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
◈ 월일/집결 : 2012년 4월 21일(토) / 경의중앙선 팔당역 1번출구 (10시)
◈ 산행장소 : "예빈산"
◈ 참석자 : 9명 (용우, 정남, 형채, 원우, 원무, 삼환, 전작, 문형, 양기)
◈ 동반시 : "비슬산(琵瑟山) 가는 길" / 霧山 조오현 스님
◈ 뒤풀이 : 파전과 두부김치에 감로주 / '파전집'
며칠 전 전작 총장으로부터 '산우들! 얼굴도 보고 손도 잡아보고 함께 진달래 철쭉이 만발한 봄 산을 올라보세'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고, 반가운 마음으로 참석하겠다는 답신을 하고, 총장님 말대로 봄 산을 즐기려고 했는데, 아뿔싸! 아침에 하늘을 보니 잔뜩 찌푸린 날씨에 일기예보에는 비가 많이 온다는 뉴스까지 보고나니, 오늘 산행이 걱정되는 마음이었지만, 약속을 했으니 7시 30분쯤 집에서 출발이다.
9시에 상봉역에 도착하니 전작 총장이 보여 반갑게 악수를 하고 혹시 다른 일행이 있나 두리번거렸으나 눈에 띄지 않았는데, 출발 직전에 정남이 산우가 도착, 반갑게 만나 9시 13분 용문행 전철에 몸을 싣고 즐거운 마음으로 출발. 그때까지 하늘은 잔뜩 찌푸렸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우리가 산행하는 날은 대개 날씨가 좋았다는 좋은 의미의 징크스를 믿었다.
구리를 지나는데 양기 산우로부터 상봉역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안 보인다는 전화가 총장님한테 걸려 와서 다음은 전철을 타라고 알려주고 총장님과 정남이 산우하고 정담을 나누고 있던중, 양기 산우가 다시 전화로 전철을 탔는데, 자기가 탄 전철 노선도에 팔당역이 안 보인다기에 혹시 경춘선을 탄 게 아니냐고 물어보니 이걸 어찌할꼬...
우리가 비록 나이는 60줄에 들어섰지만, 아직은 그럴 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 양기 산우가 우리를 슬프게 하네. ㅎㅎ. 젊은 날에 읽은 책 중에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었는데, 저자가 '안톤 슈낙'과 '고은' 시인의 책으로 기억하는데, 맞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총장님께서 '돌아와서 전철을 타면 1시간 이상이 늦어지니 절반의 참석으로 인정한다는 호의를 베풀어 줄 테니 돌아가는 게 좋겠으니 그리 아소' 하면서 귀가를 권하고 우리는 9시40분 팔당역에 도착하여 광장에 나가보니 용우, 원무, 삼환, 원우가 벌써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다.
오는 도중 차창을 보니 빗발이 점점 심해진다. 산우들과 비바람이 심해 오늘 산행을 할지말지를 이야기 하다가 형채 회장이 안보여 총장한테 물어보니 회장은 집에서 가까워 승용차로 오기로 했다기에 그럼 박 회장이 오면 결정하기로 하고 잡담을 하였다.
박 회장이 합류하여 오늘 산행에 대한 의견을 모아본 결과, 우리 나이에 비바람까지 치는데 굳이 산행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면서 모두의 의견을 물어 만장일치로 예빈산 산행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대신 견산과 심산으로 대체하고 여기까지 왔으니 비 오는 날 분위기에 맞는 파전에 막걸리를 한잔 하는 걸로 의기투합. 우리도 이젠 나이가 들었나보네 그려! 마음이 변하기 전에 팔당역 근처에 있는 비닐하우스 파전 집으로 GO~! 이다.
시산회 183회 산행 중 오늘처럼 들머리도 안가고 뒤풀이 한 적은 내 기억으론 없었던 것 같은데, 어쨌든 시산회의 새로운 역사가 태어 난 듯. 10시 30분쯤 파전식당에 도착해서 파전과 두부김치를 안주로 감로주 두 병을 주문하여 건배를 하면서, 회장께서 나를 지목해 산행기를 쓰라는 주문아닌 명령을 하니 거역할 이유도, 머뭇거릴 여유도 없이 오늘 산행기자로 당첨이 되었다.
어찌보면 산행을 안하고 견산과 심산만 했으니 오히려 쓰기가 쉬울 것 같아 산행기를 쓰기로 하고, 산행 대신 파전집에서 3시간 가까이 잡담을 했던 얘기를 산행기로 쓸려고 하니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 해서 쉽지가 않다. 그중에서 기억나는 거 몇 가지를 쓸 테니 읽는 산우들께서 이해해 주시게나.
먼저 한 산우가 경험했던 컴퓨터채팅담에 의하면 남녀 간에 여자가 너무 노골적으로 댓시하니까 오히려 남자기능이 저하되더라는 우중한담(雨中閑談)이 나왔는데, 그게 소위 낯가린다는 뜻 아닐까? 계속 이어지는 Y여담은 점잖은 체면에 길게 말할 수가 없으니 이해를 하시게.
그리고 지난 182회 수리산 산행 때 5월 26일부터 연휴가 시작되는데, 마침 장선식 동문 차녀결혼식을 5월 26일날 부산 해운대에서 치른다고 하니 이번 기회에 결혼식도 참석하고, 일본 대마도에 관광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얘기가 있다.
그날 참석하는 산우들은 만장일치로 찬성. 총장께서 즉시 박찬재 동문하고 통화하고 그때가 황금연휴로써 예약이 쉽지 않지만, 배려를 해 준 덕분에 15명까지는 가능할 수 있다는 답을 듣고, 선착순으로 모집을 한다기에 나는 늦게 신청하면 못 갈까 봐 총장의 문자를 받자마자 신청을 하였다.
의외로 여러 산우들의 의견을 물어본 결과, 원우, 광일, 근호, 나까지 4사람밖에 신청자가 없었다. 정남이도 인원이 너무 적어 안가고 싶다고 의사를 표시하니까 그럼 원우 산우도 안 갈 거라고 하여 대마도 여행은 취소가 될 듯하다. 군중심리로 참석한다고 했지만, 혼자 가려면 마나님 눈치도 봐야 하니 우리들 신세가 조금은 슬펐다.
황금연휴로 예약이 쉽지 않았을 텐데, 우리 시산회 동문들을 위해 노력해 주신 박찬재 동문께 미안하기 그지없다.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게. 그리고 시산회원 여러분! 약속은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닌지?
이어 형채 회장 어부인께서 7년 전에 횡성에 부동산 투자를 했는데, 최근에 매수인이 나타났다고 하면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나한테 자문을 구한다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참석한 산우들 모두가 지난 세월동안 나름대로 부동산 투자 경험담을 얘기 하는데 성공한 산우도 있고, 실패한 산우도 있더구만.
글쎄! 내 경험에 의하면 부동산에 왕도는 없다고 생각하네. 다만 정남 산우가 말한 대로 투자하기 전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투자 목적물에 대한 권리 분석을 철저히 하고, 인구가 늘어나는 지역인지 확인을하고, 가능하면 도시계획구역을 벗어나지 않은 최소 주거지역에 투자하는 게 최선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네. 혹시 추후에 그럴 기회가 생기면 내가 경험해서 알고 있는 걸 최대한 알려줄 테니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네.
또, 기왕 부동산 얘기가 나왔으니 우리 나이에 맞는 부동산투자에 대한 한 가지 조언을 하자면 수익성이 있는 부동산에 투자하시게. 내가 3년 전 사회에서 만난 친구한테 권유했던 일인데 목동 아파트 14단지 38평형에서 살다가 그 집을 14억에 팔고 김포 신도시에서 28평형 아파트를 2억에 산 뒤 불광동 상가를 20억(보증금 5억 월세 700만원 융자 3억)에 구입했다네.
이자와 임대소득세를 제외한 월 순수입이 500만원으로 노후 준비로 안성맞춤이지. 지금도 그 친구를 만나면 대접을 잘 받고 있는데 이건 한 가지 예로써 참고하라는 얘기이네. 난 지금도 10억이 넘어가는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친구들한테 권하고 싶네.
세상의 투자 행태가 바뀌어 앞으로 아파트에 대한 투자의 개념은 끝났다고 보네. 왜냐하면 아파트는 이제 주거 개념으로 모든 사람들이 인식을 하고 있고, 2017년 부터 경제 인구가 줄어들므로 그만큼 수요가 줄어들기 때문에 아파트란 콘크리트 건물로써 35평형 아파트라고 해도 대지지분은 7~8평에서 12~13평 내외로써 2~30년 지나면 건물은 노후화 되어(오히려 수익성이 있는 상가 건물은 20년이 지나면 건물 가격은 안 쳐 주는데) 못쓰게 되는데 그럼 결국 남는 건 대지지분뿐이니 가격이 10억 이상 가는 건 잘못된 것이란 말이네.
내가 부동산을 운영하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나라 아파트 시장 구조에 대해 얘기해 보면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잘못된 시장이라고 얘기하고 있네. 그렇다면 잘못은 언젠가는 바로 잡히게 되어 있는 게 자연스런 사회현상이라고 생각하네. 그런데도 지금 까지 이렇게 된 데는 가진 자들 소위 보수 세력이라는 집단과 위정자(정부)와 건설사들의 놀음이었지, 근데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가진 자들이 더 이상 아파트에 투자를 안 한다는 거야.
그래서 요즘 아파트 시장이 불황을 맞고 있는 거지. 또한,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것을 참고하면 이제 3~4인 가구가 급격히 줄어들고 1~2인 가구가 급속도로 늘어난 다는 것이네. 통계청 자료는 움직일 수 없는 좋은 증거네. 이건 내가 부동산을 운영하면서 체험했던 사례를 예로 들었을 뿐이니 참고만 하시게. 산우들에게 도움이 됐을지 모르겠네.
다시 산행 얘기로 돌아가서 다음 산행은 불곡산으로 가기로 하는 등 이런저런 주제로 한참 얘기꽃을 피우고 있는데, 갑자기 파전집 주인장이 나타나서 영업집에 와서 자기집 음식은 안 팔아주고 가져 온 것만 먹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너무 노골적으로 역성을 내는 바람에 잠시 분위기가 주춤해져서 식탁위에 놓인 음식을 보니 산 정상에서 먹으려고 각자 준비해온 먹을거리가 너무 풍성하지 않은가?
삼환표 돼지꼬리, 정남표 문어와 한과, 원우가 준비한 떡과 과일 그리고 서울막걸리, 김밥 등등. 나도 딸기하고 와인 한 병을 가져갔는데, 음식이 너무 많고 한편으론 끝나고 나면 한가로운 토요일 오후라 시간의 여유가 있고 비 오는 휴일의 분위기도 맞출 겸 마나님과 쌍봉산에 올라가 합환주를 한 잔 하려는 욕심에 내놓지 않았네. 이해해 주시게.
그럼 오후에 쌍봉산에 올라갔느냐?고 그건 각자 상상에 맡기겠네. 그리고 어느 순진한 산우가 쌍봉산을 같이 가자고 하던데, 쌍봉산이 어딘지 알고 하는 말인지 모르지만, 그건 곤란한 거 아니겠는가. 그 산우는 상봉동에 있는 야산으로 착각하고 하는 얘기였을 거네. 아마 다른 산우들도 쌍봉산은 많이 올라 다녀 봤을 텐데 안 그런가?
왜냐하면 본인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산이니까. 어쨌든 식당에서 주문 한 것에 비하면 우리가 가져 간 게 더 풍성하니 주인으로써는 기분이 안 좋더라도 우리가 미리 양해를 구했고, 기왕이면 막말보다는 좀 부드럽게 말을 해주었으면 우리가 더 미안하게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비가 와서 손님도 없는 적막함을 달래준 고마움도 모르는 사람이다.
하는 수 없이 마지막으로 라면이라도 팔아주자 해서 각자 라면을 하나씩 먹고, 산행 아닌 산행을 마치고 팔당역에서 13시 30분 중앙선 전철에 몸을 싣고 귀가하였다. 가파르지 않은 예빈산의 정상 아래의 모퉁이를 돌아가면 확 트인, 비구름이 깔려있는 두물머리의 풍광이 훌륭했을 텐데, 견산·심산만으로 산행을 끝내니 못내 아쉬웠다. 이상 예빈산 심산·견산기 였습니다.
2012년 4월 23일 조문형 씀.
"비슬산(琵瑟山) 가는 길" / 霧山 조오현 스님
비슬산 굽잇길을 누가 돌아가는 걸까
나무들 세월 벗고 구름 비껴 섰는 골을
푸드득 하늘 가르며 까투리가 나는 걸까
거문고 줄 아니어도 밟고 가면 운韻 들릴까
끊일 듯 이어진 길 어어질 듯 끊인 연緣을
싸락눈 매운 향기가 옷자락에 지는 걸까
절은 또 먹물 입고 눈을 감고 앉았을까
만첩첩(萬疊疊) 두루 적막(寂寞)
비워 둬도 좋을 것을
지금쯤 멧새 한 마리 깃 떨구고 가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