 부정하는 반응을 보였다. 어느 환자는 자신의 부정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오랜 기간 동안 엄청난 ‘의식’을 치른다. 그는 자신의 병력기록차트가 그렇게 빨리 나올 리가 없다며 다른 사람의 카드에 자신의 이름이 씌여 졌음이 분명하니까 확인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그래도 소용없자 병원에서 퇴원하겠다고 나선다. 다른 병원을 찾아가면 자기의 병을 보다 잘 검사해줄 것이라는 기대에서 이 환자는 여러 의사들을 찾아다닌다. 부정, 혹은 부분적인 거부는 죽어가는 환자 대부분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일종의 자기방어라고 할 수 있다.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판정을 받은 환자는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잠시 생각했다가도 즉각 떨쳐버린다. 뜻밖의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들은 환자는 자신의 죽음을 부정한다. 죽음을 부정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일시적인 방어수단이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분적 순응’으로 대치되기 마련이지만, 끝까지 죽음을 부정하는 경우도 있다. 죽음이라는 절박한 상황에 놓인 환자 곁에서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세상을 원망하는 환자들은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기 쉽다. 환자가 한두 번 만나서는 말을 꺼내기 싫어할 경우, 몇 번이라도 찾아간다면 환자는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자기를 언제든 도와주기 위해 곁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일 것이다. 호스피스 봉사자가 어느 환자의 집을 세 번이나 찾아갔지만, 돌아누워 있을 뿐 말문을 열지 않았다. 그래도 호스피스 봉사자는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하고 돌아왔다. 네 번째 찾아가자 그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그동안 가슴에 담아두었던 말들을 폭포수처럼 쏟아내면서 엉엉 울었다.
세속적인 성취에만 몰두한 사람은 죽음에 대한 부정, 혹은 거부감이 심하다. 사회적 성공이나 출세만을 지향해 앞만 보고 달려오다가, 죽음은 전혀 준비하지도 못하고 평소에 죽음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죽음이 찾아오면, 정신적으로 공황상태에 빠지게 된다. 모든 것을 세속적인 관점에서 돈이나 물질로만 바라보는 사고방식으로 평생을 살았지만, 죽음은 그런 식의 접근을 결코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을 부정하면 할수록 고통의 무게는 더 한층 커지기 마련이다.
3. 분노
죽어가는 임종환자가 왜 자기가 죽어야 되는지 주위사람에게 화를 내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바로 죽어가는 삶의 이다. 아직 죽고 싶지 않다, 더 오래 살고 싶다는 희망이 분노의 형태로 표출되는 것이다. 분노로 가득 찬 말기환자와는 아무런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몇 년 전 크리스마스 이브에 세상을 떠난 어느 청년이 있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청년은 암이 온 몸에 퍼진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고 경찰에 붙잡혀 서초 경찰서에서 취조를 받던 도중 강남성모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온몸에 퍼진 암 덩어리 보다 더 꽁꽁 뭉쳤던 청년의 분노와 한은 호스피스 봉사자들의 따뜻한 보살핌에 의해 풀어졌다. 청년의 노모도 살아 생 전 한 번도 인간적인 대접을 받아보지 못했던 아들이 떠나가는 순간에야 비로소 인간대접을 받았다면서 호스피스 봉사자들의 손을 잡고 엉엉 울었다.
49세의 폐암말기의 환자 K씨의 경우, 진단받았을 당시 항암제 치료를 하여 완치되었다가 다시 재발되었다는 진단을 받은 그는 병원 진료실에서 각목을 휘두르며 화풀이를 하는 바람에 병원 진료를 마비시켰다. 의료진들은 암 말기 상태인데다가 소란을 계속 피우는 환자를 다룰 수 없어서 호스피스에 의뢰하였다. 호스피스 봉사자가 처음 방문했을 때 그의 아내는 지쳐있었고 아이들은 겁에 질려 있었다. 환자는 심한 기침과 가래, 통증에다가 불면증까지 있어서 밤에도 깨어있어야 했다. K씨는 불을 끄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낮에 일하고 돌아온 아내가 피곤해서 잠시 졸면 발로 차서 깨우고 화를 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밥을 먹고 있으면 갑자기 주먹으로 얼굴을 때렸다. 그의 얼굴은 초췌하고 잠을 못자서 그런지 눈 밑이 그늘져 있었다.
통증 때문에, 혹은 기침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는가 생각하여 그에게 질문했더니, 뜻밖의 대답을 듣게 되었다. “3주 전부터 밤마다 검은 옷 입은 사람이 나타나 내 이름을 부르며 ‘김아무개 나와’ 라고 부르기 때문에 겁이 나서 잠을 자지 못한다.” 검은 옷을 입은 세 사람이 매일 밤마다 나타나서 같이 가자고 한다는 것이다. K씨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영적인 고통’을 겪고 있었다. 몇 번의 상담을 받고 난 뒤 K씨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더 이상 하지 않았다. 호스피스 치료를 통해 기침이나 통증도 어느 정도 조절이 되자 그토록 자지 못하던 잠도 잘 수 있게 되었으므로, 그동안 가족을 불편하게 하였던 K씨의 짜증과 화내는 것이 한결 누그러졌다.
환자의 가정을 방문하는 호스피스 봉사자와 신뢰관계가 형성되면서 환자와 부인은 자신들이 살아온 고단한 삶의 여정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이 환자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큰 형님과 함께 살았는데, 그는 학교 다닐 때 도시락을 싸주지 않았던 큰 형수에 대해, 넓은 과수원의 한쪽에 자신이 묻힐 수 있게 해달라는 마지막 부탁을 거절한 형님에 대해, 그리고 자신을 치료한 의사에 대해, 분노와 함께 그들보다 오래 살아야 한다는 오기를 품고 있었다. “내가 병을 반드시 고쳐 보다 더 오래 살아 저들을 다 죽이고야 말겠다.” 이런 분노가 마음에 가득 쌓여있었던 까닭에, 병원에서도 소란과 행패를 부린 것이었다.
그러나 성직자와의 영적인 상담이 계속되는 동안 환자가 변하기 시작했다. 우선 환자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형과 형수에 대해 적개심을 풀어 마음을 바꾸게 되었다. 오랜만에 방문한 형님과 형수에게 자기를 돌보아준 것에 대해 감사해하면서 그동안 화를 내었던 것을 용서해달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형 역시 그동안 좀 더 신경 써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면서 과수원에 묻힐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또 그동안 자신을 치료했던 의사에게도 용서를 구했다. 그리고 밥을 먹을 때마다 때리곤 했던 막내 아들을 향해 “아빠가 너를 때린 것은 네가 미워서 그런 게 아니다. 밥을 잘 먹는 네 모습을 보면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내 자신에게 화가 나서 그랬다. 너를 때린 건 미안하다. 아빠를 용서해주겠니” 라며 용서를 청했고 막내아들은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에게도 그동안 잠을 자지 못하게 하고 화내는 등 심하게 굴었던 것에 대해 용서해달라면서 사랑한다는 말도 했다.
4. 삶의 마무리
죽어가는 사람이 보여주는 네 번째 반응은 이다. 죽기 전에 인간관계상 갈등이있다면 원만하게 화해를 하고, 매듭짓지 못한 문제가 있다면 잘 마무리하는 일은 중요하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시점은 생명의 시작과 끝이다. 죽음이 임박한 말기환자 대부분의 경우 죽음에 대한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마치 자기 문제가 아닌 듯이, 혹은 불행한 죽음을 원하는 것처럼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 죽어간다. 그러나 죽음이 아무렇게나 죽어도 되는 남의 문제인가. 어떻게 죽느냐, 삶을 어떤 식으로 마무리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뼈와 가죽만 남아있는 유방암 말기환자 김순애씨는 처음 만났을 때 세상을 비관하고 있는, 불쌍하고 초라해 보이는 독신여성이었다. 병실에서 만나는 누구에게나 화를 잘 내는, 다루기 어려운 환자였다. 무언가 물어 보아도 대답도 잘 안하고 시니컬하게 굴기 때문에 간호사들도 기피하는 까다로운 환자였다. 그녀는 아직 41세에 불과했으나 50세도 더 되어 보이는 얼굴로 하루 종일 찡그리고만 있었다. 병수발을 하는 늙은 친정어머니한테도 화를 내면서 짜증을 부리곤 했다. 유방암 진단을 받은 지 3년 되었는데 두번째 재발하여 입원한 이후로는 항암치료도 효과가 없어서 호스피스에 의뢰되었다.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이 매일 병실을 방문해 환자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몸을 씻겨 주기도 하고 조금씩 먹을 것을 만들어 갖다 주기도 하고 책을 읽어 주기도 하는 등 사랑과 관심을 보여 주었다. 호스피스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통증을 비롯한 신체적 증상은 조절되었지만, 그녀의 부정적 태도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처음에는 가족이 없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두 딸과 남편이 있었는데 10년 전 이혼했다. 이혼 당시 여섯 살과 여덟 살이던 두 딸은 남편이 키우기로 합의하고 헤어졌다. 이혼 사유는 남편의 외도 때문이었다. 그 후 남편은 재혼했지만 그녀는 줄곧 혼자 살았다. 이혼한 후에도 그녀는 분노와 배신감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으며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곤 했다. 이혼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그녀는 아직도 남편을 마음속으로 떠나보내지 못했다. 그 당시에 남편은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했건만, 결벽증이 있었던 그녀는 이혼을 강행했다.
그녀는 남편 때문에 속을 끓여서 병이 났다. 남편만이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생각이 들어 식사도 제대로 안하고 잠도 제때 안자고 아무렇게나 자신을 학대하면서 지난 10년 세월을 살아왔다. 이제 죽음만 기다리는 자신의 신세가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면서 흐느껴 우는 것이었다. 자녀들은 이혼한 이후 처음에는 몇 번 만났으나 남편이 재혼해 이사를 간 이후부터 연락이 끊어져 만나지 못한 지 오래 되었다. 두 딸이 보고 싶냐고 묻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직자와 두세 차례 면담하고 나서 이제는 전 남편을 용서해야겠다고 그녀는 마음먹고 있었다. 죽기 전에 남편과 두 딸을 꼭 한번 만나고 싶은데 어디 사는지조차 몰랐다. 죽음을 눈앞에 둔 임종환자의 간절한 마지막 소망이었다. 호스피스 팀에서는 가족의 소재를 여러 채널을 통해 알아 보았더니 전 남편 정씨의 소재가 파악되었다. 정씨는 두 딸과 함께 문병을 왔다. 이 무렵 그녀는 거의 먹지 못하고 바싹 마른 상태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었다.
거의 10년 만에 가족을 다시 만난 김순애씨는 처음엔 조금 서먹서먹한 듯 했고 딸들도 중병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를 이상한 듯 쳐다보았다. 남편 정씨가 조심스럽게 먼저 말을 꺼냈다. “그동안 마음 한 구석에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소. 나를 용서해 주겠소.” 그녀는 울먹하더니 “내가 너무 옹졸했어요.”라고 말하면서 앙상하게 마른 손을 내밀었다. 정씨가 그 손을 잡았고 두 딸도 함께 잡았다. 그녀와 가족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울음을 터뜨렸다. 그날부터 정씨와 두 딸들이 병실을 지키기 시작했다.
가족을 만난 이후부터 그녀는 훨씬 원기를 찾은 듯이 보였다. 남편, 두 딸은 잃어버린 세월을 보상하기라도 하려는 듯 마지막 1주일 동안 그녀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핌을 받았다. 아침에 얼굴을 씻기고 양치질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물론, 대소변을 받아내고 온몸을 쓸어내려 마사지를 해주고 2시간마다 자세를 바꾸어 주는 등 그녀에게 필요한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했다.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날 중에서 이 때처럼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몸은 비록 죽음에 임박한 상태였지만 행복감은 최고수준인 것처럼 보였다. “사랑해요. 최고로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라는 것이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죽기 1주일 남편과 두 딸을 만나 극적으로 화해를 하지 못하고 두 딸의 얼굴 한번 보지 속한 상태에서 죽었더라면, 그녀는 마음 편히 떠날 수 있었을까. 한이 맺힌 그녀는 혹시 구만리 허공을 떠돌아다니지 않았을까.
5. 슬픔
이제 의 사례를 살펴보면,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더 이상 부인할 수 없게 될 때, 증상이 점점 뚜렷해지고 몸이 현저하게 약화될 때, 환자의 초연한 듯한 자세와 무감정, 분노와 격정은 머지않아 극도의 상실감으로 바뀌게 된다. 이런 상실감은 여러 가지 양상을 띄게 된다. 유방암을 앓는 여인은 미용문제를 한탄하게 되고 자궁암에 걸린 여인은 이젠 자기가 여자가 아니라는 자조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어느 오페라 가수는 턱과 얼굴에 심한 악성종양이 생겼다. 방사선 치료를 위해 이빨을 모두 뽑아내야 한다는 진단을 받고 충격과 함께 지독한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 아무 준비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찾아온 죽음에 대해 이런 식으로 극도의 상실감을 나타내는 것은 어쩌면 인지상정의 감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씨 부인은 사려깊고 조용한 여성이었다. 오른쪽 유방암으로 수술을 받은 후 한동안 잘 지내다가 재발하여 항암치료를 받던 등 호스피스에 의뢰되었다. 호스피스 봉사자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방문해 신뢰관계가 형성되면서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자신의 지나온 삶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호스피스 치료를 받기 시작한 지 두 달 정도 지나면서부터 그녀는 ‘죽음 예감을 통해 느껴지는 예비적 우울’을 겪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이 머지않아 죽게 될 것을 알았고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면 슬퍼져서 감정은 한없이 낮아져 말이 없어졌다. 그녀는 가금씩 깊은 한숨을 내쉬곤 했는데 들릴 듯 말 듯한 낮은 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떨*어*지*는*저*낙*엽*을*내*가*다*시*볼*수*있*을*까*나*는*이*걸*생*각*해*봐*요*이*게*마*지*막*이*구*나*지*금*보*는*것*을*다*시*는*보*지*못*하*겠*구*나*라*고*생*각*하니....”
그녀는 자신의 주변을 살펴보면 문득 생경스럽게 느껴져 가만히 음미해본다고 말했다. 이제 서서히 다가오는 자신의 떠남을 생각하면서 이 세상과 앞으로 다가올 세상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감정은 우리 삶의 일상적 소란스러움과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
가족들이 거실에 모여 앉아 텔레비전을 시청하면서 웃고 있으면, “저*게*뭣*이*저*렇*게*재*미*있*을*까” 의아스러워진다고 말했다.한동안 예비적 우울의 단계에 머물러 있던 그녀는 자신의 지나온 삶을 가만히 돌이켜 보니 모두가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살았다고 말하면서 이웃과 국가를 위해 아무것도 한 일이 없어서 너무나 부끄럽고 미안하다고 말했다.그래서 장기기증, 필요하면 시신 전부라도 기증하고 싶다고 했다. 가족회의에서 그녀는 ‘인간이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무의미하게 살아온 자신의 삶에 종지부를 찍기 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류를 위해 의미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의 각막으로 누군가 밝은 세상을 볼 수 있고 의대생의 해부학 실습을 통해 의학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편히 눈을 감을 수 있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6. 수용
죽음이란 상황을 순응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뜻만 담겨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노장사상에 무위라는 용어가 있다. 무위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거짓된 행위를 하지 않고 자연의 이치에 순응해 행위를 한다는 의미이므로, 수동적 적극성의 뜻으로 이해된다. 우리가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일방적으로 끌려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순응함으로써 무언가 희망도 읽어내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도 담겨있다.
영어에도 ‘Renunciation’이란 단어가 있다. 이 단어에는 체념, 포기의 뜻도 있지만, 또한 자유의 의미도 담겨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도모해 아둥바둥 발버둥 치다가 어느 순간 체념해 버리면 마음이 시원해졌던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죽어가는 과정에서, 또 죽은 이후에도 우리는 결코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죽음이 남긴 침전물이 우리 존재 깊숙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음을 수용해 순응하면 죽음을 너머설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죽음을 수용하는 시점에서부터 죽음은 더 이상 걸림돌, 장애가 되지 않는다. 죽음에 순응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영혼의 치유는 시작된다. 아니 이미 치유되어 죽음의 공포를 넘어섰다고 말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자기가 죽겠다고 마음을 비운 사람에게 죽음이 어떻게 두려운 존재일 수 있겠는가. 죽음에 임해 마냥 슬퍼하기보다, 슬퍼하는 과정에서 누구든지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 수용하고 이 세상에 대한 집착, 더 살겠다는 애착을 내려놓고 자연의 흐름에 맡긴다면, 마음이 홀가분해질 것이다. 무언가 꽉 잡고 있을 경우, 만일 그것이 결코 잡을 수 없는 그런 것이라면, 결국 자기 자신만 한없이 구렁텅이 속으로 빠졌던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 꽉 쥐었던 손을 슬그머니 펴는 것이 현명하다. 죽음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죽음이 아니다. 죽음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방식이 문제인 것이다. 삶과 죽음을 영위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으니까, 우리는 죽음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죽음 방식이 편안하지 못한 것은 바로 그가 삶을 여유있게 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삶이 이미 종착역에 다다랐음에도 불구하고 더 살아 보겠다고 아둥바둥 안달을 떨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어차피 떠날 사람이라면, 이젠 헤어져야할 시간이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먼 여행 길 떠날 채비를 하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 죽음이 끝이 아니기에.....
정순자씨는 차분하고 지적인 여성이었다. 병명은 장암 말기였는데 이미 암세포가 복강 내에 다 퍼져 있는 상태였고 장루 수술을 하여 인공항문을 차고 있었다. 항암 치료를 해보아도 별 반응이 없었다. 장암의 진전 상태에 대해 그녀 자신과 가족이 잘 알고 있었다. 호스피스에 의뢰될 때 예상되는 잔여수명은 2,3개월 정도였다. 54세인 그녀는 어려서부터 건강하여 잔병치레도 없었다고 한다. 지난봄부터 갑자기 소화도 되지 않고 속이 더부룩해지는 것이 아무래도 몸이 좀 이상해지는 것 같아 혼자 병원에 찾아갔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몇 가지 검사를 해보고 며칠이 지나 결과를 보러 갔더니 의사가 남편과 함께 오라고 말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으나 각오는 되어 있으니 자기에게 직접 말해 달라고 독촉하자 의사는 마지못해 알려 주었다. 수술을 해 인공항문을 달았지만 잔여수명은 3개월뿐이었다. 차분한 그녀는 며칠간 숙고를 거듭해 자신의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 들였고 남은 시간 동안 자기 삶을 매듭짓고 죽음을 준비해서 미련 없이 떠나고자 했다.
그녀에게는 자녀가 세 명 있었다. 결혼을 앞둔 딸이 첫째, 둘째가 대학생, 세째가 고3짜리 막내아들이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있어서 오랫동안 사업을 함께 해온 동업자, 친구, 연인, 그리고 신앙생활을 함께 하는 교우이기도 했다. 로타리 클럽을 비롯해 부부가 함께 회원으로 가입한 모임만 해도 10개가 넘는다. 서로 자신의 삶을 깊숙이 나누면서 살아왔으므로 그녀의 와병은 남편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자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딸은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언제나 강하시고 집안의 모든 일을 흔들림 없이 주관해 오셨기에 마치 거대한 나무가 뿌리채 뽑히는 느낌이예요. 엄마가 쓰러진다는 건 지금까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어요. 믿어지지가 않아요.” 칠십이 넘은 시어머니 역시 며느리의 병을 걱정해 초조해 하면서 ‘나 원 참’ 만 연발하셨다.
이런 상황에서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현실을 가장 잘 직시하고 있는 사람은 오히려 정순자씨 자신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죽음을 준비하고 삶을 정리하기 위해 몇가지 문제를 남편과 의논하고자 했다. 그러나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하면 남편은 도무지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남편하고는 30년간 함께 잘 살았어요. 서로 대화도 통하지요. 이번만은 내가 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도 남편은 자꾸 살 수 있다고만 하니 짜증이 나요. 그 심정이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죽어야 하는 사람은 바로 난데, 이 상황에서 내가 남편을 이해해야 됩니까, 남편이 나를 이해해야 됩니까? 무언가 앞뒤가 바뀌었다는 느낌이예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당사자가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순자씨의 경우 역으로 당사자는 자신의 죽음을 수용하고 있지만 가족은 그런 현실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가족이 말기환자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오히려 당사자에게 부담까지 주는 상황인 것이다. 호스피스 봉사자가 그녀의 남편에게 연락해 사무실에서 만났더니 “집사람이 저렇게 될 줄은 정말이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부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던데 아냐고 물었더니, 그는 한숨을 푹 쉬더니 아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 지 잘 알고 있지만, 막상 ‘죽음’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면 그것이 현실화될까봐 두려워 이야기를 애써 회피했다는 것이다. 며칠 뒤 정순자씨 집을 호스피스 봉사자가 방문했더니 그녀가 말했다.
“남편과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했어요. 이제는 속이 시원합니다. 이젠 죽어도 괜찮아요.”
그녀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고 이제 가족들도 호응을 하니까 무슨 이야기든지 부담 없이 할 수 있었다. 죽음을 가족보다도 먼저 수용한 그녀는 남편마저 설득한 다음 서로 마음 속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을 떠났다.
7. 희망
인생이라는 길이 너무 막막하고 허무하다고 한다면 인생의 여행은 그 목적을 잃게 된다. 그것은 상상에 불과할지라도 두려운 광경이다. 죽음도 마찬가지로 허무하기만 하다면..... 그러나 죽음에 의미가 있다면, 다시 말해 죽음 저편에 여행길의 본래 목적지가 있다면, 고통이 많은 인생길에도 깊은 의미가 있게 된다. 결국 영원한 생명이란 미래와 관련된 문제만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인생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사후에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 혹은 죽음이 끝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삶의 방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분명한 점은, 죽으면 아무것도 없는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죽는 마지막 순간 절망에 빠지기 십상이다. 삶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강의를 수강하는 어느 대학생은 레포트에 다음 같은 이야기를 썼다. 중학생 때 친구가 매 일마다 살기 싫다, 죽고 싶다고 말하더니 어느 날 위암으로 죽더라는 것이다. 삶이든 죽음이든 부정적으로 생각해 절망하는 사람은 그런 식으로 살다가 죽기 마련이지만, 긍정적으로 밝게 생각하는 사람은 죽는 순간마저도 밝은 희망을 지니고서 죽게 된다.
그렇다면 희망을 지니고서 밝은 모습으로 죽는 것과 어두운 표정으로 절망하면서 죽는 것, 어떤 죽음의 방식이 보다 인간적인지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죽음이 희망인지, 절망인지, 끝인지, 끝이 아닌지 확신을 지니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요구될 수 있다. 삶을 밝게 사는 것과 삶을 어둡게 사는 것 가운데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지 누구나 알 수 있으므로, 충분히 이해가 되지는 않더라도, 가능한 한 밝은 모습으로 죽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현명하다.
이주명씨에게 지난 2년간은 그의 인생에서 어느 때보다도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갑자기 말기암 선고를 받은 상황에서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조금만 약했어도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 있었다. 폐암말기의 힘든 투병생활 속에서도 그가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이유는 갓 결혼한 20대의 아내, 그녀의 뱃속에 아무것도 모른 채 평화스럽게 자라고 있었던 딸 하늘이 때문이었다. 그에게 감당하기 힘든 불행이 닥쳐온
것은 2000년 6월 어느 날 갑자기 가슴에 통증을 느껴 병원을 찾은 그는 의사로부터 폐암말기라는 진단과 함께 앞으로 3개월 남았다는 청천벽력같은 선고를 받았다.술과 담배도 거의 하지 않았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것도 3개월 밖에 살 수 없는 말기암이라니, 의사가 오진했다고 믿고 싶었다. 더구나 젊은 나이에 홀로 남게 될 아내와 유복자가 될 아이를 생각하니 더욱 견딜 수가 없었다. 일주일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내가 정말 죽게 되는구나 하는 사실을 점차 받아들이게 되었다. 가족들이 눈에 밟혔다. 고생만 하신 어머니, 임신 중인 아내, 그리고 뱃속의 내 아이….”
가족들을 생각하는 순간 그는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맞을 수는 없다고 결심했다. 고통스러웠지만 항암치료를 받기로 결심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견디기 힘들 때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는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상태가 조금이라도 호전되면 환자라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위해 매일 목욕을 하고 책도 사다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간호사들이 말기암환자가 무슨 맹장수술 받을 환자처럼 움직이냐고 의아해했다. 그는 아파도 가만히 누워있기보다 억지로라도 움직였다.
아내 김현미씨는 이렇게 말했다. “의사가 동생을 통해 남편의 암이 심각한 상태이니 아이를 낳아서 유복자로 키우지 말고 유산시키는 게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오히려 아이 때문에라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설사 회복이 안된다고 하더라도 얼마 살지 못하는 남편에게 짧은 시간이나마 아이를 통해 얻는 행복감을 안겨주고 싶었다.”
그는 언제나 희망적으로 생각했다. 6개월에 걸친 6차례의 항암치료와 살겠다는 의지 덕분에 암세포가 전이를 멈추고 그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었다. 그의 상태를 진단한 의사는 기적이라고까지 표현했다. 마침 그때 뱃속의 아이가 태어났다. 이름은 하늘이라고 지었다. 하늘이를 보는 순간 살아야겠다는 그의 의욕은 더욱 강해졌다. 하늘이는 그에게 희망 그 자체였다. “내가 이렇게 아프다보니 아내 혼자서 아이를 낳았다. 낳은 지 3일이 지나서야 딸아이를 볼 수 있었는데 어찌나 감격스럽고 행복하던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아내가 참 고마웠다. 주위에선 아이가 복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하늘이가 태어날 무렵 상태가 기적적으로 좋아졌고 그 이후 암세포가 계속 줄어들었다.”
마지막 항암치료를 끝으로 암세포는 모두 제거되었다.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죽음만 기다리던 사람이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난 것이다. 이주명씨 자신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그는 건강을 위해 걷기 시작했다. 몇 달이 지나자 뛸 수 있을 정도로까지 발전했다. 2002년 5월 14일에는 하프 마라톤 대회에 참가, 완주에 성공했다. 그가 뛰는 도중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고 완주할 수 있었던 것은 딸 하늘이에게 최선을 다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나중에 딸에게 어려운 일이 닥치면 이런 아빠의 모습을 생각해 이겨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죽음의 위기를 극복한 뒤 그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완전히 바뀌었다. 죽음의 문턱에까지 갔다 왔기에 주변의 모든 것들이 무척이나 소중하고 가치있게 느껴진다는 것. “사실 암은 5년이 지나봐야 안다고 말한다. 지금은 언제나 어디서든지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지니고 살고 있다. 그러니 삶의 한 순간 한 순간이 무척이나 소중하게 느껴진다. 1분 1초도 헛되이 보내지 않고 보람되게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8. 밝은 죽음
암환자에게 암과 함께 공존하는 지혜가 요구되듯이, 죽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죽음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의 가능성과 함께 살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이다. 따라서 죽음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더라도 담담히 죽을 수 있도록 충분히 연습하는 것이 현명하다.
산다는 것은 곧 죽음 연습이나 다름없으므로, 죽음을 준비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무모함 그 자체이다. 만일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태연함을 유지할 수 있는 지혜와 배짱이 있는 사람이라면, 삶에서 두려울 게 있겠는가. 마음의 여유, 평정심은 죽음의 질뿐만 아니라 삶의 질마저도 향상시킨다.
죽음 앞에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 마음의 여유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떻게 해야 마음에 그런 여유가 생길 수 있을까. 다른 무엇보다도 삶과 죽음의 실상을 꿰뚫어보는 지혜의 눈이 필요하다. 동양학에 ‘허’(虛), 마음을 비운다는 용어가 있다.
우리는 삶에서 이해득실을 따지는데 급급하다. 죽음에 대해서도 이러쿵저러쿵 헤아려보지만, 제대로 수판알을 튕기지도 못한다. 그런 메마른 지식, 그런 잔머리로는 죽음의 신비를 벗겨낼 수 없다. 현대 사회가 과학의 발전을 자랑하지만, 과학적 지식은 죽음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지식이나 얕은 수로 잔머리를 굴려 욕심을 채우려하기 보다, 차라리 마음을 비우는 게 훨씬 현명하다. ‘마음 비우기’는 불교 수행의 핵심이자, 노장사상의 근본원리이기도 하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죽음의 신비를 벗겨낼 재주가 우리에게는 없다. 하지만 ‘텅 빈 마음’에는 밝은 지혜가 생겨 삶과 죽음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볼 수 있다.
미국의 산업주의 체제와 그 문화의 폭력성에 끊임없이 도전했던 스코트 니어링, 그의 죽음 역시 평온하고도 위엄을 갖추었다. 죽음의 방식은 그가 살아온 삶의 방식의 반영이라고 말했던 그는 더 이상 자기 몫의 짐을 운반할 수 없고 자신을 돌볼 수 없을 때 죽음준비를 시작했다. 스코트는 ‘주위 사람에게 드리는 말씀’을 1963년에 처음 썼고 1982년 다시 작성했다.
“마지막 죽음의 순간이 찾아오면 죽음의 과정이 다음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나는 병원이 아니고 집에서 죽기를 바란다. 어떤 의사도 주위에 없기를 바란다. 의학은 죽음에 대해 무지한 것처럼 보인다. 죽음이 임박했을 때 지붕이 없는 열린 곳에 있었으면 한다. 죽음이 다가오면 음식을 끊고 마시는 것도 끊고자 한다. 어떤 장례식도 열려서는 안된다. 어떤 식으로든 목사의 설교, 그밖에 다른 종교인이 장례를 주관해서는 안된다. 화장이 끝난 뒤 재를 거두어 우리 땅의 나무 아래 뿌려 주기 바란다.“
“나는 죽음이 진행되는 과정을 하나하나 느끼고 싶다. 어떤 진통제, 마취제도 필요없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빠르고 조용히 죽고 싶다. 주사, 심장충격, 강제급식, 산소주입, 수혈을 바라지 않는다. 내가 죽어가는 자리에 참여한 사람들은 슬픔에 잠길 필요는 없고 오히려 마음과 행동에 조용함, 위엄, 기쁨과 평화를 갖추고 죽음의 경험을 함께 하기 바란다. 죽음은 광대한 경험의 영역이다. 나는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왔으므로, 기쁘게 또 희망찬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고자 한다. 죽음은 다른 세계로 옮겨가는 것, 혹은 깨어남이다. 삶의 다양한 전개와 마찬가지로 죽음 역시 우리는 흔쾌히 받아들여야 한다.”
침상에서 평온하게 누워 지내는 마지막 몇 달 동안 스코트는 자기 자신이나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말하듯이 큰 소리로 말하기도 했고 잠을 자면서도 마치 다른 사람과 대화하듯이 말을 했다.
“이제 거의 다 왔다. 내가 원하기만 하면 해방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어디든지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다. 나는 필요한 만큼만 머물고 싶다.”
죽기 한 달 전, 또 백 살 되기 한 달 전 어느 날 그는 “더 이상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말했다. 맑은 의식을 지니고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그는 신중하게 여행 떠날 시간과 방법을 선택하고자 했다. 음식섭취를 중단함으로써 서서히, 품위있게, 그리고 평화롭게 육신의 옷을 벗고자 했다. “기쁘게 살았으니 기쁘게 죽으리라. 나는 내 의지로 나를 떠난다.” 라는 말을 즐겨 했다.
생명이 기능을 다한 육체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떠나는 방식으로 그는 죽음을 준비했다. 동물들이 흔히 선택하는 죽음의 방식,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으로 가서 음식을 섭취하지 않는 방식으로 죽어가는 것을 아는 헬렌 니어링은 스코트의 뜻을 조용히 받아들였다.
1983년 8월24일 아침 헬렌은 스코트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작은 소리로 헬렌은 아메리카 토착민의 노래를 읊조렸다.
“나무처럼 높이 걸어라. 산처럼 강하게 살아라. 봄바람처럼 부드러워라. 네 마음에 여름날의 따듯함을 간직해라. 그러면 위대한 혼이 언제나 너와 함께 있으리라.”
헬렌이 또 그에게 말했다.
“여보, 이제 무엇이든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어요. 몸이 가도록 그냥 두세요. 썰물처럼 흘러가세요. 당신은 훌륭한 삶을 살았어요. 당신 몫을 다했구요.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세요. 빛으로 나아가세요.”
천천히, 천천히 그는 자기 육신에서 벗어나기 위해 점점 약하게 숨을 쉬더니, 마치 마른 잎이 나무에서 떨어지듯이 숨을 멈추었다.
그는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 시험하듯이 ‘좋 - 아’ 하면서 마지막 숨을 쉬고 떠나갔다.
헬렌은 스코트가 보이지 않는 세계로 옮겨갔음을 느꼈다. 미국에서 ‘현대의 소로우’로 평가되는 스크트 니어링의 삶과 죽음은 ‘서양의 장자’라고 일컬을 만한 인물이었다.
죽어가는 사람의 여덞번째 반응은 마음의 여유, 혹은 유머이다. 더 이상 죽음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죽음에 순응하고(여섯 번째 반응 수용), 죽는다고 해서 절망하기는커녕 희망을 여전히 유지하면서(일곱번째 반응 희망), 평정심을 담담하게 유지하게 되면 마음을 비움으로써 여유가 생겨 가벼운 미소 혹은 유머 또한 흘러나오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남편의 죽음도 구경거리이고 자신의 죽음도 구경거리” 라고 말하는 박정희 할머니의 경우가 그렇지 않은가. 할머니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표정이 바로 웃는 모습이라고 한다.
열한 명의 아들딸을 훌륭하게 키워낸 91살의 할머니가 혼수상태에 빠졌다. 온가족이 다함께 모여 할머니를 위해 기도를 했다. 기도가 끝나자 할머니는 눈을 번쩍 뜨고서 ‘나를 위해 기도를 했구나, 고맙다. 그런데 위스키 한잔 마시고 싶은데’ 라고 말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위스키 한잔을 가져오자 할머니는 한 모금 마시고는 “미지근하니까 얼음 좀 넣어줘” 라고 말하여 또 놀랐다. 겨우 두 시간 밖에 살 수 없다고 여겨지는 그녀가 얼음마저 요구하니 모두 충격을 받았다.
얼음을 넣어주자 할머니는 ‘맛있다’고 말하면서 전부 마셔 버렸다. 이어서 “담배가 먹고 싶구나”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여유있게 담배 한 대 피우더니 가족 모두에게 감사를 표한 뒤 ‘천국에서 만나자, 안녕“이라고 말하고는 옆으로 누워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그 때 할머니의 죽음을 슬퍼했던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할머니의 죽음은 분명 슬픈 일이었지만, 마지막 순간 보여주었던 밝은 유머를 생각하면서 얼마나 그답게 죽음을 맞이했는지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면서 웃었다.
할머니는 평생 위스키나 담배를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가족들이 아무리 생각해도 할머니가 죽기 직전 위스키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울 이유는 없었다. 그는 91살까지 장수하면서 많은 장례식에 참석하여 모두가 눈물을 흘리면서 슬퍼하는 모습을 자주 보아왔다. 자신이 죽으면 자녀와 손자를 슬프게 할 게 아니라 밝은 분위기를 만들어주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죽음에 직면한 가장 고통스러운 바로 그 순간에 그는 가족을 위해 이와 같이 밝은 유머를 남겨주었다.
일반적으로 죽기 직전, 더구나 마지막 두 시간 동안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믿어지고 있지만, 그는 자녀와 손자들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유머를 남겨주었다. 그가 이렇게 여유있게 죽음을 맞을 수 있었던 것도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믿음, 사후세계에 대한 확신, 그리고 철저한 죽음준비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유머와 웃음이 죽음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차원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죽는 바로 그 순간까지 살아가고 있으므로, 가능한 한 미소 지으면서 즐겁게 살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해야 되지 않을까.
각국의 호스피스 활동에 공통되는 점이 있다. 시한부 환자를 돌보는 일에 종사하고 있는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은 항상 밝은 모습과 유머로 임하고 있다. 그들이 환자와 함께 주고받는 이야기는 웃음과 유머로 흘러넘친다. 말기환자와 함께 나누는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간을 가능한 한 즐겁게 보내도록 하기 위해 그들은 마음 깊이 배려하는 것이다. 기쁨과 감사의 마음이 봉사자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유머로 가득 찬 즐거운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다.
만일 호스피스 봉사자가 어두운 표정으로 봉사에 임한다면, 말기환자들은 당연히 얼굴을 돌릴 것이다. 자기 삶을 밝게 영위하지 않는 사람이 호스피스 봉사를 자원할 까닭도 없을 것이다. 자기 삶을 밝게 영위하는 사람, 또 자신의 죽음도 그렇게 준비하는 사람만이 호스피스 자원봉사에 뜻을 둘 수 있을 것이다.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당사자도, 죽음을 부정적으로 생각해 자꾸 그런 식으로 바라보면 볼수록 감정의 흔들림은 한층 심해지기 마련이다. 누구나 긴장하게 되는 죽음을 충분히 준비해 자기 자신에게 알맞은 생사관을 몸에 익히고 죽음에 임해 억지로 웃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미소 짓기 위해서는, 죽음이라는 현실을 직시하는 냉철함과 함께, 확고한 생사관의 정립, 죽음에 대한 철저한 준비, 여유있고 평온한 마음가짐이 전제되어야 한다.
9. 마음의 여유와 유머
죽어가는 사람이 보여주는 아홉 가지 반응 가운데 첫 번째 반응에서부터 다섯 번째 반응까지는 마지막 순간에 임해서도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여섯 번째 수용에서부터 태도가 바뀌어 죽어야 한다는 사실에 순응하면서 죽음으로부터 무언가 긍정적이고도 희망적인 메시지를 읽고자 한다. 죽음에 대한 이러한 태도의 변화는 수용, 희망, 마음의 여유를 거쳐 에 이르러 마침표를 찍는다.
죽음을 밝음 혹은 광명과 연결시키기는 쉽지 않으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죽음문제를 추적하다보면 궁극적으로 접하게 되는 것이 바로 광명 혹은 빛의 존재이다. 불교경전이나 성경에 나오는 광명이나 빛의 존재, 선사들이 남긴 게송, <티베트사자의 서>에 자주 제시되는 광명, 그리고 현대 사회에 주목받고 있는 임사체험자들이 전하는 빛의 존재 등등.
불교의 경우, 아미타불은 ‘한량없는 광명‘(無量光)의 뜻으로 풀이된다. '비로자나'(vairocana)라는 명호 역시 ’광명편조’(光明遍照), 지혜의 빛으로 삼라만상을 널리 비춘다는 뜻이다. 붓다의 존재는 한 마디로 무량한 광명 그 자체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란 곧 광명을 깨닫는다는 말이다. 광명은 또한 마음의 지혜, 반야지혜를 가리킨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태양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태양이 비추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볼 수 없고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태양 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진리 광명이다. 진리가 저 하늘의 태양처럼 우리를 비추어 주니까, 어둠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붓다가 지혜광명의 상징이라면, 중생을 상징하는 말은 바로 무명(無明)이다. 무명이란 광명이 없다는 뜻. 붓다는 지혜광명으로 중생의 무명을 타파하기 위해 경전을 설하기에 앞서 광명을 놓는다. <화엄경>에서는 발바닥, 발가락, 양 무릎, 눈썹 사이 4곳에서 광명을 나타냈고, <대반야경>에서는 41곳에서 방광했다. 불교 가르침은 광명과 무명, 두 가지 사이에 있다. 우리가 할 일은 무명의 어둠으로부터 광명으로 나아가는 일, 어두운 죽음으로부터 ‘밝은 죽음’으로 옮겨가는 것, 바로 그 일 한 가지 뿐이다.
불교란 마음으로부터 지혜의 빛을 발하는 일이다. 어두운 껍질을 깨뜨려 자기 마음에 본래 갖추어진 지혜광명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라는 말이다. 불교는 생사불이(生死不二), 삶과 죽음 사이에 조금도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불교 가르침은 죽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붓다는 삶과 죽음의 어둠을 밝히는 광명 그 자체이다. 불교 가르침은 육신을 지닌 인간 보다, 육신을 벗어난 영혼의 존재가 보다 더 잘 이해한다는 말도 있다. 우리도 삶뿐만 아니라 죽음의 길마저도 그 광명으로 밝히라고 붓다는 가르친다.
지혜가 없어 어리석을 때 우리는 상처를 받지만, 삶의 고통은 지혜의 빛으로 치유될 수 있다. 지옥은 태양의 밝음과 진리광명이 비추지 않는 곳이다. <지장경>에 따르면, 철위산 동쪽에 햇빛도 달빛도 비추지 않는 어두운 곳에 지옥이 있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 마음에 어둠이 내릴 때 지옥의 고통이 있게 된다. 삶과 죽음에서 고통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마음에 지혜 등불을 밝히는 수밖에 없다. 죽음을 절망, 두려움 등으로 어둡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마음이 어둠으로 가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 어둠이 내리면, 삶이든 죽음이든 부정적으로만 생각하게 되고 결국 지옥같은 일만 벌어지게 된다.
티베트인들이 처음 서양사회에 도착했을 때, 그때까지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과 새로 접한 현대인들이 죽어가는 모습은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기술문명의 발달로 현대사회는 많은 것을 성취했지만, 현대인들은 죽음이라든가 죽어가는 과정 또는 죽음 이후 무엇이 일어나는지 실제로 이해하는 것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죽으면 다 끝난다고 과감하게(?) 단정을 내리는 사람이 많다. 마치 죽음이 절망, 불안, 두려움의 근원이기라도 되는 듯이 너무도 불행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은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어느 요가 수행자는 며칠 동안 앓았다. 의사가 찾아와서 맥박을 진찰했다. 의사는 그가 죽어가고 있음을 확신했지만, 당사자에게 말해야 할지 망설였다. 요가 수행자는 어린애처럼 자신의 나쁜 상태에 대해 말해달라고 졸랐다. 마침내 의사는 사실 그대로 알려주었고 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그는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의 포장을 여는 어린애처럼 흥분을 느끼는 듯 했다. “정말이예요? 이 얼마나 달콤한 말인가, 이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 그는 하늘을 응시한 채 깊은 명상 상태에서 죽었다.
티베트의 바르도 가르침은 우리가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것과 아무런 대비하지 않을 때 닥치는 것 사이의 차이를 분명하게 제시한다. 티베트인들이 죽음을 평온하게 맞을 수 있는 것도 죽음은 육신의 죽음일 뿐 새로운 시작임을 분명히 알고, 죽음은 절망이기는커녕 빛나는 성취일 수도 있고, 삶과 죽음에 대한 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죽음준비를 평소에 꾸준히 해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있는 지금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삶을 통해, 죽는 순간에, 그리고 죽음 이후에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지금의 삶뿐만 아니라 앞으로 주어질 미래마저도 황폐해질 수 있다. 사람들은 자기의 죽음을 애써 외면하는 까닭에, 죽어야 하는 자기 자신, 절망적인 바로 그 상태에 갖혀 버리게 된다.
죽어가는 사람의 아홉 번째 반응으로 ‘밝은 죽음’을 제시한 것에 대부분 사람들은 생소하다는 느낌을 지니기 쉽다. 성경이나 불교경전에 자주 나오는 광명과 관련된 다양한 표현을 사람들은 그냥 지나쳐 버리는 일이 많다. 광명 이야기는 또한 경전에만 나오는 이야기로 일반인과 무관하지 않느냐 하는 반응 역시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다. 이번에는 현대 사회에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Near-Death-Experiences, 임사체험(臨死體驗)에
등장하는 ‘빛의 존재‘를 다루고자 한다. 임사체험은 한 마디로 임상적으로 죽음 판정받았다가, 얼마 뒤 알 수 없는 이유로 다시 되살아나 그 기간 동안 겪은 경험을 말한다. 임사체험 연구는 서양에서 30여 년 전부터 시작되어 전세계에 수천만 건에 이르는 다양한 체험사례가 수집되었고 국제임사체험학회까지 결성되어 활동을 하고 있다. 1975년 미국의 레이몬드 무디 교수가 <삶 이후의 삶> (Life After Life)을 간행한 이후 다양한 전문가가 연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임사체험자의 증언은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대체로 다음같이 정리될 수 있다. 임사체험자는 육신으로부터 영혼이 벗어나 자기의 육신을 허공에서 내려다본다. 의식은 분명하고 생생하게 깨어있다. 자기가 죽었다는 의사의 판정을 직접 듣기도 한다. 체험자는 죽음이 끝이 아니고 육신과 영혼의 분리임을 경험한다. 아무런 고통도 없이 평온함과 행복감을 살아있을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느낀다. 죽었다는 판정을 받은 임사체험자는 칠흙처럼 어두운 터널같은 곳을 통과하는 듯 캄캄한 어둠 속을 지난다. 삶과는 다른 현실, 다른 세계를 만난다. 흔히 저승이라고 일컫는 세계로 살아있을 때에는 전혀 의식하지 못한 다른 세상이다.
임사체험자는 빛의 존재를 만난다. 체험자마다 빛의 존재를 예수, 붓다, 보살, 마리아 등 다양하게 증언하지만, 체험자의 종교나 문화적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르게 표현한 것일 뿐이다. 임사체험자는 사랑으로 감싸는 빛의 존재와 함께 있으면서 축복을 가득 느낀다. 빛의 존재와 나누는 대화는 말이 아니라, 이심전심의 마음으로 의사소통한다. 어떤 체험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 빛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어떤 것 보다도 밝다. 빛을 만났을 때, 왜 그런지 모르지만, 나는 행복했다. 또한 그 빛은 전혀 눈이 부시지도 않았다.” “그 빛과 분리된 기분이 들지 않았다. 내가 바로 그 빛이었고 빛과 하나였다.”
갑자기 등장한 빛의 존재와 함께 체험자는 자기 삶에서 일생 동안 겪었던 다양한 일들을 영상 이미지를 통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되돌아본다. 자기 삶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이런 회상을 통해 자기 삶에 대한 평가가 저절로 내려진다. 돌연 어떤 장벽, 경계선 같은 것이 느껴져 자기 육신으로 다시 복귀한다. 일곱째 의학적으로 죽었다가 임사체험을 겪고 알 수 없는 이유로 다시 살아난 체험자들은 이전의 삶과는 크게 다른 식으로 삶을 영위한다. 대다수가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임사체험자들이 크게 바뀐다. 체험자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되고, 죽음이 끝이 아님을 확신하게 된다. 또 체험 이전 보다 훨씬 관대해지고 사랑을 베풀고 영혼이나 영성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는 등 삶과 죽음을 보는 방식이 이전과는 크게 다르다.
임사체험의 이런 핵심내용 중 우리가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밝은 죽음’과 관련되는 ‘빛의 존재’이다. 과연 빛의 존재는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미국의 케네쓰 링은 빛의 존재는 우리 자신의 ‘본래 모습‘(Total Self), '참된 자기'(Higher Self)라고 해석한다. 우리의 일상적 존재는 본래 모습으로부터 파생된 부분에 불과하고 죽음의 순간 참된 자기와 만나게 되는데, 임사체험자가 만나는 빛의 존재는 바로 자기 자신의 빛이라는 것. 물론 임사체험을 뇌 작용으로 환원시키는 과학자도 있지만, 임사체험의 내용과 해석은 섣부르게 예단하거나 물질현상으로 환원하는 속단하는 것은 성급하다. 보다 구체적인 연구와 논의를 계속해야 하겠지만, 성경이나 불교경전에 제시된 광명에 관한 가르침, 티베트 불교가 제시하는 <어머니 광명과 어린애 광명의 합일>, 그리고 깨달음 체험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본다.
이상과 같이 살펴본 대로 사람마다 죽어가는 마지막 모습이 같지 않다. 죽어가는 사람은 첫번째 반응으
로부터 아홉 번째 반응에 이르기까지 순차적으로 거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몇 가지 단계를 한꺼번에 거치기도 하고, 첫 번째 단계와 두 번째 단계 혹은 다섯 번째 단계와 여섯 번째 단계가 무 자르듯이 확연하게 구분되지도 않는다. 죽어가는 사람은 대략적으로 아홉 가지 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는 뜻이다. 건강한 삶과 건강하지 못한 삶이란 말이 있듯이 건강한 죽음과 건강하지 못한 죽음, 행복한 죽음과 행복하지 못한 죽음이란 말도 있다. 삶을 밝은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어두운 표정으로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밝은 모습으로 삶을 마감해야 하는지, 어두운 표정으로 마지못한 표정으로 작별인사를 해야 하는지 조금만이라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사람들은 마치 불행한 죽음을 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두운 모습으로 삶을 마감한다.
절망과 두려움 속에서 죽어가는 사람 (첫번째 반응 두려움, 절망), 임박해 있는 죽음을 부인하는 사람 (두번째 반응 부정), 자기가 죽어야한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사람 (세 번째 반응 분노), 운명과 타협해 조금 살면서 삶을 마무리 하려 애쓰는 사람 (네번째 반응 타협, 삶의 마무리), 죽어야 하는 처지를 슬퍼하는 사람 (다섯번째 반응 슬픔),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사람 (여섯번째 반응 수용),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희망을 지니고 죽는 사람 (일곱번째 반응 희망), 여유있는 모습으로 마지막 웃음을 남기며 죽는 사람 (여덟번째 반응 마음의 여유, 유머), 평소와 다름없이 밝은 마음을 유지하면서 죽는 사람(아홉번째 반응 밝은 죽음).
사람마다 죽어가는 방식이 다른 것은 삶의 방식이 차이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아무 준비 없이, 아무렇게나 마치 불행한 죽음을 원하는 듯이 죽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죽음의 방식은 자기존재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비추어주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죽음의 방식에는 그 사람의 전체가 담겨 있는 것이다. 사람마다 죽어가는 모습이 천양지차인 것은 각자가 이 삶에서 살았던 모습이 그만큼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동일한 시간과 공간에서 함께 삶을 유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똑같은 삶을 살고 있지 않고 죽음을 똑같은 모습으로 맞이하지도 않는다.
지금까지 다양한 사례와 함께 죽어가는 마지막 모습을 자세히 논의한 것은, 우리 사회에 죽음방식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전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살 것인지, 어떤 직업을 택할 것인지, 어떻게 해야 돈을 벌수 있는지 이런 질문은 수시로 던진다. 그러나 어떻게 죽을 것인지 하는 질문을 자신 앞에 던지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어떻게 먹고 살 것인지 하는 질문은 세속적인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기 마련이므로, 죽음 혹은 생명, 영혼 또는 진리같은 문제는 도외시하게 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물음은 훨씬 포괄적인 문제제기로 삶과 죽음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물음은 세속적인 성공이나 출세 그런 것만 모색하는 ‘삶의 양’(Quantity Of Life)과 관계되는 질문이다. 대신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물음은 삶과 죽음의 의미, 영혼, 가치, 삶의 보람, 죽음방식의 중요성을 의식하는 물음(Quality Of Life, Quality Of Death) 이다. 삶의 양적인 차원과 관련되는 문제는 이 세상에서만 의미있는 듯이 보일 뿐 삶의 질과는 별 관련이 없다. 삶과 죽음의 질과 관계되는 문제는 이 세상과 저 세상 양쪽 모두에 통용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인간다운 사람의 권리만 생각했을 뿐 인간다운 존엄한 죽음의 권리를 생각해 본 일이 없다. 우리 삶은 죽음에 의해 마감되므로, 웰빙은 웰다잉에 의해 완성된다.
잘 죽지 못한 삶은 결코 웰빙일 수 없다. 만일 어떤 사람이 죽음을 건강하게, 밝은 모습으로 마감하지 못했다면, 그의 삶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제, 이 세상에서만 통용되는 그런 방식으로 살 것인지, 아니면 이 세상뿐만 아니라 저 세상에서도 통용되는 방식으로 살 것인지, 자기 자신에게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죽음을 실제로 맞이하기 이전에 어떻게 죽을 것인지, 물어 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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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날씨가 무덥지만 웰다잉은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