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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등반 내용을 남겨주고, 복사 가능케한 네이버 rawild씨에게 감사합니다.
2019년 4월 18일 ~ 5월 8일 총 20일 동안 다녀온 알프스 원정 산행의 첫 번째 이야기.
(4월18일~21일 4일간의 이야기)
바쁘지도 않은데 블로그 안 하다가 기록해 놓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 이제야라도 올린다.
지난겨울 동안의 훈련을 실행에 옮기는 시기가 되었다.
아이거 북벽을 오르기 위해 스위스 알프스로 향하는 것이다.
출발 전부터 계속되는 기상 악화로 인해 페널티를 물어가며 원정 계획을 일주일 미뤄 출발하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는 미루지 말고 그냥 갔어야 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 외에도 많은 생각과 감정이 교차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아이거 북벽 등반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큰 경험을 하고 왔음은 분명하다.
건강히 잘 다녀올게.
이렇게 어린 딸과 집사람만 남겨두고 20일간의 해외 등반을 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렇게 보내주는 집사람의 결정이 대단한 일이다.
다시 한번 20일 동안 독박 육아를 감당하며 등반을 응원해준 집사람에게 감사한다.
시시콜콜한 비행기 이야기는 빼고..
무사히 스위스 취리히 공항에 도착해 예약한 렌터카를 타고 그린델발트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계속 보고 있던 meteoblue의 기상 예보가 정확히 들어맞았다.
날씨가 좋을 때 바로 등반할 계획이라 헬기 구조 서비스를 신청해야 했다.
우체국에서 REGA에 돈을 입금해야 하는데 부활절 주간이라 우체국이 오전 근무만 한다.
짧은 영어로 정신없이 구글을 뒤져 웹상에서 카드 결제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보통 헬기 보험이라고 알고 있는 REGA의 구조 서비스는 보험이 아니다.
1년에 30CHF(스위스 프랑)을 내고 후원자가 되면 1년 동안 REGA의 구조를 받을 수 있다.
https://www.rega.ch/en/support-rega/become-a-rega-patron.as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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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GA는 스위스 알프스 전 지역을 커버하지만
체르마트 지역은 에어 체르마트의 레스큐 카드를 따로 구입해야 한다.
장비점에 들러 필요한 장비를 산 후 호텔을 잡고 겁도 없이 다음날 바로 아이거 북벽을 등반할 계획으로 배낭을 꾸리고
잠을 청했다.
스위스의 장비점에는 마운틴 하우스 같은 동결건조식품을 팔지 않는다.
4월 19일
배낭을 꾸리긴 했지만 날씨가 어떨지 몰라 뚜렷한 계획 없이 아침에 일어났다.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체크아웃을 마친 후 장비점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최근에 아이거 북벽을 등반한 팀이 있는지 물어봤다.
장비점에서의 대답은 2월에 워터폴 침니에서 사망 사고가 있었고 3월에도 한 팀이 2nd 아이스 필드에서 구조를 당했다는 것이다.
날씨가 너무 건조해서 2nd 아이스 필드를 넘어갈 만한 상황이 아니라고 했다면서
지금은 날씨가 좀 따뜻하니 어떨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정상에 구름이 잔뜩 껴 있어 겁이 났다.
일단 고소적응과 하산길을 익히자는 계획을 세우고 미텔레기 릿지를 등반하기로 했다.
개념도 상에 아이스미어 역에서 내려서 산장까지 2시간 어프로치, 그리고 다음날 8시간 등반, 4시간
하산이라고 되어 있어서 적응 등반으로 좋겠다 판단했다.
미텔레기 산장을 예약하기 위해 전화를 하니 69CHF( 69 스위스 프랑 )에 저녁 식사, 아침 식사를 제공한다고 했다.
산장에는 침구류가 없으니 침낭은 챙겨와야 한단다.
오후 7시 전에 와야지 저녁식사를 할 수 있다고 해서 서둘러 미텔레기 등반에 맞게 배낭을 다시 꾸리고
기차를 타고 산장으로 향했다.
14시 34분 열차를 타고 클라이네샤이덱에서 내려 융프라우행 열차로 갈아탄 후
아이스미어에서 내리니 안내원이 클라이밍을 하러 가냐며 갱도를 안내해준다.
갱도 출입구를 나가니 얼음 바다 끝에 미텔레기 산장이 눈에 보였고 기분 좋게 설원을 걷기 시작했다.
멀고 힘든 길이었지만 그동안 체력 훈련도 열심히 하고,
이런 만년설을 언제 또 밟아볼까 즐거운 마음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하지만 2시간이면 된다는 어프로치는 4시간이 걸렸고,
7시까지 도착하기 위해 마지막에 있는 설벽 구간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빠르게 올라갔지만 산장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냥 닫혀 있는 게 아니고 아무도 다녀간 흔적이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예약한 곳에 전화를 다시 걸었지만 전화도 받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산장 아래에 있는 무인 산장의 출입구는 2M 가량 높이의 눈으로 꽉 막혀 들어갈 수 없고.
식사를 제공한다 해서 먹을 것도 샌드위치 한 개씩과 초코바 같은 비상식량이 고작이었다.
내가 전화로 예약했기에 이 상황이 모두 내 책임인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 미친 듯이 눈을 파냈다.
1시간 넘게 눈을 파내고 문이 열리는 그 순간 이미 정상에 오른 듯 기뻐 소리 질렀다.
허기를 달래려 내일 먹을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다.
그마저도 내일을 위해 반쪽만 먹고 반쪽은 남겨뒀다.
아침에 남은 반쪽을 먹고 점심은 비상식량으로 해결
하루 만에 등반을 끝내고 하산해서 저녁식사를 하면 된다는 계산이었다.
그래도 무인 산장의 문이 열린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출입구의 눈을 파내며 녹초가 되어버린 몸이었지만 아주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4월 20일 05시 기상
개념도 대로 정상까지 8시간, 하산에 4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아무런 의심 없이 계산했다. 막상
일어나니 어제 출입문을 열기 위한 몸부림으로 몸은 만신창이였고, 저녁과 아침으로 반쪽씩 먹은
샌드위치도 이제는 없었다. 남은 건 오직 비상식량과 무인 산장 한 켠에서 누가 남겨둔 커피뿐이다.
눈이 덮여 있어 초반에는 계속 크램폰을 신고 등반했다.
하지만 크램폰이 시간을 지체하는 요소라는 것을 알게 되고 크램폰을 벗고 등반하기 시작했다.
등반이 어려운 루트는 아니지만 눈 때문에 확보물과 홀드를 찾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아이거의 역단층은 북벽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곳에도 확보물 설치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고,
간혹 보이는 볼트들도 찾기 힘들어 그냥 지나치고 가는 경우가 많았다.
손 홀드를 찾기 위해 털어낸 눈은 발 홀드에 쌓여 다음 스텝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등반한지 4시간, 4시간만 더 가면 정상이라는 기대로 눈을 퍼먹으며 계속 등반을 이어나갔다.
재혁이 형이 힘이든지 구조 헬기를 부르자고 한다.
겨울에 소승폭에서 맞은 낙빙으로 생긴 목 디스크와 어제 눈을 파내며 체력이 많이 떨어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곳의 날씨예보를 지켜본 결과, 어쩌면 아이거에 다시 오를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헬기를 부르면 내려가자마자 한국에 돌아가겠다며 선배에게 협박 아닌 협박을 하며 조금만 힘내서 가보자며 등반을 이어나갔다.
어느덧 등반을 시작한 지 8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이 봉우리만 넘어서면 정상이겠지 하고 올라서면
눈앞에 더 큰 봉우리가 나타나고, 또 나타났다.
계속 선등을 이어가던 나도 지치고 으슬으슬 몸이 떨려오기 시작한다.
잠시 쉬어가자며 털썩 주저앉아버린 어느 안부에서 어차피 오늘은 늦어 하산할 수 없으니 이곳에서
비박을 하자 말했다.
재혁이 형은 떨고 있는 나를 보고 저체온증을 걱정했는지 여기서 쉬면 안 된다고 정상에서 비박을
하자며 계속 가자고 한다.
앉아서 좀 쉬니 체력이 조금 회복되고 조금 걸으니 체온도 다시 올랐다.
지긋지긋한 능선길이 어이지고 있었다.
아이거 북벽을 등반해 올라서도 걸어야 하는 능선인데 무척이나 길다. 북벽을 통해 올라왔다면
더더욱 질릴만한 길이다.
오후 7시 47분, 거의 13시간이 걸려 정상에 도착했다.
아이거의 정상은 내가 기대한 것보다 감동이 있지 않았다.
정상에는 하산길을 통해 올라온 이들의 발자국과 소변 자국도 있었고,
눈이 내려 누구의 발자국도 없던 토왕폭 정상의 기쁨이 훨씬 컸다.
어쩌면 전날 무인 산장의 출입구가 열리며 정상보다 더 큰 기쁨을 모두 맛봤는지도 모르겠다.
정상에 박혀 있는 볼트에 몸을 고정하고 비박을 준비했다.
배낭을 깔고 침낭을 덮고, 눈을 녹여 산장에서 챙겨온 커피를 끓였다.
배낭 구석에 남아있던 견과류를 몇 조각과 커피를 함께 마시고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왕 하게 된 비박이니 수없이 많은 별이 반짝이는 하늘 아래서의 비박을 기대했지만 구름에 가려진
별들은 한 번도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4월 21일
거센 바람과 추위에 싸우며 자고 깨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등 뒤로 동이 터 오르고 있었다.
붉게 달아오른 하늘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멋진 광경이었지만, 너무 추워 침낭에서 나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재혁이 형이 용감하게 먼저 침낭에서 나와 그 광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눈을 녹여 마지막 커피를 끓여주고 나눠 마신 뒤 하산하기 시작했다.
조금 가파른 하산 구간을 지나니 저 밑에서 스키어가 한 명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내가 움직이면 낙빙이 생기기에 한쪽에 멈춰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먼저 다가와 인사하며
말을 걸기 시작한다.
정상에서 자고 왔다고 하니 대단하다며 어느 루트를 통해서 올랐는지 물어본다.
미텔레기를 통해서 올라갔다고 하니,
미텔레기는 여름에 등반하는 곳이라고 한다.
우리도 겨울만 아니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렇게 눈이 많고 시간이 걸릴지는 상상도 못 했다.
그래도 무사히 하산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11시 35분 아이거 글레쳐역에 도착했다.
운 좋게도 클라이네 샤이덱으로 가는 하행 기차가 대기하고 있어 지체 없이 내려갈 수 있었다.
몸에 있는 지방을 모조리 태운 느낌에 머릿속에는 온통 고기 생각뿐이다.
클라이네 샤이덱에서 그린델발트행 기차를 기다리며 소시지와 맥주를 먹었다.
그 후 휴식은 홀드리오 캠핑장에서 했다.
캠핑장과 그 이후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
추가 포스트
막상 보니 미텔레기 등반에 필요한 장비를 안 써놨다.
기본적인 등반 장비는 당연히 필요하고. (하네스, 하강기, 로프, 헬멧)
1. 로프 40m 싱글이면 충분할듯하지만 하산할 때 하강을 생각하면 50m 싱글을 챙겨야겠다.
우리는 60m 9.2mm 드라이 싱글 로프를 사용했는데
안자일렌으로 등반하기에 몸에 감는 양이 많아서 귀찮고 무겁다.
2. 퀵드로우는 4~5개
3. 퀵드로우 보다는 알파인 드로우가 여러모로 더 좋은 듯
Alpine Draw : ( 통상 슬링 60Cm, 양쪽에 카라비너를 엮은 것 )
4. 60cm 런너 7~8개, 런너당 카라비너 하나.
확보물이 볼트가 아니라 대마로프를 고정하는 말뚝이다 보니 퀵 보다는 런너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5. 캠 링크캠 2개, (빨강, 초록)
링크캠 2개의 무게 보다 BD UL CAM 4개가 더 가벼워서 BD UL CAM 4개를 사이즈 맞춰 가지고
갔는데 설치하고 보니
링크캠( 멀티 캠 )이 훨씬 유용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캠을 2개 이상 치고 올라설 구간은 없다.
6. ICE AXE 1인 1자루
노믹 2자루를 가지고 등반했는데 클라이밍 구간에서는 쓸 일이 거의 없다.
그래도 한 자루는 있어야 한다.
7. 크램폰
내가 등반하던 시기에는 눈이 많은 편이라 크램폰을 신고 등반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초반에는
계속 신고 등반했다.
하지만 등반 구간보다는 칼날 능선을 걷는 구간이 많기 때문에 크램폰 없이 등반을 하는 것이 더
편하고 시간도 단축된다. 그
런데 어차피 아이스 미어 역에서 미텔레기 산장까지 어프로치를 위해서는 있어야 하기에 준비는
하고 등반에는 알아서 잘 선택하면 되겠다.
8. 침낭
겨울 등반이 아니면 미텔레기 산장에서 1박 후 새벽에 출발해서 8시간 등반 후 그날 하산까지
끝난다.
그래도 미텔레기 산장에 침구류가 없기 때문에 침낭은 챙겨가야 한다.
그 이외의 정보들은 미텔레기 산장 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Mittellegi Startseite Herzlich Willkommen! / Welcome! Reservation Zustieg / Approach Touren / Routes Geschichte / History Häufige Fragen / FAQ Links Reservation Sehr gerne nehmen wir Ihre Reservation telefonisch entgegen. Tel. +41 33 853 03 66 Please make your reservation by phone: Tel. +41 33 85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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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이거 북벽은-
실력을 더 쌓은후에 도전...!!
이번 원정에..가능하다면...
미텔레기 능선으로 아이거 정상에 가보고
싶네요~ㅎ^^
끝없는 등반 열정이 부럽습니다.
박수를....짝짝짝
고맙습니다.^^.
@김대일 ㅡ 우선 순위 1.. Mattehorn.
ㅡ 우선 순위 2.. Mittellegi ridge.
ㅡ 우선 순위 3.. Mont Blanlc.
ㅡ 우선 순위 4.. 기타.
??
@곽노성(샛별) 형님.
난 3년뒤에 몽블랑 솔로 등반 가고 싶어유....ㅋㅋ
@곽노성(샛별) 오와~♡
좋습니다.^^.👏👏👏
@곽노성(샛별) 모두의 컨디션이 좋고-
좋은 날씨가 이어진다면-
1~~4번 전부다 해내고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퐈~~이띵..!!👍👍👍
@산속으로(김형준) 몽블랑 솔로등반-
응원합니데이~^^ㅎㅎ
@산속으로(김형준) ㅡ ㅇㅋ....
ㅡ 내 경우...둘이서 몽블랑..혼자는 민폐 끼칠 염려가 많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