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길 여정 중에 마침 아리바우길 1코스를 걷는 바우길 완주봉사회 팀에 합류하여 함께 걸을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이 바우님들은 이미 바우길 모든 코스를 완주한 후 바우길의 홍보 및 안내와 표지, 리본꼬리 수정 교체 작업도 여러 해 동안 앞장서서 해 온 자원봉사팀이다. 그야말로 강릉 바우길 매니아, 바우길 사랑님들이다.
내년 2018년 평창올림픽을 위해 조성된 아리바우길은 아직 완전히 길이 정비되지 않은 상황으로, 바우길 구간 및 코스 정보가 없다. 올해 5월 경 데크 공사 및 안내 표식 작업 등이 완공된다는 안내를 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 팀원 중에는 아리바우길 탐사대원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분들을 믿고 아리바우 1길을 떠난다. 매주 정기적으로 길을 걷는 이들은 아리바우길 2코스를 한 주 전에 걷고 이번 주는 3코스를 걸을 차례인데, 어쩐 일인지 1코스 다시 걷기를 바우길 카페에 공지해 놓았다. 어쩜 바우길을 다양하게 걷고 싶어하는 나를 위한 천운이었는지도 모른다. 회원도 아닌 나를 환영해주는 그 아름다운 동행에 나는 무조건 따라 나선다.
잠을 설친 채로 3월 2일 목요일 우산 속 촉촉한 새벽길을 나선다. 약속 시간 20분 전 강릉 시외버스터미널에 제일 먼저 도착해 모닝커피를 마신다. 전날 저녁 대관령 감자탕 집에서 만난 진센님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어 궁금한 속 아리바우길 걷기 모임 팀원 5명을 만난다. 바우길 카페 아이디의 에바다, 훈장나리, 하비, 호야별꽃과 황금정 부부와 함께 아침 7시 버스에 오른다. 조금 가다 버스에 오르는 나무님들 부부, 나까지 총 9명을 실은 버스는 한 시간 반가량 눈비오는 언덕 고갯길을 열심히 달려준다.
‘비가 올라나, 눈이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몰려온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정선 아리랑의 고장 땅으로 넘어간다.
비가 오는 강릉을 넘어 탑당령이란 고개를 넘을 때엔 눈발이 휘날린다. 소나무 빼곡한 산 풍경이 영화 속 설국이다. 정선에서 눈을 만나면 얼마나 황홀할까 설렘도 잠시, 눈비 속의 여량을 지나 정선에는 비가 내린다. 아침 9시도 채 안된 정선5일장 장터는 온기가 없다. 장꾼들이 이제 마악 장들을 펼치는 중이다.
‘얼른 와요. 여가 정선 장터래요.’
예전 나의 사진 출사지다. 내가 사진 찍던 친정엄마 닮으신 분, 구부리고 앉아 곤드레나물 파시던 할머니처럼 오늘도 한 할머니가 비닐봉지 속 나물들을 펼치신다. 빈대떡 아주머니는 벌써 바지런하게 여러 장을 부쳐놓았다. 2, 7일 정선장에 많은 사람들이 정들을 사고 팔아 신명나게들 웃었으면 좋겠다.
조금씩 북적이는게 보이는 정선장을 뒤로 하고 돌 계단을 오른다. 다리 하나를 건너니 정선역이다. 정자 쉼터에 앉아 막걸리 첫잔을 건배하며 마신다. 쫀득쪽득 따끈따끈한 검은 옥수수가 서울에서 먹는 노란 옥수수와는 사뭇 다르다. 달콤하고 찰진 맛이 기가 막힌다. 독특한 잎새 향기도 난다. 언덕을 오르고 목책길로 내려서니 강물이 흐른다. 조양강은 한반도 지형을 닮아 'U' 자를 가로로 뉘인 물줄기 모양이다. 정철, 신윤복, 김홍도가 노래하고 화폭으로 그려낸 산수화의 첩첩 산 풍경이 가히 무릉도원이다. 긴 세월 하늘을 안고 해를 품으며 살아온 강물이 가슴을 뜨겁게 데운다. 봄 기운이 산에 강물에 완연하다. 나는 설레는 봄을 만나서 노래하고 춤추며 신명나게 걷고 싶은데, 바우님들은 너무나 조용하다. 삼삼오오 끼리끼리 대화로만 걷는다. 바우사람들은 느긋해서 그런가, 아리바우 이 길을 두 번째 세 번째 걸어서 그런가? 사방이 산이라 노랠 부르면 메아리가 답을 줄 텐데, 설레는 마음 느낌을 표출하지 못하고 나는 그들의 뒤에서 뒷모습을 바라보며 사진만 찍어댄다. 바우님들 기억하고 싶어 뒷모습이 아닌 얼굴 모습을 종착지 나전역 버스정류소 앞에서 두장 얻었다.
산길로 해서 나전역으로 가는 길은 지난 아리바우 1코스 때 걸었다며 이번엔 계속 강변길로 간다고 한다. 강변 따라 걷는 길은 심심할라치면 다리를 건너라 한다. 마을이 보이고 시골버스 정류장 벤치가 보이면 잠시 앉아 쉬기도 한다. 물도 마시고 초콜릿도 먹으며 숨을 고른다. 물푸레나무인지 점박이 나무를 신기해서 바라본다. 우리가 건넌 네 다섯개 다리의 이름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사진 속에 찍힌 덕송교, 세월교, 문곡교, 북평교를 건넜구나. 예산리, 문곡리, 남평리, 북평리 간판이 보이니 그저 지나갔구나. 발전시설 같은 모양의 건물이 보여도 그저 저수지나 수력시설의 일종이려니. 강물이 흐르니 나도 흐를 뿐이다. 모두가 흘렀으면 좋을 텐데, 이 세상도 만물도 사람들도 이렇듯 흘러야 할 텐데......
햇살이 비치는 곳을 찾아 강물 가까이 내려간다. 작은 자갈돌밭에 점심 식사 자리를 잡는다. 작은 돗자리가 펼쳐지니 싸갖고 온 밥과 음식들을 내놓는다. 코스 대장 나무님이 그 큰 배낭에서 꺼내는데 입이 딱 벌어진다. 단체야영 때 쓰는 큰 코펠과 버너, 2L짜리 대형 보온 병 2개를 척척 꺼내어 뚝딱 하나 가득 라면을 끓인다. 뜨거운 물을 담아온 걸 보면, 저 무거운 걸 짊어지고 온 건 아마도 처음이 아닌 듯하다. 강물 속의 물고기들이 구수한 냄새를 맡으며 얼마나 올라오고 싶었을까? 팥밥에 김치에 멸치에 갖은 반찬들과 함께 강변에서 먹는 라면의 맛은 지금까지 나의 산행 중 최고이다.
바우님들은 참으로 소박 소탈하다. 서울 친구들 산행처럼 음식점에서 비싼 김밥이나 샌드위치를 자랑하듯 사 오지 않는다. 컵라면에 끓여낸 어묵라면을 다함께 공동으로 한 컵씩 떠먹으며 서로서로 좋아하고 고마워하는 진정한 가족들이다. 긍정마인드 또한 감동이다. 내가 실수로 코펠을 넘어뜨려 라면스프를 많이 쏟았다. 하나같이 요즘 저염도 시대이니 싱겁게 먹으라는 신호란다. 라면스프 다 넣으면 짜단다. 짜게 먹는 건 안 좋다며 잘 쏟았단다. 조심 좀 하지, 아니 싱거워서 어떻게 먹으려고, 처음 온 사람이 무례하게 그러느냐고 핀잔은커녕 눈치 한 번을 안 준다. 오늘만 그런건가, 원래 저렇듯 마음 그릇들이 넓은 건가?
식사를 마치고 깨끗이 정리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서니, 후두두둑 빗방울이 떨어진다. 손이 시릴만큼 바람도 차갑다. 옷을 여미고 다시 우산을 편다. 나전역에서 버스로 강릉에 돌아온다. 아쉬운 작별을 하고 동서울 상행선으로 집에 돌아온다. 배낭을 정리하는데 기어이 나를 감동시키고 울린 건 바우님들의 끈끈한 정이다. 정선장터에서 훈장나리님이 선물로 받은 그 귀한 표고송이버섯, 진센님이 건네준 쫀득거리는 검은 찰옥수수, 게스트하우스 스나이퍼님이 재차 찾아준 선물로 준 바우길 깃발과 뱃지. 정선역 벤치에 두고 온 스틱 2개를 보내온 역무원의 정성에도 바우 사람들의 사랑이 묻어있다. 나는 또 다시 바우길을 갈 것이다. 자랑스럽게 바우길 깃발을 배낭에 매달고 바우님들을 찾아가리라.
첫댓글 맛갈스런 후기를 읽다 보니 마치 걷고 있는 듯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멀미와 수족냉증 때문에 좀 힘들기도 했었고,
또 봄도 겨울도 아닌 것이 마음을 흔들기도 했고요.
그래서 풍경을 담을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그냥 습관처럼 눈에 들어온 풍경 서너 장만 겨우 찍었지요.
함께한 걸음, 소소한 이야기들 기억하겠습니다.
바우길에 대한 온화한 님의 따뜻한 마음도 함께 말이지요.
언제 어느 길에서 만나든 늘 아름다운 걸음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7.03.05 08:47
작품이 좋네요.
잘보고 갑니다.
하비님
고맙습니다.
작품이라고까지
하시니 많이 부끄럽습니다.
함께 걸으면서 선생님에 대하여 조금씩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내 자신도 선생님을 닮아서 훗날 자신이 걸어온 뒷 모습을 바춰 보렵니다
온화한 선생님
멋있는 선생님
정 많은 선생님
아리바우길 위에서 만나뵙게 되어 큰 영광이었습니다
언제 또 다른 길 위에서 만나길 바래면서...
늘 행복하고 건강하세요~~~
이슬송이버섯이랍니다 ㅎㅎㅎ
저 역시
훈장나리님과 함께
처음으로 아리바우길
걸으면서 푸근하고 다정한
아이들의 멋진 선생님
참 좋은 인상으로 기억됩니다.
제게 대한 좋은 말씀
잊지 않겠습니다.
표고송이가 아니고
이슬송이버섯이군요.
양파랑 포도주 한방울 넣고
볶아내니 향긋한 맛이
아주 일품이었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님의 글과 사진을 보며
강을 닮은 포근함이 듬뿍 배어있어
짚어가는 동안 내내
평안하고 흐뭇합니다.
함께 못했던 길을
어제 보고 왔습니다.
님의 발자국을 꾸욱 밟고 왔는데
괜찮죠?
기회가 되면 다음길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