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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20일 토요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
김상욱 지음
2023.5.30./ ㈜바다출판사/ 403쪽
《본문 중에서》
우주는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인간을 배제해야 물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물리와는 완전히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결국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물리의 경계를 넘어서야 한다. 이 책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경계를 넘은 물리학자의 좌충우돌 여행기이자,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을 위한 지도책이다. p.8
새로운 지식을 이해한다는 것은 자신이 이미 이해했다고 믿는 지식과 새로운 지식이 정합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해는 개인마다 다를 수밖에 없으며, 결국 복잡한 세상에 대한 총체적 이해는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날 한 사람이 모든 지식을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선 할 수 있는 일은 적어도 한 분야의 전문가가 다양한 여러 분야를 자신의 방식으로 이해하여 정리해보는 것이리라. ~ 이 책은 물리학자가 선택한 여러 이야기를 최대한 물리학자의 시각으로 정리해 보려고 했다. p.10
화학자들이 원자라는 개념에 이르게 되는 길은 그야말로 좌충우돌의 험난한 여정이었다. ~ 이미 100여 년 전에 뉴턴의 발견으로 당시 과학계는 별들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었지만, 물질의 근원에 대해서는 2000년 전 철학자 플라톤의 사원소설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라부아지에는 1789년 출판한 《화학 개론》에서 사원소설을 공식적으로 폐기한다. 더러운 셔츠에 기름과 우유를 적셔 항아리에 넣어두면 뒤가 자연적으로 탄생한다는 생명의 자연 발생설이 루이 파스퇴르의 실험으로 기각된 것이 불과 1861년의 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p.24
전자도 원자핵 주위를 도니까 궤도가 있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전자의 궤도를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 양자역학의 핵심이다. ~ 이제부터 우리는 전자가 ‘어디에’ 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있는지에 주목할 거다. 즉 양자역학은 전자의 ‘위치’가 아니라 ‘상태’를 기술한다. p.32
원자가 어떻게 결합하는지 탐구하는 학문을 화학이라고 한다. 양자역학은 원자가 그렇게 결합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 외부에서 보는 원자의 모든 특성은 전자가 결정한다. 전자는 양자역학이 허용하는 특별한 상태를 가진다. 이때 파울리의 배타 원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세상 만물은 원자로 되어 있지만 원자와 만물 사이에는 거대한 간극이 있다. ~ 하지만 만물이 원자로 되어 있다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 ‘나’라는 원자들은 다른 ‘집합’은 죽음과 함께 사라지겠지만, 나를 이루던 원자들은 다른 ‘집합’의 부분이 될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우주의 일부가 되어 영원불멸한다. p.47~48
원자핵도 흥미로운 주제지만 만물이 원자로 되어 있다고 할 때 중요한 것은 전자다. 원자핵은 원자 내부 깊숙한 곳에 숨어 있어 접근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원자들이 만나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때 실제 맞부딪히는 것이 전자다. ~ 전자들의 공간적 배치가 중요하다. 1장에서 이야기한 원자호텔과 파울리의 배타 원리가 그 배치를 결정한다. p.52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모습은 따지고 보면 원자의 특성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지구상 생명체는 수소 이온을 배터리로 사용하여 에너지를 저장한다.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수소 이온을 모으고, 동물은 호흡을 통해 수소 이온을 모은다. ~ 식물의 광합성이 태양 빛을 이요하고, 태양이 수소 핵융합 반응으로 빛을 낸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수소는 지구상 모든 생명 에너지의 근원이라 할만하다. ~ 탄소는 양자역학을 이해되는 4개의 팔을 이용하여 다양한 형태의 분자를 만드는 뼈대가 되는데, 이렇게 생명이라는 건축을 디자인한다. ~ 산소는 독이다. 비어 있는 전자의 자리를 채우려는 양자역학적 욕망 때문이다. 하지만 산소가 아니었으며 우리는 존재할 수 없다. p.72
사람의 혀는 나트륨 이온이 닿으면 짜다고 느낀다. ~ 혀가 감지하는 것은 원자가 아니라 전하다. ~ 나트륨이 생존에 중요하기에 우리는 짠맛에서 행복을 느끼고 쉽게 중독된다. 아니, 짠맛에 심드렁했다면 생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 당은 몸의 중요한 에너지원이기 때문에 기쁨을 느껴야 생존에 유리하다. p.79
돌멩이의 낙하를 설명하기 위해 양자역학으로 계산을 해야 한다면 우리는 돌멩이가 언제 떨어질지 영원히 알 수 없을 거다. 하지만 원자를 설명하려면 양자역학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자유의지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의 행동을 원자로부터 이해하려는 것은 불가능하다. 원자에서 분자, 분자에서 세포, 세포에서 인간으로 층위가 바뀔 때마다 이전 층위에서 없던 새로운 성질이 창발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층위에 따라 다른 법칙을 적용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많은 것은 다르다. p.99
자연에 존재하는 인과율의 존재를 깨닫는 순간, 인간에게 세상을 인과적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생긴 것 같다. 이해할 수 없는 많은 부분이 ‘신’의 의도로 채워졌다. 신이 인간에게 내리는 규율은 이기적이고 호전적인 호모 사피엔스가 그나마 서로 죽이지 않고 협력하는 기반이 되었으며,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신의 밥상에 숟가락을 얹었다. 신에 대한 탐구는 축의 시대를 거치며 상이한 문화권에서 비슷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바로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과 자비다.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지만 신이라는 초월적 존재에 이르는 길에는 왕도가 있었던 거다. 이후 종교는 세속화되기도 하고 권력과 더 긴밀히 결탁하기도 했지만, 그 핵심 내용은 지금까지 크게 변하지 않은 채 전해지고 있다. 결국 신은 인간이 다른 인간과 함께 조화롭게 살기 위해 만들어 낸 궁극의 상상력이었던 것이 아닐까. p.108~109
지구 표면에서 가장 많고 중요한 원자는 산소다. 지각의 거의 모든 물질은 산화물의 형태로 존재한다. 산화는 생명이 에너지를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다. 규소는 무생물의 뼈대이고, 탄소는 생물의 뼈대다. 규소와 탄소가 모두 14족 원자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규소로 된 땅바닥, 그 위에서 살아가는 탄소 생명체, 그리고 모든 물질을 넘나들며 변화를 일으키는 산소라는 구도는 생명체가 존재하는 지구형 행성의 보편적인 모습일 가능성이 크다. p.128
사실 우리가 사는 지구 표면이야말로 우주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정말 희귀한 환경이라 할만하다. 아무리 추워도 영하 100도 이상이고 아무리 더워도 100도 이하라니! 더구나 물이 액체로 존재하다니! p.166
우주는 시공간상에서 물질이 운동하며 만들어 내는 거대한 연극이다. 물질의 운동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지구상 모든 물질이 운동하는 원인, 즉 에너지의 근원을 추적하면 태양에 다다른다. 태양은 원자핵의 융합에서 나오는 열로 불타오른다. 이렇게 우리는 별과 연결되고, 별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원자핵과 연결된다.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핵은 변하지 않는 물질의 토대가 되지만, 별의 원자핵은 쪼개지고 합쳐지며 우주를 움직이는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어떤 원자핵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에너지는 또 다른 원자핵으로 만들어진 물질들의 움직임을 추동한다. 이렇게 우주는 원자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와 같다. p.166
물리학은 뉴턴이 중력을 설명하며 탄생했다. 그 이후 발견된 모든 힘과 입자는 하나의 통합된 시각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한데 중력만 예외다. ~ 중력은 시공간과 관련한 힘이며 우주의 거대한 규모에서만 중요성을 갖는다. 원자 규모에서 중력 효과는 무시할 만한 수준이다. 표준 모형의 힘은 물질을 설명하며 원자 규모에서 중요성을 갖는다. 하지만 시공간에 대해서는 많은 설명을 해주지 못한다. 표준 모형이 중력을 포함하도록 확장되는 날, 우주의 모든 것을 명징하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p.188
원자를 이해하자 인류 문명의 모습 자체가 바뀌게 된다. 19세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컴퓨터, TV, 플라스틱, 스마트폰, 인터넷, 형광등, 합성섬유, 항생제, 인공위성, 생명공학 기술 등이 20세기에 나타난 것은 20세기 초 인간이 원자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p.190
생명은 우주에서 가장 흔한 원자로 되어 있지만, 우주는 죽음으로 충만하다. ~ 죽음으로 충만한 우주에 홀연히 출현한 생명이라는 특별한 상태. 어쩌면 우리는 죽음이라는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잠시 생명이라는 불안정한 상태에 머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죽음은 이상한 사건이 아니라 생명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생명이 부자연스러운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고통으로 가득한 것은 아닐까? 물리학자의 눈으로 죽음을 바라보면 생명은 더없이 경이롭고 삶은 더욱 소중하다. 이 기적 같은 찰나의 시간을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며 낭비하거나 남을 미워하며 보내고 싶지 않다. ~ 죽음이란 원자의 소멸이 아니라 원자의 재배열이다. 내가 죽어도 내 몸을 이루는 원자들은 흩어져 다른 것의 일부가 된다. “인간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라는 말은 아름다운 은유가 아니라 과학적 사실이다. 이렇게 우리는 원자를 통해 영원히 존재한다. p.195~196
모든 생명이 갖는 명백한 특성이 하나 있다. 바로 자신의 형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이것은 놀라운 일이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점점 무질서해진다는 말이다. ~ 엔트로피 증가를 거슬러 형태를 유지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 ~ 생명을 볼 때 물리학자의 첫 번째 관심사는 바로 자신을 유지하고 보존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다. 자크 모노(1965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는 그의 책 《우연과 필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진화는 결코 생명체의 고유한 속성이 아니다. 오히려 보존 메커니즘이야말로 생명체만이 특권적으로 유일하게 가진 독특한 본성이며, 진화란 이러한 보존 메커니즘의 불완전성으로 인해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p.204~205
포도당은 생명의 에너지원이다. 그래서 단맛이 난다. 달고 맛있어야 우리가 먹으려고 환장할 테니까. 아니, 진실은 그 반대일 거다. 포도당을 많이 먹어야 생존에 유리하니까 포도당을 먹으면 행복하도록 미각이 진화한 것이다. p.210
ATP는 생명 에너지의 화폐다. ATP가 ADP로 변환되며 에너지가 방출되는데 이것으로 생명이 필요로 하는 대부분의 에너지를 제공한다. ~ 세포내 연쇄 화학 반응은 컨베이어벨트로 정교하게 제어되는 기계 생산 공정과는 다르다. 분자들이 그냥 무작위로 움직이다가 서로 우연히 만나면 일어나는 화학 반응의 집합이다. ~ 화학 반응을 일으키는 그 많은 효소들은 어디서 왔을까? 효소는 단백질이다. 단백질을 만드는 정보는 유전자에 들어 있다. 유전자는 DNA이고, DNA로부터 단백질을 만드는 과정이야말로 생명의 ‘중심 원리’라 불리는 생화학 과정이다. ~ 결국 생명은 “효소의, 효소에 의한, 효소를 위한” 원자들의 집단이다. p.217~221
생명의 핵심은 스스로를 보존하는 것이다. 복제, 번식, 진화도 일단 생존해야 할 수 있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우주에서 자신을 보존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 지구상의 동물은 호흡으로 에너지를 얻는다. 우리는 에너지를 이용하여 걷고 숨 쉬고 생각하고 번식한다. 한때 이 에너지를 신비한 생명의 기운 같은 것으로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호흡으로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은 연쇄 화학 반응에 불과하다. 우리는 화학 반응이 이렇게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살아 있다고 말한다. 생명에 쓰이는 원자는 무생물에 쓰이는 원자와 동일하다. 생명은 원자로 만들어진 화학 기계다. p.228
생물은 정교한 생화학 기계다. 이 기계는 수많은 원자로 되어 있고 물리 법칙에 따라 작동한다. 수많은 원자가 관여하는 이상 실수는 반드시 일어난다. 예측 불가의 불확실성은 원자 세계를 기술하는 양자역학에 내재된 본질적 특성이다. 제법 큰 규모의 원자 기계에서는 열역학적 요동이 실수의 이유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류가 누적되고 고장이 잦아지다가 생화학 기계는 결국 작동을 멈춘다. 우리는 이것을 ‘죽음’이라고 부른다. 죽음을 피하는 방법은 없다. 오류가 누적되는 것은 엔트로피가 늘어나는 현상이고, 엔트로피는 결코 줄어들 수 없다. 열역학 제2법칙 때문이다. ~ 항상성 유지가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쟁취해야 하는 생명의 지고지순한 목표라면 한 가지 꼼수가 있다. 축적된 엔트로피로 너덜거리는 개체를 유지하는 데 안간힘을 쓰지 말고 자신을 하나 더 만드는 것다. 바로 복제다. 물론 자신은 죽고 복제품만 남는 것이니 개체 입장에서는 목표를 이룬 것인지 확실치 않다. 메피스토와의 거래 같기도 하다. p.231~232
복제의 첫 단계는 DNA 이중 나선을 벌리는 것이다. ~ DNA가 벌어지며 풀리면 근방의 DNA 이중 나선과 과도하게 꼬일 수 있다. ~ 이를 막기 위해 벌린 부분 앞쪽에 ‘DNA 회전 효소’가 결합하여 뒤틀림을 막는다. 벌려서 풀려나온 단일 가닥 DNA도 구조적으로 불안정하여 조치가 필요하다. ‘단일 가닥 결합 단백질’이 그 문제를 해결한다. 풀린 DNA의 단일 나선 위를 움직이며 나머지 절만을 상보적으로, 즉 A-T, C-G 결합으로 마주 보는 이중 나선을 만들어 내는 임무는 ‘DNA 중합 효소’의 몫이다. 이 단계에서 염기 10만 개당 하나꼴로 실수가 일어난다. 10만 개당 하나의 실수라면 적은 것 같지만 이 정도면 복제가 곧 죽음이다. 오류를 더 줄여야 한다. 이 일은 누가 할까? ~ 복제 중에 일어난 오류를 수선하는 효소가 있는데 인간의 경우 지금까지 130가지가 발견되었다. 수선을 마친 후 오류는 염기 10억 개당 1개로 줄어든다. p.239~240
생명체의 진정한 특성은 오류를 수정하는 능력이다. ~ 오류 보정 과정도 원자 수준의 작업이다. 복제에서 일어나는 모든 작업을 제어하는 것은 효소다. 효소는 단백질이다. 단백질은 DNA의 적절한 부위에 들러붙어서 DNA를 자르거나 연결한다. 단백질에 눈이 있어 적절한 부위를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단백질은 DNA의 적절한 부위에 정확히 들어맞는 구조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단백질이 적절한 부위에 결합하는 것은 그냥 무수히 들이대서 일어나는 일이다. ~ DNA 오류 보정 단백질이 DNA에 결합하는 방법이 이런 식이다. 그래서 단백질이 효소로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는 단백질이 갖는 삼차원 구조에 의존한다. 형태는 기능을 결정한다. p.242~243
생물은 원자로 만들어진 화학 기계다. DNA, RNA, 단백질 모두 원자로 되어 있고, 이들 사이의 화학 반응은 양자역학에 따라 작동한다. 화학 반응을 지시하는 존재는 따로 없다. 충분히 많은 분자가 빠른 속도를 갖고 무작위로 움직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원자 수준에서 이것을 위한 어떤 의도나 목적은 없는 듯하다. p.261
지구 밖에서 다른 생명체를 발견하는 날 이 문제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외계 생명체의 화학 체계가 지구의 생명과 유사하다면 생명의 보편 원리가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보편 생명에 대한 이론을 구축해야 한다. 지구 밖에 생명체가 없다는 것은 우주 전체를 샅샅이 확인할 때까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외계에 생명체가 없다고 가정하면 우리는 그 엄청난 우연의 산물일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p.262
핵막이 없는 원핵생물, 즉 세균은 다른 죽은 세균들의 DNA를 받아들여 쉽게 변이를 일으킨다. 이 때문에 인간과 병원균의 전쟁에서 신약이 개발되는 속도보다 세균의 돌연변이가 빠를 수 있다. 진핵생물은 핵막을 만들어 공생 개체들의 DNA로부터 자신의 DNA를 보호할 수 있었지만, 다른 개체의 DNA를 바로 자기 DNA에 삽입하여 빠른 변이를 일으킬 수 있는 원핵생물의 장점은 잃어버렸다. 좀 더 다양한 유전 정보를 갖는 자손을 얻기 위해 진핵생물이 고안한 발명품은 성(性)을 통한 유성생식이었다. 공생이 아니었으면 성(sex)의 기쁨도 없었을 거란 이야기다. p.282
인간이 야기한 환경 변화로 여섯 번째 대멸종이 진행 중이라는 증거가 많다. 인간이 지구의 생태계를 극적으로 왜곡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 인간의 활동으로 지구의 평균 온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기후 변화는 생태계를 훨씬 극적으로 교란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생물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것이다. 하지만 대멸종이 일어날 때, 최상위 포식자는 언제나 멸종했다. 참고로 지금 최상위 포식자는 인간이다. p.303~304
프랑스 남부의 쇼베 동굴에는 이 시기 호모 사피엔스가 그린 벽화가 남아 있다. ~ 쇼베 동굴은 신성한 장소였으며, 그림을 그린 사람들은 사제나 주술사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신(神)이란 개념이 이 시기에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인간이 허구(虛構)를 믿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뜻이다. ~ 서로 유전자가 다른 호모 사피엔스들이 상대를 신뢰하고 협력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만든 상상의 질서를 믿어야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핵심 역할을 한 것은 언어였다. p.329~330
물리학자가 보기에 인간이 만든 허구의 체계를 연구하는 학문이 인문학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문학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인간’이 가장 중요하다. ~ 농업혁명이 가져온 또 하나의 중요한 결과는 천문학의 탄생이다. ~ 훗날 천문학은 물리학의 탄생으로 이어져 인류를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이끌게 된다. 과학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가장 큰 장애물은 자연에까지 스며든 인간의 허구를 걷어내는 거였다.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불경스러운 주장이라고 분노했다. 불경스럽다는 것은 허구에나 사용하는 개념이다. ~ 인간은 허구를 만들어 문명을 건설하기 시작했지만, 과학혁명의 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허구이고 무엇이 허구가 아닌지를 구분해야 했다. 과학혁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p.334~335
인간에게 있어 사회성은 생존에 결정적 요소다.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의 눈에는 ‘공막’이라는 것이 있다. 눈동자 주위 하얀색 부분이다. 이 때문에 눈동자의 방향이나 움직임을 정확히 알 수 있다. 즉 자신의 시선 정보를 노출하고 있다. 이는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해부학적 증거다. 인간 사회 자체가 그들이 만든 허구 위에 세워져 있다. 허구에는 종교, 도덕, 경제, 예술, 규범, 법과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 인간이라면 이런 것을 익히는 데 자신의 시간 대부분을 써야 한다. p.337
현재 우리는 생각하는 방법을 두 가지 알고 있는 셈이다. 하나는 인공지능이나 뇌 같은 신경망, 다른 하나는 컴퓨터, 즉 튜링머신이다. 신경망은 수많은 경험과 데이터를 이용하여 학습한다. 학습이란 시냅스의 세기 혹은 가중치를 바꿔주는 것이다. 학습에는 목적이 필요하다. 목적은 주어진 입력으로부터 가장 적합한 출력을 얻는 것이다. 목적을 이룰 수 있다면 시냅스의 세기나 가중치가 어떤 형태를 갖든 무방하다. 사실 답을 얻고도 왜 시냅스들이 그런 형태를 갖는지 이해하기는 힘들다. 반면 튜링머신은 처음부터 완벽하게 계획된 매뉴얼이 필요하다. ~ 신경망은 목적이 우선이고, 튜링머신은 규칙이 우선이다. 인간의 시각에서는 인공지능이 튜링머신보다 더 우월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의 착각이다. 서로 잘하는 분야가 다를 뿐이다. ~ 두 가지 외에 또 다른 체계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생각이 무엇인지, 의식이 무엇인지 논의하려면, 적어도 두 체계를 넘어서는 수준에서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p.355~357
인간이 가진 특별함은 우리의 몸이 아니라 생각, 형태를 가진 실재가 아니라 무형(無形)의 상상에 있다. 바로 인간의 문화다. p.364
언어를 이용할 수 있어 인간의 사회는 다른 동물의 사회보다 더 강력하고 정교한 소통이 가능하다. 인간은 더 깊은 공감, 더 강한 협력을 할 수 있고 상대의 마음읽기에도 능하다. 나아가 가상의 스토리도 만들어 낼 수 있는데, 이는 허구를 믿는 능력과 관련 있다. 물리적으로 볼 때 ‘지폐’는 색칠한 종이 쪼가리다. 하지만 지폐가 가진 허구적 가치를 믿지 않는다면 경제는 즉시 혼란에 빠질 것이다. 도덕과 윤리도 그것이 왜 옳은지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옳다는 것을 믿지 않는 순간, 사회는 붕괴하고 말 것이다. ~ 인간이 만든 허구의 체계를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역사를 보는 것뿐이다. 인간의 역사 또한 진화와 비슷하게 좌충우돌 변화해 왔다. p.395
세상은 기본 입자에서 원자, 분자, 생물, 지구, 태양, 우주로 이어지는 다양한 층위로 구성된다. 각 층위는 자기만의 창발된 특성을 가지기 때문에 하나의 층위를 그것을 구성하는 하위 층위의 특성으로 쉽게 환원할 수 없다. 각 층위의 개별 특성을 알고, 이웃한 층위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파악하고, 전체를 조망할 때만 세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은 물리학자의 눈으로 본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다. ~ 이제 나는 다른 분야의 전문가가 들려주는 세상 모든 것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이렇게 서로가 다른 분야로 한 발짝씩 내딛다 보면 언젠가 모두가 모든 것을 이해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p.396~397
《목차》
들어가는 글
1 원자는 어떻게 만물이 되어 가는가
1장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2장 내 이름은 원자
3장 물질을 만드는 세 가지 방법
물리학자에게 신이란
2 별은 어떻게 우리가 되는가
4장 물리학의 관점으로 본 지구
5장 핵과 별, 그리고 에너지의 근원
6장 기본 입자가 빚어내는 우주의 신비
물리학자에게 죽음이란
3 생명, 우주에서 피어난 경이로운 우연
7장 생물은 화학 기계다
8장 생물은 정보 처리 기계인가
9장 최초의 생명체와 진화
10장 다세포 생물에서 인간까지
물리학자에게 사랑이란
4 느낌을 넘어 상상으로
11장 우리는 어떻게 호모 사피엔스가 되었는가
12장 나는 존재한다, 더구나 생각도 한다
13장 느낌과 상상, 인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