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풀이 : 깨달을 각(覺)
배운[學] 바를 오래도록 익히면 達通달통의 경지를 거처 가리워진 것을 능히 볼[見] 수 있게 되는 법이다.
오랫동안[久구] 익히면[熟숙] 達달(to run; 달려다니다)이 된다.
여기에서 熟達숙달이란 말이 나왔다.
오랫동안 達달이 계속되면 通통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여기에서 達通달통이란 말이 나왔다.
오랫동안 通통이 계속되면 覺각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이 단계에 오른 이는 많지 않기에 通覺통각이란 말은 잘 쓰이지 않는다.
覺者각자는 마음의 문이 열려 능히 가리워진 것을 볼 수 있으며 숨겨진 사실을 알아낼 수 있는데, 이를 無不通知무불통지의 경지라고 한다. 이런 까닭에 覺者각자는 無不通者무불통자라고도 불리운다.
學而時習之학이시습지라!
배운[學] 바를 오래도록 熟숙[習익힐 습]하면 達通달통의 경지를 거쳐 가리워진 것을 능히 볼[見] 수 있는 覺각에 이르게 되는 법이다.
동방문자 '學(배울 학)'과 '見(볼 견)'의 합성자인 覺의 일본음 카꾸(カク)는 한국음 각에서 비롯된 것이며, 覺의 한국음 각은 見(견)에서 ㄱ을, 學(학)에서 ''을 취한 것이다.
각(覺) = ㄱ(見견) + (줄임형 ← 學학)
따라서 허신이『설문해자』에서 '從見學省聲종견학생성'(見을 따르고 그 음은 자형이 생략된 學을 따른다)라고 언급한 점, 즉 覺각의 음은 學학에서만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다시 말해, 覺각의 구성자인 見견과 學학은 허신과 그를 추종하는 중국학자 및 그 중국학자들을 추종하는 중국화된 한국, 일본 등의 학자들의 말처럼, 見견은 의미요소이고 學학은 발음요소가 아니라, 둘 다 의미요소이자 동시에 둘 다 발음요소이다.
발음과 의미에 관계된, 허신 이후 2천년간의 학설은 이제 깨져야 한다.
覺의 중국음 chüéh(또는 jué)는 우리나라 및 일본의 음과는 무관한 것으로 見견의 중국음 chièn(또는 jiàn)과 學학의 음 hsüéh를 합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chüéh(覺)= ch(見chièn) + üéh(學hsüéh)
그러므로 위에서 언급한 覺의 일본음 카꾸(カク)는 한국음과 관계있지 중국음과는 관계없음을 알 수 있다(물론 위의 비교는 한중일의 상고음을 비교한 것은 아님).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고 일본의 학자들이 한국음을 일부러 배제하고 일본음을 중국음과만 비교하려는 발상은 실로 위험천만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배운[學] 바를 오래도록 익혀 마침내 達通달통의 경지를 거쳐 가리워진 것을 능히 볼[見] 수 있게 된 상태를 형용한 동방문자 覺각은 '깨닫다'의 의미를 기본으로 하여 다음과 같은 여러 뜻들을 나타낸다.
覺각: 배운[學] 바를 오래도록 익혀 가리워진 것을 능히 볼[見] 수 있게 되다
↘↘ 깨닫다 → 깨닫게 하다 타동사 → 깨달음 명사 → 깨달은 사람[達人달인]
↘↘↘↓↘ 크다[大대], 높다[高고] ← (크고 높은 사람 )↙
↘↘↘↓↘ ↘ 훤히 알게 되다 → 알다/인지하다 → 알리다/기억하다/느끼다
↘↘↘↓↘↘ ↘ 훤히 드러나다 → 나타나다/나타내다 → 밝히다
↘↘↘↓
↘↘↘↓↘ 바르게 알게 되다 → 똑바르다 → 곧다[直직]→ 정직하다
↘잠에서 깨다 → (현실로 돌아오다) → 현실 → 이승
↘↘↘↘↘↘ 깨우다 → 일으키다
다음은 覺의 속자 및 약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