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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 : 2025년 소명, 일 그리고 사역 4 주차 나눔 내용
일의 신학 II – 당신의 일이 곧 하나님의 일이다
(일의 신학 두 번째로 일의 신학 기본과정에서 나누웠던 이야기를 다시 간추려서 요점을 얘기합니다.)
어떤 일이 중요한가?
하나님 그분 자신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 이것은 창조 세계까지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진실로 하나님께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시간에 나눴던 이야기를 짧게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우리의 일이 하나님의 일이고 하나님의 일이 우리의 일이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이들이 그 형상으로 구속되고 있고 구속되었으며 그 구속이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기에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일이 하나님의 일이고 하나님의 일에 우리가 순종함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이렇게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다.
직업의 거짓된 서열
앞에서 우리가 잠시 얘기를 나눴지만, 우리는 동양권이며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로서 직업의 어떤 거짓된 위계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선교사가 제일 먼저 그리고 목사,(우리나라에서는 목사가 더 먼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교단체 그다음에 자원봉사자/전문가들로 거룩한 일의 계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가 다 먹고 살지 않는다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중요한 사실을잊어버리면 안됩니다. 그렇다면 그런 위계 구조는 사실 다 잘못된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사업가들이 가장 거룩하지 못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하는 얘기는 참 안타까운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이 그와 같은 이야기에 사로잡혀있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정말 냉정한 현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 자신은 사업가입니다. “나는 나 자신을 괜찮은 사람으로 생각하는 걸 좋아해, 물론 때때로 너는 몇몇의 얼굴들을 짓밟아야 하지만 말이야.” 사람들의 얼굴들을 짓밟아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사업이라는 것을 또는 정치라는, 특별히 정치가는 사업보다 더 못난 존재들이다고 얘기하는 모든 관점들이 우리가 이와 같은 직업의 거짓된 위계 구조를 가지고 있는 그런 잘못된 생각과 인식으로부터 나오는 결과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는데, “남의 것을 훔치지 마라, 거짓 증언하지 마라, 그런데 우리가 그러면 어떻게 정부를 운영할 수 있지, 이렇게 얘기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그다음에 중요하지 않은 직업들이 있다고 하지만 이런 모든 것들이 거짓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것들은 거짓된 서열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것이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줄 수 있습니까?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그것은 급진적으로 새로운 일의 가치를 모든 성도가 가질 수 있다고 폴 스티븐스는 얘기합니다. 첫 번째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거나 주님의 일을 한다는 것에 있어서 직업의 계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의 일이 내적인 가치를 가지느냐 했을 때, 그리스도교적인 일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은, 오직 내적인 가치만을 추구할 때, 이 땅에서의 청지기와 달란트로 하나님의 목적을 섬기는 그런 것들만 그리스도교 일이라고 얘기할 수 있으며, 세속적인 일이라고 불리는 외적인 가치로 말하면, 급료나 공급하고 명망을 얻고 선교를 위한 발판 이런 모든 것은 세속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심각한 오해입니다.
우스갯소리로 말하면 동물 모형을 가지고 인형극을 하는 연극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내 임금이 인상되지 않는다면, 나는 이 형편없는 동물원을 폭로해 버릴거야.“ 이런 식의 관점에서 보면. 외연적인 가치라는 것이 나쁜 것이냐고 묻으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모든 인간의 모든 일은 내적이고 외적인 가치를 동시에 가진다는 것입니다. 외적인 가치가 그것이 이끄는 선함이 있다는 것과 내적인 가치라는 것도 그 자체로 또 공중 복리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좋은 모든 것들이 함께 통합되어서 우리에게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는 것을 일의 신학을 통해서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로 입증된 예시들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니엘 느헤미야 브살렐 브리스길라와 아귈라 에스더 도르가 요셉 이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내적인 가치만 추구하며 살았느냐 하면 그렇지만 않습니다. 외형적인 가치에 대해서도 매우 중요하게 다뤘던 것들을 우리가 보아야 합니다.
일에 관한 직접적인 성경의 가르침
또 일에 관한 직접적인 성경에 가르침들이 내연적인 가치와 외연적인 가치 두 가지를 통합적으로 중요하게 다룬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들이 창세기 1- 2장, 출애굽기 20장, 잠언, 에베소서 4장 28절, 에베소서 6장,5절부터 9절, 데살로니가후서 3장,6절부터 13절, 골로새서 3장 27절 - 4장 1절, 등등등 나타난다. 일에 관해서 이런 말씀들은 좀더 직접적입니다.
사도 바울 세계에서 일은?
사도 바울의 세계는 주후 1세기에 지중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그레코-로만 문예 전통이 문화적으로는 그리스 로마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로마 사회가 다스리던 그 세계에서 일을 그들은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했을 때, 노예들은 도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렇게 이야기하고 그런 것들이 계속해서 이어져 내려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노예들은 그들의 주인에 의해서 지배받는 인간 이하라는 인식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 세계에서는 일 그 자체에 대해서 저주로 여겼습니다. 테베의 시민들은
일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이와 다르게 고대 유대교 사이에서는 조금 다르게 바라봤습니다. 일은 소중한 것이고 그런 인식에서 비롯해서 랍비들은 대체적으로 무역업 상업을 하는 일을 하면서 또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들을 했었습니다. 그런 가르침 속에서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 3장 22절부터 4장 1절에 노예들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너의 주인에게 순종하라 대충 일하지 말고 온 전 존재를 다해서 일해라 진심으로 그리고 공경하며라. 그럼 왜 그래야 하느냐, 네가 그 주인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 주인의 주인인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두 번에 걸쳐서 강조합니다. 그리고 노예들이 그렇게 살아간다면 너는 상을 받을 것이다. 그렇기에 주인으로부터 내가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편해 좀 더 특별한 사랑 더 받겠지, 이런 인식을 가지고 일하지 말라고 얘기를 합니다.
이것을 닉 루카스(Dick Lucas)는 Fullness and Freedom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노예가 이제 하는 모든 일은 주님을 위한 새로운 일이다고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비참한 노예 상태로부터 그 사람이 구출 받았기 때문에, 누구에 의해서, 구세주에 의해서, 예수님에 의해서, 그래서 단박에 그리스도의 전임적인 일을 하는 종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노예들을 향한 것만은 아닙니다. 주인들을 향해서도 사도 바울은 얘기했습니다. 노예들을 향하여 옳고 공평한 것을 제공하라고 합니다. 왜 그래야 됩니까?
하늘의 너의 주인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너도 그리스도를 섬기고 있다. 그래서 노예와 주인은 모두 평등하다. 모두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런 것을 가리켜서 루카스(R, Lucas)는 새로운 영, 즉 성령님께서 로마 사회 안에 퍼져갔습니다. 이제 로마 사회의 그리스적인 그런 오래된 형태로는 이런 새로운 하나님이 부으신 놀라운 생명을 다 담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사도 바울이 말한 것은, 노예의 종말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우리의 흔적을 하늘에 남기기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이 땅에서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세상에서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난 이후에 계속해서 이어질 제대로 된 세상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계속 일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삶과 다음 삶 사이에 연속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합니다. 새 예루살렘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21세기 사회와 긴밀하게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지금 이 땅에서 다스리고 있는 왕들이면 오늘날로 말한다면 정치가들, 통치자들을 얘기하겠지요. 대통령 총리 수 많은 국회의원 아니면 시도 지사들 또는 우리나라의 구청장들 아니면 이장까지 하는 이들은 하나님께 거룩하게 일한 그 일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사람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되는 그림의 모습이 계시록 21장 2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사야서 65장 21절부터 22절에 내가 선택한 이들은 그들이 수고하여 번 것을 오래오래 누릴 것이다. 언제요. 메시아의 통치 기간, 그런데 그 통치 기간은 제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기간이 새 하늘과 새 땅 영원히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58절 우리가 주님 안에서 노동한 것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3장 12절부터 15절에 이렇게 얘기합니다.
누가 이 기초 위에 집을 짓는다면(그리스도를 얘기하는 것) 그들의 일은 그것이 무엇인지 비춰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날은 빛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불과 같이 드러날 것이며 불은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일의 질을 시험할 것입니다. 만약 지어진 것이 생존한다면, 지은 사람은 상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그것이 불타 없어진다면, 지은 사람은 상실에 아파하지만 어쨌든 구원받는다고 얘기합니다. 화염을 통과하여 살아남은 것과 같을지라도(고전 3:12-15) 어쨌든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한 모든 것들이 생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서 수고하고 일하고 쉬면서 살아가는 모든 삶의 현장에서 하는 모든 인생이 중요하다는 것을 사도 바울은 잘 알고 있었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이 땅에 어떤 몸을 가지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물론 변모하셨지만, 그것이 이 땅에서 삶에 대한 흔적(스티그마) 을 가졌었고 마지막 심판이며 최후의 심판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섬김을 인격적으로 받으실 것이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심판의 불, 베드로후서 3장 7절은 소멸이 아닌 변혁을 일으키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온 창조 세계 지구가 하나님의 자유를 기다리며 신음하고 새 하늘 새 땅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롬8:19-22)에서 얘기했던 그리스도인 행동은 그들을 따름니다. (계14 :13) 주님 안에서 한 노동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했던 한다는 것은 여기서는 고린도전서(고전15:58)에서 노동이라고 했습니다. 이 두 단어가 얼마만큼 중요한가 그런 것들을 기억하고 이 땅에서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온전한 삶이라는 것은 온전히 일하고 온전히 쉬는 존재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마케팅이 있을까요?
번외로 폴 스티븐스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천국의 마케팅이 있을 것인가? 이 마케팅이라는 것은 어떤 상품을 어떻게 소개하고 또 어떻게 해서 더 많이 팔리게 할 것인가, 이런 일련의 활동들이 천국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있을 것인가? 이 얘기는 일의 신학에서 다루었습니다.
교환은 인류 안에 세워져 있습니다.
“ 창조 때부터,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며, 절대 혼자 살도록 고안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사회적 환경 때문에 우리는 특별하며 고유한 존재이다. (각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특별하게) 상호의존적이기에,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교환에 의존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교환은 우리의 존재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사업입니다.” <Kenneth Kantzer, in Chewning>
또 천국의 마케팅이 있을 것인가? 새 하늘과 새 땅이 정의의 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기서 포도원을 가꾸고 집을 지을 것이라는 이사야서 65장 예언에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실 때 생명의 모든 측면들은 변역된 것이고 구속될 것이기 때문에 다시스의 배처럼 방문할 주님의 심판은 베드로 후서에 나오는 것처럼 정결하게 만드는, 불순물을 제거하고 온전히 제련되게 하는 그런 유형이기 때문에 마케팅이라는 것은 분명히 더 제련되고 정결되고 정화되어서 온전한 모습을 가지고 존재할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마케팅은 사람들이 그들의 필요를 다른 이들이 하는 것과 같이 돕는 일을 통해 만나고자 하는 그런 시도하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마케팅의 구조는 교환입니다. 두명 또는 더 큰 그룹인 집단이 감지된 가치들의 어떤 것을 가지고 서로 인지한 가운데서 일어나고 그래서 소통 용납 또는 거절해 자유로워집니다. <Steen and VanderVeen, 7>
그래서 결국에는 이런 일들이 서로에게 전달되는 일들이 일어난다 그것을 가리켜서 마케딩이라 합니다. 그래서 새 하늘과 세 땅에서 인간들의 필요를 위한 제한되지 않은 물건과 서비스의 양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 결핍하지만 결핍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가 종사하도록 선택하는 활동들의 순차적인 질서를 만드는 선택들이 분명하게 있을 거라고 우리는 합리적으로 생각도 예측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정보에 접근하고 결정을 만드는 것이 계속해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처럼 주님처럼 모든 것을 다하는 존재는 분명히 아닐 겁니다.
그런 것들 토대로 스틴 앤 벤더빈 (Steen and VanderVeen,10)은 계속해서 그렇게 얘기합니다.
”정보를 제공하고 혁신하는 능력은 영적인 선물일 것이다라고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에 여러 방면으로 유익을 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결과론적으로 마케팅은 한 사람의 이웃을 살아계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틴 루터가 제안했던 것과 같이 교회는 이웃을 사랑하고 교회의 사랑을 성도 일상의 일을 통해 성도의 이웃들에게 보여줌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계속해서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마케팅은 존재할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왜 일인가요?
여러 가지 의미들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생존을 위해서 우리 일이 필요합니다. 한 사람 고유의 필요를 공급해 주기 위해서 일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또한 정체성과 의미를 위해서 재능과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여하신 재능과 달란트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일이 또한 중요합니다. 또 사랑하는 것을 위해 실제 사랑이라는 것은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말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가족과 함께 의존하고 필요가 있는 다른 이들을 돕는 그런 모든 일련의 행동 다 일이라는 것입니다. 또 섬김을 위해서 비슷한 얘기입니다. 이웃에게 공헌하고 세상을 더 나은 장소로 만들고 하나님 나라의 목적으로 섬기게끔 하기 위해서 우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해야만 합니다. 성장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더 온전한 사람 단련된 사람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이어질 하나님 나라, 하지만 그 무엇보다 먼저는 바로 하나님 그분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왜요 우리는 그분의 형상으로 창조된 자들이고 그렇게 구속된 자들로서 그 완성을 향해 주님의 인도하심과 주님의 함께하심으로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제프리 셀킨 (Jeffrey Salkin)이라는 분이 Being God’s Partner : How to Find the Hidden Link Between Spirituality abd Your Work) 책에서 한 오래된 격언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어느 날 밤, 이웃 마을을 지나가는 동안 한 하시딤 랍비가 역시 홀로 걷고 있던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잠깐 동안, 둘은 말이 없이 걸었는데 마침내, 랍비가 남자에게 돌아서서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를 위해서 일하십니까? 그랬을 때, 이 남자는 저는 이 마을을 위해 일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일이 야경꾼 즉 야간의 순찰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다시 침묵 가운데 같이 걸었는데 이 야간에 순찰하는 야경꾼이 랍비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를 위해 일하십니까? 그 랍비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항상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가 당신께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당신의 급료가 얼마인지 저에게 말씀해 주신다면 제가 그것에 두 배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이제부터 저한테 할 일은 저와 함께 살아가면서 저에게 시시때때로 묻는 것입니다. 당신은 누구를 위해 일하느냐.
주님이 이 시간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 질문하십니다. 당신은 누구를 위해 일하고 계십니까?
영적 규율로의 일
이에 대해서 짧게 살피고 일의 신학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도입
일은 우리의 내적인 삶을 드러냅니다. 일은 성도가 성화되는 이는 단련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그 창조하신 모습대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더욱더 단련되는 그런 성화의 한 부분이며 사람답게 하는 성장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서는 일은 성도를 하나님께로 데리고 가는 전도자라고 얘기합니다. 일은 성도의 영성이 형성되는 데 있어 한 부분을 담당합니다.
영성과 일에 대한 두 가지 접근 : 가장 자리에서의 하나님과 중심의 하나님
영성과 일에 대한 두 가지 접근에서 보면, 가장자리에서의 하나님과 중심의 하나님이 있습니다. 가장자리에서의 하나님은 수직적 모델이라고 얘기합니다. 피정(recreation) 환대(entertainment) 재원(finance) 등 여러 가지 것들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교회(church) 피정 또는 수련회(retreat) 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복음전도(evangelism) 보다 조금 덜 중요하고 좀 덜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고 얘기하는 것이 수직적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바탕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모든 활동의 중심으로서의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자원봉사도 가족도 또한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매일 삶의 활동 즐거움을 위해서 recreation finance 이런 모든 것들이 하나님과 긴밀하게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들
죽음에 이르게 하는 여러가지 죄들이 있다고 오랜 시간 동안 그리스도교는 이야기해 왔습니다. 여러 가지 것들이 있지만, 대표적인 것들이 태만 바쁨 지루함 일중독, 이런 것들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소명적 유혹들
소명인 유혹들이 있습니다. 잘못된 영에 들어감, 탐욕적인, 지속성이 없는, 거룩한 명령이 없는, 자포자기, 등이 있습니다.
소명적 규율들
이런 것들로부터 우리를 어떻게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소명인 규율들이 있다고 폴 스티븐스는 얘기합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인도하심을 계속해서 분별하는 것, 시작한 잘못된 동기를 회개하나 계속 이어가기, 탐욕과 부정의의 악덕을 피하기, 우리의 상황을 하나님의 섭리고 바라보기, 하나님은 우리의 유산임을 분석하기(시 16:6), 우리가 확실히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찾지 않기, 인내를 개발하기가 있다고 얘기합니다.
거기서 포기하고 물러서는게 아니라 비록 잘못된 동기로 가지만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하여 주님이 저를 이 길로 이끄셨다. 이것이 온전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주님 저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라고 끊임없이 일하고 나아가는 것 살아가는 것 그런 것들의 소명적 규율이다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탐욕과 정의롭지 못한 악덕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얘기합니다. 우리의 상황을 하나님의 섭리로 바라보는 것들도 중요하다고 합니다. 또한 시편 16편 6절에 하나님은 우리의 유산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기억하고 그것을 지금 우리 삶에 하나님이 어떠한 유산을 남기고 계시는가라는 것을 분석하는 거, 다른 말로 한다면 숙고하는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것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확실히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찾지 않는 그리고 무엇보다 윌리엄스 퍼킨스(William Perkins)가 얘기한 것처럼 인내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의 파트너로서 일
우리의 일은 치료 요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파트너로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파트너로서 일하는 것은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 기억하는 일에 관한 하나님의 비유들이 성경에 기록되어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일이 청지기 적인 소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공동 창조냐, 하위 창조냐, 이런 것들에 대한 논쟁은 지금, 이 시간에도 폴 스티븐스 교수가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동창조자라고 얘기합니다. 매우 건방지고 교만해 보이는 거지만 그것이 아니라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makers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좀 더 풍요롭고 온전한 세상으로 만들어 가게끔 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틀 안에서 우리가 자유롭게 만들어 나가게 되는 그런 의미로서 우리는 공동창조자라고 폴 스티븐스가 얘기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의 일은 사람들을 세우는 일이라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제사장직인 사역으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제사장직 사역으로서의 일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두 번에 걸쳐 나누게 되는 사역과 관련해서 얘기할 것입니다. 짤막하게 요약한다면, 장소 자체를 공간으로 인식하면서 살아가는, 놀이에서 일하는 것으로부터 우리가 일하는 것을 놀이로 여기게 흘러가는 것으로 하나님 개입하시는 그 시간을 인식하는 중요한 시간 또한 정보로부터 신비로입니다. 이와 같은 주제들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좀 더 자세하게 얘기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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