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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내용 출처 : 정요한목사님 대하설교 ' [심화] 027 레 6장8절-10장11절, 제사장 위임식&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 ' 중에서
카톡 나눔 25일
8장, 7일간의 제사장 위임식
8:1-4, 제사장 위임식 준비
8:5-9, 제사장 성의 착용
1-4절과 같이 위임식 준비를 한 후, 제사장의 성의를 착용시킨다.
카톡 나눔 26일
8:10-13, 도유
→ 이렇게 해서 거룩한 성막의 기구들과 대제사장과 제사장이 기름 부음을 받는다.
이제 제사장 위임식을 할 때,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연속하여 드리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카톡 나눔 27일
8:14-17, 제사장 위임식 속죄제
14절:
현재 모세가 대제사장 역할을 하고 있다.
15절上: 모세가 (아론이) 잡고 (모세가) 그 피를 가져다가 ...
→ 번역이 잘못 되어 있다. 아론이 잡고! 왜냐하면 아론이 지금 속죄제의 예배자이기 때문에, 아론이 직접 잡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잡아주면 안 되고 예배자가 직접 잡아야 한다. 아론이 직접 잡고, 모세는 현재 제사장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모세는 피를 가져다가...
15-17절:
이렇게 모세는 제사장의 역할을 하고, 아론은 자신의 위임식이기 때문에 예배자의 자리에서 예배, 속죄제를 드리고 있다.
카톡 나눔 28일
8:18-21, 제사장 위임식 번제
8장18-19절:
번역이 잘못되어 있다. 모세가 아니라 아론이 잡아야 한다. 현재 번제라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 사람은 아론이기 때문에, 예배자 아론이 직접 잡아야 한다. 제사장 역할을 하는 모세는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리고.
8장20-21절:
그래서, 처음에는 속죄제를 드려서, 제사장들의 죄를 정결하게 하는 절차를 가지게 되고, 그 다음에는 번제를 이어서 드려, 제사장들의 헌신과 충성을 하나님께 맹세하고 다짐하는 시간을 가진다.
카톡 나눔 29일
8:22-32, 제사장 위임식 화목제
8장22-23절:
모세가 아니라 아론이 잡는다. 속죄제도 번제도 화목제도 모든 제물은 예배자 아론이 잡는다. 그리고 제사장 역할을 하는 모세는, 피를 가져다가 아론의 오른 귓부리 오른 엄지손가락 오른 엄지발가락에 바른다. 이런 순서는 다른 화목제에는 없는 순서인데 제사장 위임식 화목제에만 이런 순서가 추가되어 있다. 특이한 장면이다.
24-25절:
기름을 떼어내는 일도 아론이 직접 다 한다. 오늘날은, 특히 대형교회들은 그냥 목사님이 다 하고 계시고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고 있으나, 이렇게 예배의 정신을 율법을 통해 살펴보면, 예배자가 직접 해야 할 일들이 굉장히 많다.
26-29절:
모세에게 사례를 지급하게 하신다.
카톡 나눔 30일
8:33-36, 제사장 위임식 마무리
8장33절 :
8장의 위임식 모든 순서를 일주일 동안 매일 반복하라는 말씀이다. 지금 읽었던 위임식 제사가 하루 분량이었는데, 이를 일주일동안(=7번) 반복하라는 말씀이다. 굉장히 절차가 복잡하다.
8장34-35절:
그러니까 제사장 위임식을 할 때, 7일동안 답답하다고 밖으로 나가면 죽는 것이다. 이렇게 철저하게 지켜야 사망을 면하고 제사장 위임식을 무사히 마치게 된다고 말씀하고 계시다.
36절:
여기까지, 제사장 위임식 제사까지 모세가 대제사장 역할을 감당했고, 이제 9장에 제사장 취임식이 나오는데, 제사장 취임식부터 모든 제사는 대제사장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제사장들)이 직접 제사를 집례하게 된다.
카톡 나눔 31일
8장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8장, 제사장 위임식 제사
① 제사장 위임식 준비
② 성의 착용
③ 도유
④ 속죄제, 번제, 화목제를 드림
⑤ 모세가 피 섞인 관유를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뿌려 거룩하게 구별하고 식사를 함
⑥ 7일 주야 회막 뜰에만 머물면서 7일 동안 매일 이를 반복하여 거행함
카톡 나눔 32일
9장, 제사장 취임식 제사
9:1-7, 취임식 준비
9장1절:
7일간 제사장 위임식 하였고, 이제 제 8일에 제사장 취임식을 한다. 2절은 아론이 준비할 사항이다.
2절:
2절은 아론이 준비할 사항이다. ①속죄제를 위하여 흠 없는 송아지 ②번제를 위하여 흠 없는 숫양을 준비해야 한다.
3-4절:
이스라엘 백성이 준비해야 할 4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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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11, 제사장 자신들을 위한 취임식 속죄제
9:12-14, 제사장 자신들을 위한 취임식 번제
카톡 나눔 34일
9:15-17, 백성들을 위한 취임식 속죄제, 번제, 소제
9:18-21, 백성들을 위한 취임식 화목제
9:22-24, 제사장 취임식 마무리
이렇게 해서 아론의 대제사장의 권위가 공식적으로 인정되게 되었고, 9장의 제사장 취임식 제사가 아론이 최초로 집례한 제사였다. 아마도 이때 아론은 매우 긴장한 마음으로 첫 제사를 집례했을 것이다.
카톡 나눔 35일
< 제사장의 업무 >
① 첫째, (복잡한 율법에 따라) 성소와 번제단에서 봉사하는 일
② 둘째, 율법을 (스스로 이해할 뿐만 아니라)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일
→ ①, ② 모두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앞에서 제사장에게 사례라든지 특별한 권한이 주어졌는데, 권한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처럼 중한(어려운) 사역이 함께 주어졌음을 오늘날의 사역자들은 생각해야 한다.
카톡 나눔 36일
③ 셋째, 백성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일
→ 한국 사람들은 기도는 ‘빌 기(祈)’ ‘빌 도(禱)’ 해서 빌고 비는 것이 기도라고 생각하는 샤머니즘이 있는데, 제사장들의 기도는 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묻는 것이었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서서 하나님께 묻는 기도를 제사장이 해야 했다.
④ 넷째, 백성들 사이에 시비가 발생했을 때 그 시비(옳고 그름)를 가리는 재판하는 일
⑤ 다섯째, 백성들의 건강한 생활을 지도하고 바른 먹거리를 지도하는 일
⑥ 여섯째, 절기 때가 되면 행사를 주관하는 일
카톡 나눔 37일
레10:1-11, 다른 불로 분향한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
제사장은 아침과 저녁에 번제단의 불씨를 가지고 성소로 들어가 분향단에 향을 사르도록 되어 있었다.
10장1절: 아론의 아들 (장남)나답과 (차남)아비후가 각기 향로(불 옮기는 불똥 그릇)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 ‘번제단의 불씨’ 를 가지고 성소로 들어가 분향단에 향을 살라야 한다. 그런데 번제단의 불씨를 가지고 들어가지 않고, ‘다른 불씨’ 를 가지고 성소로 들어가서 분향단의 향을 사르는 불순종의 죄를 저질렀던 것이다.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배를 드려야 함을 이 본문을 통해 생각해야 한다. 특별히 풀타임 사역자들 오늘날의 교역자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배를 집례해야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으시는 것인데, 나답과 아비후는 말씀대로 집례하지 않음으로 오히려 저주가 임했던 것이다.
카톡 나눔 38일
10장2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 큰 불이 덮쳐서 완전히 태워죽인 것이 아니라, 번개와 같은 불이 나와서 나답과 아비후를 순식간에 죽인 것으로 보인다. 레위기 16:12-13을 찾아보자.
(레16:12-13) 향로(불 옮기는 불똥 그릇)를 가져다가 여호와 앞 제단(번제단) 위에서 피운 불을 그것(향로)에 채우고 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두 손에 채워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여호와 앞에 분향하여 향연으로 증거궤(언약궤) 위 속죄소를 가리게 할지니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할 것이며
→ 번제단의 불은 24시간 365일 꺼지지 않아야 한다고 앞에서 배웠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충성/헌신/사랑의 불이 오늘날에도 항상 꺼지지 않아야 한다고 배웠던 부분이다. ...
카톡 나눔 39일
... 그렇게 항상 피워져 있는 그 번제단의 불씨를 향로에 채워서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에는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들고, 성소 안으로 들어가 분향단에 분향하여, 향을 피운 연기가 증거궤 위(=언약궤 위)의 속죄소를, 그러니까, 케루빔 천사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속죄소를 그 연기로 가리게 해야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이 죽지 않고 성소 안에서 제사를 집례할 수 있게 된다고 말씀하고 계시다. 그런데 나답과 아비후는 성막 뜰에 있는 번제단의 불을 가지고 분향단의 향을 피운 것이 아니라, 다른 불을 사용해서 분향단의 향을 피웠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고 본문은 분명히 증거해주고 있다. ...
카톡 나눔 40일
... 하나님께서 번제단의 불로만 분향하라고 하신 이유는, 늘 성막 안에 있는 거룩한 불(= 구별된 불)을 사용하여 하나님께 분향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아무 불이나 쓰면 안되고 성막 안에서 항상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는 ‘구별된 불씨로 하나님께 분향하라’ 는 말씀이었다. 그런데 나답과 아비후는 전혀 구별되지 않은 외부의 일반적인 어떤 불을 가지고 성소로 들어와 분향했던 것이다. 우리는 구별된 불로 분향하는 예배자인지? 아니면 구별되지 않은 외부의 불로 분향하는 예배자인지 돌아보아야 한다. ...
카톡 나눔 41일
...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예배는 철저히 세상의 것과 구별되어야 한다. 시간도 구별되어야 하고, 공간도 구별되어야 한다. 메시지도 구별되어야 하고, 예물도 철저히 구별되어야 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예배자인지 불순종하면서 예배하는 예배자인지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이다. 나답과 아비후는 구별되지 않은 외부의 불로 분향했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서 분향함으로써 죽임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10장3절上: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제사장)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 하셨느니라 ...
카톡 나눔 42일
레위기 10:3을 예전 개역한글 성경에서는 더 좋은 번역을 해주고 있다.
(레10:3上 개역한글)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제사장들을 통하여) 내가 거룩하다 함을 얻겠고 온 백성 앞에 내가 영광을 얻으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니까 사역자들, 제사장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거룩하다 함을 얻겠고! 온 백성 앞에 영광을 얻으시는데, 누구를 통하여? 제사장들을 통하여, 제사장들의 사역을 통하여 영광을 얻기를 원하셨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뜻대로 안 된 것이다. 나답과 아비후가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서 섬기는 제사장들은 특별히 더 거룩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카톡 나눔 43일
(출19:22) 또 여호와에게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에게 그 몸을 성결히 하게 하라 나 여호와가 그들을 칠까 하노라
이렇게 성경은, 종교지도자들(제사장들)은 더 성결해야 하고, 더 구별되어야 하고, 더 거룩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종교지도자는 특별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특별한 권한과 함께 특별한 책임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본문은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
카톡 나눔 44일
... 예수님께서도 ‘많이 맡은 자들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셨고, 야고보 장로님께서도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라고 경고하셨다. 그래서 가장 가까이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지도자에게는 특별한 권한과 함께 특별한 책임이 주어지는데, 그 책임은 그들은 더 성결해야 하고, 더 구별되어야 하고, 더 거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답과 아비후는 그렇지 못했다. 거룩하지 못했기 때문에 죽임당한다.
카톡 나눔 45일
10장3절下: ... 아론이 (자녀들의 죽음 앞에) 잠잠하니
→ 히브리어 ‘다맘’ 인데 ‘벙어리가 되었다’ 라는 뜻이다. 아론은 아들들이 하나님의 진노로 죽어서 하나님을 원망하며 슬퍼했던 것이 아니라, 슬픔을 억누르고 이번 하나님의 심판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아론의 겸손한 자세를 본문이 표현해 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겸허히 인정하는 아론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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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4-5절: 모세가 아론의 삼촌 웃시엘의 아들 (=아론의 사촌) 미사엘과 엘사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나아와 너희 형제들을 성소 앞에서(밖에서) 진영 밖으로 메고 나가라 하매 그들이 나와 모세가 말한 대로 그들(나답과 아비후의 시신)을 옷 입은 채(성의를 입은 채) 진영 밖으로 메어 내니
→ 그 성의를 입은 채, 오늘날로 이야기 하면 목사 가운을 입은 채 진영 밖으로 메어 나갔다. ...
카톡 나눔 47일
... 원래는, 제사장의 거룩한 성의를 입은 그대로 진영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 하지만 죽은 시신은 성의를 입힌 그대로 성소에서 진영 밖으로 그들의 시신을 메고 나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제사장들의 영광스런 성의가 그들의 잘못된 행위로 말미암아 성의가 수의(=상복)로 바뀐 것이다. 특별히 목사라는 ‘성의’ 더 나아가 안수집사, 권사, 서리집사, 성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거룩한 ‘성의’ 를 입고 교회를 섬기고 있는데, 만일 교회를 섬기면서 말씀을 어기면 그 영광과 자랑이 상복으로 바뀔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굉장히 두려운 장면이다.
카톡 나눔 48일
10장6절: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 (3남)엘르아살과 (4남)이다말에게 이르되 너희는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말라 ...
→ 형이 죽었고 아들이 죽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슬퍼하거나 울지 말라고 모세가 명령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제사장 나답과 아비후를 동정하거나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거나 애도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말씀을 어겨서 심판받은 사람 편에 서서 울면 안 되고, 심판 하실 수밖에 없으셨던 현재 가슴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편에 서서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카톡 나눔 49일
10장6절中: ... 그리하여 너희가(아론과 3남 엘르아살, 4남 이다말 제사장이) 죽음을 면하고 여호와의 진노가 온 회중에게 미침을 면하게 하라 ...
→ 그래서 특별히 사역자들, 성숙한 신앙인들은 철저히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해야지, 어떤 사건 앞에서 사람의 생각으로 인간적인 감정에 이끌려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6절下: ... 오직 너희 형제 이스라엘 온 족속은 여호와께서 치신 (심판의) 불로 말미암아 슬퍼할 것이니라
→ 개역개정 성경이 애매하게 번역되어 있어서, 죽임당한 자들의 아버지와 동생들은 슬퍼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일반 백성들은 슬퍼해도 괜찮다는 것처럼 되어 있는데, 그런 의미가 전혀 아니다. 원문에는 ‘여호와께서 불태우신 그 일 자체를 슬퍼하라’ 고 되어 있다. ...
카톡 나눔 50일
... 즉, 백성들 역시도 나답과 아비후를 동정하거나, 나답과 아비후의 입장에서 그들의 죽음을 애도해서는 안 되고, ‘이 사건 자체를 슬퍼하라’ 는 말씀이다. ‘제사장들이 세워진지 얼마나 되었다고 두 명씩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어김으로 거룩한 성소 안에서 불타죽다니! 어떻게 이런 사건이 있을 수 있나!!’ 라는 하나님의 입장, 하나님의 슬픔을 이해하라는 말씀이다. 우리도 진리를 기준으로 철저히 하나님의 입장에서 슬퍼할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어떤 사건 앞에 인간의 슬픔보다 하나님의 슬픔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감정보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입장과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릴 줄 아는 성숙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함을 본문은 증거해 주고 있는 것이다.
카톡 나눔 51일
10장7절: 여호와의 관유가 너희에게 있은즉(관유로 구별된 거룩한 제사장인즉) 너희는 회막 문에 나가지 말라 그리하면 죽음을 면하리라 그들이 모세의 말대로 하니라
→ 아론과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는 회막 밖으로 나가 나답과 아비후의 장례에 참여하는 것까지 금하고 계신 것이다. 이렇게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에게 자기 자녀, 자기 형제의 장례에 참여하는 것도 금하고 계신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사역자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분명한 우선순위가 있어야 한다.
카톡 나눔 52일
10장8-9절: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와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 죽음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영한 규례라
→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해야 한다. 나답과 아비후가 왜 죽었는지 유추해 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주는 구절이다. 아마도 술을 마시고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상태로 외부의 불을 가지고 성소에 들어와서 분향단에 향을 피우는 죄를 저질렀던 것이다.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이 중요하지, 어떻게 드리고 어떤 자세로 드려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
카톡 나눔 53일
... 하나님께서는 제사를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사의 내용과 자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것이다. 이 부분을 두 제사장이 놓쳤기 때문에 은혜받기 위해 드렸던 제사가 도리어 저주가 되고 말았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예배의 중요성은 알고 있는 것 같다. 예배가 중요하다, 주일성수가 중요하다 하면서 주일성수 예배를 목숨바쳐 드리려고 하는 기독교인들이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예배의 내용과 그 예배의 자세라는 것이다. 예배의 내용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예배자의 능동적 헌신의 자세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
카톡 나눔 54일
... 하지만 오늘날 현대 기독교 예배는 많이 변질되고 말았다. 예배시간에 ‘외부로부터 가지고 들어온 수많은 다른 불들’ 이 기독교 예배 가운데 이미 사용되고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예배자의 능동적인 헌신의 자세를 예배시간에 보기 드문 시대가 되고 말았다. 특히 코로나19 가운데 더욱더 그렇게 하향 평준화 되어가고 있다. 헌신이 없는 편한 예배, 수동적인 보는 예배를 현대인들은 추구하고 있다. 과연 우리 교회의 예배의 내용은 무엇인가? 우리의 예배의 자세는 어떠한가? 오늘 본문을 통하여 예배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한다.
카톡 나눔 55일
10장10-11절: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또 나 여호와가 모세를 통하여 모든 규례(율법)를 (제사장들인 너희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
→ 그래서 제사장들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복잡한 제사를 말씀대로 집례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데 제사장의 삶이 거룩하지 못하고, 모범이 되지 못하면 가르칠 수 없다는 말씀이다. 제사장의 삶이 먼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분별하는 삶이 되어야 하고, 제사장의 삶이 먼저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제사장들의 가르침에 힘이 있고 그들의 가르침에 효과가 있게 된다는 말씀이다.
카톡 나눔 56일
우리가 피와 기름을 먹지 않기를 바라고, 우리 교회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것처럼 교역자의 생활에 관심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외부의 다른 불이 아닌 거룩한 구별된 불로 하나님께 분향하는, 예배를 올려드리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