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쪼 고서점 거리. 위키피디아 사진>
일본은 서점의 나라이다. 거대한 서점이 곳곳에 있다. 東京(토쿄) 역전의 八重洲ブックセンター(야에스북센터)는 거대한 건물 8층 전체가 서점이다. 창업주가 모든 책을 다 갖춘 대형서점을 만들기로 했다고 벽에 써놓았다.
그 뜻대로 되지 않았다. 출판사에서 기획해 만드는 대중용 읽을거리 소책자가 폭발적으로 많이 나와 서점을 점령해 버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내용이 진지하고 값이 비싼 전문서적은 꽂힐 자리가 없다. 비슷한 규모의 대형서점이 몇 개 더 있어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대중용 읽을거리 소책자는 전철을 타고 시선을 가리는 데 쓰기 위해서도 누구나 산다. 값이 2천앵 이상인 전문서적은, 교수도 사지 않고 도서관에 있는 것을 이용한다. 대중출판이 극도로 발달해 학술출판을 위축시키는 양극화 현상이 일본에서 가장 심하게 나타난다. 전문서적은 점점 줄어든다. 자국 고전문학에 관한 연구 서적 출판 종수에서 일본은 한국의 10분의 1도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일본 역사의 수수께끼를 풀어준다면서 알록달록하게 치장한 갖가지 책이 너무 많이 나와 서점을 다 메울 것 같다. 출판사 편집부에서 대강 만들었거나, 도깨비 같은 저자들이 독자를 현혹하는 시합을 하는 것들이다. 믿을 만한 학자가 일본 역사를 착실하게 정리한 개설서는 어느 서점에 가서도 찾을 수 없고, 나오지 않은 것 같다. 여러 사람이 분담 집필한 거질의 일본사 연구는 신간 서점에서 일부라도 구경하면 다행이고, 고서점에 가야 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일본에는 고서점도 아주 많다. 고서점이 일본만큼 많은 나라는 없을 것이다. 고서점이 일본의 큰 자랑거리이다. 東京 神保町(진보쪼) 일대에 고서점이 몇백 개나 있으며, 각기 전문분야의 책을 판다. 대형서점에서 꽂힐 자리가 없는 내용이 진지하고 값이 비싼 책은 고서점으로 직행해 독자와 만날 수 있다. 고서점을 돌아보는 것은 좋은 관광이고 취미이고 모험이다. 나는 큰맘 먹고 많은 시간을 배정해 神保町 일대의 고서점에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들어가 보고 필요한 책을 샀다. 이것을 큰 자랑거리로 삼고, 일본 구경을 제대로 했다고 자부한다.
일본에 서점이 많다고 해서 구하고 싶은 책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 학계의 큰 업적인 小西甚一(코니시진이찌)의 《日本文藝史》(일본문예사) 제4권까지를 일본에 간 기회에 사려고 대형서점 여러 곳에 가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런 전문서적은 취급하지 않았다. 고서점을 수없이 뒤져 겨우 다 샀다. 제5권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에서 교보문고를 통해 주문하니, 사전 예약주문을 한 부수만 찍어 구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책과 대등한 나의《한국문학통사》 전6권은 상당한 크기의 서점이면 다 갖추어 쉽게 살 수 있는 것과 형편이 많이 다르다.
1994년에 小西甚一와 함께 京都(쿄토)의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에 초청되어 문학사에 관한 발표를 하고 저녁을 먹을 때 물어보았다. 《日本文藝史》는 얼마나 팔렸는가? 자기는 모른다고 했다. 팔리는 부수를 알고 인세를 받는 것은 아내의 소관이고, 자기는 일정한 액수의 용돈만 받는다고 했다. 바로 대답하기 난처해 너스레를 떤 것이라고 생각된다. 서점에 나와 있지 않은 책이 많이 팔렸을 수 없다. 《한국문학통사》가 그 당시에는 4만질, 지금은 6만질 이상 팔린 것과 많은 차이가 있다.
久保多 淳(쿠보다 쥰) 主編(주편), 《岩波講座 日本文學史》(이와나미 강좌 일본문학사>) 전18권이 나온 것을 알고, 일본에 간 기회에 사려고 여러 차례 노력해도 서점에 나와 있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출판사 직영서점에도 없었다. 2009년 4월에는 동경 고서점가의 모든 점포를 다 뒤지기로 단단히 각오하고 찾아 나섰다가 전질을 묶어놓은 것을 발견하는 행운을 얻고 즉시 구입했다. 놀랍게도 값이 정가의 3분의 1 정도였다. 찾는 사람이 없고 팔리지 않아 헐값에 내놓았다고 생각된다.
小西甚一, 《日本文藝史》나 久保多 淳 主編, 《岩波講座 日本文學史》가 발붙이기 어렵게 밀어내는 신구서점이 많고 크고 야단스러워 무슨 소용이 있는가? 장사를 잘하는 것과 좋은 책을 파는 것이 전혀 별개이면, 장사를 잘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런 생각을 하니, 서점의 나라인 일본이 허망해진다.
한국은 일본과 달라 대형서점이라는 것도 규모가 작다. 神保町 일대의 고서점 같은 것이 없어 더 부끄럽다. 일본을 오가면서 이렇게 한탄했다, 청계천 일대 변변치 않은 책이나 파는 고서점도 거의 다 없어졌다. 문화가 단절되지 않을까 염려했다.
그러다가 인터넷 이용이 확대되어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책을 인터넷을 통해 주문해 사니 서점 매장 넓이는 문제가 되었다. 신간뿐만 아니라 고서도 인터넷으로 사니 고서점이 없어도 되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고서점을 열어, 내가 사는 소도시에도 있다. 고서 판매보다 구입을 더 중요한 목표로 하는 것 같다. 인터넷으로 판매는 해도 구입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필요로 하지 않는 분야의 어느 정도 전문서적이 상당수 있어 가져가 팔았다.
서점에 진열하고 팔면, 책을 차별한다. 자리 부족 때문에 배척되는 것도 많다. 인터넷에서는 차등이 없고 모든 책이 대등하다. 자리가 부족하지 않아 배척되는 책이 없다. 모든 책을 다 갖춘 대형서점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내세우고 그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구시대의 희극이다. 책을 쓰거나 출판하는 사람이 서점의 호의를 부탁하지 않고, 독자와 바로 만날 수 있다.
전자출판이 확대되어 더 큰 변화를 일으킨다. 서점이 필요 없게 되었다. 저자가 전자출판사를 쉽게 만들 수 있어 자기 책을 직접 출판할 수 있다. 대형서점이 위세를 잃을 뿐만 아니라, 명문출판사도 무색해졌다. 교보문고 인터넷서점에서 절판이 된 내 책 여럿을 전자출판으로 재간행했다. 전자출판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도 있다. 유튜부 방송을 스스로 해서 책으로 쓸 내용을 말로 전하면 된다. 나는 <창조주권론-삶의 지혜>을 비롯한 여러 저작을 유튜부에 올려 발표하고 있다.
책을 사면 부피나 무게 때문에 큰 부담이 된다. 인터넷이 이런 고민을 덜어주어 서적 구입을 줄이고, 서점의 존재를 위태롭게 한다. 인터넷에 오른 책이니 자료 또는 방송은 동시에 세계 모든 곳에서 이용할 수 있다. 인류문명의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서점의 나라 일본은 이런 전환에 뒤떨어지는 것이 고민일 수 있다.
神保町 일대의 고서점이 인터넷 고서점과의 경쟁 때문에 문을 닫지 않고 계속 살아남을 것인가? 이런 걱정이 생긴다. 인터넷 고서점의 영역 확장이 일본에서는 더디게 이루어져 당분간은 타격이 크지 않더라도 장래를 낙관할 수 없다. 고서점가는 덩치가 너무 커서, 인류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서 지정해 보존할 수도 없다.
영업이 되지 않아 서점이 없어지는 것은 어떻게 해도 막을 수 없다.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고, 오더라도 더디 오기를 바란다. 동경에 다시 갔을 때 고서점이 없어졌으면 얼마나 허망하겠나? 마음의 고향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일 것이다.
한국은 서점의 시대에 일본보다 뒤떨어졌으므로 새 시대로의 전환에 앞서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기술에서만 앞서고, 새 시대를 빛내는 지적 창조물은 내놓지 못할 수 있다. 깊이 반성하고 적극 노력해야 한다. 이 임무를 한국에서 감당하고 일본을 일깨워주어야 한다.
책은 아무리 소중한 내용이라도 일방적으로 전달한다. 창조하는 발상을 말로 발표하고, 여러 사람이 참여해 열띤 토론을 하는 현장을 보여주는 동영상이 그 결함을 시정하는 대안으로 등장한다. 이것이 다음 시대 학문을 이끌어주기를 기대한다.
조동일 :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대등의 길>, <한일 학문의 역전>. <국문학의 자각 확대>, <우리 옛글의 놀라움>,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첫댓글 책을 사면 부피나 무게 때문에 큰 부담이 된다. 인터넷이 이런 고민을 덜어주어 서적 구입을 줄이고, 서점의 존재를 위태롭게 한다. 인터넷에 오른 책이니 자료 또는 방송은 동시에 세계 모든 곳에서 이용할 수 있다. 인류문명의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서점의 나라 일본은 이런 전환에 뒤떨어지는 것이 고민일 수 있다.
한국은 서점의 시대에 일본보다 뒤떨어졌으므로 새 시대로의 전환에 앞서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기술에서만 앞서고, 새 시대를 빛내는 지적 창조물은 내놓지 못할 수 있다. 깊이 반성하고 적극 노력해야 한다. 이 임무를 한국에서 감당하고 일본을 일깨워주어야 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