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가(村家) / 윤오영>
나는 일찍이 어느 촌가(村家)의 사랑(舍廊, 집 사, 복도 랑)을 찾은 적이 있었다.
조그마한 초가집인데 대문 밖으로 난 사랑 툇마루에는 반쯤 햇볕이 들어 있었다.
마당가에 당댑싸리가 두어 폭이 서 있을 뿐, 그대로 한길이다.
이웃 말꾼들이 자기 집 드나들 듯 큰 기침으로 인기척만 내고 방으로 들어설 수가 있었다.
나도 이웃의 아는 사람을 따라 이 집 사랑을 찾게 된 것이다.
아랫목 쪽 머리맡에는 간소하게 만든 작은 책상이 하나 놓여 있고
그 옆에는 까만 오동나무 벼루상이 있었다.
책상 위 벽에는 대로 만든 이층 고비가 걸려 있고
윗목에는 오똑한 지장이 하나 놓여 있었다.
[지장(紙欌); 겉을 종이로 발라서 만든 옷장. 지농.]
방 한가운데는 큼직한 원형의 목재떨이가 있어
노인들이 둘러앉아 담배를 피울 수 있도록 이 방의 응접대 구실을 하고 있었다.
이 몇 개 안 되는 간소한 세간이 구격이 째여서 아담하고 청쇄했다.
[구격(具格)〔구격만[-경-] 격식을 갖춤. 또는 격식에 맞음.]
[임성삼; 청쇄는 이 뜻으로는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없습니다.
참고할 단어로는 쇄락(灑落/洒落)([쇄ː-]〔쇄락만[쇄ː랑-]〕「명사」기분이나 몸이 상쾌하고 깨끗함)이 있습니다.]
사실 이중에 하나만 빠져도 당장 불가결의 세간이지만,
하나만 없어도 이 빠진 것 같아서 실내가 아늑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 만일 눈에 띄게 값진 물건이 하나 낀다거나,
이 물건들의 대소규격(大小規格)이 바뀐다거나,
놓은 자리만 바뀌어도 이 사랑의 모습은 변한다.
지장은 오리목 몇 개만 있으면 누구나 손쉽게 짜서 종이로 바르면 되는 장이면서,
위층에는 의관을 걸어두고 아래층에는 서책을 넣고 쓰기에 편리하며,
가벼워서 추순하기 쉽고,
규격이 이쁘고 청초해 보이는 까닭에 선비들 사랑 세간으로 널리 애용되는 장이다.
[오리-목(--木)〔오리목만[--몽-]〕〖건설〗 가늘고 길게 켠 목재.
추순; 사전 세 종류에 없음.]
이 장 아래층 문에는 쌍회자 무늬를 꽉 차게 그려 가는 테를 둘렀고,
윗문에는 반초(半草)로 주련(柱聯) 모양으로 글씨를 써 붙이었는데,
좀 끄을은 글씨가 둘레의 흰 종이와 음양색(陰陽色)이 져서 선명하다.
낙관(落款, 정성 관, 정성 성의)도 서명(署名, 관청 서, 두다)도 없어
필자는 알 수 없으나
문아(文雅)한 품이 세간(世間)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서예가의 유(類)가 아니다.
격조(格調) 높은 글씨다.
이 두 폭만 표구(表具)를 해서 어느 저택에 걸어도 번듯이 빛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표구를 잘해도 이 장문에서처럼 어울릴까. 이 지장은 이 글씨의 표구로서 가장 적절한 규모이다.
[문아(文雅) ①시문(詩文)을 짓고 읊는 풍류의 도(道). ②풍치가 있고 아담함. ≒유아(儒雅).
격조(格調)[-쪼] ①문예 작품 따위에서, 격식과 운치에 어울리는 가락.]
나는 이윽고
“저 글씨는 주인장이 쓰신 겁니까?” 하고 물었다. 노인은 계면쩍게 웃으며,
“내가 무슨 수로 그렇게 쓰겠소!” 하더니 한참 만에 다음과 같이 말문을 열었다.
“그 글씨는 내 선조부(先祖父)의 글씨요. 그분이 아예 행문(行文) 행필(行筆)을 아니하시는 성미라 전하는 게 별로 없소.
그러나 아는 이들은 다 알아서 진귀(珍貴)하게 받아가곤 했지요.
내 선친(先親)이 낙향하실 때에 서울 살림을 다 처분하셨지만,
저것만은 내 선조부가 쓰시던 그릇이고 친히 써 붙이신 글씨라 소중히 여기어 내 대까지 내려왔소.
그러나 내 자식놈부터야 그걸 알겠소. 나만 가면 땔나무감이지......”하며 웃어보였다.
[선-조부(先祖父)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높여 이르는 말. ¶오늘이 저의 선조부 기일입니다.≪홍명희, 임꺽정≫]
“요새야 호마이카장이 없나 캐비넷이 없나, 저런 구질구질한 것을 누가 좋아하겠소.”
“뭐 호마이카? 캐비넷? 그건 행랑방에나 놓을 거지 어따가 놓는단 말이오?”
“주인장도 눈이 구식이라 그래. 좋기야 요새 물건이 좋지......”
“돈들은 많아서 값진 물건을 사지만 안목이 없어서...”
“값 많으면 좋은 물건이지 안목이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